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9화
#98
자신의 오류는 쓸데없는 기억밖에 없었다.
그 오류들은 모두 재앙을 막는 데에는 쓸모가 없으며 굳이 말하자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기억 중 하나.
자신이 처음 회귀자가 된 기억이 떠올랐다.
“너를 좀 더 빨리 만났어야 했는데…….”
눈앞에 죽어 가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죽기 전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있었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돼…….”
“대장…….”
친목회의 한우성은 죽어 가고 있었다.
“걱정 마라. 마지막이 아니니까.”
한우성에게는 마지막이 아니다.
죽기 직전에 다시 발현되는 그 힘이 다시 과거로 되돌려 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너무 늦게 깨달았어.”
재앙을 막을 힘.
그게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을.
자신과 동격의 힘을 가진 사내가 필요했다.
한우성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내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었다.
“알고 있지? 내가 회귀자란 사실은?”
“……만약 대장이 회귀하면 저 역시 기억이 사라지겠죠.”
한우성은 피식 웃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말했다.
“시간이 되돌아갈 뿐이야. 그리고…….”
한우성의 몸에서 흐르는 회기의 기운.
“시간이 없으니 대답해라.”
한우성이 연시훈을 바라봤다.
무언가 결심이 선 것이다.
“너도 이 기운을 받으면 회귀자가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걸 막을 방법은 이거밖에 없어.”
저 멀리 소년의 형태를 띤 검은 무언가.
주위를 휩쓸어 버리는 거대한 거인.
거대한 재해 앞에 아무리 한우성이라도 녀석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원래라면 너를 포함해 한 소년에게 이 힘을 주고 싶었어. 하지만 너나 나한테는 지금밖에 시간이 없겠지……. 회귀 후의 네가 지금의 너라는 보장이 없으니…….”
한우성의 마지막 말을 연시훈에게 말했다.
“선택해…….”
한우성의 신념이 담긴 말.
한우성의 몸에 서서히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눈에 이채가 서서히 사라지고 의식이 저 멀리 사라지기 직전.
“되겠습니다…….”
연시훈은 대답했다.
그렇게…… 연시훈은 회귀자가 되었다.
한우성과 같이 과거로 돌아왔고…….
“너는 누구지?”
절망을 보았다.
이번 연도에서 기억을 갱신받은 대장은…… 분명 자신을 기억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기억하지 못했고 오직 자신과 만난 회차가 사라진 듯 전혀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건 배신과도 같은 절망이었다.
대장은…… 한우성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맡긴 것이다.
한우성의 회귀는 거기서 끝난 것이다.
한우성의 몸에 남은 잔류의 기운은 그저 기억을 갱신해 줄 뿐 회귀를 시켜 주는 것이 아니었다.
또한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자신과 만난 회차가 송두리째 사라진 것이다.
‘대장…….’
한우성은 더는 회귀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이 회귀자라는 사실을 믿고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이건…… 저주였군요…… 대장.’
자신이 회귀하는 이상, 한우성은 자신이 회귀자라 믿고 영원을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믿고 한우성은 회귀의 힘을 넘겨준 것이다.
‘이제는 내가…….’
1회 차가 지나고
2회 차…….
5회 차가 됐으며
회 차를 넘어갈 때마다 절망하게 만든다.
그러나 자신은 영원했으며 끝이 없었다.
포기하지 않았다.
100회 차를 넘었고 아직까지 그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좀 더…….’
150회 차를 넘고 200회 차가 됐으며 어느새 200을 넘었을 때는 수를 세지 않았다.
회귀의 기운은 회차를 넘을 때마다 더욱 강해졌다.
회 차는 기억의 수를 비례한다.
200이 넘는 기억.
연도마다 갱신되는 200의 기억으로 인해 회귀의 기운 또한 성장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회차를 넘기던 어느 날.
“드디어…….”
희망을 찾았다.
대장은 틀렸었다.
나도 그 김의철도 아닌…….
“아직 살아 있군요…….”
휘몰아치는 거대한 검은 폭풍.
검은 거인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아저씨는…… 누구?”
죽어 가는 천운은 그를 보며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과거에 저는 당신의 원수였습니다.”
사실이었다.
바로 전 회차에 그의 가죽을 죽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휘이이이잉!!
거대한 폭풍이 다가오고 있었다.
세계를 멸망시킬 마지막 재앙.
그 앞에 천운의 눈이 서서히 감겨 왔다.
의식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곧 천운은 죽을 것이다.
“대장은…… 한우성은 자신과 동등한 인간이 늘어나면 저 거대한 존재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나와 김의철을 회귀자로 만들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틀렸고 나는 분명 보았다.
