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화
#96
“하아 하아.”
“…….”
그저 무심하게 바닥에 쓰러져 가쁜 숨을 헐떡이는 의철을 내려다보는 연시훈.
그가 의철에게 높낮이 없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설마 지금의 당신이 그걸 익혔을 줄이야…….”
“후우…….”
“당신은 그 마법을 누구에게도 알려 주지 않았죠. 저 또한 탐났지만 뭐…… 지금은 그저…….”
사아아!
연시훈의 등 뒤에서 피어나온 날개.
날개가 강하게 발광하며 주위의 어둠을 몰아냈고 동시에 의철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윽!”
“궁금했습니다. 그것을 가르쳐 주지 않은 이유를. 단순히 욕심 때문에는 아닌 거 같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후……. 모르겠네.”
의철이 다시 팔테인을 거치대 삼아 일어섰다.
검을 쥐어진 손에 힘이 들어갔다.
‘팔테인은…… 마기를 찢는 성검…….’
그의 등 뒤에서 피어난 날개는 영험한 빛을 뽐내고 있었다.
그것이 마기를 뿜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가짜다…….’
눈앞에 날개가, 빛이 자신을 현혹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험하게 뒤바뀌었다고는 하나 저것은 분명 마기였다.
“이 빛이 마기라 거부감이 들겠죠…….”
의철의 속을 눈치챈 연시훈을 말했다.
“마력은 선, 마기는 악. 분명 그것이 본질이겠죠. 부정은 안 합니다. 하지만.”
펄럭- 날갯짓에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바람이 쇄도했다.
캉! 팅! 캉!
쇄도하는 바람을 의철은 감각으로 감지해 팔테인을 빠르게 휘둘러 튕겨냈다.
그러나 곧 한계가 찾아왔다.
쇄도하는 바람은 끝이 없었고 그 전부를 막아 내기에는 힘이 부족했다.
삭!
날카로운 날바람 하나가 의철의 팔을 베었다.
[의철아!]
‘네!’
의철은 곧바로 팔테인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팔테인에 빛이 터져 나오며 의철은 곧바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팔테인을 크게 휘둘렀다.
풍압과 함께 칼날 같은 바람은 갈무리됐으며 연시훈이 의철을 보며 상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친목회와 언더의 목적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저…… 누가 더 옳은 길인지 정하는 것뿐.”
“후…… 생각보다 말이 많으시네.”
“여유가 있기 때문이죠.”
그가 의철을 보며 질문했다.
“왜 여기로 온 거죠? 이 장소를 알고 있고 제가 여기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당신은 여기를 찾아왔습니다. 그 이유가 뭐죠?”
솔직히 말해 이 장소를 안다는 건 둘째 치고 알고 있음에도 소년은 혼자서 이곳을 찾았다.
그것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연시훈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의철의 대답은.
“……몰라.”
기운이 빠지는 대답이었다.
“후…… 그게 진심입니까?”
“……그냥.”
나도 알고 있었다.
지금 하는 짓거리가 미친 짓이라는 것을.
하지만 자신도 그 이유를 크게 설명할 수 없었다.
그저 기억대로 자신이 왔었어야 했다.
그 누구도 아니고 누구랑 같이도 아니고 자신 혼자서 이곳을 찾아왔어야 했다.
마치 운명처럼 이끌려 찾아왔고.
또한 그가 자신을 설득하려는 모든 말이 부정적으로 들렸다.
이미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길영트의 테러도 당신의 짓인 건 이미 알고 있어.”
의철의 말에 그가 불만스럽게 한쪽 눈썹을 꾸겼다.
“……알고 계셨군요.”
“과거의 모든 마수 테러도 당신 짓이겠지.”
“…….”
“내 앞에서 그렇게 굴어 봤자 위선자로밖에 안 보여.”
“……그렇군.”
조용히 그저 눈을 감은 연시훈.
“처음부터 소용없었다는 거였군요.”
펄럭-
6개의 날개 중 맨 밑에 날개가 펄럭였다.
“첫 번째 날개 범…….”
그의 말이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시선이 의철의 몸에 흐르는 미세한 전류로 향했다.
파직-
“그건…….”
좁혀진 미간으로 의철을 바라봤고.
쿠쿠쿠쿵!!
