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110
‘동기화는 설정만 붙는 게 아니었네…….’
론 헤일리와의 동기화란 설정만이 따라가는 줄 알았건만…….
그녀에 대한, 아니 자신을 위해 서글프게 울던 어머니에 대한 부모애까지 천운의 몸에 각인되듯 동기화된 것이다.
과거 이런 경험을 한 번 느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것을 부정한다 해도 지금부터 하려는 행동은 달라지지 않을 테니.
쾅!!
발목을 잡힌 사내의 몸이 부웅 떠오르며 반대편 지면을 향해 내리 찍혔다.
놈은 고통의 신음을 흘리기도 전에 지면에 부딪친 순간 기절했으며 천운은 녀석을 아무도 없는 골목길로 질질 끌고 왔다.
놈은 입 안에서 거하게 피를 내뱉으며 움찔움찔 떨고 있었다.
일단 살아 있는 모양이다.
동시에 3명의 인기척을 느낀 천운이었다.
아마 이놈의 동료인 게 확실할 것이다.
“나와. 이놈을 죽이기 전에.”
짐작 자신들을 눈치 못 챌 거라 생각했는지 흠칫 떠는 것이 눈에 선명했다.
그들 3명은 항복을 표하며 손을 든 채 천운을 따라 골목길로 따라왔다.
천운은 기절한 윈터의 등에 털썩 앉은 뒤 녀석들의 면모를 살폈다.
그들 하나하나가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었다.
“이놈이 말하던데. 날까마귀라고?”
3명의 사내는 눈앞에 소년을 보며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불과 몇 분 전 자신들의 상사 윈터가 물건처럼 패대기쳐진 것을 확인한 사내들이다.
그것도 자신들과 비교해도 왜소한 체형의 소년이 말이다.
사내들은 금방 눈앞에 소년이 마법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윈터가 건들면 안 될 소년을 건드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곧바로 그중 한 사내가 천운을 향해 엎드렸다.
사내는 날까마귀에서도 막내에 위치해 있었으며 사정으로 인해 돈이 궁핍하니 별수 없이 날까마귀에 들어온 것이었다.
그렇기에 엎드리며 빈 것이다.
자신은 여기서 죽으면 안 되니.
그러나 천운이 그 사정을 알 리는 없을 것이다.
궁금해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저 남자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훅! 쾅!
천운은 엎드린 남자를 제외한 나머지 두 남자를 향해 땅을 박차고 달려가 주먹을 내질렀다.
돌로 된 지면이 움푹 파일 정도의 각력과 스피드였다.
천운의 정권을 맞은 사내 두 명은 그대로 날아가 벽면에 꽂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히, 힉!!”
막상 엎드려 있던 남자는 기겁하더니 바지에서 무언가 축축한 것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안내해.”
천운은 그런 모습을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에게 말했다.
“예, 예?”
남자의 동공이 떨리기 시작했다.
천운의 무감정한 눈빛이 남자를 향했다.
“아지트로 안내하라고.”
“예, 예! 아, 알겠습니다.”
남자는 떨리는 입술로 힘겹게 대답한 뒤 그대로 천천히 일어서 날까마귀의 아지트로 안내했다.
* * *
“후…….”
크로윈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 떨릴 수밖에 없었다.
“X발…… 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한 거야.”
크로윈은 그 떨림을 막으려 연초를 피웠으나 오히려 다가오는 무언가로 인해 다급해질 뿐이었다.
그저 얼굴만 확인하라는 명령도 못 지키다니…….
“보스. 우리 막내가 웬 꼬맹이를 데려왔는뎁쇼?”
“후…… 너희들은 가만히 있어라.”
“예?”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움직이지 말라는 소리다.”
크로윈은 자신의 무기인 사슬 갈고리를 가지고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 얼굴은 아지트에 있는 그 누구보다 비장하여 아무도 크로윈에게 말 거는 부하는 없었다.
“미리 경고하마.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나오지 마라.”
끼이이익-
크로윈은 문을 열었고 문 앞에는 날까마귀의 막내와 웬 꼬맹이가 서 있었다.
또한 크로윈은 곧바로 소년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소년의 몸에서 풍기는 기운을 모를 리가 없었다.
자신의 한쪽 눈을 앗아 간 자 또한 마력을 쓰는 자였으니.
“네놈이 마법사인가 보군…….”
“네가 여기 보스인가 보네?”
구란 때와 같이 존대할 필요는 없었다.
천운 또한 상대를 봐 가며 존대해 왔고 천운의 눈에는 놈은 그럴 가치가 없는 쓰레기로 보였으니 말이다.
“그래…….”
크로윈의 눈이 소년의 옆에 서 있는 막내를 향했다.
