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화
#104
변화는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쿠쿠쿠쿠쿵!!
미국 서부에 위치한 마경에 거대한 지진이 발생했다.
마경 전체를 뒤흔드는 땅의 울림과 함께 마경에 조금 벗어난 숲속에 거대한 새싹 하나가 솟아오른다.
새싹은 빠르게 성장하여 하늘을 향했고 어느새 나무가 되어 구름에 닿는다.
마치 세계수를 보는 듯한 이 거대한 나무가 바로 수많은 아베타들에게 끝없는 절망을 안겨 준 최초의 대던전 절망의 탑이다.
* * *
탑의 발생과 함께 미국은 비상령이 걸렸다.
연도마다 높아지고 있던 마기 수치가 탑으로 인해 펄쩍 뛰어오른 것이다.
다행히 미리 예언을 듣고 대비하고 있던 신성 교단으로 인해 마기가 인계로 넘어오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페트리샤가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는 천운에게 물었고 천운은 그런 그녀를 노려봤다.
“한 달 안이라며.”
천운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인 페트리샤였다.
“한 달 안은 맞잖아.”
“일주일도 안 돼서 생겼잖아.”
솔직히 말해 자신도 예상 못 한 일이었다.
한 달 안에 탑이 나타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게 이번 주일 줄이야.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야?”
“기다릴 거야.”
“기다린다고?”
“뭐, 또 예언한 건 없어?”
“아니, 너도 예언자면서 뭘 자꾸…… 보니까 나보다 아는 게 더 많은 거 같은데.”
그런 모습이 답답했는지 천운한테 삐죽이며 말하는 페트리샤였다.
천운은 그런 페트리샤의 마음이 이해됐는지 알고 있던 정보를 말했다.
“입구 안 보였지?”
“그래. 눈으로만 보면 그냥 거대한 나무니까. 대신 불길한 징조라고 떠들고 있잖아.”
멸망의 징조.
그게 세간에 알려진 탑에 대한 이름이었다.
길드부터 아베타까지 고유 스킬이나 유물을 사용하여 탐사해 봤지만, 아직 알아낸 것은 없다.
“아마 계속 탐사해도 별 소용없을 거야.”
천운의 말에 페트리샤가 의문을 표했다.
“무슨 말이야?”
“원래부터 입구가 존재하지 않는 탑이야.”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음…… 일단 그 나무 아직 덜 자란 거야.”
천운의 말에 페트리샤의 동공이 더없이 커졌다.
“성장…… 거기서 더 커진다고?”
경악스러운 사실이었다.
가지가 구름에 닿고 있는 마당에 아직 덜 자랐다고 하니 말이다.
“아직은 심판자들의 힘으로 막을 수 있잖아? 덜 자라서 그래.”
신성교단의 정예라고 불리는 심판자.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라도 완성된 절망의 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를 고작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거대한 나무는 더욱 성장할 것이다.
그것도 고작 일주일 안에 말이다.
“그럼 어떻게…….”
“대비해놔야지.”
“대비?”
천운은 탑이 사람을 들여보내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아마 전 세계의 아베타들이 랜덤으로 탑으로 이동될 거야.”
천운의 말이 페트리샤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랜덤이라고…….”
이유 불문하고 탑 내부로 이동된다는 말에 페트리샤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럼 비전투 아베타나 어린애들도 포함이야?”
“어.”
“세상에…….”
천운의 말에 경악한 페트리샤였다.
그러나 천운의 다음 말이 그녀를 안심시켰다.
“무작위로 이동되기는 한데…… 거절할 수도 있어.”
“그 말은 출구가 있다는 거지?”
“맞아.”
무작위로 초대되는 아베타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
이대로 탑 1층의 시련을 받을지 아니면 포기할지.
포기한 자들은 다시는 탑에 들어올 수 없으며 오직 1층의 시련을 통과한 자만이 탑을 왔다 갔다 드나들 수 있는 문을 얻는다.
다행히 페트리샤가 생각하는 참극은 막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대비해 놔야지.”
