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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 속 운만렙 캐릭터가 되었다-101화 (101/176)

제101화

#100

노을 뉘엿뉘엿 지는 하늘.

의철과 천운은 공원을 걷고 있었다.

한참 걷다가도 말이 없기에 천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야?”

“그…… 몸은 괜찮냐?”

“나야 뭐…….”

“…….”

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서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천운이 먼저 물어봤다.

“뭘 본 거야?”

“뭐, 뭐가?”

“기억.”

의철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고민하던 의철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는 사람이었어.”

고개를 숙인 의철에 표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닐 거 같다고 생각했어.”

“기억 속에서는 말이지?”

“응…….”

의철의 기억 속에 그는 과거 친목회였으며 또는 자신을 도와주는 스승이었고 조언을 해 주는 조력자이기도 했다.

그것이 그 남자가 죽기 전 떠오른 기억이었다.

의철의 심정은 복잡했다.

“그게 최선이었을까…….”

의철이 천운에게 물었고 천운은 대답 없이 그저 공원을 걸었다.

최선이라니…….

그 이상으로 좋은 방법은 천운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굳이…… 굳이 우리가 가서 그렇게 싸우지 않아도 기억나지 않았을까?”

“…….”

솔직히 말해 확신이 서지 않았다.

굳이 우리가 찾아가지 않아도 연시훈의 기억이 돌아왔을 가능성은 있었다.

그러나 그때 당시 우리는 그저 알 수 없는 기억에 따라 그를 찾아가 기억대로 똑같이 행동했을 뿐이다.

혹시 미래가 변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착각하지 마…… 그놈이 한 짓도 있잖아.”

“그래…… 그렇긴 한데…….”

의철의 표정은 침울해 보였다.

“그래도 그렇게 죽을 필요는 없었어.”

“…….”

“너는 무슨 기억이 떠오른 거야?”

의철이 물었다.

천운은 잠시 조용히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별거 아니야.”

“그러냐…….”

천운은 그 당시 갱신된 기억을 떠올랐다.

-저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그 상처로는…….

쿵!! 쿵!!

지면을 뒤흔드는 거대한 무언가의 발이 보였다.

그는 한낱 인간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그저 지나쳤고 그 무언가가 지나간 자리는 황폐해진 사막으로 변해 갔다.

-지금도 후회스럽습니다. 조금 더 빨리 기억을 되찾았더라면…… 당신에게 회귀의 힘을 넘겼다는 기억을 빨리 알았더라면 그 계획도 당신의 가족도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 텐데…….

-이제 저라도 알 수 있어요. 부모님의 미래가 변하지 않는다는 건.

쿨럭-

피를 토하면서까지 그는 마지막 말을 짜내려는 뜻 천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왼팔과 오른쪽 다리가 없는 그는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다.

툭- 툭-

천운은 흐르는 눈물을 닦지 않고 그저 그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 주고 있었다.

-기억하세요. 절대…… 제가 죽어도 이번 회차가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살아 주세요. 이건 제가 참회하기 위한 선택입니다.

-하지만!

-부탁입니다……. 대장도 그렇고 저도 당신의 회귀가 끝나지 않는 이상 이 영원의 지옥 속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천운이 회귀자고 천운이 회귀하는 이상 그들은 영원히 회귀자라고 알고 같은 미래를 맴돌 것이다. 그들은 이제 회귀자가 아니었다.

당연히 이번 회차의 미래 또한 기억하지 못할 거다.

-흑…….

-부탁드리겠…….

그의 눈이 서서히 죽어 갔으며 눈에 이채가 사라졌다.

천운은 손으로 연시훈의 눈을 감겨 주고 일어섰다.

그리고 주위를 휩쓸고 다니는 거대한 검은 거인을 노려봤다.

“…….”

그 당시 천운의 머릿속에 갱신된 기억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가 이번 회차에 자신의 부모님을 죽인 원인이라서인가?

아니면 애초에 이 기억 자체가 이정원이 아닌 김천운의 기억이라서인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당시 왜 그렇게 감정이 고조된 건지 모르겠다.

자신이 아닌 천운의 부모님인데 말이다.

“천운아.”

의철이 천운을 불렀다.

천운이 고개를 돌렸을 때 의철은 무언가 굳은 결심을 선 표정을 하고 있었다.

“친목회에 들어갈 거야.”

의철이 한 말에 천운의 미간이 좁혀졌다.

“친목회? 갑자기?”

“오래전에 한우성 영웅님이 말해 주신 게 있어.”

과거에 집에 찾아온 한우성과 하나의 거래를 했다.

‘스탯 60까지 올리는 데 몇 년이 걸렸지?’

‘2년이요.’

‘2년? 2년이라고? 사실이야?’

‘네.’

‘흠…… 그럼.’

여기서 한우성이 제안했다.

‘만약…… 성인이 되기 전 100을 넘은 초월의 경지에 들어서면 소원 하나를 들어주마.’

‘소원이요?’

‘대신 친목회에 들어와라.’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이었으나 의철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실제로 그 거래를 하고 1년도 안 된 시간에 초월의 영역에 들어섰다.

