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소설 속 운만렙 캐릭터가 되었다-96화 (96/176)

제96화

#95

천운이 사라지고 다음 날이었다.

스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조용한 공터.

빛 하나 없는 어둠만이 자옥한 그 넓은 공터의 중심에 한 사내가 있었다.

‘곧 시작이군…….’

파지직-

연시훈의 몸에서 전보다 강한 전류가 터져 나왔다.

곧…… 곧 이번 연도의 기억이 갱신될 시간이다.

“가일.”

“예.”

“이제 곧 시작입니다.”

“그럼 말씀하신 대로 준비해 두겠습니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자신의 이 갱신이 끝나기 전까지 그 누구도 자신의 허락 없이 이 공간에 침입하지 못할 것이다.

그 누구도 방해하면 안 된다.

이 작업이 끝난 뒤는 가장 쇠약해지는 시기니.

“부탁드립니……?!”

“무슨 일이십니까?”

연시훈의 안색이 변했다.

미간을 찌푸린 그의 표정만을 봐도 괴로움이 느껴졌다.

파지직!!

‘아직 때가 아닐 터…….’

그러나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분명 갱신이었다.

기억의 갱신.

아직 기운이 크게 요동치지 않았음에도 갱신되는 기억이 있었다.

그것은 짧고 한 장의 사진 같은 기억이었다.

보이는 것은 자신과 그리고 자신을 마주 보고 있는 소년.

‘이 기억은 분명…….’

이 기억은 분명 시스템의 오류였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직 갱신에 저항하지 않았음에도 나타난 기억은 분명 오류인 것이 분명했다.

그것도 몇 년 뒤의 미래가 아닌 몇 분 뒤 일어날 미래.

“가일.”

연시훈이 급하게 가일을 불렀다.

“예.”

“누군가 찾아올 겁니다. 그대로 두시면 됩니다.”

“이 장소에 말입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자는 이 장소를 이미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 건드리지 마시고 그저 들여보내세요.”

“……알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가일이 사라진 뒤.

연시훈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왜 이곳을 알고 있는 거지?’

나이에 맞지 않은 높은 스탯과 들고 있는 거대한 대검.

그 소년은 분명 김의철이었다.

‘흐음…….’

그리고 좀 떨어진 공간.

밀리는 고유 스킬 막을 친 뒤 연시훈을 관찰하고 있었다.

막은 자신의 마기뿐만 아니라 기척까지 없앨 수 있었다.

밀리의 흥미로운 시선이 연시훈이 내뿜는 저 기운으로 향했다.

이질적인 기운.

‘과연…….’

폭발적인 기운이지만 저 남자는 기운을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모양이다.

동시에 저 기운이 흐를 때마다 남자의 안색이 쇠약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후후훗.’

밀리의 입가에 진득한 미소가 떠올랐다.

밀리는 계속 숨어 상황을 지켜볼 심산이었다.

* * *

파지직- 쿠쿠쿵!!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슬슬 시작인가.’

강하게 발하기 시작한 회귀의 기운.

오늘이 바로 자신이 회귀한 날짜.

0회 차에서 마지막 죽음을 맞이한 날짜이다.

파직! 파지직!!

크게 요동치는 스파크가 주위를 부산하게 만들었다.

정해진 날짜가 다가올수록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회귀의 기운.

지금 자신은 과거의 한우성이 해 왔던 것처럼 그 거대한 기운을 크게 저항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오류가 나올 것이니.

한우성과 다른 점은 성공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터벅- 터벅-

그때였다.

저 멀리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린 것은.

그가 터져 나오는 기운을 잠시 잠잠하게 제어하기 시작했다,

이 기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인간은 회귀자가 된다.

연시훈은 저 멀리 다가오는 누군가에게 시선을 옮기고 나직하게 말했다.

“오셨군요.”

B22

그의 부름에도 점점 다가오는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흠…….”