저 거대한 검은 거인이…….
마수왕 중 하나인 지왕을 간단히 찢어발기는 저 검은 거인이 소년에게 반응한 것을.
“당신에게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부디.”
연시훈의 손에서 퍼진 회귀의 기운이 천운에게 향했다.
“아마 또다시 고통스러운 과거로 돌아갈 겁니다. 저를 미워하겠죠.”
이번 세계에서도 그의 부모님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죽인 것이 아니다.
소년의 가족의 미래는 변하지 않는다.
가끔 이런 경우가 존재한다.
미래를 바꾸는 나비.
흔히 말하는 그 나비 효과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인간이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소년의 부모님이었다.
변하는 것은 그저 죽음의 형태.
죽음의 미래는 변하지 않으나 어떻게 죽느냐가 변할 뿐이다.
그리고 전 회차.
난 소년의 가족을 죽였다.
“포기하지 마세요.”
천운은 더 이상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서서히 눈이 감겨 왔다.
“당신의 그 스탯…… 행운이 뭔가를 변화시킬 수 있으니까요.”
파아앙!
회귀의 빛이 순간 터져 나갔다.
200회 차를 넘는 기운이 천운에게 넘어가려 한 것이다.
그러나 한우성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기운을 넘기면 자신은 과거 한우성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 회차의 기억이 사라지고 소년을 못 알아볼 것이다.
‘적어도 반만큼은…….’
그러나 회귀의 기운은 자신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그 기운이 천운을 넘어 번져 나갔고 동시에 저 멀리 균열 너머 천운을 향해 외치던 의철까지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실로 돌아와.
연시훈은 눈앞의 두 소년을 바라봤다.
“당신이었군요…….”
* * *
“저는 대장과 다르지 않았군요…….”
자신 또한 대장과 똑같이 저 소년에게 힘을 넘긴 상태였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른 채 두 소년을 죽일 뻔한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천운과 의철은 자세를 풀었다.
연시훈의 기세가 누그러졌기 때문이다.
그는 더는 싸울 마음이 없는 듯이 뿜어내던 마기를 갈무리시키며 천운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이 미래를 이미 알고 있었던 거군요……. 그래서 둘이서 찾아왔고.”
그 말에 천운이 고개를 저었다.
의철 또한 마찬가지였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마지막에 모든 걸 포기하더라고.”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저 기억을 믿고 온 것이다.
나와 의철이 녀석을 몰아붙인 뒤 녀석은 이유도 없이 모든 계획을 포기했으니 말이다.
미래가 바뀔지도 모르니 기억에 맞게 둘이서만 찾아왔어야 했다.
“기억나지 않습니까?”
천운의 말에 그 또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천운이 대답했다.
“전혀.”
“……이런.”
연시훈은 뭔가 짐작한 게 있는 듯한 쓴 표정을 지었다.
회귀 시스템은 정교하다.
정교한 만큼 튼튼하지 않고 부실하며 그 시스템이 세 번째 천운의 몸으로 넘어온 순간 말 그대로 그저 오류투성이로 변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괜찮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으니…….
연시훈은 두 소년에게 다가갔다.
“제가 뭐라 말해도 당신들은 못 믿겠죠. 지금까지 한 것이 있으니…….”
연시훈의 표정이 후회하고 있었다.
“변명할 수도 없겠죠…….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그 미래를 지금 알았다 해도 이미 늦은 후니까요……. 그러니 용서해 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가 천운을 보며 손을 내밀었다.
“당신들은 결국 그 재앙과 맞서게 될 겁니다. 제가 돕게 해 주세요.”
“…….”
“…….”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말투에서는 자책감이 묻어 나왔으나 얼굴은 굳은 의지가 나타나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하…….”
의철은 당혹스럽게 그를 쳐다봤고 천운은 한숨을 길게 늘어 쉬며 입을 열었다.
“우리도 그 이상의 기억이 없으니 뭐라 말해야 할…….”
흠칫!
천운과 의철의 동공이 서서히 커졌다.
곧바로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
“뒤!”
의철이 연시훈을 향해 소리쳤고 그제야 기척을 느낀 연시훈이 뒤로 고개를 돌렸다.
“밀리…….”
푹!
“쿨럭…….”
찰나에 일어난 상황.
밀리의 마기를 두른 손이 연시훈의 가슴을 꿰뚫은 것이다.
“어떻게…….”
“거기서는 어떻게가 아니라 왜라고 물어야지.”
밀리의 차가운 시선이 연시훈을 향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려나 계속 몰래 지켜봤는데…… 더는 못 봐주겠더라고.”
