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화
#112
흑장미의 아지트에 도착한 천운은 아지트의 간판을 올려다봤다.
‘술집?’
빈민가에서 조금 벗어난 어느 술집.
뜻밖의 위치에 존재하는 아지트였다.
구란은 이곳이 흑장미의 아지트라고 말하고 있었다.
“여깁니다.”
“……술집이요?”
“예. 들어가 보시면 알 겁니다.”
“음…….”
천운은 눈앞의 술집을 바라봤다.
‘과연 그런 설정인가 보네.’
술집으로 위장한 정보 조직.
흔한 설정이라 곧바로 짐작할 수 있던 천운이었다.
분명 여기서는 무슨 암호를 말하면 밀실로 따라오라고 할 터인데.
“그럼 저는 여기까지겠네요.”
“예. 밖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흑장미 또한 구란을 이미 알고 있을 터이니 천운이 혼자 들어가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 맞다. 근데 암호는요?”
“예? 암호라니요?”
“정보를 물을 때 무슨 암호 같은 거 없어요?”
“아하! 뭐, 그런 건 귀중한 고급 정보를 얻고 싶을 때야 암호는 있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그냥 정보를 사고 싶다고 말하며 은화 한 닢 던져 주시면 됩니다.”
“그래요? 참고로 그 고급 정보 암호는요?”
“우유 두 잔이면 됩니다.”
“음…… 알겠어요.”
구란의 말을 듣고 천운이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술집의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이 천운을 흘겨보기 시작했다.
대놓고 쳐다보니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천운은 바 테이블 앞에서 앉았고 곧이어 술집 주인으로 보이는 콧수염이 긴 남자가 천운에게 다가왔다.
“우유를 드릴까요? 손님?”
남자는 천운을 보며 명백한 비웃음을 선보이며 말했고 그런 남자를 향해 천운이 입을 열었다.
“우유 두 잔 주세요.”
“알겠습니다.”
남자가 잠시 부엌으로 간 뒤 진짜로 우유 두 잔을 컵에 따라 가져왔다.
천운은 인상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우유 두 잔이라고요.”
“여기 있지 않습니까. 우유 두 잔.”
천운은 주머니에서 은화 한 닢을 꺼내 테이블에 던졌다.
남자는 그제야 아-하는 소리와 함께 천운을 안내했다.
“죄송합니다. 안으로.”
생각보다 불편한 몸이다.
일단 론 헤일리의 나이는 17살이 맞긴 하나 아무래도 굶주림으로 인해 다른 또래보다 성장이 더딘 것 때문인지 다른 사람의 눈에는 꼬맹이로 보이는 모양이다.
“여깁니다.”
천운은 남자를 따라 암실로 들어갔고 암실에는 작은 책상과 두 개의 의자가 있었으며 어느 검은 머리의 여인이 먼저 자리에 앉아 천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 주위에는 덩치의 사내들이 그녀를 지키듯 서 있었으며 천운은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히 다가가 그녀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녀는 천운을 보자 인상을 찡그린 뒤 천운을 데려온 남자에게 불만을 토해 냈다.
“꼬맹이라고? 이봐. 아무리 우리가 손님을 가리지 않고 다 받는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은화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길래…… 일단 데리고 왔습니다.”
은화를 한화로 치면 100만 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데 어딜 봐도 이 거지꼴의 어린놈이 가지기에는 큰돈이었다.
‘빌린 돈이긴 하지만…….’
이곳에 들어가기 전에 구란에게 돈을 받은 천운이었다.
“흐음…… 그래? 그래서 꼬마. 뭐가 궁금해서 여길 찾아왔니? 우리가 뭐 하는 놈들인지는 알고?”
로벨리아가 미소를 보이며 천운을 바라봤다.
일단 은화를 가지고 있다는 시점에서 손님의 정체 따윈 중요치 않았다.
알아내려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으나 딱히 눈앞의 소년의 정체가 궁금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녀가 손님을 가리는 기준은 한 가지.
돈이 있느냐 없느냐, 그것뿐이었다.
물론 그 점을 중요시 여겨 이 꼬마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지만 로벨리아는 소년이 가지고 온 돈의 행방이 어딘지가 궁금했다.
“은화라…… 그래서 우리 꼬마님은 뭐가 궁금해서 여길 찾아왔을까?”
“로벨리아가 당신인가요?”
소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아니, 담담하다 못해 차게 식을 정도였다.
로벨리아는 흥미롭게 천운을 바라봤다.
“흐음…… 그게 알고 싶은 정보야?”