“들어가서 어쩌려고?”

“……재앙을 막을 거야.”

재앙.

조금 일찍이 의철이 재앙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 재앙을 막는 것이 이 소설의 주인공 의철이 존재하는 의의였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는 지금처럼 의철이 적극적으로 재앙을 막으려는 의지를 보이지는 않았다.

“지금까지는 그냥 은인을 찾고 길영트에 졸업해서 영웅이 되고 여동생하고 평온한 삶을 사는 게 꿈이었지만.”

의철에 눈이 천운을 향했다.

다짐한 자의 올곧은 눈이었다.

“이제는 아니야. 친목회에 들어가서 재앙을 막을 거야.”

천운은 의철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서는 안 돼.”

후우웅-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었다.

저 멀리 노을이 서서히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철은 천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도와줘.”

의철이 재앙을 인식한 순간.

천운은 소설의 중반부에 들어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천운이 죽는 에피소드가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의미했다.

* * *

“하……. 참 적응이 안 되네 이 차림은.”

“평소에도 좀 그렇게 입고 다니세요, 형님.”

“잘 어울리네요 대장.”

“응.”

“다들 준비는 되셨죠?”

친목회에 모든 단원이 모였다.

한우성, 강화두, 최아진, 크롬벨, 한민아.

막상 한우성은 익숙지 않은 정장에 눈살을 찌푸렸다.

“불편하군.”

한우성의 작은 읊조림에 한민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그 정도는 입어야 시선을 끌죠. 수염 깎고 옷만 잘 입으면 훤칠한 인간이 왜 이러고 살까?”

“동감입니다. 누님.”

“쓸데없는 시간 끌지 말고 가지. 이제 시간 됐어.”

단원 모두가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홀의 문을 열었다.

찰칵- 찰칵-

팍-

터지는 플래시에 쫙 깔린 기자들.

한우성이 기자 회견을 연 것이다.

그 광경을 보자마자 인상을 찡그리는 한우성이었다.

“자, 자 갑시다, 대장.”

“이딴 짓거리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겠네.”

단원들 모두가 단상을 향했다.

막상 기자들은 휘둥그레진 눈빛으로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한우성은 어디 갔어?”

“그러게. 뭐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지각이겠지. 지가 불러 놓고 이러는 거 한두 번이냐?”

“하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훤칠한 외모의 남성과 S급 아베타 한민아.

좀 많이 부담스럽게 덩치가 큰 사내.

기자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향했다.

“그것보다 저분들이 왜…….”

기자들의 시선이 나머지 2명을 향했다.

질 가문의 문제아 질 크롬벨.

아산 그룹의 젊은 회장 최아진.

그 두 명의 거물로 말이다.

“하…….”

그 의문의 훤칠한 남자와 나머지 4명이 단상 위에 책상 앞에 앉았다.

남자는 그 중심에 앉았으며 책상 위에 놓인 마이크를 힐끔거리고 톡톡 치다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기자들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다수 올라갔고.

“한우성입니다.”

기자들의 눈에 더할 나위 없이 크게 떠졌다.

입은 경악으로 크게 벌어졌으며 동시에 카메라의 플래시가 연신 터졌다.

한우성은 그 플래시에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카메라 부숴 버리기 저 ㄴ- 우웁!”

“대장. 계획대로요 계획.”

곧바로 바로 옆에 있던 최아진이 한우성의 입을 막았다.

한우성은 별수 없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질문 받겠습니다. 아무나 한 명 지목할 테니 질문하세요.”

기자들이 한우성의 삿대질을 기다렸다.

한우성의 쭉 뻗은 검지가 대충 눈앞에 보이는 한 기자를 가리켰다.

“저요?”

“예.”

막상 간택 받은 기자는 순간 얼떨떨하다가도 침착하게 한우성에게 질문했다.

“친목회가 활동이 뜸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기는 하지만 설마 전례 없는 던전 브레이크까지 일어났는데 가만히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다소 신경질적인 말투였다.

기자들이 질문을 한 그 기자를 노려봤다.

태도 때문이 아닌 질문 때문이었다.

물론 그 이유도 궁금하기는 했으나 막상 질문에 대답하는 인간이 한우성이니 언제 마음이 변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신경질적으로 짜증을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하…….’

한우성 또한 그들의 마음이 이해됐는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어디 안 갈 테고 당신들이 만족할 정도로 질문에 대답하고 나갈 테니까요. 그리고 자세히 모르고 질문하시는 거 같은데…… 일단 저희 친목회도 구조 활동에 나섰습니다. 사정으로 인해 끝까지 남지는 못 했지만 그 사정 또한 중요하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사정이 뭔지…….”

“한 사람당 한 질문만 받겠습니다.”

곧바로 한우성이 또 한 명을 가리켰다.

근데 막상 가리킨 기자 옆에 남자가 곧바로 속사포같이 질문을 던졌다.

“옆에 계시는 남…….”

“아니, 아니 댁 옆에요.”