“그럼 이 방법은 어때?”
페트리샤의 생각은 간단했다.
꿈 간섭을 통해 각국의 아베타 협회장으로부터 앞으로 절망의 탑에서 일어날 일을 알리고 안전 요원을 미리 배치한다.
17세 애들 및 참여 거부 의사를 표하는 아베타들은 요원을 따라 절망의 탑 출구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온다.
“어때?”
“음…….”
천운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만큼 통제가 안 될걸.”
“통제가 안 된다고?”
“어. 오히려 참가하고 싶어서 안달이 날거야.”
자못 인간이라면 미지의 앞에서는 혼란스러워하고 두려워하는 게 정상일 터.
그러니 천운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 그녀였다.
“요원을 배치하는 건 좋아, 일단 랜덤이니까 협회에 요원들에게 알리는 게 좋겠지. 일단 비전투 아베타나 어린 애들 정도만 통제해서 참가 못 하게 막고 나머지는 그냥 둬.”
“그렇게 되면…… 그것보다 통제가 안 된다는 건 무슨 뜻이야?”
“음…….”
천운은 생각했다.
‘어차피 지금 알려 주나 나중에 알려 주나 상관없으려나?’
“혜택이 있어.”
“혜택?”
“던전은 총 세 번을 나눠서 사람들을 내부로 이동시킬 거야.”
첫 번째 1층이 아닌 0층.
사람들이 모이는 뿌리 공간에서는 던전의 이지라고 불리는 그것이 존재한다.
“던전의 이지가 말할 거야. 1층 첫 번째 시련에 참가할 시 자신이 원하는 스탯 중 하나를 10 정도 올려 준다고.”
“이지의 던전이라고? 더구나 스탯을 10 올려 준다니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그 말에 혹해서 참가하는 아베타가 대다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래도 안 되면 1층 시련을 통과하는 사람들에게 모든 스탯을 5식 올려 준다고 말할 거고.”
“…….”
던전이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방법이었다.
그렇기에 통제가 힘들다고 생각한 천운이었다.
“정확히 그 이동이 시작되는 건 언제인지 알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천운은 차근히 이해할 수 있게 설명했다.
“아마 일주일 뒤에 성장이 멈출 거야.”
“알겠어.”
“두 번째는 그 나무의 거대한 나뭇잎이 전 세계로 흩어질 거야.”
거대한 나무가 성장하고 나뭇잎이 후두둑 떨어지며 바람을 타고 전 세계로 퍼진다.
나무의 빛깔은 쇠약해지듯 은빛이 돌기 시작하지만, 오히려 더욱 견고하고 단단해지며 나뭇잎이 전부 떨어진 가지는 똬리를 틀기 시작한다.
그것을 끝으로 사람들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그게 최종 형태야.”
“그때부터 사람들이 던전 내부로 이동되는 거고?”
“맞아. 미리 알려 둬.”
“알겠어…….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
“뭔데?”
“혹시…… 확신하고 있는 거야? 네가 탑에 들어가는 거 말이야.”
“음…….”
천운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녀에게 말했다.
“너도 포함이야.”
천운의 말에 그녀의 동공이 휘둥그레졌다.
“나?”
* * *
요즘 천운이가 이상하다.
‘그때 이후인가?’
아마 그때부터였다.
행방불명된 이후 돌아온 천운은 어딘가 기운이 없고 침울한 느낌이었다.
침울함은 별로 눈에 띄게 티 내지는 않았지만 왜인지 알 수 있었다.
“하아…….”
그냥 솔직하게 물어볼까? 라고 생각도 해 봤지만 천운이가 쉽게 입을 열 거 같지도 않았다.
1년 전 가족을 잃은 이후로 말수가 적어지고 차분해졌다고 생각했더라면 이번에는 뭔가 기운이 없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궁금한 점은 그것이었다.
‘그 기운은 분명.’
당시 천운에게 느껴진 기운은 분명 초월자의 기운이었다.