“예.”
“응?”
그냥 장난으로 한 말인데…….
“맞아. 내가 로벨리아야. 자 정보를 더 듣고 싶으면 돈을 더 내놓고.”
“혹시 다른 일도 하나요?”
“예를 들어?”
“납치, 살해 뭐 이런 거?”
로벨리아의 눈이 날카롭게 좁혀졌다.
“꼬맹이가 매섭기도 해라…… 그런 걸 의뢰하려면 여기가 아니라 다른 곳을 찾아갔어야지.”
“그래요? 그럼 뭐 합격.”
“뭐?”
로벨리아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녀의 눈초리를 받으며 천운은 일어섰고 곧바로 마력을 방사했다.
후아앙!
천운의 마력이 암실에 퍼지기 시작했다.
마력을 모르는 자들은 이 기운을 모를 것이다.
“뭐, 뭐?!”
그러나 로벨리아의 떨리는 시선을 보니 그녀는 마력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사내들이 천운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동시에 천운은 손목에 있는 샌디를 단검으로 바꿨으며 그대로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만둬! 너희들 미쳤어?”
“예, 예? 하지만…….”
“다들 이 방에서 나가! 당장!”
그녀의 갑작스러운 축객령에 사내들은 어찌할지 망설이다 그녀의 말대로 암실을 나갔다.
그녀는 긴장한 듯 식은땀을 흘리며 천운을 마주 보았다.
떨리는 시선으로 천운을 보았고 아까와는 다르게 조마조마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이런…… 멜 할머니가 아니라고.’
그녀는 자신의 불찰에 이빨을 으득 갈았고 천운은 그녀의 행동을 유심히 살피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당신은…… 마법사인가요?”
아까와는 다른 공손한 말투.
그럴 수밖에.
의외로 머리 회전이 빠른 그녀였다.
눈앞에 마력을 쓰는 소년은 평범한 소년이 아니었고 동시에 그가 검은 거미와 날까마귀를 2일 만에 괴멸시킨 마법을 쓸 수 있는 맛탱이 간 소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심정은 지금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있는 기분이었다.
“네.”
천운은 의외로 쉽게 대답해 줬다.
그도 그럴 게 애초에 싸우러 온 게 아니니 말이다.
“목적이 뭔가요?”
“솔직히 정보도 정보지만 거래를 하러 왔어요.”
“거래? 거래요?”
“네.”
“거래라 하면 무슨 거래요?”
일단 깽판 치러 온 건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긴장을 풀 수 없는 로벨리아였다.
눈앞의 소년, 아니 정확히 마법사의 마음이 언제 바뀔지 모르니.
“블랙맘바와 독거미들이 하는 일이 뭐예요?”
“당신이 조금 전 저에게 물어본 것들이요.”
“그래요? 분명 흑장미는 정보를 판다고 했죠?”
“네. 당신이 알고 싶은 정보는 웬만하면 저희가 알 수도 아니면 알아낼 수도 있을 거예요.”
“좋아.”
고개를 끄덕인 천운이 일어섰다.
곧바로 오늘 밤 안에 찾아갈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떠나려던 천운을 보며 로벨리아가 다급하게 일어서며 말했다.
“조심하세요. 블랙맘바와 독 지네가 당신을 노리고 있어요.”
“……예, 뭐 알겠어요.”
그녀의 뜻밖의 정보에 천운은 그녀를 바라봤다.
아직도 긴장한 듯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만, 눈은 피하지 않았다.
뭐 그걸 알려 준 이유는 모르겠지만 딱히 도움이 되는 정보는 아니었다.
“구란을 통해 나중에 또 찾아올게요.”
그러나 알려 준 거 자체가 자신과 적대할 생각이 없다는 말이겠지.
천운은 얌전히 암실을 나갔고.
“허억…… 허억…….”
그녀는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세상에…….”
마력을 느끼는…… 아니, 마력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그 누구라도 소년의 마력을 알아본 순간 지금 자신과 같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력양의 문제가 아니었다.
소년이 내뿜는 마력은 보통 마법사들이 뿜어내는 마력의 질 자체가 다르다.
격 자체가 다르다는 말이었다.
그녀 또한 과거에 정보를 얻기 위해 찾아온 마법사를 본 적이 있었다.
지금도 멜이라는 마법을 쓰는 노파를 만나고 있으니 마력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둘과 비교해도 마력의 질이나 격의 차이가 현저히 드러나는 소년이었다.
“마지막 말을 전해서 다행이야…….”
소년을 상대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한 질라와 게일드.
