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화
#108
늦은 밤.
천운은 남자가 말한 검은 거미의 아지트에 도착한 시점이었다.
[흠…… 역시나.]
‘왜요?’
[마력이 느껴지지 않아.]
천운은 아지트에 도착한 뒤 그들을 어떻게 상대할까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다.
막상 미르마는 그럴 필요가 없을 거라고 말하지만.
[생각할 필요도 없어. 전부 마력이 없는 일반인이니까.]
‘아베타가 한 명도 없다고요?’
[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니야. 우리 세계에서 마력을 쓸 수 있는 인간은 평민 중에서도 드물었으니까.]
‘그럼 뭐.’
딱히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천운은 마투법의 마력을 손으로 끌어모아 그대로 정문에 정권을 내질렀다.
쾅!!
“뭐야?!!”
“머선 일이고? 습격이가?”
문은 산산조각이 나고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20명 정도의 사나운 인상의 사내들이 우르르 문 앞으로 달려왔으며 그들은 문 앞에 서 있는 천운을 어처구니없게 바라보고 있었다.
“애? 애라고?”
“저놈이 우리 아지트 문을 부수고 선전 포고한 거라고?”
“그럴 리가 있겠냐 멍청이들아. 어이 꼬맹이, 좋게 말할 때 누가 그랬는지 말……악!!”
더 들어줄 것도 없이 천운은 달려들어 주먹을 내질렀다.
훙! 퍽! 쾅!
이번에는 한 번에 기절시키기 위해 힘 조절할 필요 없이 있는 힘껏 내질렀고 천운을 위협하던 사내는 뒤로 대포처럼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순간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라는 표정으로 상황을 바라보던 사내들이 정신을 차리고 그제야 천운에게 달려들었다.
“뭐 해 병신들아! 얼른 달려들어!”
“이 꼬맹이가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마!”
20명의 사내가 각자 병장기들을 들고 천운에게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검이나 듬직한 메이스가 허공을 스치며 천운에게 휘둘려졌지만, 천운의 몸에 닿을 리는 없었다.
당연하지만 천운과 그들의 힘 차이는 물론 의안으로 인한 동체 시력 또한 다르니 실력 차이는 명백할 수밖에 없었다.
각성한 아베타와 일반인의 차이란 이런 것이다.
훙! 퍽!
피하고 때리는 일방적인 공방이 이어졌으며 대충 10명 정도 때려눕히니 그제야 움직일 수 있는 나머지 사내들이 뒤로 주춤 물러나기 시작했다.
“뭐, 뭐야? 미친! 이게 말이 돼?”
“어떻게 돼 먹은 몸뚱어리야. 저딴 마른 몸으로 이 정도 힘이라니…….”
“저놈도 사람이니 이제 슬슬 지쳤을 거야! 한 번에 달려들어!”
“그만!”
그들이 다시 천운에게 달려들려고 하는 순간 안쪽 방에서 그들을 일갈하며 저벅저벅 걸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주변에 널브러진 자신의 부하들을 힐끗 쳐다보고 천운에게 눈을 돌렸다.
그가 천천히 천운에게 다가오고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마법사님을 몰라뵙고 저희 부하가 마법사님의 심기를 건드린 모양입니다.”
사내의 반응은 생각보다 정중했다.
천운 또한 예상 못 한 반응에 오묘한 표정을 지으니 미르마가 설명했다.
[아마 저 녀석은 네가 마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네. 애초에 각성자와 일반인에 힘의 차이는 명백하잖아. 저 녀석은 그걸 이미 알고 있는 거고. 그리고 아마 너를 귀족이나 은둔 마법사로 알고 있는 모양이네.]
‘뭐 은둔 마법사는 둘째 치고 귀족이요?’
[애초에 마력은 귀족의 특권이었거든.]
뭐, 내 차림새는 아마 저 남자의 눈에는 후줄근한 거지꼴이겠고 아무래도 남자는 자신을 후자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천운은 남자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입을 열었다.
“당신이 검은 거미의 보스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그럼 저를 노리려 한 이유가 뭐예요?”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안으로 드시죠.”
남자의 안내에 따라 천운은 그가 나온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나름 이 가난한 빈민가의 이름 있는 조직이라고 방에는 생각보다 푹신한 소파와 고급스러워 보이는 나무 탁자가 들어서 있었다.
천운은 자기 집 안방처럼 소파에 풀썩 앉았고 사내 또한 식은땀을 흘리며 천운의 맞은편에 앉았다.
