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109
쾅! 쾅! 쾅!
3층 닉 와일의 집무실.
카일은 론이 돌아간 뒤 곧바로 와일의 집무실을 두드렸다.
“와일!! 언제까지 집무실에 처박혀 있을 거야! 어이! 와일!”
끼이익-
3일 동안 굳게 닫혀 있던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문을 연 와일은 인상을 구기며 카일에게 입을 열었다.
“빌어먹을 카일. 날 좀 내버려 두라고 했잖아.”
백발과 듬직한 근육, 팔 한쪽에는 도끼 문신이 있는 사내였다.
사내는 카일을 짜증스럽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이 대장간의 주인 닉 와일이었다.
“3일 동안 밤을 새웠나? 왜 이렇게 초췌해 보여?”
“상관 마 카일. 할 일은 끝났고?”
“그래. 그것보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들어와.”
카일을 집무실로 들여보낸 와일은 서로 마주 보며 소파에 앉았고 카일은 그런 와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3일 전부터 일이 잘 안 풀리나 보군.”
“흠…… 흔히 말하는 슬럼프다. 신경 쓰지 마라.”
“그래, 뭐. 그건 그렇고 저번에 네가 데려온 론 헤일리 말이다.”
“론 헤일리? 그런 놈을 내가 데려왔었나?”
와일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카일이었다.
“이런 멍청한…… 1년 전에 네가 데려왔잖아.”
“그랬나? 그건 그렇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놈을 대장장이로 만들고 싶다.”
“흠…….”
와일의 노곤한 표정이 카일을 향했다.
솔직히 안 그래도 바쁜 마당에 그런 거 하나하나 신경 쓸 기력은 없었다.
“마음대로 해라.”
“네가 그놈을 가르쳤으면 좋겠군.”
“뭐?”
와일이 인상을 꾸겼다.
카일은 그런 와일을 보며 반박하듯 입을 열었다.
“네놈이 예전에 젊은 인재를 찾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지 않았나? 17살이면 적당하겠지.”
“말이라고 하나 카일? 17살짜리 애의 뭘 보고 나보고 맡으라는 거냐?”
“글쎄다. 손재주는 모르겠지만 힘 하나만큼은 괜찮더군.”
“헛소리 말고 카일 네가 맡아라.”
“난 네놈이 시킨 일로도 바빠서 말이야. 3일간 집무실에 처박혀 있을 시간에 이런 거라도 하는 게 어때?”
“끄으응!”
와일은 불편한 신음을 흘렸고 카일은 조용히 그런 와일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
결국 항복을 선언한 와일은 카일에게 말했다.
“내일 그 녀석을 내 앞으로 데려와. 일단 하는 실력을 보고 판단하지.”
“그래, 그렇게 해.”
* * *
빈민가의 범죄 조직은 검은 거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강도, 납치, 살해 등을 일삼는 범죄 조직 또한 있었으니 그 조직의 이름은 날까마귀.
그 날까마귀의 보스 크로윈은 한쪽 눈에 사선의 흉터가 새겨진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였다.
그의 측근 부하 중 한 명인 윈터가 가져온 정보를 듣고 호쾌하게 웃고 있었다.
“그게 사실이냐?”
“예. 사실입니다.”
“크하하하하! 그 벌레 새끼들 정보 조직이면 정보만 찾을 것이지 나댈 때부터 알아봤어. 그래서 거의 괴멸 상태라고 했지?”
“예, 보스. 그럼 이제 어떻게…….”
“일단 그 마법사라는 인간부터 찾아. 얼굴이나 생김새를 알아야 조심할 거 아니냐?”
“예. 알겠습니다.”
보스의 방에서 나온 윈터는 곧바로 부하 3명을 데리고 조사에 착수했다.
예로부터 마력은 선택받은 자만이 쓸 수 있는 기적이었고 그 기적을 행사하는 인간과 평범한 인간 사이에서는 큰 격차가 존재한다.
멍청이도 알고 있는 상식이었으며 그 멍청이보다 더한 병신이 검은 거미의 보스 구란이었다.
‘병신 같은 놈들. 마법사를 건드리다니…… 쯧쯧.’
마력을 사용해도 빈민가에 있는 그 어떤 조직도 상대가 안 될 터인데 마법까지 쓸 수 있는 마법사라면 말 다 했다.
이미 그 마법사로 인해 괴멸 상태인 검은 거미는 조만간 어느 조직 중 하나에 먹힐 것이다.
그것이 우리 날까마귀일 수도 있을 거고.
‘여긴가?’