어리석은 판단이다.
그렇기에 거의 그들과 선을 긋는다는 의미로 소년에게 정보를 알려 준 로벨리아였다.
그들의 계획에 자신은 아무 상관도 관계도 없다는 말이었다.
“미친놈들. 저런 걸 상대로 어떻게 해 보겠다는 거야?”
한 가지 그녀는 확신하고 있었다.
오늘 밤 블랙맘바와 독 지네는 사라질 것이다.
* * *
빨리 처리할 거 오늘 안에 싹 다 정리하는 게 좋을 것이다.
애초에 살려 줄 가치도 없는 놈들이다.
“여기가 정말 맞죠?”
“예. 맞습니다.”
꿀꺽- 침을 삼키는 구란.
저 작은 몸에 흘러나오는 마력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 다녀올게요.”
“예. 조심히 다녀오세요 마법사님.”
구란이 다음으로 안내한 곳은 독 지네의 아지트였다.
천운이 아지트의 문을 열어 들어간 뒤.
-끄아아악!
-뭐, 뭐야 X발!!
밖에서 들려오는 고통스러운 고성을 들으니 그게 전부 의미가 있나 싶다 참…….
저렇게 돈을 쌓아 놔도 한순간에 의미가 없어지니 말이다.
훙! 팍! 파캉!
천운이 독 지네의 아지트로 들어온 뒤.
일단 눈에 보이는 놈들을 생각 없이 때려눕히는 중이었다.
‘어차피…….’
딱히 의무감이나 정의감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니었다.
그럴 거라면 흑장미를 찾아간 시점에서 먼저 손을 봤겠지.
천운이 신경 쓰이는 것은 놈들이 천운의 정체를 알고 성가시게 굴 가능성이 높아서였다.
‘일단 이 세계에서 마법사의 평가가 어느 정도인지 알겠네.’
생각보다 높게 평가받는 마법사였다.
탑 스토리를 쓸 때 평민, 말 그대로 마력을 못 쓰는 일반인의 시점으로 쓴 적이 없어서 이런 부분에서는 생소했지만 구란이나 로벨리아의 반응을 보니 이 세계에서 마력을 쓸 수 있는 자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딱히 마법사라서 그런 건 아닐 거야.]
‘네?’
[천운이 네가 흡수한 특성 중 내 마력 특성도 있잖아.]
‘아! 그럼…….’
[현자의 마력이야, 일반인도 쉽게 감응할 수 있을 정도의 격이지.]
그들이 두려움에 떠는 이유는 굳이 천운이 마력을 쓸 수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으아악!!”
“대, 대체 뭐야 넌!”
“괴, 괴물이다!!”
보이는 사내들을 두들겨 패거나 지옥염 마법을 쓰며 정진하는 천운이었다.
일단 3층에 독 지네의 보스가 있다고 생각하여 올라가긴 했는데 천운의 예상은 틀렸다.
‘3층이 아니네? 그럼 지하인가?’
천운은 다시 1층으로 내려가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찾았다.
‘여긴가?’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니 또다시 문이 있는 방에 도착한 천운이었다.
문은 쇠사슬로 굳게 잠겨 있었지만, 딱히 열쇠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샌디. 대검.’
[ㅇㅇ!]
천운의 손목에서 샌디가 흘러나와 대검의 형태를 갖추었다.
쾅!
그대로 휘둘러 쇠사슬과 함께 문을 부순 천운이었다.
“윽!”
문이 부서지자 곧바로 코를 찌르는 역겨운 냄새가 흘러나왔다.
천운은 인상을 찡그리며 문 너머로 들어갔고.
“이건…….”
천운의 동공이 당황스럽게 떨리기 시작했다.
천운은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흐아…….”
“으윽! 흐아앙!!”
쇠창살에 갇힌 금발의 어린 소녀들.
고작 10살 11살 될법한 어린 소녀들이었다.
“언니! 흐아아앙!!”
“흐아앙! 죽지 마 언니!”
“…….”
2명의 어린 소녀가 쓰러진 한 소녀를 흔들며 서글프게 울고 있었다.
쓰러진 소녀는 입에서 피를 토하고 꿈틀 경련을 일으키며 죽어 가고 있었다.
‘저건.’
천운의 시야에 들어온 하나의 흔적.
쓰러진 소녀의 팔에는 주사 자국이 여러 개 보였다.
‘…….’
문을 부수자 나오는 그 역겨운 냄새의 정체.
그것이 독이라는 것을 눈치챈 천운이었다.
천운의 인상이 험악하게 굳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