천운은 여유롭게 그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이름이?”
“구란입니다. 검은 거미의 보스를 맡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이제 설명해 보세요.”
“솔직하게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알고 있는 사정이기는 하나 워낙 구란이라는 사내가 너무 저자세로 나오기에 천운은 일단 그 사정을 들어주기로 했다.
근데 딱히 전부 들어도 천운이 예상한 상황과 크게 다른 것이 없었다.
조직원 중 한 명이 내 인벤토리를 확인했고 이놈들은 그게 유물을 이용해 꺼낼 수 있는 보물 창고인 줄 알았고 유물을 훔치기 위해 나를 노렸다는 말이었다.
“미리 마법사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정중히 모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남자는 고개를 푹 숙이며 진심으로 천운에게 사과하고 있었다.
‘음…….’
천운은 구란이라는 남자의 처세술이 신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생길 거로는 자존심이 무지하게 강하여 동귀어진해도 모자라게 생겼으니 말이다.
“생각보다 처세술이 익숙하시네요?”
“제가 이 빈민가에 조직을 세우고 오래 살 수 있었던 이유죠.”
“대체로 이 조직은 무슨 일을 하나요?”
“이렇게 험상궂게 생긴 놈들이지만 저희는 정보를 팔며 돈을 벌죠.”
정말로 남자의 말대로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사람은 얼굴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설마 그런 근육과 얼굴들로 정보를 판매하는 조직이라니.
“애들도 납치하나요?”
“그,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 저희는 그저 유물만 받고 놓아줄 생각이었습니다.”
“제 가족을 인질로 잡고 제 팔 한 짝을 자른다는 소리를 하던데요?”
“이런…… 아무래도 그 녀석이 겁을 주려고 헛소리를 내뱉은 거 같은데 돌아오면 제가 아주 반갈죽을 내겠습니다.”
“음…… 뭐 그럴 필요는 없고.”
‘빈민가의 정보 조직이라…….’
잠시 구란의 면모를 살피는 천운이었다.
천운이 잠시 구란을 바라보자 구란은 긴장이 선 얼굴로 식은땀을 흘리며 천운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천운은 구란의 반응으로 알 수 있었다.
그 정보 조직이라는 말이 거짓말이라 하여도 왠지 쓸모가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말이다.
“뭐, 말은 잘 알아들었고 이만 가 보겠습니다.”
“예, 예. 그럼…….”
“일단 정보 조직이라고 했죠?”
“예. 그렇습니다만?”
“나중에 볼일이 있으면 찾아오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말 안 해도 아시죠?”
후우웅~
천운의 몸에서 마력이 흘러나왔으며 그 마력이 구란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의 안색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온몸에서 오소소 소름이 돋기 시작했으며 지금 자신이 살기 위해 뭘 해야 할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절대…… 마법사님에 대한 정보는 팔지 않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나중에 보죠.”
천운은 자신이 뚫어 놓은 정문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갔고 천운의 신형이 안 보이자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구란이었다.
“하아! 하아! 빌론 이 쓸모없는 새끼!!”
* * *
다음 날 오늘도 어김없이 대장간을 찾은 천운이었다.
카운터를 보고 있는 닉 와론은 여전히 무신경하게 신문을 보고 있었으며 천운은 대걸레로 바닥을 닦으며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하 대장간의 카일이라는 아저씨의 말이 기억난 천운이었다.
-내일도 이 정도 속도로 청소를 끝낼 수 있겠냐?
천운은 당연히 가능하다고 대답했고 오늘도 그럴 생각으로 청소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힘이고 체력이고 건강이고 현재로선 원래의 론 헤일리보다 좋은 천운이었다.
아마 제대로 청소하면 더욱 빨리 청소를 끝낼 수 있겠다고 생각한 천운이었다.
딱히 갑자기 일에 대한 자부심이 생겨 열심히 임하려는 것은 아니다.
카일이라는 아저씨의 말로는 자신이 밑에 대장장이들의 교육을 맡았다고 했으니 카일은 이 대장간에서 어느 정도 높은 위치에 있을 대장장이가 분명했다.
‘닉 와일보다 그 아저씨랑 먼저 친해지는 게 좋겠네.’
생각이 끝난 천운은 곧바로 청소를 시작했다.
* * *
땅! 땅!
닉 와일의 대장간의 지하.
카일은 여전히 수습 대장장이들을 교육하며 고성을 울리고 있었다.
