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115
땅! 땅! 땅!
이른 아침.
닉 와일의 대장간 지하에 메질 소리가 지하 대장간을 가득 메웠다.
“이야……. 이건 뭐.”
“고놈 참 물건이네.”
일찍이 대장간을 찾은 수습 대장장이들의 시선이 한곳에 몰려 있었다.
팔뚝으로 보나 작고 왜소한 체형의 소년이 메질하는 모습이 영 신기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항상 이곳, 대장간의 청소를 맡은 론 헤일리가 저러니 그들의 눈에는 이것만큼의 구경거리는 없었다.
“대체 저런 팔에서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저게 뭐 그 말 근육인가 그건가?”
애초에 몇 번 망치를 내리치며 메질하는 것도 신기한데 그것을 쉬지 않고 1시간씩이나 하고 있으니 그들의 눈에는 론 헤일리가 기똥찰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소년의 옆에서 무심하게 내려다보는 닉 와일이었다.
닉 와일은 천운에게 말했다.
“어이, 론.”
“예?”
“힘에 관해서는 뭐…… 굳이 훈련을 할 필요는 없겠구나. 일단 힘은 좋으니 기술을 익혀야겠군.”
“아, 네.”
“1시간 동안 메질할 정도의 체력과 힘은 있으니…… 뭐 잡다한 기술을 가르쳐 주마.”
솔직히 말해 닉…… 아니 D의 조언은 대장장이로서의 기본적인 조언뿐이었다.
그 또한 천운을 진심으로 가르칠 생각이 없었다.
애초에 퀘스트로 인해 D는 천운을 가르치는 것이고 천운 또한 퀘스트로 인해 그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이니.
{퀘스트}
[닉 와일은 뛰어난 제자를 원합니다. 닉 와일에게 당신의 실력을 인정받아 제자로 들어가십시오.]
[퀘스트 성공!]
{퀘스트}
[당신은 닉 와일의 제자가 됐습니다. 그의 가르침을 받아 대장장이 기술을 연마하십시오.]
두 번째 퀘스트가 성공하자마자 곧바로 세 번째 퀘스트가 올라왔다.
살짝 애모 모호한 클리어 조건이었다.
대장장이 기술을 연마하라는 말이 어느 수준까지를 말하는 건지 정확히 적혀 있지 않으니 어느 정도까지 그의 기술을 연마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성공이 뜰 때 동안 계속하는 수밖에.’
그렇기에 지금 D를 눈앞에 두고 메질을 하고 있던 천운이었다.
또한 메질에서 득을 보는 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요즘 소홀히 해 온 스탯의 상승이었다.
마투법을 포함해 행운의 만다라로 인해 스탯 향상을 신경 안 쓴 천운이지만 뜻밖에 힘이 드는 메질로 인해 작게나마 천천히 상승 중인 힘과 체력 스탯이었다.
그만큼이 힘이 드는 작업이긴 하지만.
“후……. 좀 생각보다 힘드네요.”
“그 정도 힘을 가지고 힘들다고 하니, 내가 말한 대로 제대로 한 모양이구나.”
“네. 그 3 정도의 힘으로 치라고 하셨죠?”
“임의로 숫자를 정해 힘의 강도를 기억해라. 이번에는 2의 힘으로 1시간 동안 쳐 봐라.”
“예.”
천운이 메질을 시작하기 전.
D는 천운에게 1부터 5까지 힘의 강도를 가르쳐 준 뒤 그것을 무작위로 선택하여 1시간씩 메질을 하게 만들었다.
“그냥 힘만 좋으면 개나 소나 대장장이를 하겠지. 힘은 그냥 먹고 들어간다 생각하고 일단 힘 조절을 할 수 있게 정교한 기술을 몸에 익혀라.”
“아, 예. 알겠습니다.”
땅! 땅!
생각보다 혹독한 훈련에 천운의 이마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화로 옆에서 몇 시간씩 메질을 하니 아무리 아베타라도 지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스탯이 오르니까 수련은 되네.’
힘들기는 하나, 0.1식 천천히 오르는 스탯을 보니 망치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보통 근력 운동이나 유산소 운동을 할 때보다 스탯 상승에 효과를 보이니 의외로 할 마음이 넘치기 시작한 천운이었다.