검은 거미는 그 마법사에 대한 정보를 함구했지만 숨기려면 제대로 숨겼어야지.
어제 사건이 일어나기 전 검은 거미의 조직원 세 명이 이 근방 3개의 집 주변을 둘러쌌다는 정보를 부하 중 한 명이 확인한 것이다.
‘분명 이 집 중 하나라는 건데…….’
그러나 자신의 기억으로는 늘어서 있는 이 3개의 집에 사는 인간은 노파와 주정뱅이 술꾼 그리고 병에 걸린 여자와 같이 살고 있는 17살 꼬맹이였다.
‘그럼 그 노파겠군.’
주정뱅이와 꼬맹이는 아닐 게 분명하고 그 꼬맹이의 어미 되는 병 걸린 여자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나머지 한 명은 마녀라고 불리는 그 노파뿐일 터.
다행히 그 노파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그냥 돌아가서 보스에게 전달만 하면 될 것이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게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만약 잘 보여서 우호적인 관계가 된다면…….’
마법사가 누군지 알아냈다.
그렇다면 윈터가 할 일은 그 노파를 일절 건들지 않거나 또는 살갑게 대하여 우호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다른 조직 녀석들이 눈치채기 전에 지금 손을 쓰는 게 좋겠지.’
아마 자신만이 이런 생각을 품은 것은 아닐 거다.
빈민가의 다른 조직들도 귀가 있으니 금방 이 소식을 들을 것이며 마법사를 찾을 것이다.
그들이 할 행동은 두 가지.
일제히 마법사가 사는 이 구역을 건들지 않거나 또는 살가운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다가오거나.
윈터는 후자를 선택할 계획이었다.
‘그러려면 일단…….’
윈터의 시선이 노파의 이웃집을 향했다.
분명 꼬맹이 한 명하고 병에 걸린 여자가 사는 집이었다.
‘그래도 옆집인데 뭐라도 아는 게 있겠지.’
똑똑-
윈터는 소년이 사는 옆집을 노크했고 곧바로 콜록 콜록 기침을 해대는 여자 한 명이 문을 열어 주며 말했다.
“콜록…… 콜록…… 누구세요?”
“흠…….”
윈터의 시선이 집 안을 훑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침대밖에 없는 작은 집.
여자 또한 허름한 옷차림에 창백한 피부를 보아 살림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옆집에 노파와 아는 사이인가?”
“옆집이라면…… 멜 할머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여자의 이름이 멜인가?”
“근데 무슨 일로…….”
“흠…….”
윈터는 주머니에서 은화 하나를 꺼내며 입을 열었다.
“아는 건 이름뿐인가?”
그녀는 윈터의 은화를 보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원하는 게 뭐죠?”
“그녀에 대한 정보. 멜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하면 이걸 주지.”
“…….”
잠시 은화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흔들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가난에 시달렸다는 거겠지.
그러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의 말이었다.
“죄송합니다. 돌아가 주세요.”
뜻밖의 대답이 윈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윈터가 그녀를 바라보는 눈이 날카롭게 변했고 차가운 말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왜지?”
“그렇게 사람을 팔고 얻은 돈은 쓰고 싶지 않아요.”
생각보다 귀찮은 타입의 여자였다.
자신 하나도 배불리 못 먹는 가난한 상황에 양심은 팔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이런 일을 수두룩하게 해 본 윈터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분명…….
“내가 누군지는 알고 있나?”
“아니요. 콜록…… 하, 하지만 당신의 말을 들을 일은 없을 거예요.”
“우리는 날까마귀다. 너도 여기서 몇 년은 살았을 테니 모른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
“…….”
여자의 눈이 두려움으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 또한 빈민가의 범죄 조직에 대해 몇 개 들어 봤을 것이다.
특히 날까마귀라는 집단은 납치와 살인을 서슴지 않는 잔악무도한 범죄 조직이라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네년한테 아들 하나가 있었지?”
“아, 아니 그건…….”
“그러게 처음 좋게 말할 때 알아들었어야지.”
“죄, 죄송합니다.”
풀썩-
그녀가 윈터를 향해 바닥에 엎드리며 간절히 외쳤다.
“제, 제발 저는 상관없지만, 그 아이만은…….”
“자, 자 이러면 내가 나빠 보이잖아. 이야기는 들어가서 하지.”
끼이익! 탁-
윈터와 그녀는 집 안으로 들어갔고 윈터는 하나밖에 없는 침대 위에 풀썩 앉으며 씨익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여자는 그런 남자의 앞에 무릎을 꿇고 덜덜 떨며 애원하고 있었다.
“제발……. 제 아들 론 만큼은…….”