이글거리는 눈을 보니 분노에 찬 것이 확실했다.
“들어가 있어라, 멍청한 새끼야!”
“네, 네네!”
천운은 힐끗 아지트 안으로 들어가는 남자를 바라본 뒤 다시 크로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녀석이었나 보네.’
유일하게 아지트에서 마력이 느껴지는 사내.
그러나 마력이라고 해 봤자 미세할 정도였다.
그것보다.
“생각보다 인정이 깊은가 봐.”
“뭐야?”
“아지트를 판 동료는 죽일 줄 알았는데.”
“오해가 있나 보군. 죽일 거다. 개 먹이로 던져 버릴 거니 안심해라. 그렇게 해도 네 심기를 건드린 건 없어지지 않겠지만.”
“뭐, 그렇겠지.”
꽈아악-
천운이 주먹을 쥐었다.
그대로 어깨를 돌리며 손을 풀고 크로윈의 코앞까지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크로윈과의 거리가 1보 정도 되자 크로윈이 입을 열었다.
“우리 쪽이 무슨 실례를 저질렀지?”
“우리 어머니를 겁박하더라고.”
“X발…… 윈터 이 개자식.”
협상이 될 리가 없었다.
“크아아아악!!”
크로윈의 고성과 함께 크로윈의 몸에서 마력이 흘러나왔다.
“5년이다! 5년 전 그 녀석에게 당한 이후로 미세하지만, 마력을 쓸 수 있게 되었지!! 각오해…….”
후웅! 퍽!
콰쾅!!
크로윈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몸은 그대로 널빤지처럼 날아가 아지트의 문을 뚫고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당연한 결과였다.
마력이 있다 쳐도 사용을 못 하면 없는 것보다 나으니.
“뭐야?!”
“보, 보스!!”
저벅- 저벅-
천운은 유유히 정문을 통해 아지트 안으로 들어갔다.
* * *
날까마귀가 괴멸됐다는 소식이 퍼진 것은 다음 날이었다.
정확히는 마법사의 분노를 산 날까마귀가 괴멸됐다는 소식이었다.
이쯤 되니 남은 3개의 범죄 조직 또한 마법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가만히 있을 상황이 아니게 되었다.
한 번이면 족하지 두 번이나 마법사의 눈이 돌아갔다는 게 애초에 믿을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마법사의 얼굴을 모른다 하여도 날까마귀의 크로윈이란 사내는 조심성과 심중함 하나는 다섯 조직 보스 중에서도 당연 1인자인 사내였다.
그런 사내가 그 전날 검은 거미가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런 어리석은 행위를 저질렀다고?
나머지 3 조직 보스는 그 정체불명의 마법사를 현재로선 미친놈으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아니, 구란은 그렇다 쳐, 근데 크로윈은 병신이야? 바로 전날 검은 거미가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텐데 마법사를 건드려?”
붉은 장미를 장식한 흑색 드레스를 입은 요염한 미녀가 눈앞에 있는 두 사내에게 입을 열었다.
그녀가 바로 나머지 남은 조직 중 하나인 흑장미 조직의 로벨리아였다.
“허허, 로벨리아. 그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게 아니냐?”
독 지네 조직의 질라가 헛웃음을 내뱉으며 로벨리아에게 말했다.
로벨리아의 매서운 눈초리가 질라에게 향했다.
“둘 다 진정해라.”
상석에 앉아 있던 사내의 말에 로벨리아와 질라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2일 만에 두 조직이 당했다.”
남자의 무거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치켜뜬 매서운 눈이 그 둘을 훑었다.
양팔에는 철로 된 사슬을 두르고 있었으며 민머리인 이마에는 짐승의 발톱으로 보이는 흉터가 새겨져 있었다.
남자의 이름은 게일드.
현 빈민가의 실세인 블랙맘바 조직의 보스였다.
게일드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 마법사라는 새끼는 변덕이 심한가 보군.”
게일드는 분노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다.
날까마귀 놈들한테 의뢰한 용건이 그 마법사 놈 때문에 무용지물이 됐으니 말이다.
블랙맘바 조직은 노예 판매 사업을 주업으로 삼고 있는데 그 노예를 밀수해 오는 조직이 날까마귀였다.
그 날까마귀가 괴멸되며 노예의 공급이 파탄 났으니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 이 개 같은 새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게일드?”
질라가 물었고 대답한 것은 로벨리아였다.
“2일 만에 조직 두 개를 괴멸시킨 개미친놈이야. 섣불리 움직이면 안 돼.”
“그럼 뭐? 이렇게 두고만 보자는 거냐?”