물론 현재 행운 스탯이 100인 천운이니 행운이 조금만 성장해도 느낄 수 있을 테니 이상한 점은 아니었다.
“하…… 걱정이네.”
뭔가 점점 천운이 멀어져 가는 느낌이었다.
언젠가는 조용히 사라질 거처럼 희미해지는 느낌이었다.
“다녀왔어요.”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천운이 왔다.
천운을 반겨 주려 찾아갔지만, 막상 천운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응? 하고 싶은 얘기?”
한민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의문스럽게 물어봤다.
* * *
“그게 사실이니?”
“네.”
절망의 탑으로 들어가기 전.
천운은 누나의 허락을 받기 위해 모든 걸 사실대로 얘기했다.
절망의 탑에 대한 것도 탑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방법도 자신이 그 첫 번째 선발 주자가 될 것이란 것도.
“그건 어떻게…….”
“미국의 성녀가 말해 줬어요.”
성녀가 과거 천운에게 꿈 간섭을 했다는 건 이미 한민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그때 말한 예언이 이거였을 줄이야.
“저기 그래서…….”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천운은 탑의 공략에 나서고 싶었다.
그러나 민아 누나가 쉽게 허락해 줄 리가 없었다.
분명 탑에 들어가자마자 거부하라고 할 게 분명한데…….
“하…….”
잠시 무거운 한숨을 쉰 한민아가 차분히 천운을 바라봤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누나가 먼저 천운에게 물어봤다.
천운은 이번에도 솔직히 말했다.
“탑을 공략하고 싶어요.”
“……알겠어.”
“네?”
의외의 대답에 천운이 놀랐다.
“솔직히 네가 먼저 이렇게 얘기해 줬으니 어느 정도 예상했단다.”
“아니, 해도 돼요?”
“지금의 너라면 괜찮다고 생각해서 말한 거야.”
천운은 이미 자신이 걱정할 정도로 나약한 소년이 아니었다.
그것을 병원 사건에서 똑똑히 보여 준 천운이었고 한민아 안에 그 걱정 많던 천운은 더 이상 없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했구나?”
그저 한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천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천운의 지금까지의 노력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본 한민아였다.
천운은 그 노력에 보답을 받았고 이제는 자신이 더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만큼 성숙하게 성장했다.
“말리지는 않을게. 그저 저번처럼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구나.”
“…….”
천운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대로 대화가 끝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으며 멍한 표정은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정신이 멍했다.
누나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열심히 했구나?
그렇다.
누구보다 살아남으려고 열심히 했다.
죽을 뻔한 적도 있었고 크게 다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였을까?
누나가 자신을 인정한 것은.
그것이 잠시 여운에 남을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자신의 노력은 헛되지 않은 것이다.
풀썩-
천운은 그대로 침대를 누워 천장을 쳐다봤다.
‘아직이야.’
누나에게 인정받았다고 생각하여 기분이 좋지만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는 천운이었다.
아직 무엇 하나 제대로 막은 재앙이 없었다.
언더의 간부들은 연시훈을 제외하고 전부 살아남았다.
아직 마수왕도 막지 못했으며 마지막 연시훈이 말한 검은 거인의 정체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걱정거리는 많았지만, 지금까지의 고된 노력에 칭찬받은 천운은 잠시 그 기분 좋은 여운에 잠기기로 했다.
* * *
시간을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덧 일주일이 지나고 나무의 성장이 멈췄다.
후우웅-
나풀나풀 떨어지는 나뭇잎이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
마기가 실린 나뭇잎은 세계로 퍼져 나갔으며 그 나뭇잎의 마기와 공명을 일으킨 대다수의 아베타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던 나뭇잎이 힘이 빠져나가는 듯 낙엽들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무성해 보이던 거대한 나무는 서서히 은빛이 돌기 시작하며 나뭇잎이 사라진 그 가지의 끝은 하나로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나타난 것은 거대한 탑.
파아아아앙!!!
탑이 완벽한 형태를 갖춘 순간 마기가 터져 나왔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발산된 마기는.
크르르-
마수왕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