제117화
#116
“후…… 그래서 오늘은 왜 찾아온 거냐?”
연초를 문 D가 물었다.
솔직히 천운 또한 어느 정도 민폐라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집에 식구가 갑자기 늘어서요.”
“늘었다고?”
“예, 뭐.”
“하긴…… 너도 고생이겠군. 밖에서는 모르겠으나 탑 안에서는 역할 한번 잘못 걸려서 거지꼴이 됐으니.”
“저기…… 그리고 염치없지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뭔데?”
생각보다 들어줄 의향이 있는 모양이다.
천운은 빠르게 부탁을 말했다.
“대장장이 훈련을 포함해서 청소까지 하는 건 좀 힘들어서요.”
“흠…… 그럼 하지 마라.”
“예? 그래도 돼요?”
꿀꺽-
그가 술병을 거하게 들이마시며 말했다.
“지금은 내 역할이 닉 와일이라 이 공방의 주인이 된 거지만 딱히 이 공방에 정이 있는 건 아니야. 그냥 마음대로 하면 된다. 나도 굳이 탑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으니까.”
“그럼 뭐, 알겠어요.”
“그래도 네가 없으면 청소를 할 사람이 없어지니, 그건 네가 알아서 구해라.”
“네.”
천운은 고개를 끄덕였고 D는 다시 술병을 쥔 채 집무실 의자에 앉아 책상에 펼쳐진 도면을 바라봤다.
도면을 보던 D의 답답한 듯 찡그려지며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D의 반응에 천운은 궁금했다.
“저기 D 아저씨.”
그는 그대로 도면을 바라본 채 대답했다.
“왜 그러냐.”
“아저씨는 탑에 들어온 이유가 뭐예요?”
“흠…….”
D는 고개를 들고 잠시 천운을 바라보다 크게 숨을 쉰 뒤 입을 열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다.”
“깨달음이라면…….”
“뭐, 그래. 마법사들이 흔히 말하는 그 깨달음 말이다.”
그는 자신의 수염을 매만지며 말을 이어 나갔다.
“깨달음이란 본디 마법사에게 국한된 게 아니잖냐. 아니, 오히려 우리 대장장이들도 그 깨달음이란 걸 원할 거다.”
“그게 탑에 들어온 이유고요?”
“뭐…… 그래. 고민하던 중 탑 안으로 갑작스럽게 이동이 되더군. 마침 기회라고 생각해 시련에 참가하긴 했지만, 아직 앞이 보이지 않는구나. 후…… 괜히 왔나?”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이만 자거라. 내일은 나 없이도 알아서 수련하거라. 굳이 내가 있을 필요는 없을 테니.”
“알겠어요.”
천운은 소파에 누웠고 힐끔 D를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술병을 든 채 도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땅! 땅!
다음 날.
대장간에서 어김없이 망치를 내리치며 하루를 보내는 천운이었다.
‘다음은 6.’
단계 또한 늘려서 치는 중이었다.
정확히 1부터 7까지의 강도를 만든 뒤 1시간씩 랜덤으로 골라 내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히 7시간이 지난 뒤.
[퀘스트 성공!]
퀘스트 성공 알림이 올라왔다.
“……뭐야?”
대장장이 기술을 연마하라는 퀘스트가 어느새 성공한 것이다.
“다 끝났냐?”
타이밍에 맞춰 닉 또한 대장간으로 내려왔다.
“거참…… 몇 시간이나 치는 거냐?”
“예?”
“시간을 봐라.”
천운은 시간을 보았고 정확히 18시가 다 돼 갈 시간쯤 천운의 망치질이 멈춘 것이다.
“이른 아침부터 지금까지 쉬지도 않고 친 거냐?”
“멍하게 치니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거참, 대단한 집중력이군.”
D가 천운을 보며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정신력이 좋아도 자기 몸이 한계라는 것을 중간에 알아차릴 것인데.
“근데 끝난 걸 어떻게 아시고 내려오셨어요?”
“퀘스트 성공 알림창이 뜨더군.”
“퀘스트요?”
“내 퀘스트는 제자의 성장과 관련된 퀘스트더군. 마침 네놈이 끈기가 좋아서 다행이다만. 난 차려진 밥상만 먹으면 되겠군.”
D가 보기 좋게 씨익 웃으며 천운을 보았다.
천운 또한 고개를 끄덕였고 동시에 천운의 눈앞에 새로운 알림이 올라왔다.