연시훈은 다가오는 상대를 차근히 기다렸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소년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잘 아는 소년.

“김의철…….”

“역시…… 나를 알고 있네.”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습니까?”

의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복잡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좋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니.”

“얘기라니……?”

“저희 조직에 대해서 아십니까?”

언더.

왜인지 모르겠지만, 알고 있었다.

흑색의 가일.

황색의 밀리.

홍색의 킬라.

청색의 비란.

녹색의 크레인.

그 모든 간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억으로 인해 눈앞에 보이는 저 사내의 이름까지 말이다.

“연시훈”

“?!”

“그게 당신의 이름이지?”

눈을 감은 그의 무표정이 순간 미간이 좁혀지며 불만스럽게 변했다.

“어떻게 제 이름을 알고 있습니까?”

“……그냥 알고 있었어.”

“흠…… 뭐 상관없겠죠.”

그는 다시 차분하게 의철을 설득했다.

“당신의 활약은 잘 듣고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말이죠.”

“…….”

“17살 소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압도적인 기량과 스탯. 과거 친목회의 한우성도 그 나이 때에 당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언더로 들어오시죠.”

의철의 한쪽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연시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곧 마기의 인식이 바뀔 겁니다. 당신은 친목회가 왜 만들어졌고 언더라는 조직이 왜 생긴 것인지 알고 있습니까?”

“…….”

“제 곁으로 오시면 알려 드리죠. 당신이 모르는 모든 사실을……. 자!”

그의 활짝 핀 손이 의철을 향했다.

상쾌할 정도로 맑은 웃음.

누군가가 봤으면 혹하고 넘어갔을 길을 인도하는 듯한 자애로운 미소가 의철을 바라봤다.

하지만 의철의 표정은 무감했으며 그저 자신을 향해 내민 손을 바라볼 뿐이었다.

“…….”

친목회가 만들어진 이유?

언더가 조직된 이유?

그리고 이 세계의 미래?

어처구니가 없었다.

왜 자신이 그 모든 이유를 알고 있는지 말이다.

“거절할게…….”

“…….”

그의 인자한 미소는 흐트러짐 없이 의철을 바라봤다.

그가 조심스레 의철에게 물었다.

“이유를 들어 봐도 되겠습니까?”

“……이유, 이유라…….”

의철은 그저 그 말을 되새김질하며 읊조렸다.

“못 믿을 수도 있을 건데?”

“뭐…… 들어는 보겠습니다.”

의철이 그를 보며 팔테인을 위로 크게 세웠다.

“당신의 계획은 실패할 거야.”

“실패?”

그가 헛웃음을 흘렸다.

“설마 이제부터 그렇게 만들 거라는 말은 아니겠죠?”

“…….”

“허…… 정말…….”

그의 등 뒤에서 6개의 날개가 어두운 공간의 빛을 만들었다.

“대장이 마음에 든 인간이라 그런지 여전히 어리석군.”

후우웅-

느껴지는 기세.

아득한 마기를 뿜어내는 형용할 수 없는 괴물.

“솔직히…… 저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군요.”

활짝 펴진 날개에서 피어오르는 빛.

그 눈으로 보여 주는 영험함은 분명 마기였다.

모순적인 형태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에 의철은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눈빛은 그를 향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의철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그런데도 당신은 이미 격의 차이를 느끼고 있죠. 일반 아베타와 초월한 아베타에 격의 차이는 당신의 예상보다 아득합니다.”

그렇기에 이해가 안 됐다.

그는 아직도 저 돌 뭉치 같은 대검을 내려놓지 않았다.

“아직 그 대검의 개화도 못 했군요.”

“……!”

이번에는 의철이 당황했다.

길 또한 마찬가지였다.

[설마 이 검을 이미 알고 있다니…….]

완성되지 않은 유물.

그것이 팔테인이었다.

