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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 속 운만렙 캐릭터가 되었다-92화 (92/176)

제92화

#91

가슴을 옥죄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하아, 하아.”

자신의 기억이 아니다.

그럼에도 기억과 함께 찾아오는 분통함이 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기억 속에 광경은 익숙했다.

광기에 찬 적색의 하늘.

건물을 부수고 갈라지는 땅 사이로 기어오르는 마수들이 사람들을 찢어발기고 있다.

그런 바깥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제발…… 이번 한 번만…….

천운은 안전한 대피소에서 바랬다.

제발 자신의 부모님이 무사하기를…….

-제발…….

후들후들 떨며 빌었다.

-살아 있어만 주세요.

이것은 과거…….

레트아몽이 보여 준 기억은 단편.

그 후의 기억이었다.

-윽!

바깥의 상황을 눈으로 직접 보고 온 천운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상황에 부모님이 멀쩡하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를 느끼는데 특화되었기에 알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거대한 마기.

부모님이 향한 곳에서 그 마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이봐! 학생! 지금 뭐 하는 거야!

소년은 결국 빌었고 심약한 마음에 용기를 가져 충동적으로 돌발 행동을 취했다.

자신의 스탯 중 가장 높은 수치의 행운을 믿은 채.

소년은 누군가가 말릴 새도 없이 벌컥- 문을 열고 가족들에게 향했다.

바깥 상황은 여전히 처참했다.

사람의 무언가였던 것이 사방에 튀었고 마수들은 아직 거리를 활보하며 탐식하고 있었다.

소년은 자신의 행운을 믿기로 결심했다.

100이 넘는 행운 스탯이다.

그것이 자신의 목숨을 지켜 줄 것이라고.

-제발!

소년의 미간에서 식은땀이 흘렸고 두려움에 떨며 아버지와 어머니를 향해 달렸다.

곧바로 늑대 형태의 마수들이 소년의 뒤를 쫓았다.

자신은 바라고 바라며 또 바랬고.

동시에 무너지는 건물이 마수 한 마리를 깔아뭉갰고 피어오르는 먼지가 천운의 모습을 가리기 시작했다.

천운은 계속해서 행운을 믿기로 했다.

제발 저 끔찍한 괴물들 사이에서 살 수 있게 해 주시고 또한 부모님이 살아 있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리고 저 멀리 자신의 부모님이 시야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 아버지.

천운의 초조한 불안한 표정이 안도감으로 풀리기 시작했다.

곧장 천운은 가족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터벅터벅-

그리고 다가가려는 다리가 서서히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천운이 가족들에게 다가가는 한 발짝 한 발짝과 함께 표정이 변해 갔다.

천운의 다리가 멈췄다.

-아버지…….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후웅! 콰직!

한 남자가 있었다.

흑색의 망토와 후드로 몸과 얼굴을 가린 사내.

거대한 마기의 정체는 그 남자였다.

그의 등 뒤에서 피어오르는 마기가 현상을 이루어 괴물의 아가리처럼 떡 벌리더니 아버지의 절반을 집어삼켰다.

“아…… 아…….”

아버지를 안은 채 통곡하는 어머니.

어머니와 같이 있던 여아 또한 정신을 잃은 채 기절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 앞에 두 명의 남자가 어머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흑색의 가일…… 그리고 사제복을 입은 장발의 사내.

-들켰으니 어쩔 수 없겠네요. 이 사건은 저희가 아닌 마수 테러로만 있어야 합니다.

-친목회가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그들은 알고 있어도 쉽사리 알리지 않을 겁니다. 그들 또한 바라지 않을 테니까요.

잠시 어머니를 힐끔 본 장발의 사내가 가일에게 말했다.

-당신에게 맡기겠습니다.

-…….

-당신이 선택하면 됩니다. 제 명령에 따를 필요 없이.

잠시 침묵하던 가일이 그에게 말했다.

-…… 감사합니다.

가일이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고 손에서 뿜어져 나온 무언가가 이신아를 잠식시켰다.

결국 어머니는 하염없이 울다가 정신을 잃고 말았다.

천운은 털썩- 주저앉은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치솟는 두려움에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창백한 시선이 그들을 향했으나 그들은 천운을 눈치채지 못했다.