“흠…… 바일 벌써 힘드냐!”
“아닙니다!”
“에스만! 이게 네 눈에는 칼로 보이냐?”
“죄송합니다!”
“하론. 메질이 괜찮구나. 앞으로도 그렇게 해라.”
“감사합니다!”
카일의 일과는 간단하다.
이번에 막 대장장이가 되겠다고 들어온 3명을 뒤에서 지켜보며 조언하고 가르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나름 나쁘지 않은 실력을 갖춘 3명이었다.
가르칠 맛도 나고.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이 있었군.’
카일은 어제 보았던 론 헤일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항상 소심하게 쭈그려 있던 녀석이 당당히 자신의 눈을 마주 보며 대화했던 모습이 말이다.
인상 깊은 모습에 아직도 잊히지 않은 카일이었다.
‘그 소심한 놈이 나를 마주 보고 또박또박 대답할 줄이야.’
항상 움츠리며 조용히 청소만 하던 소년이었다.
더구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론 헤일리는 항상 자신을 무서워하며 움츠리고 다녔다.
항상 같이 일하는 대장장이들이 론을 보면 꾸중을 내뱉으니 무서워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자신은 그다지 녀석을 신경 쓴 적도 뭐라 한 적도 없으니 무서워할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어디 보자……. 응?”
막상 생각하니 소년이 보고 싶어진 카일이었다.
카일은 소년을 찾기 위해 1층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이상을 눈치챈 카일이었다.
‘뭐야? 왜 이렇게 깨끗해?’
눈으로만 대충 훑어도 티가 날 정도로 깔끔한 1층이었다.
1층 또한 지하보다는 아니지만, 공간 확장 마법이 걸려 있어 꽤 넓은 공간을 자랑하고 있는데 그 공간 전체가 너무나도 깔끔하기에 기이해 보일 정도였다.
‘설마 이걸 전부 그 론이?’
론의 힘도 그렇고 체력상 그 짧은 시간 안에 1층 전체를 청소하는 것을 불가능한 게 정상일 터.
카일은 곧바로 카운터에서 신문을 보고 있는 닉 와론에게 물었다.
“어이, 와론.”
“어라? 카일 씨? 무슨 일이세요?”
“네가 청소를 도왔냐?”
“뭔 청소요? 응……? 이게 뭐야?”
와론의 눈이 경악스럽게 떠지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1층 청소가 깔끔하게 끝난 것이다.
“미친. 대체 뭐야!”
“론은 어디 있냐?”
“어, 어? 여기 없으면 분명 2층에 있는 건데. 설마!”
카일은 와론을 무시하고 곧바로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눈에 보인 것은 여전히 걸레를 근처 선반부터 창문틀까지 광나게 닦고 있는 천운이었다.
카일은 천운에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어이, 론.”
“어? 안녕하세요.”
“1층의 청소는 네가 한 거냐?”
“네. 그런데요?”
“허…….”
카일은 경악스럽게 침음을 흘리며 2층 주위를 둘러봤다.
“2층도 끝났고?”
“곧 끝나요.”
“흠…….”
잠시 말없이 천운을 바라보는 카일이었다.
“론. 잠시 실례하마.”
카일은 그 한마디를 하며 천운의 팔을 덥석 잡고 움켜쥐었다.
꽈아아아악!
생각보다 세게 움켜쥐었음에도 천운의 얼굴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또한 카일은 천운의 팔을 움켜쥐며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이 녀석…….’
말라 보이는 몸매에 비해 몸에 내재한 근육은 강철 같은 단단함을 지니고 있었다.
‘근육뿐만이 아니군. 대충 생김새만 보면 쇠골(衰骨)인데…… 무슨 뼈가 강철도 아니고…….’
대장장이 일을 하다 보니 손에 압력으로 철을 구부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시험 삼아 카일은 천운의 팔을 더욱 강하게 쥐어 보았고.
‘역시…….’
천운은 아파하는 내색도 없이 반대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크흠…… 실례했구나.”
“아닙니다. 저기 혹시 무슨 일 때문인가요?”
“흠…….”
카일은 잠시 천운을 바라봤고 그러다 한마디를 남기며 1층으로 내려가는 카일이었다.
“내일 다시 말해 주마. 일단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도 된다.”
“예? 아직 대장간 청소를 안 했는데요?”
“걱정 마라. 오늘은 우리가 하마.”
“아, 예. 그럼…….”
천운은 꾸벅 고개를 숙였고 뒤돌아선 카일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