“크흑…….”
“과연……. 그 기운이 발산되면 한동안 약해지나 보네? 흑색이 감싸는 이유가 있었어.”
“안 돼!”
의철이 달려들어 팔테인을 휘둘렀다.
훙!
밀리는 그대로 손을 빼내며 팔테인을 피했고.
휙!
손에 묻은 피를 털며 말을 이었다.
“상황을 끝까지 안 가 봐도 알겠더라고. 너…… 상황을 이렇게 벌여 놓고 끝낼 생각이었지?”
“큭…… 밀리…….”
“이제 와서 뭐? 저 꼬맹이들의 회유에 넘어가 모든 상황을 끝낸다고? 우리가 만만해 보였나?”
밀리의 몸에 마기가 피어올랐다.
그녀의 기세가 사납게 일변했다.
“그러니 이용할게.”
그러나 그것도 잠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밀리가 사라지고 있었다.
곧바로 의철과 천운이 달려들었다.
의철은 팔테인으로 휘둘러 빛의 참격을 발산했고 천운은 곧바로 크리티컬 단검을 그대로 그녀에게 던진 것이다.
그러나 밀리의 신형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후후훗-
밀리의 웃음소리가 공간에 퍼져 나갔다.
그녀의 신형이 점점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쫓으러 가려던 의철이었지만 연시훈이 그것을 막았다.
“그만……. 쿨럭- 아무리 당신들이라도 그 몸으로는 밀리를 상대할 수 없겠죠.”
이상을 느낀 건 그때였다.
천운은 바닥에 털썩- 쓰러진 그에게 다가갔다.
“저주…….”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것은 악독한 저주였다.
자신 또한 저주 특성이 있어 알 수 있었다.
연시훈의 몸에서 그 저주가 빠른 속도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천운은 곧바로 응급 처치를 시작했다.
“그 특성은…….”
천운은 그의 앞에 앉아 회복 특성을 발동해 저주가 퍼지는 것을 늦추고 있었다.
“당신이나 되는 사람이 설마 이 정도로 죽겠어? 물어볼 게 많으니까 조용히 해.”
“후훗.”
그는 그저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제 실책입니다…… 회귀의 기억이 돌아온 후에는 기력이 약해져 있지요. 그렇기에 아무도 없고 조용한 공간에서 기억을 받는 거고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우성 또한 조심히 아무도 모르는 공간에서 기억을 갱신받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제가 그녀를 주시했어야 했는데…… 애초에 그녀는 저를 의심하고 있었으니까요.”
쿨럭-
그는 선혈을 토하며 천운에게 말을 이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었을 겁니다…….”
“…….”
천운은 말없이 치료에 전념했다.
솔직히 말해 그에게 정이 있어 치료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더 듣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
“후…… 이건…… 안 되겠네요.”
그가 손에 주위로 퍼지는 검은 반점을 보며 말했다.
저주를 늦추고 있는 천운도 깨달았다.
이 저주는 자신의 회복 특성으로도 해주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그의 몸이 빠르게 검은 반점으로 잠식되기 시작했다.
그가 천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지막 재앙인 검은 거인……. 언젠가는 당신도 기억이 나겠죠.”
“검은 거인?”
천운이 소설에 설정한 재앙은 두 개밖에 없었다.
하나는 이곳에 언더와 지천해의 마수왕.
검은 거인이라는 것은 들어 본 적도 설정한 적도 없는 재앙이었다.
‘그럼…….’
그렇다면 알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지금 눈앞에 연시훈처럼 연중 된 이 소설의 다음 이야기에 등장할 놈이라는 거다.
쿨럭-
그의 얼굴이 서서히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서 천운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눈앞에 의철마저 그를 그저 안쓰럽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온 힘을 다해 천운의 손을 꽉 잡으며 다급히 소리쳤다.
“절대…… 이번 회차가 마지막입니다. 절대 회귀하시면 안 돼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누가 죽어도.”
“그게 무슨…….”
“검은 거인은 오직 당신만이 막을 수 있는 재앙입니다. 그러니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마…… 세요…….”
천운의 손을 잡던 손에 힘이 바싹 들어가며 그가 마지막 힘을 다해 천운에게 무언가를 전달했다.
“미국에…… 절망의 탑……. 그 마지막 층으로 가세요…….”
눈동자의 이채가 서서히 사라졌다.
“꼭…….”
그것이 연시훈의 마지막 말이었다.
“어째서…… 윽!”
파지직-
천운과 의철이 동시에 두통이 찾아왔다.
그리고 머릿속에 흘러든 기억에 경악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