-가시죠.

-예…….

그들은 게이트를 통해 사라지고 나서야 발이 다시 움직였다.

그러나 이미 늦은 후였다.

느껴 본 적 없던 절망이 몸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툭- 툭-

가쁘게 맥동하는 심장이 진정되지 않았다.

불과 몇 초였다.

발이 움직이지 않은 몇 초 만에 자신은 모든 것을 잃었다.

“아…… 아, 안 돼! 흑!! 제발…….”

툭- 툭-

“왜!! 하필 왜!!”

억울한 감정이 치솟았다.

“흐아아앙!!”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 있기를 빌었다.

그럼에도 행운은 미동도 안 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행운을 가진 소년은 고작 몇 초 만에 가장 큰 절망을 얻었다.

-크오오오오!

마수들이 적색의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동시에 녀석들이 아버지의 피 냄새를 맡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 괴물들은 소년의 처절한 울음에도 그저 자신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다가오는 것이다.

‘죽자…….’

소년은 포기했고 저 조용히 마수들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때였다.

후우웅! 탁!

하늘 위에서 나타난 누군가가 소년의 주위에 있던 마수들을 태워 버린 것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소년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은 살아남을 것이란 걸 확신했다.

그것이 소년의 두 번째 절망이었다.

‘아, 안 돼…….’

천운에 생기를 잃은 눈이 그녀를 향했다.

“민아 누나…….”

그녀의 흔들리는 시선이 천운에게로 그리고 싸늘하게 죽어 있는 천운의 아버지와 쓰러져 있는 이신아에게 향했다.

“신아 언니……. 익!”

으득- 이를 갈며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등 뒤에 8개의 태양이 떠올랐다.

8개에 흑염의 태양이 사방으로 퍼졌고 마수들이 고통스러운 단말마를 울리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크오오오오!-

-크아아악!!

붉은 선혈 같은 적색의 하늘.

타오르는 흑색의 불꽃.

모든 상황이 지옥 같았던 천운이었다.

“천운아…….”

한민아가 천운에게 다가갔다.

그 무거운 발걸음을 억지로라도 움직이려는 듯이 천천히…….

그리고 다가온 그녀가 천운의 앞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미안해…… 나 때문에…… 내가 괜히 부탁해서…….”

“…….”

“정말 미안해…….”

천운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모든 무대가 암전되듯 검은 배경밖에 보이지 않았다.

천운의 기억이 여기서 끝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또다시 환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환한 빛은 다시 배경을 물들기 시작했고 물들기 시작한 배경이 한 장면을 보여 주었다.

익숙한 장면.

또다시 대피소에 있던 김천운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김천운은 너무나도 담담했다.

근심, 걱정, 불안함은 어딘가로 사라진 채 차가울 정도로 냉정한 무표정이었다.

그저 여아를 구하러 가는 아버지를 안전한 대피소에서 담담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언뜻 한 번은 이빨을 으득- 갈며 분한 듯 보였으나 그 이후로는 변화가 없었다.

김천운은 대피소에 있는 그 누구보다 무감해 보였으며.

“…….”

냉정하며 담담했다.

소년의 감정은 미미했으며 공허해 보였다.

* * *

한설아와 윤시혁이 지하 단련실을 빠져나온 시점이었다.

2명 아니 정확히 한 명 더 추가해 3명은 거대한 덩치의 마물과 전투 중인 질 로벤을 만나 합류한 시점이었다.

“이건 대체 뭐야!”

“한설아! 조심해라!”

그들 4명이 탈출했을 때에는 아비규환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탑을 중심으로 무수한 마물들이 새어 나오며 저 멀리 길영트의 모든 교관이 전투를 벌이며 생도들의 도주를 돕고 있었다.

이미 마물들이 건물을 부수고 있었으며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덩치의 마물이 건물을 짓뭉개고 있었다.

6층의 보스 마물 ‘자이언트 스톤 골렘’이었다.

“이건 대체 뭐야!”

“6층의 보스 스톤 골렘이다.”

“약점은?”

윤시혁이 한설아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밖에 없지.”

보통의 골렘의 핵은 얼굴 중심에 커다란 수정 같은 것이 자리 잡는다.