“좋다. 다음은 1.”
“예.”
땅! 땅!
그리고 천운이 한참 메질을 하고 있을 때 천운의 스탯과 더불어 성장하는 것이 있었으니.
[ㅇㅇ……!]
샌디의 지능은 눈에 띄지 않게 천천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대장장이 기술 자체가 샌디의 지식의 성장으로 이어진다.
샌디는 천운뿐만 아니라 주위의 대장장이들이 연마질하는 것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지능 : (45/100) +1
* * *
“흠…… 그놈은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카운터를 보고 있던 닉 와론은 인상을 구기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출근 시간이 1시간이 넘었는데 론 헤일리가 코빼기도 안 보였기 때문이다.
요즘 그래도 빠릿빠릿하고 눈치가 있어 굳이 말을 안 해도 일찍 출근하여 알아서 청소하던 놈이 오늘은 출근도 안 한 것이다.
아니, 그냥 자신이 신문을 보느라 녀석을 못 본 것일 수도 있으니 1층과 2층을 돌아다니며 찾아봤지만 역시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녀석은 오지도 않은 것이다.
“이 자식이 요즘 청소도 빨리 끝내서 좋게 봐줬더니!”
곧바로 와론은 지하 대장간으로 내려가 카일을 찾기 시작했다.
현재로선 아버지에게 의절한 아들 취급을 받는 그였으니 카일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던 와론이었다.
‘응? 뭐야?’
곧장 대장간으로 내려와 카일을 찾은 와론.
그러나 와론의 시선이 한곳에 모여 무언가를 구경하는 대장장이들에게 향했다.
그곳에 카일 또한 씨익 웃으며 뭔가를 구경하고 있기에 와론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그들이 있는 곳을 향했다.
“카일 씨.”
“뭐냐? 와론이냐?”
“뭘 구경하세요?”
“네가 직접 보거라.”
“예?”
와론의 시선이 카일이 가리킨 곳을 향한 순간.
“뭐야?!”
와론은 경악스럽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청소를 해야 할 놈이 망치를 쥐고 철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 경악스러운 건.
‘아버지가 대체 왜…….’
녀석을 바라보는 닉 와일, 자신의 아버지가 녀석에게 조언하며 기술을 가르치고 있었다.
자신에게 그렇게 가르쳐 달라 해도 꿈쩍도 안 하던 그 고지식한 아버지가 말이다.
“이게 대체 무슨…….”
“참 신기하단 말이야. 저런 나뭇가지 같은 팔에서 어떻게 저 정도 힘이 나오는지 원……. 하하하!”
막상 와론의 심정도 모르게 호쾌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카일이었다.
와론은 혼란스럽게 상황을 유심히 살펴봤다.
확실히 믿을 수 없는 파워로 망치를 내려치고 있긴 했다.
“언제부터 저런 겁니까?”
“3시간 전부터다.”
“3시간 전부터 말입니까?”
“그렇다고 들었다만…… 설마 그 닉 녀석이 이렇게 열심히 가르칠 줄은 생각도 못 했네. 하하하!”
“…….”
카일의 활짝 펴진 미소와 다르게 닉 와론은 굳은 얼굴로 웃을 수가 없었다.
와론의 심경에 모멸과 불쾌감이 자리 잡았다.
1년 전 알 수 없는 이유로 론 헤일리를 데리고 온 아버지였다.
그리고 지금 그 이유를 언뜻 알 거 같은 느낌이었다.
“크윽!”
그는 이를 으득 갈며 곧바로 대장간을 빠져나왔다.
아버지는…… 진심으로 자신과 선을 그을 생각이다.
* * *
“이쯤이면 됐다.”
“후…… 생각보다 힘드네요.”
“그럼 쉬운 줄 알았냐? 이만 돌아가 보거라.”
5시간의 메질이 끝난 후에야 대장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천운이었다.
천운은 곧바로 닉 와일과 함께 1층으로 올라갔고 뭔가 알 수 없는 눈초리가 느껴졌다.
‘뭐지?’