“그럴 수밖에 없지. 그럼 뭐 우리 세 명이 힘을 합쳐 마법사를 치자고? 만약 그런 말을 하면 난 여기서 빠지겠어.”
“검은 거미와 날까마귀가 마법사를 먼저 건드렸다는 말을 믿는 거냐? 로벨리아.”
게일드가 물었다.
로벨리아는 헛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적어도 믿을 수밖에 없지. 검은 거미는 운이 나빴다 치고 그다음 가장 먼저 마법사한테 접촉한 게 날까마귀니까.”
더는 들어 볼 필요도 없었다.
로벨리아는 곧바로 자리를 뜨려 일어나려 한 순간.
“앉아라.”
쾅!
책상을 내리친 게일드가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로벨리아 또한 게일드를 마주 보며 노려봤다.
“두 번은 말하지 않으마. 앉아라.”
“하! 지금 누구한테 하는 소리야?”
“내가 너한테 하는 소리다.”
로벨리아는 게일드를 노려봤고 이내 혀를 차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여튼 이 병신새끼들.’
속으로 게일드를 뇌까리는 로벨리아였다.
게일드는 몰라도 질라까지 힘을 합치면 흑장미 조직을 찍어 누를 수 있으니 말이다.
질라의 눈빛만 봐도 알겠다.
녀석은 게일드의 의견에 동조할 생각이다.
그들은 아직도 그 알량한 힘을 믿고 마법사를 상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로벨리아.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해라.”
로벨리아의 흑장미 조직은 나름 왕국의 유명 인사들에게 알려진 정보 조직이었다.
그런 흑장미가 마법사의 얼굴을 모를 리가 없었다.
“몰라.”
그러나 로벨리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의 말이었다.
게일드와 질라는 눈매를 좁히며 로벨리아를 노려봤다.
로벨리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번만큼은 진짜야. 보통 마법사 녀석이 아니야. 놈은 흔적을 남기지 않거든. 사는 위치는 대강 알고 있는데. 누군지를 모르겠네.”
“흠…….”
게슴츠레 로벨리아를 노려보는 게일드.
그러나 로벨리아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노려봤다.
이내 시선을 거둔 게일드가 입을 열었다.
“로벨리아는 정보를 모아라. 질라는 맹독을 준비해 놔라. 아무리 마법사라 한들 독은 통하겠지.”
“알겠어.”
“그러지.”
그들의 회의가 끝난 뒤.
흑장미 조직의 보스 로벨리아는 아지트로 향하고 있었다.
“흐음…….”
그녀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사실 마법사에 대한 정체와 정보는 이미 조사하여 알고 있는 로벨리아였다.
아니, 조사를 넘어 이미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마법사가 원하는 건 로벨리아가 힘을 써 조달해 줬으니 말이다.
‘어차피 말할 생각도 없지만…….’
이래서 정보가 중요하다.
정보의 우위에 선 시점.
무엇도 알지 못하는 블랙맘바와 독 지네는 파멸할 것이다.
“그러게 왜 멜 할머니는 건드려서 지랄이야.”
* * *
한편 천운은 오늘도 닉 와일의 대장간을 찾아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어김없이 빠른 속도로 청소를 해치우고 있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골칫거리로 인해 고민하고 있던 천운이었다.
‘2일 만에 두 곳은 좀 심했나?’
두 조직을 괴멸시켰다는 소리가 나돌고 있긴 한데 어떻게 보면 천운은 그저 분노에 몸을 맡겨 깽판을 친 것밖에 없었다.
물론 검은 거미와 달리 날까마귀 녀석들은 재활 불가로 만들어 버리긴 했으나 후에 있을 귀찮은 보복을 생각하면 조금 생각하고 행동했어야 됐나? 막연히 후회가 드는 천운이었다.
“어이! 론!”
그런 고민을 하던 중.
막 1층 청소가 끝나가던 시점에 카일이 자신을 부른 것이다.
천운은 그를 보며 공손히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래, 론. 잠시 시간 되냐?”
“예, 뭐 방금 1층 청소가 끝나서요.”
“호오…….”
카일은 신기하다는 듯 1층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제보다 이른 시간에 1층 청소를 끝낸 천운이었다.
이게 날이 갈수록 요령이 느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 그럼 잠시 3층으로 따라오거라.”
“예? 3층이요?”
“그래.”
그러고 보니…….
그놈들 때문에 까먹고 있었는데 일단 천운의 최대 목적은 빈민가 범죄 조직 괴멸이 아니었다.
근데 막상 한 것도 없는데 닉 와일을 만날 기회가 찾아왔다.
‘그래도 운이 좀 따르긴 하네.’
천운과 카일은 곧장 3층인 닉 와일의 집무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