[당신은 총 세 번의 퀘스트를 성공했습니다. 네 번째 퀘스트부터 보상이 주어집니다]
{퀘스트}
[대장장이 닉 와일의 기술을 전수받았습니다. 그 기술로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무기를 만드십시오.]
“무기?”
“왜 그러냐?”
“새로운 퀘스트 알림이 떠서요.”
“흠…… 역시 그렇군.”
“예?”
천운의 말로 D는 뭔가를 눈치챈 모양이다.
“너하고 내 퀘스트는 동조되는 모양이구나.”
“동조라면…….”
“내 퀘스트가 올라오면 난 그걸 돋는 역할인 거 같군.”
“아……!”
제자와 사제 관계가 됐으니 그것에 맞춰 퀘스트가 올라오는 모양이다.
마침 전쟁 퀘스트가 다가올 시기이니 천운 또한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천운이 처음 직업이 대장장이가 됐을 때 많은 고민을 했다.
과연 이 대장장이로 전쟁에 공헌도를 올리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말이다.
‘혹시 이 방법이라면…….’
천운의 생각은 단순했다.
총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자신이 대장장이 기술을 연마하여 무구를 가득 만들고 그것을 전쟁을 치르는 사람들에게 기부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천운이 만든 무기이니 공헌도를 높게 올릴 수 있겠지만 각하였다.
애초에 그 정도 양의 무구를 만들 시간도 없었고 기술도 부족했으니 말이다.
막상 기술이 늘어나도 시간은 아슬아슬할 게 분명했다.
또 다른 방법은 천운이 계속 기술을 연마하여 자신의 무기를 만들고 그것을 사용해 공헌도를 올리는 방법이었다.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넘어 자신에 직업을 이용해 만든 무기이니 어느 정도 높은 공헌도를 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일단…… 그 방향으로 해 볼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운은 결론에 도달했는데.
그것은 두 가지를 한 번에 시도하는 것이다.
“D 아저씨, 지금 바로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지금부터 하려고?”
“예.”
“허…… 거참. 너는 안 피곤하냐?”
“네. 몸은 괜찮으니까 지금부터 가르쳐 주실래요?”
“허…… 그래 일단 알겠다.”
D가 곧바로 자세를 잡았고 천운이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천운이 결론에 도달했을 때는 시간이 별로 남지 않는 기간이니 지금부터라도 빡세게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
“일단 보여 줄 테니 자세히 보거라.”
“예.”
땅!
* * *
땅! 땅! 땅!
그날도 다음 날도 며칠째 계속해서 망치를 내리치는 천운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다른 점은 천운은 드디어 유물에 사용되는 마석을 가공하고 있던 것이다.
“그냥 철이 아닌 마석부터 시작하는 놈은 네가 처음일 거다.”
“후! 힘드네.”
“당연하지. 마석용 화로를 써서 가공할 수 있다 해도 보통 때보다 더 힘이 들어가야 될 거다.”
천운이 다시 만들고 있던 마석을 화로에 넣었고 꺼내어 메질을 시작했다.
그것을 반복하며 형태를 잡고 있었지만, 막상 원하던 형태로 잡히지 않아 답답할 따름이었다.
‘좋아, 이건 기부용.’
천운이 생각하는 방법은 이것이었다.
자신의 실패작을 전쟁을 치르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방법이었다.
쓰지도 못할 정도의 실패작은 제외하고, 완성은 했으나 천운의 마음에 들지 않는 무기를 그들에게 나눠 주는 방식이었다.
“아저씨. 공략 연합하고 연락은 닿죠?”
“뭐, 손님이니까. 근데 왜 그러냐.”
“제가 만든 무기 좀 팔려고요.”
천운은 이 방법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유야 뭐…… 천운처럼 유물을 가지고 탑에 들어온 경우가 아니라면 그들 대부분이 탑 외부에서의 유물 현현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도 하루 3시간을 자며 무구를 만드는 중이었다.
“너는 안 피곤하냐?”
“아저씨도 한숨도 안 주무시더만.”
“나는 이 친구하고 밤을 새우니 괜찮은 거다만.”
그런 말을 하며 술병을 흔드는 D였다.
천운은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밤을 새워 가며 노력하는 거잖아요.”
“그래, 그런데?”
“맨정신으로도 못 얻은 깨달음을 술에 취해서 얻을 수 있겠어요?”
“크하하하! 건방진 소리를 하는구나.”
그는 오히려 천운의 조언을 듣고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라. 난 취해도 취한 게 아니니.”