콰쾅!!
그때였다.
천장이 무너지고 누군가 나타난 것은.
의철과 연시훈의 시선이 그곳을 향했다.
익숙한 장면.
무너져 내린 천장, 퍼진 먼지가 나타난 그의 형체를 가렸다.
의철의 눈이 서서히 크게 떠지기 시작했다.
‘알고 있었어.’
확신하고 있었다.
기억 속 그대로 저 녀석이 올 거라는 사실을.
* * *
“받아!”
천운은 곧바로 의철에게 작은 병 하나를 던지며 말했다.
과거에 얻은 ‘화룡왕 지바드의 피’였다.
“이건…….”
[화룡의 피다. 의철아! 어서!]
곧바로 내용물을 팔테인에 붓는 의철이었다.
팔테인은 그 피를 섭취하듯 빨아들였고.
사아악-
붉은 기운이 한참 동안 검 주위를 맴돌다 서서히 흡소되기 시작했다.
팔테인의 두 번째 개화가 시작된 것이다.
“당신은…… 누구죠?”
그들의 대화에 연시훈이 끼어들었다.
연시훈은 무너진 천장에서 나온 소년의 등장에 미간을 찌푸렸다.
갑작스러운 등장과 방해.
보이는 나이로는 눈앞에 의철과 똑같은 17살 소년.
‘도대체 왜…….’
알 수 없었다.
스탯과 기량의 차이는 명백한데, 불나방처럼 이곳으로 뛰어드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눈앞에 소년에게 느껴지는 기운은 초월자도 아니었으며 스탯 또한 그리 높지 않은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건 대체…….’
눈앞에 소년을 계속해서 바라보자 이상을 눈치챘다.
소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
그것 자체가 너무나도 기이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많은 양의 마력을 가지고 있던 것은 아니다.
봐야 할 것은 마력의 밀도였다.
평범한 아베타의 마력보다 더욱 진득한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집어삼켜질 정도군…….’
소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기와 공명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 높은 밀도를 자랑하는 소년의 마력이 자신의 마기를 집어삼킨 것이다.
한우성과 다르게 양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닌 그 마력 1 하나가 높은 밀도를 자랑하는 것이다.
“당신은 누구죠?”
“역시…… 여기 있었네. 연시훈.”
“제 이름을 알고 있군요. 여기는 어떻게 침입했죠?”
“몰라서 물어?”
천운이 자신이 떨어진 천장을 쳐다봤다.
“위에서 떨어졌지.”
“……어리석은, 당신이 끼어들 자리가 아닙니다.”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었나 본데 소용없을 거야.”
천운이 의철을 바라봤다.
그리고 의철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연시훈을 노려봤다.
“이미…… 정해 놨다는 거군요.”
연시훈은 고수하던 서늘한 무표정을 풀며 으득- 이를 갈았다.
“왜 알지 못하는 겁니까?”
지금 손대중으로 봐주고 있다는 사실을.
본 힘을 쓰면 깃털처럼 날아갈 가여운 것들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가능성을 보고 있다.
어리석고 어리석어 실체를 보지 못하는 소년들.
‘그래……. 포기하자.’
회유는 필요 없다.
확고한 의지를 가진 소년을 회유하는 행동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없으니.
그저.
“조금 더 일찍, 끝을 볼 것이다…….”
* * *
풍기는 분위기로 인해 처음에는 누군지 짐작 못 했지만 이제 보니 자신도 알고 있던 소년이었다.
‘그 겁쟁이가…….’
시끄러우며 말 많고 욕심이 많으며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멍청하게 그지없던 소년.
힘도 마력도 나약하기 그지없고 오직 행운만이 남들의 자랑거리라고 생각하던 녀석이…….
훙! 캉!
자신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어떻게…….”
‘미르마!’
[너는 발동만 해! 나는 술식을 짤 테니!]
미르마가 술식을 그리면 그것이 천운의 머릿속으로 옮겨 갔다.
링크로 인해 가능한 기교였다.
지금까지 미르마가 이렇게 자신의 마법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그만큼 눈앞에 보이는 녀석이 그 정도의 사내라는 것이다.
화르륵!!
마력이 발동되고 연시훈이 서 있던 자리에 불길이 솟아올랐다.
