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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 속 운만렙 캐릭터가 되었다-115화 (115/176)

제115화

#114

“어, 어떻게!”

독은 확실히 살포됐다.

아주 극소량만 흡입해도 몸에 내포된 마력이 분산되는 독이다.

그런데 눈앞의 소년은 움직이는 걸 넘어 멀쩡해 보였다.

“서, 설마!”

질라의 동공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하나의 기억.

“……대마법사?”

유일하게 그런 극독에 예외인 자들.

마력 자체의 격이 높은 자들은 독 따위로 마력이 분산하여 흩어질 리가 없으니 말이다.

질라의 주위에 솟아오른 화염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천운을 계속 바라봤고 천운은 눈을 좁히며 그에게 다가갔다.

“네가 질라지?”

“……저, 저희한테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물론 상황이 이 지경까지 이르러서 묻는 건 이상하겠지만 딱히 독 지네나 블랙맘바가 천운에게 먼저 손을 댄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귀찮게 굴기 전에 미리 처리하려고.”

“……귀찮게 굴다니. 고작 그거 때문에…… 애초에 저희는 마법사님의 정체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뭐…… 근데…….”

천운이 질라를 노려봤다.

“그게 중요해?”

“…….”

이미 상황은 벌어진 뒤였다.

딱히 이유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오히려 천운은 눈앞의 녀석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더욱 화가 났다.

“지하에 애들은 무슨 용도로 쓴 거야?”

“그, 그건…….”

“그따위 짓거리를 해놓고 나한테 명분을 묻는다라…….”

천운이 헛웃음을 내뱉으며 말했다.

“굳이 이유가 필요하지는 않을 거 같은데”

천운의 말에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던 녀석이 할 말이 없는지 그대로 입을 닫은 뒤 시선을 돌렸다.

“그럼 이제.”

꽈아악-

꽉 쥐어진 주먹.

마투법은 이미 풀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녀석은 쉽게 기절하지 못할 것이다.

* * *

상황이 끝난 후 몸을 털며 아지트를 나온 천운.

구란이 후다닥 달려들며 천운을 맞이했다.

“마법사님! 괜찮으십니까?”

“네. 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예, 예 뭐든 말씀해 주십쇼.”

“안에 있는 두 놈을 자경단에 넘겨주세요. 저는 먼저 집에 가 보겠습니다.”

“아…… 살아는 있습니까?”

“글쎄요? 일단 숨은 붙어 있어요.”

흠칫- 당황하던 구란은 이내 미소를 지으며 꾸벅 천운에게 인사했다.

천운은 구란을 믿고 그대로 집을 향해 달렸다.

시간은 이미 자정이 지난 1시.

늦어도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더구나 영문도 모를 애들 3명이 집을 찾아갔으니 곧바로 어머니에게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이 아니라 검은 거미 아지트로 보낼 걸 그랬네.’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투법을 써서 전력 질주로 내달렸으니 집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천운은 몸에 무슨 흔적이 있는지 둘러본 다음 집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 그렇구나……. 많이 무서웠겠구나.”

“네…….”

“혹시 배고프니?”

“아, 아니요. 괜찮아요.”

집에 도착하니 론 헤일리의 어머니가 2명의 어린 소녀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기절해 있던 소녀는 하나밖에 없는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들고 있었다.

“어머, 론 왔구나.”

그녀가 고개를 돌려 천운을 바라봤다.

다정한 눈빛이 천운을 향했고 그녀는 아이들에 대한 것이나 이렇게 밤늦게까지 뭘 한 것이냐 묻지 않았다.

그저 다정하지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예. 일이 좀 늦어서요. 밥은 드셨어요?”

“나는 괜찮은데 이 아이들은 배가 무척 고파 보이는구나.”

“그래요? 그럼 잠시만요.”

천운이 잠시 밖으로 나와 인벤토리에서 음식 몇 개와 침낭을 꺼냈다.

‘침낭은 잘라서 넓게 펴면 되겠네. 물은 초급 마법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금방 돌아온 천운의 손에는 컵라면을 시작해 통조림류의 음식이 한가득 들려 있었다.

“우와…….”

“이게 뭐예요?”

“아직 밥 안 먹었지?”

일단 상태를 보아하니 뭘 좀 먹이고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천운이었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넣고 그대로 캔을 딴 뒤 그녀들 앞에 두었다.

그러나 막상 먹을 걸 눈앞에 두고 멀뚱멀뚱 천운만 쳐다보는 아이들이었다.

“어…… 저기.”

“혹시 먹어도 되나요?”

“편하게 먹어.”

“아…… 혹시 언니 거 남겨 놔도 되나요?”

소녀의 시선이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를 향했다.

“언니 몫은 따로 있으니까 먼저 먹어.”

“아…… 정말 감사합니다.”

와구와구-

눈앞의 음식을 다급하게 먹어 치우는 아이들이었다.