고개를 휙 돌리니 카운터에서 신문을 쥔 닉 와론이 미간을 좁히며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이, 론! 일 다 끝났으면 빨리 청소나 해!”
“아, 예.”
힘이 다 빠진 천운은 그냥 대충 대답하고 걸레를 쥐었다.
막상 천운의 말투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눈을 부라리며 천운을 노려보는 와론이었다.
그러나 막상 옆에 있던 D를 힐끔 쳐다본 와론은 그대로 입을 닫고 혀를 차며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천운은 곧장 청소를 시작했고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청소가 끝난 천운이었다.
“어우, 뻐근하네.”
청소만 했으면 상관이 없겠는데 5시간 동안 메질을 하고 청소를 하니 사람으로서 피곤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와론 씨. 저 먼저 가 볼게요.”
청소를 다 끝낸 천운은 와론에게 인사했고 와론은 이를 으득 갈며 매서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내가 뭐 잘못했나?’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천운은 그대로 밖으로 나와 빈민가에 위치한 집을 향했다.
집에 문 앞에 도착한 천운은 그대로 인벤토리에 먹을 저녁을 꺼낸 뒤 집으로 들어갔다.
“아, 안녕하세요!”
“오셨어요?”
“어머, 왔니?”
문을 열자 어머니와 쌍둥이 아이들이 천운을 반겼다.
아이들은 천운이 손에 들고 있는 통조림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저, 저기…….”
그때 정신을 차린 리카 또한 잠에서 깨어난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어제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겠네.’
“일단 그…… 뭐 먹고 얘기하자.”
“그 은인님…… 뭐라고 감사를 표해야 할지…….”
두 쌍둥이보다 생각보다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리카였다.
그래도 굶주린 것을 보니 일단 먹고 얘기하는 것이 나아 보였다.
천운이 음식을 차릴 동안 아이들이 눈을 빛내며 펼쳐진 음식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호기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흘러나오는 침을 꿀꺽 삼킨 미카와 니카가 천운에게 물었다.
“은인님 혹시 이건 무슨 음식인가요?”
“응? 뭐…… 라면?”
“혹시 이건 빵인가요?!”
“어, 맞아.”
“이렇게 부드러운 빵은 처음이에요.”
“뭐 많이 있으니까 천천히 먹어.”
곧바로 천운이 말하자 포크를 쥐며 포식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런 미카와 니카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리카가 천운에게 또 한 번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저…… 은인님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 뭐 몸은 괜찮고?”
“네.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눈물을 흘리며 미소 짓는 리카였다.
눈앞의 그가 아니었으면 자신은 그곳에서 동생들을 남겨 둔 채 죽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 집에서 오래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희도 계속 여기에 머물 수는 없으니 저녁만 먹고 곧바로 떠날게요.”
“어머, 그런 얘기하지 마렴.”
“어디 갈 데는 있고?”
천운이 리카에게 물었고 리카는 그저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폐를 끼칠 수도 없으니까요.”
“음…….”
천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눈앞의 리카라는 소녀가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성숙했기 때문이다.
차분하고 어른스러운 말투에 눈앞의 소녀가 정말 고아원 출신인지 살짝 의심이 가는 천운이었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자.”
“하지만.”
“몸도 아직 안 나았잖아.”
“그럼 제가 밖에서 자겠습니다. 저는 괜찮으니 미카와 니카를…….”
“괜찮으니까 여기서 자고 어머니, 죄송한데 오늘도 밖에서 자고 오겠습니다.”
천운의 말에 그녀가 걱정스럽게 천운을 쳐다봤다.
“정말 괜찮니? 조금 좁아도 같이 자면 될 텐데.”
“네, 뭐, 괜찮아요.”
천운은 별수 없이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가 대장간을 향했다.
곧장 3층 집무실을 두드리니 술 냄새를 풍기는 D가 나와 인상을 찡그렸다.
“넌 또 왜 왔어?”
“같은 플레이어끼리 돕고 사는 거죠.”
“허, 거참 기똥찬 놈일세. 뭐, 일단 들어와라.”
보이는 표정과 다르게 순순히 들여보내 주는 D였다.
천운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감사하며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