화르륵- 피어오르는 지옥염.
펄럭-
그의 등 뒤에 날개가 한 번 날갯짓하니 마기의 바람이 일었다.
그것으로 지옥염을 없애려던 연시훈이었지만.
‘이런…….’
그는 당황했다.
자신의 마기가 저 불꽃에 닿은 순간 사라진 것을.
‘상쇄시킨다고.’
반마의 특성.
천은의 특성인 반마가 그것을 가능케 만들었다.
마기가 통하지 않는 마법.
연시훈은 빠르게 그 불기둥에서 빠져나왔다.
쿵! 쿵!
김의철이 뛰어들었다.
곧바로 녀석에게 다가갔으며 그 속도는 이미 60을 넘어 100에 달한 각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마투법으로 인해 향상된 힘 스탯이 그것을 가능케 만든 것이다.
끼기긱!
후웅!!
땅을 긁는 파찰음을 내며 아래에서 위로 휘두르는 의철이었다.
그어진 땅에서는 무수한 빛이 쏟아지고 어두운 공간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이건…….’
연시훈은 알 수 있었다.
두 소년의 기술들은 모두 마기와 적대하며 마기의 천적이라는 사실을.
후아아앙!!
‘그렇다면…….’
더욱 진득하게 더욱 많이 두 소년이 감당 못 할 마기를…….
흠칫!
천운과 의철의 몸이 떨려 왔다.
연시훈의 두 눈을 보자마자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득한 심연에 빠진 기분이었다.
순간 팔테인이 밝히던 모든 빛이 어둠에 가려지며 공터 전체가 천운과 의철의 시야를 가렸다.
아니, 시야뿐만이 아니라 오감까지 말이다.
마치 깊은 심해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띵띵!
지금껏 가만히 있단 천운의 마력이 공명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저 반마의 특성이 깃든 마력을 몸에 두른다고 이 현상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단 보이는 거부터다.
그리고 천운에게는 그 보이는 것에 최적화된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천운은 스킬 중 하나인 ‘도래까마귀 신의 눈’을 발동했다.
만약 이 스킬을 반마의 특성을 부여한 마력으로 발동한다면.
후왁!
천운의 눈에 어둠이 개이기 시작했다.
곧바로 연시훈을 찾은 천운이었다.
느긋한 발걸음으로 그저 천천히 의철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천운은 곧바로 그를 향해 달렸다.
동시에 샌디가 손목에서 흘러나와 크리티컬 단검으로 형태를 변환시켰다.
그리고 단검은 장검으로 길이가 늘어났으며.
후웅!
그대로 크게 천운은 녀석을 향해 휘둘렀다.
휘둘러지는 장검이 연시훈을 가슴을 향했을 때 그의 눈이 당혹감에 서려 있었다.
“어떻게!”
오감이 막힌 공간이다.
암순응으로는 같이 눈이 적응한다고 보일 리가 없었다.
모든 오감이 한순간 정지하는 것이 이 공간일 터.
삭!
결국 그의 어깨에 옅은 상처를 낸 천운이었다.
“큭!”
동시에 의철 또한 반응했다.
모든 오감이 막힌 상황.
굳이 눈을 뜨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소리와 촉감과 시야가 안 보이는 공간에서 믿고 의지할 것은 자신의 또 다른 감각뿐.
기이하게 발달된 의철의 육감은 그것을 가능케 만들었다.
의철은 그대로 마력을 실은 팔테인을 휘둘렀다.
카카캉!!
휘둘러진 팔테인은 주위에 자옥한 마기와 지면을 가르며 누군가에게 향했고.
“크악!”
그것이 그 누군가에게 적중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의철의 눈이 서서히 반개했다.
눈을 뜨니 그 어둠이 자옥했던 마기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가슴을 움켜쥐고 쓰라린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연시훈이 있었다.
“하…….”
순간 짜증이 솟구치는 연시훈이었다.
‘너무 만만하게 봤군.’
애들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명은 이미 초월의 영역에 들어섰으며 또 한 명은 미지의 마력과 마법을 쓰는 놈이었다.
“첫 번째 날개.”
펄럭-
그의 등 뒤에 제일 아래에 있는 날개.
첫 번째 날개가 움직였다.
“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