그 모습만 봐도 아이들이 얼마나 굶주렸었는지 알 수 있었던 천운이었다.

“어머니도 아직 저녁 안 드셨죠?”

“나는 괜찮으니 아이들에게 많이 주렴.”

“많이 있으니까 어머니도 드세요.”

천운은 미리 준비해 둔 죽을 어머니에게 넘겼고 그대로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마 음식으로 경계가 풀린 거 같으니 질문을 해도 쉽게 대답해 줄 것이다.

“혹시 이름은?”

“어…… 저는 미카고 얘는 니카예요. 언니는 리카고요. 저희 둘은 쌍둥이예요.”

“집은?”

“그, 그게…… 원래 고아원에 있었는데…….”

고개를 푹 숙인 니카와 미카였다.

아이들의 표정만 봐도 무슨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알 거 같았다.

“팔렸구나.”

“네…….”

재정난에 시달린 고아원이 마지막으로 할법한 짓은 뻔했다.

고아원이 아이들을 팔아 돈을 보충했고 아마 이 아이들을 산 것이 게일드였을 것이다.

“저…… 어머니?”

“나는 괜찮단다.”

“감사합니다.”

천운은 침낭을 잘라 바닥에 넓게 편 뒤 아이들에게 말했다.

“오늘은 일단 여기서 자.”

“그, 그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론. 너는 어디서 자려고.”

그녀가 걱정스럽게 천운에게 물었다.

천운은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는 사람 집에서 자고 올게요. 그럼 내일 봐요.”

탁-

그대로 문을 닫으며 집을 나온 천운이었다.

[아는 사람이라니? 검은 거미 아지트를 말하는 거야?]

‘아니요. 대장간에 가려고요.’

[대장간? 이 시간에?]

‘뭐…….’

천운은 인벤토리에서 녹청색의 돌 하나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

‘이걸 보여 주면 재워는 주겠죠.’

* * *

“허, 거참.”

기가 막힌다는 얼굴을 하며 인상을 찡그리는 닉이었다.

그도 그럴 게 이 맛탱이 간 꼬맹이가 늦은 새벽에 찾아와 재워 달라 말하고 자빠졌다.

“너는 예의라는 게 없는 거냐?”

“사정이 있어서요.”

“그래, 뭐 사정 때문에 그렇다 치고…… 하, 아니다. 투영석을 가지고 있지?”

“네? 네.”

“꺼내 봐라.”

천운은 곧바로 주머니에 넣어 둔 투영석을 꺼냈다.

“역시…… 성공했군.”

“예?”

“그래. 일단 들어와라. 오늘 하루는 재워 줄 테니.”

크흠-

그가 불편한 듯 헛기침을 하며 천운을 집무실로 들여보냈다.

들어와 보니 아침과는 다르게 난잡하게 어지럽혀진 집무실이었다.

온갖 종이 쪼가리들이 바닥에 널렸으며 이상하게 술 냄새까지 나는 집무실이었다.

“거 옆에 소파에서 자거라. 이야기는 내일 해 주마.”

“아, 네. 감사합니다.”

“하…… 잘못 걸렸군.”

털썩-

그는 다시 집무실 의자에 앉으며 작업을 이어 나갔다.

천운은 호기심이 슬쩍 고개를 돌려 닉이 하는 작업을 바라봤다.

‘술식?’

의외의 도면이었다.

그가 하는 작업은 커다란 백지에 도면을 그리는 것이었다.

대장장이가 자신이 만들 작품에 도면을 그리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으나 그 도면 안에 마법 술식이 언뜻 보였다.

막상 천운이 도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니 닉이 점잖게 물었다.

“론…… 아니 이름이 뭐냐?”

그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천운이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스럽게 물었다.

“네? 무슨 말이에요?”

“네 진짜 이름이 뭐냐고.”

“어?!”

“모를 줄 알았냐? 너도 탑 바깥에서 온 놈이잖냐 이놈아.”

천운의 눈이 놀란 듯 휘둥그레졌다.

탑 바깥에서 온 자들.

애초에 탑이 만든 과거의 사람들은 탑 외부의 존재, 아베타들을 인식할 수 없다.

그 말은 곧.

“아저씨도 그럼…….”

“그래.”

닉은 아무렇지도 않게 술병을 들이마시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애초에 말라빠지고 가난한 차림의 평민 꼬맹이가 마력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잖냐.”

“그럼 아저씨도…….”

“그래. 나도 탑의 시련에 참여한 플레이어다.”

절망의 탑 시련에 참여한 아베타들은 통칭 플레이어라고 부른다.

또한 닉의 ‘플레이어’라는 발언에 알 수 있는 한 가지가 있었다.

“저 말고도 이미 다른 사람을 만났군요.”

“흠…… 그래. 대장장이 일을 하니 손님 중에 몇 명이 플레이어였지. 그 녀석들이 말하더군. 우리 같은 사람들을 플레이어라고 부른다고.”