“그러게 뭐 가진 것도 없는 년이 뭐라고 자존심을 내세우고 지랄이야.”
쾅!
윈터는 그녀를 겁주기 위해 있는 옆 벽면을 후려쳤다.
후드득-
얼마나 낡아빠진 집인지 그렇게 힘줘서 치지 않았음에도 벽면이 뚫리며 구멍이 생길 정도였다.
그 모습에 그녀가 더욱 후들후들 떨기 시작했다.
“자, 여기서 상황이 더 안 좋아지기 전에 말하는 게 좋겠지.”
“그, 그게…….”
“나를 이 정도까지 도발해 놓고 아는 게 없다는 말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제가 아는 거라고는 멜 할머님은 항상 아침 일찍 산을 간다는 정도밖에…….”
“흠…… 그것 말고는 다른 건 없나?”
윈터의 미간이 좁혀졌다.
다음에 말할 정보도 마음에 안 들면 손을 쓰겠다는 무언의 경고였다.
“그, 그게 밤마다 어딜 다녀오신다는 거밖에…….”
“밤마다 어딜 나간다고?”
“네, 네 정말 이거밖에 모릅니다. 저는 상관없지만 제발 론만큼은…….”
“흠…….”
‘밤마다 어딜 나간다라…….’
윈터는 잠시 생각에 잠겼고 힐끗 바닥에 무릎을 꿇은 여자를 쳐다봤다.
“괜찮군.”
윈터는 침대에서 일어선 뒤 문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면서 슬쩍 그녀에게 한마디를 던지고 문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내 심기를 건든 값은 안 받았군.”
“네, 네?”
“네놈의 아들…… 우리가 잘 써 주마.”
“아, 아…… 제, 제발 그것만은……. 흑…….”
“그러게 처음부터 고만고만하게 대답했으면 됐잖아. 거참 성가시게. 캬아악! 퉤!”
끼익-
윈터가 거하게 침을 내뱉고 낡아빠진 문을 열며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훙!!
“흡!”
문 사이로 어떠한 손이 윈터의 얼굴을 덮쳤다.
그대로 안면이 잡힌 윈터는 집 밖으로 끌려 나갔고 바닥에 쓰러져 서럽게 울부짖던 그녀는 방금 일어난 상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문밖에서는 자신의 아들 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전하게 문 잠그고 집에 계세요.
“론? 론! 몸은 괜찮니?”
-네. 그리고 잠시 어디 좀 다녀올게요.
“아, 안 돼 론! 콜록! 커헉!”
그녀는 기침을 토해 내며 굳게 닫힌 문을 향했다.
허겁지겁 일어나며 문으로 향하려 했지만, 몸에 힘이 안 들어가는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의 입에서 병으로 인한 토혈을 내뱉으면서도 문을 향해 기어갔다.
“론!! 론!! 콜록!!”
쿵! 쿵!
그녀가 조급하게 문을 두드린 순간.
콰쾅!!!
문밖에서는 알 수 없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 * *
천운은 문 사이로 보인 녀석의 안면을 그대로 한 손으로 잡아채 밖으로 내던졌다.
“크헉!”
그대로 몸을 구르며 바닥에 엎어진 윈터였다.
“넌 뭐야 이 새끼야!”
윈터가 분노하여 땅을 짚고 일어서려는 순간.
후우웅!
“넌 뭐냐고 이 X바…… 로마?”
윈터는 분노로 인해 꾸겨진 인상이 서서히 풀렸고 분노에 찬 눈이 서서히 경악스럽게 떠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동시에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몸을 에워싸고 있는 알 수 없는 기운.
처음 겪는 사람은 이 기운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윈터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마력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 아아…….”
천운의 진득할 정도로 농후한 마력은 각성을 못 한 윈터 또한 자연스레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또한 일반인이기에 힘없는 그는 본능적으로 목숨에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 버린 것이다.
눈앞에 있는 소년.
그는 마법사였다.
“날까마귀라고 했나?”
천운의 무감정한 눈이 그를 향했다.
“흐, 흐아아!”
윈터는 겁에 질린 듯이 바닥을 차며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천운은 그대로 윈터에게 다가가 윈터의 발목을 잡았다.
뿌드득-
꽉 쥐어진 녀석의 발목에서 뼈와 근육이 뭉개지는 소름 돋는 소리가 들려왔다.
윈터는 고통에 소리를 지르며 간절히 빌었다.
“끄아아악! 제, 제발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용서…….”
훙!!
천운은 그대로 녀석의 발목을 잡은 채 반대편으로 힘껏 내리쳤다.
콰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