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90
샌디를 따라 병원의 로비 입구에 도착한 한민아였다.
“누구지…….”
병원 내부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자신도 잘 아는 초월자의 기운이었다.
그 특유의 기이한 기운이 한 명도 아닌 두 명이나 병원 내부에서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안 돼!’
불안감이 치솟았다.
내부에 있는 두 명의 초월자.
그게 누구든 천운이 무사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한민아는 곧바로 무너진 건물 잔해로 막힌 입구를 녹이기 시작했다.
곧바로 병원 내부에 들어선 한민아의 시선에는 다행히 무사해 보이는 천운이 있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손에서 뚝- 뚝- 흐르는 선혈에 비해 너무나도 평온하며 조용하고 덤덤한 분위기에 속아 넘어갔다.
그리고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천운의 앞에 단검을 들고 있는 중년의 사내.
한민아도 잘 알고 있는 전 암 가문의 가주 이한량이었다.
곧바로 천운이 맞서고 있는 상대가 누군지 알아낸 한민아는 도무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다.
‘어떻게 천운이가…….’
천운의 몸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초월자의 기운.
천운에 스탯 중 하나가 초월의 경지에 들어선 것이다.
동시에 이한량의 이마에서 흐르는 선혈.
상황을 봤을 때 알 수 있는 사실은 천운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이한량.
비록 다른 가주에 비해 젊은 나이에 가주가 된 이한량이라지만 천운이 상대할 수준의 인간은 아니다.
그러니 천운과 극명한 스탯과 기량 차이가 있을 게 분명했을 터.
하지만 천운은 그를 상대로 살아남는 걸 넘어서 그에게 일격을 가한 것이다.
한민아의 심경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본 애 중에 가장 애답지 않은 게 저놈이야.
과거 우성 씨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별 신경 쓰지도 않았던…… 그저 천운이 마음에 든 그가 내뱉은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천운이가……?’
“적안 가문의 장녀 아닌가?”
한민아의 생각이 끊겼다.
이한량이 그녀에게 입을 연 것이다.
이한량이 그녀를 보며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그 괴물 영감은 잘 지내나?”
“…….”
“뭐, 그렇겠지.”
스르릉-
그의 소매에서 뽑히는 기다란 장검.
한민아를 상대로 단검 따위가 의미 있을 리가 없다.
장검 또한 그렇겠지만…….
“곤란하구나…….”
처음에는 오늘 운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신아를 포함해 그의 아들인 김천운까지 한 번에 죽일 기회가 생겼으니 말이다.
귀찮은 일을 한 번에 정리할 수 있을 줄 알았으나 상황이 점차 이상하게 변모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김천운.
녀석이 무슨 방법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초월의 영역에 들어선 순간부터 자신의 불행이 시작됐다.
‘그 말에 의미가 이 뜻이었나?’
S급 아베타 흑염의 한민아.
마력 자체의 특성이 흑염이며 마력의 컨트롤이 자신의 손발과 같은 S급 화염 술사.
그녀의 몸에는 태양이 내재 돼 있다.
‘더구나.’
이한량의 시선이 천운을 향했다.
그의 몸에서는 아직 초월자의 기운이 가시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한민아와 싸운다면…….
‘실패군…….’
방심해 버렸다…….
고작 애새끼 한 명 죽이는데 시간을 너무 들인 것이 악수였다.
처음 조우했을 때 팔이 아닌 목을 찔렀어야 했는데…….
“크으윽!”
팡!!
이한량의 몸에 있던 마기가 터져 나왔다.
그의 마력 특성은 어둠.
몸에 내재된 마력량이 많을 시에 가능한 기교가 있었다.
후우우우우-
퍼트린 마기가 점점 공간에 자욱했고 천운과 한민아의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그가 도주를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녀석이 도주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탁!
천운이 마투법을 발동하는 동시에 지면을 향해 크게 손바닥을 쳤다.
쿠쿠쿠쿠쿵!
지진으로 인해 부실해진 건물.
천장에서 떨어지는 낙석들.
그 사이를 천운은 여유롭게 걸어 나갔다.
그러나 단 하나의 낙석도 천운을 향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그 거대한 건물의 잔해들이 이한량의 길을 막을 것이다.
난 그렇게 빌었고 그것은 실제로 이루어질 것이다.
[천운아! 은신 마법이다!]
‘위치는요.’
[로비의 출구다!]
“누나!”
천운이 곧바로 입구 앞에 있는 민아 누나를 불렀다.
한민아의 눈이 서서히 피보다 붉은 적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런…….’