애초에 플레이어라는 호칭은 시련의 참가자들이 모인 단체 ‘공략 연합’이 만든 명칭이었다.

닉이 플레이어라는 호칭을 알고 있다는 말은 곧 다른 플레이어들을 만났다거나 또는 그 단체의 소속이라는 말이다.

“아저씨도 공략 연합 소속인가요?”

“흠…… 아니.”

꿀꺽- 술을 물 마시듯 삼킨 닉이 천운에게 말했다.

“애초에 대장장이니, 탑 공략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더군.”

“뭐, 그렇겠죠.”

“뭔 남 얘기하는 듯 말하냐. 너도 똑같구먼.”

“음…….”

천운은 미간을 찡그리고 신음을 흘리며 고민했다.

닉의 말대로 애초에 대장장이라는 직업이 과연 탑 공략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말이다.

“뭐, 그래도…… 그놈들은 후회할 거다.”

“예?”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아니요.”

애초에 바깥에서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역할로 인해 얼굴이나 몸의 체형이 변했으니 모를 수밖에 없었다.

“만약 탑 밖에서 나를 만났다면 말도 못 걸었을 거다 이놈아! 하하하!”

호탕하게 자신감을 내보이며 웃으니 더욱 그의 정체가 궁금해진 천운이었다.

“대체 누구신데…….”

“탑 안에서나 밖에서나 하는 일은 똑같지. 대장장이다.”

“대장장이요?”

“그래.”

탁-

닉은 성냥을 꺼내 연초에 불을 붙이고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장장이 D. 밖에서는 나를 그렇게 부르더군.”

천운의 눈이 크게 떠지기 시작했다.

* * *

대장장이 D의 유물점.

과거에 몇 번 들른 적이 있는 유물점이었다.

애초에 이 소설 속 세계관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점이니 모를 리가 있나.

문제는 D의 정체였다.

대장장이 D 그것 또한 그의 본명이 아닐뿐더러 얼굴 또한 알려지지 않은 미스터리한 인물이니 말이다.

“아저씨가 그 대장장이 D라고요?”

“그래, 이놈아. 그럼 이제 네 차례구나. 나이하고 이름을 말해라.”

“그…… 나이는 17살에 김천운입니다.”

“김천운…… 그래. 뭐 너는 도대체 밖에서 뭐 하다 왔길래 직업이 대장장이가 걸린 거냐?”

“직업하고 역할은 애초에 랜덤이에요.”

“뭐…… 그렇긴 하다만 내가 대장장이가 걸렸으니 결코 그렇다고 볼 수는 없을 거 같구나.”

조금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일단 설정상 직업이나 역할은 랜덤이 맞다.

오히려 대장장이 D가 운이 좋은 것이다.

막상 대장장이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천운이 대장장이가 걸렸으니 말이다.

“하…… 카일 녀석의 말에 흥미가 생겼지만 네가 플레이어라고 하니 흥미가 뚝 떨어지는구나. 17살이면 생도냐?”

“아, 예.”

“그럼 던전 브레이크 사건 때도 거기에 있었겠구나.”

“아니요. 사정 때문에 학교에 등교하지는 않았습니다.”

“뭐야? 운이 좋은 놈이군. 뭐 반대로 말하면 경험이 없다는 말이겠구나. 그 사태가 벌어진 이후 길영트의 생도들은 각자 마물의 경험을 쌓았을 테니 말이다. 크하하하!”

그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술을 벌컥- 마시며 호쾌하게 웃기 시작했다.

“뭐, 내 유물점을 알고 있으니 내 가게에서 산 유물이 있겠군.”

“어…… 뭐 하나 있긴 한데.”

“뭘 샀는지 보여 줘 봐. 난 내가 만든 유물은 전부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천운이 손을 내미니 천운의 손목에 붙어 있던 샌디가 스르륵- 움직이며 천운의 손바닥에 올라탔다.

닉이 순간 미간을 찌푸리며 천운에게 말했다.

“그 모래는 내가 만든 유물이 아닌데…… 응?”

동시에 샌디의 몸이 꿀렁거리더니 어느새 크리티컬 단검으로 변한 샌디였다.

“호오…… 그건.”

닉 와일이 크리티컬 단검을 쥐고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건 내가 제작한 유물이군…… 한데 이건 분명…….”

등급 D의 어떻게 보면 실패작인 유물.

뭔가 새로운 시도를 위해 만든 유물이지만 D에게는 실패작으로 남겨진 유물이었다.

그렇기에 소년에게 호기심이 생긴 D였다.

“이 무기를 아직도 쓰고 있느냐?”

“예. 제 애무기예요.”

“이게 애무기라고? 독특한 녀석일세……. 크흐흑.”

잠시 유물을 살피던 D의 입가에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군.”

“예?”

“내일 일어나자마자 대장간으로 내려와라. 일을 알려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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