“이미 취하신 거 같은데요.”
“뭐…… 그렇게 보이겠지.”
그가 천운의 옆자리에 앉아 말을 이었다.
“말 그대로의 의미다만…… 뭐 조금 쉽게 말하면 정신은 멀쩡하고 분위기에 취했다고 설명하면 되겠군.”
“분위기요?”
“그래. 그저 기분만 낸다는 느낌으로 마시는 거니 네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확실히 코를 찌르는 술 냄새에 비해 정신은 멀쩡해 보이는 D였다.
“뭐, 정신력의 차이라고 해 두마.”
“이틀 동안 안 주무신 것도 그 정신력 덕분인가요?”
“그래.”
정신력이라…….
언뜻 재능처럼 보이는 그의 정신력에 호기심을 보인 천운이었다.
과연 그것이 자신의 재능인지 아니면 그가 아베타로 각성하여 얻은 고유 스킬인지 말이다.
대장장이 D에 대한 정보는 천운 또한 모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그가 등장할 시기를 미뤄 두고 생각하다가 이쪽 세계로 넘어왔으니 그에 대해 모를 수밖에 없던 천운이었다.
“정신력이란 건…… 혹시 고유 스킬인가요?”
천운은 솔직하게 물어봤고 그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그 말은 아니라는 건가요?”
“그래. …… 그리고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해 두마. 이 정신력은 내가 태어나서 얻은 재능도 아니란다.”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천운이 오묘한 표정으로 D를 바라봤다.
그 표정이 D는 재밌다는 듯 입꼬리가 꿈틀 올라가기 시작했다.
“재능도 아니고 고유 스킬도 아니란다. 그냥 스킬도 아니고 마법도 아니지.”
“그럼 뭐, 훈련해서 얻었다. 그런 말이에요?”
“정답이란다.”
천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훈련해서 얻은 정신력이라고요?”
“그래, 그게 그리 놀랍느냐?”
“어…… 좀 신기하네요. 그럼 기술이라 이 말이에요?”
“그래. 그게 그리 신기하냐? 하하하!”
천운은 놀라움과 흥미를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그의 정신력이 훈련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천운에게 가깝게 다가왔다.
“혹시 억지로 버티시는 건?”
“뭐…… 지금은 아니지만, 이 기술의 디메리트가 나중에 잠을 좀 오래 자야 한다는 것 빼고는 괜찮단다.”
“피로를 못 느낀다는 말이죠?”
“그래. 근데 뭐……. 여유는 생겼지만, 딱히 진전이 있는 건 아니구나.”
한숨을 쉬며 수염을 쓰다듬는 D는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에 잠겨 있었다.
그런 D에게 천운이 조심스레 물었다.
“저기 혹시…….”
“되겠냐?”
“예?”
“이 기술을 가르쳐 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려 했잖냐.”
“안 되나요?”
흠…….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신 D가 천운을 지그시 바라봤다.
유심히 바라보던 D는 천운에게 차분히 입을 열었다.
“이봐 론, 아니 김천운. 대장장이 기술로 만족하거라. 퀘스트로 인해 스승과 제자 관계가 됐다지만 실제로는 아니지 않느냐. 그리고 이참에 말해 주마. 대장장이가 너무 큰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특히 내 기술을 가르침 받는 너는 더더욱.”
“알겠습니다.”
천운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일단…… 뭐 조금 예상한 답변이었지만 그는 의외로 화내지 않고 차분히 말해 주었다.
천운은 다시 고개를 돌려 메질을 시작했다.
“뭐 노력은 가상하구나. 뭔가를 배우려는 집념이 있으니. 그래도 내게 해 준 것도 많으니 너무 속상해하지는 말거라.”
“아닙니다. 저야 감사하죠. 그 애들도 챙겨 주셨잖아요.”
천운은 너무 좁은 집으로 인해 불편할 거 같아 3명의 아이를 D에게 부탁했다.
그는 생각보다 다정하게 허락하며 아이들이 머물 집과 일도 줬으니.
일이라고 해 봤자 천운을 대신해 1층과 2층을 청소하는 거지만.
돈도 넉넉하게 챙겨 주고 있었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땅! 땅!
천운은 또다시 망치를 내리쳤다.
계속해서 망치를 내리치다 문득, 갑작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아!”
요즘 훈련을 하여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우리가 여기 온 지 며칠이 됐죠?”
“일주일을 넘었을 거다.”
“그럼 이제 슬슬.”
탑이 두 번째로 사람을 들여보낼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