그것이 골렘의 핵이기는 하나, 눈앞에 골렘은 핵이 몸속에 어딘가에서 계속 이동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정석대로 해야지.”

“정석이라고?”

“따라와라!”

윤시혁이 먼저 골렘에게 달려들었다.

윤시혁의 고유 스킬 ‘날’을 두른 장검이 골렘의 거대한 팔을 향했다.

한설아 또한 윤시혁의 뒤를 따랐고 곧바로 윤시혁의 작전을 이해한 한설아였다.

훙!

날을 두른 날카로운 검이 놈의 팔을 베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단단한 팔이라 전부를 베지는 못했다.

윤시혁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골렘의 거대한 팔을 피해 다니며 골렘 구석구석에 흠집을 냈다.

녀석은 치명상이라 생각하는 큰 상처가 아닌 이상 자율 회복이 발동하지 않을 것이다.

“한설아!”

윤시혁의 뒤를 따른 한설아가 불길이 치솟는 검을 골렘에게 휘둘렀다.

화르륵-

불에 달구어진 골렘의 몸.

그러나 골렘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화르륵- 뜨겁게 달군 팔이 갑자기 근처에 있던 장오철에게 향했다.

“힉!!”

장오철은 크게 소스라치며 팔을 피했고 그 상황을 계속 지켜본 윤시혁이 그에게 말했다.

“장오철! 골렘을 유도해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골렘이 계속해서 도망가는 장오철의 뒤를 따랐다.

동시에 윤시혁과 한설아는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 나갔고.

“로벤!”

윤시혁은 질 로벤을 불렀다.

머릿속에 술식은 모두 짜낸 그녀가 눈을 번뜩이더니 골렘을 향했다.

그녀는 동시에 고유 스킬을 발동했다.

그녀의 고유 스킬은 복사.

그것은 형체와 물체 또한 가능하며 마법 또한 그것을 가능케 했다.

거대한 술식의 파동이 일었다.

그녀가 발동한 마법 술식은 상급 마법 ‘혹한’이었다.

빠득- 빠드득-

골렘의 움직임이 서서히 멈추기 시작했다.

억지로 움직이려는 몸이 서서히 금이 가며 처음 윤시혁의 ‘날’로 인해 크게 금이 간 왼쪽 팔이 떨어지며 쿵- 지면으로 떨어졌다.

“됐군.”

얼어붙은 것을 확인한 윤시혁이 골렘에게 다가갔다.

이제 움직이지도 못하는 골렘을 그냥 둘 생각은 없었다.

몸이 서서히 자율 회복을 시작하고 있었으니 윤시혁은 크게 뛰어올라 골렘의 명치에 주먹을 크게 휘둘러 박았다.

쿵!

뒤로 고꾸라지며 바닥에 쿵- 내려앉은 골렘의 몸은 충격으로 인해 사방으로 사산했다.

윤시혁은 그대로 뒤돌아 일행의 곁으로 돌아왔다.

“가지. 한시가 급하다.”

윤시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일행들.

그 와중에 장오철은 멍하게 윤시혁의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해 안 오고!”

한설아가 호통치니 그가 덜덜 떨며 어느 방향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쿵!!

노면을 흔드는 진동이 울렸다.

“이건…….”

3명의 아이들 모두가 장오철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이지 않은 투명한 무언가가 있었다.

투명하지만 조금씩 일렁이는 공간이 거대한 형체를 보여 주고 있었다.

한설아의 눈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들어 본 적이 있다.

10층의 서식하는 보스는 거대한 몸짓에 몸이 투명하다고.

쿵!

쿵!

다가오는 묵직한 발소리.

그 괴물이 서서히 다가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망가자.”

한설아가 굳은 표정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저 괴물 말고도 주위에 아직 마물이 많아.”

주위를 돌아보니 아까의 전투로 눈치챈 마물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언뜻 봐도 불리한 상황이었다.

“내가 시선을 끌지. 곧바로 뒤로 뛰어라.”

윤시혁의 장검이 은은하게 빛났다.

고유 스킬 ‘날’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것이다.

그가 장검을 두 손에 쥐고 달려들려고 하는 순간.

“……저건?”

푸르렀던 하늘이 적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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