한우성의 말에 곧바로 옆에 있던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

“옆에 계시는 남성분의 정체가 혹시 포스맨입니까?”

뭔가…… 딱히 질문이 달라지지는 않은 그런 느낌이었다.

한우성은 그 질문에 그저 담담하게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팡! 팡!

플래시가 터지고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곧바로 강화두가 마이크를 쥐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포스맨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화두입니다.”

강화두의 시선이 기자들을 훑었다.

기자들은 하나같이 강화두의 험악한 인상에 뭔가 예상 그대로의 생김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 다음 질문…… 아니.”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 한우성.

그들은 한우성의 말을 기다렸다.

“빠르게 말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예상하시는 대로 친목회의 최아진과 질 크롬벨입니다.”

“그렇다는 말은…….”

“예. 지금까지 숨겨 왔던 단원이며 한국에 9번째 10번째 초월자입니다.”

장내의 웅성거림이 가득했다.

기자들의 눈이 서서히 크게 떠지고 곧장 어딘가로 연락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다급히 소리쳤으며 플래시 터지는 소리가 가득했다.

툭- 툭-

그리고 그런 회견장 안에서 한우성이 마이크를 툭- 툭- 치고 주의를 끌었다.

“아직 시간은 널널하니 계속하겠습니다.”

회견장에 들끓는 분위기가 가시지 않았다.

간택도 안 당한 기자들의 질문이 쇄도했다.

그런 상황에 웬일로 한우성 또한 가만히 있으니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초월한 스탯이 뭡니까!”

“아산 그룹의 최아진 회장님께서 아베타셨습니까?”

“혹시 또 다른 단원들도 있습니까!”

“단원들을 밝힌 이유가 뭡니까!”

“한국을 대표하는 초월자 단체면서 활동이 없는 이유가 뭡니까!”

한우성은 그저 말없이 그들의 질문을 듣고 기억하고 있었다.

귀찮으니까 한 번에 답할 생각이었다.

기자들의 질문을 전부 모아 추스르고 요점만 모은 한우성이 대답했다.

“미국의 성녀 아십니까?”

한우성의 발언에 웅성거리는 기자들.

대부분은 갑자기 웬 미국의 성녀 얘기에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성녀의 능력이 예언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그 예언에 관한 얘기입니다. 친목회를 만든 이유와도 관련 있죠.”

한우성의 발언에 장내의 기자들이 숨죽이고 기다렸다.

그들 모두를 집중시킨 후 한우성이 폭탄 발언을 터트렸다.

“길면 3년 짧으면 1, 2년 안에 세계를 멸망시킬 재앙이 올 겁니다. 저는 그걸 막기 위해서 친목회를 만들었고요. 그게 성녀의 예언입니다. 이상입니다.”

“…….”

아까와는 생각할 수 없는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기자들의 손이 멈췄고 입을 벌린 채 그 발언의 중심인 한우성을 바라볼 뿐이었다.

한우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단상에서 내려왔다.

단원들이 한우성을 따랐으며 기자들이 지나칠 때까지 그 경악스러운 침묵은 유지됐다.

“앗!”

그런 상황에 정신 차린 기자 한 명이 급하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한우성 씨 혹시 그 외에 단원들도 존재하나요?”

그 기자의 말에 한우성이 발걸음을 멈췄다.

잠시 기자를 바라본 한우성이 입을 열었다.

“예. 한 명 존재합니다.”

* * *

“언제까지 갈 거 같냐?”

“아마…… 길면 두 달 정도요.”

“그러냐…….”

어느 정도 예상한 기간이었다.

아마 이 정도 폭탄이면 몇 달은 마인이나 마기에 관한 기삿거리를 억제할 수 있을 거다.

“두 달…… 두 달이라…….”

“아마 그 녀석들도 당분간 잠적할 거예요. 대장.”

“그렇겠지.”

마기가 우호적으로 돌아가는 이상.

그들이 움직이는 것은 역효과 일 것이다.

“자, 이제 슬슬 말해 줄까요?”

한민아가 한우성에게 물었다.

한우성은 그저 목덜미를 매만지며 인상을 찡그렸다.

“뭐가?”

“왜 그런 중요한 정보를 저한테 비밀로 한 거죠?”

“말하려고 했어. 조금 늦었지만.”

“……다른, 비밀로 하고 있는 게 뭐죠?”

“하…….”

한숨을 쉰 한우성이 한민아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모든 상황이 끝나면 알려 줄게.”

“소원권을 쓰겠어요.”

“안 돼. 이번만큼은.”

“천운이하고도 관련 있는 거죠?”

“…….”

한우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한민아를 바라보던 한우성이 입을 열었다.

“아직도 천운이를 애라고 생각하나?”

“…….”

이번에는 한민아가 대답이 없었다.

잠시 인상을 찡그린 한민아는 한우성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하지만.”

그녀의 붉은 홍안이 한우성을 노려봤다.

“천운이를 위험한 일에 이용하는 거라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

한민아는 무심하게 한우성을 지나쳤고 한우성은 그저 말없이 잠시 동안 말없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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