녀석은 이미 팔테인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련되지 않은 스탯과 개화도 못 한 팔테인 더구나 또래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높은 스탯이겠지만 저를 상대로는 아니죠.”

그의 떠진 한쪽 눈이 의철을 바라봤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만…… 진심입니까?”

“…….”

의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보여 줄 생각이었다.

후우우웅!

모순에는 모순으로.

모순투성이인 강화 마법 ‘마투법’.

그 마투법에 50의 마력을 투자했다.

“그건 분명…….”

그의 떠진 두 눈이 의철을 향했다.

의철의 몸에서 흐르는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분명 자신도 잘 아는 그 힘이었다.

60의 마력 중 40을 사용한 마투법.

마투법은 수치 그 이상의 힘 스탯을 줄 것이다.

마력을 힘으로 전환시키는 이 마법이 의철을 초월의 경지로 들어서게 했다.

“이럴 수가…….”

연시훈은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의철을 바라봤다.

있을 수 없는 미래.

저 마투법은 지금 시기에 김의철이 익힐 수 있는 마법이 아니다.

“누구한테 배운 거죠?”

“……친구한테.”

“친구? 공터의 주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공터의 주인? 누굴 말하는지 모르겠네.”

의철이 한 손으로 팔테인을 위로 세워 들었고 아래로 훙! 한 번 휘둘러 보았다.

가벼워진 팔테인에 이질감을 느끼며 의철이 연시훈을 노려봤다.

“이제 해 볼 만하겠지?”

탁!

자세를 낮추고 땅을 박차며 달려드는 의철.

팔테인에서 빛이 쏟아지고 곧바로 코앞까지 다가간 의철이 아래에서 위로 팔테인을 휘둘렀다.

“어리석은…….”

연시훈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의철을 내려다보며 마기를 터트렸다.

* * *

“잡혔어!”

질 크롬벨의 레이더에 천운의 위치가 잡혔다.

하루 만에 잡힌 레이더에 옆에 있던 한민아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사하나요?”

“무사해.”

“위치는 어디지?”

한우성이 크롬벨에게 물었다.

그리고 위치를 확인하려던 크롬벨이 표정이 당황으로 일그러졌다.

“…….”

“왜? 무슨 일이야.”

“사라졌어…….”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야. 다시 사라졌어…….”

한우성은 크롬벨의 말에 황당해하고 있었다.

한민아 또한 표정이 어둡게 일그러졌다.

“무슨 홍길동이야?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지고.”

한우성의 말에 고개를 젓는 크롬벨.

그녀가 어느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산 근처에서 사라졌어.”

“그렇다면…… 던전이군.”

“응.”

고개를 끄덕이는 크롬벨.

한우성은 곧바로 일어서며 한민아에게 말했다.

“다녀오지. 크롬벨 산으로 향하는 게이트를 열…….”

“왜 그러시죠?”

갑자기 말을 하다 말고 한우성이 턱을 괴며 생각에 잠겼다.

김천운의 돌발 행동의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 녀석이 이유 없이 사라질 리가 없어…….’

뭔가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다.

예언자인 김천운이 한민아에게 비밀로 하고 사라진 이유가.

생각하고 나니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치솟았다.

녀석은 예언자다.

미래를 알고 있다.

상황에 맞지 않게 던전을 간다고?

그렇다면…….

‘설마…….’

“한민아는 여기 남아서 기다려. 나머지는 전부 따라와.”

“왜, 왜 저는…….”

“미안하지만 설명해 줄 시간이 없다.”

“형님. 무슨 일입니까?”

“가면서 설명하지. 크롬벨.”

크롬벨이 천운이 사라진 산으로 게이트를 열었다.

곧바로 한민아를 제외한 그들 모두가 게이트를 통해 넘어갔고.

한민아는 복잡한 얼굴로 그들이 사라진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알 수 있는 사실은 자신을 제외하고 단원들이 뭔가를 숨기는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