이한량이 그녀의 적안을 보고 말았다.
서서히 굳어져 가는 몸.
“흡!”
이한량은 온몸의 근육이란 근육에 힘을 주어 심장까지 다가오려는 적안의 영향을 버텨 냈다.
동시에 곧바로 눈을 감은 이한량.
적안의 효과가 서서히 풀린 순간 이한량의 날카로운 칼끝이 한민아의 목을 향했다.
은신 마법으로 보이지 않을 터이니 그녀가 이 살수를 알 리가 없을 터.
캉!
‘뭣!’
이한량의 살수가 막혔다.
정확히는 그녀의 몸을 감싼 검은 모래로 인해.
‘이 무슨 단단함인가.’
그가 다시 검을 역수로 쥐었다.
뒤에서 그 소년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적안으로 인해 눈을 감아 안 보이긴 하나 그것은 상대 또한 마찬가지.
‘소리를 듣고 달려드는 것은 악수일 것이다.’
눈을 감아 더욱 감각이 예민해진 이한량이었다.
그대로 사정거리 안에 도달한 김천운을 향해 그가 보지도 않고 뒤로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씨익-
손에 감촉이 느껴졌다.
그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뒤로 찔린 검을 빼고 다시 한민아를 향해 휘둘렀다.
훙!
이번에는 한민아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녀의 주위를 보호하는 흑염의 구가 피어올랐고 동시에 이한량의 칼날이 그 구에 닿기도 전에 녹아 버린 것이다.
‘쓸데없는 짓이다.’
한민아와 천운의 시야를 가리기 위해 주위에 퍼트려 둔 마기.
그렇기에 한민아의 흑염의 구 내부에도 이한량의 마기가 존재했다.
이한량은 마기로 각성하여 얻게 된 두 번째 고유 스킬을 발동했다.
흑염구 내부의 마기가 현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아주 가느다라며 치명적인 송곳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그 날카로운 송곳이 정확히 한민아의 심장을 노렸다.
‘죽어라…….’
사아아-
‘?!’
특유의 발단된 감각으로 이상을 눈치챈 이한량이었다.
‘또다.’
송곳 형태를 이룬 마기가 또다시 사라졌다.
[ㅇㅇ!]
천운의 마력을 받은 샌디였다.
당연히 특성 또한 따라갔으며 그 정도로 얇게 만들어진 마기의 송곳을 반마의 특성으로 없애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그러나 이한량이 그것을 알아차릴 일은 없었다.
‘설마! 녀석이!’
푹!
“큭!”
털썩-
이한량이 고통의 신음을 흘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누군가가 자신의 등 뒤에서 정확히 심장을 향해 단검을 찌른 것이다.
“어떻게…….”
손에서 느껴진 감각으로 소년을 찌른 것을 확실시했고 또한 소년의 기척이 사라졌기에 소년은 죽은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소년이 다가오기 전까지 그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큭…… 은신 마법이군…….”
“처음부터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이한량.”
후우우웅…….
천운은 반마의 마력을 주변에 발산했다.
전부는 아니지만 한민아와 천운의 주변까지는 이한량의 마기를 거두게 할 수 있었다.
이한량은 자신을 찌른 단검을 빼내 그 단검을 확인했다.
“이…… 단검은…….”
처음…… 녀석을 고문하기 위해 팔을 찌른 단검이었다.
녀석은 계속 그 단검을 가지고 있었다.
전투에서도 단검을 사용하지 않기에 없는 줄 알았다만…….
“크흐흐…….”
이한량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그가 천운을 보며 확신했다.
“확실하다…… 네놈은 분명 암 가문의 피가 흐르는군.”
“…….”
천운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싸늘하게 그를 내려다봤다.
쿨럭-
피를 토하며 고개를 숙인 그가 혼잣말로 읊조리고 헛웃음을 흘렸다.
“결과가 전해져 있었다라…… 오만하구나…….”
잠시 말없이 침묵하며 죽어 가는 이한량을 바라보는 천운이었다.
천운이 그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단 한 번도, 네가 도망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이상을 눈치챈 건 그때였다.
소년의 목소리가 조용하며 나직하게 변했다.
처음 자신을 마주했을 때 그 긴장감은 어디에도 없었다.
높낮이가 없는 담담한 목소리에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들 정도였다.
“…….”
이한량은 고개를 들었다.
“너는…….”
마주 본 시선.
그 시선 속에 무언가를 알아차린 이한량이었다.
그의 눈이 서서히 떨려 왔다.
‘착각했다…….’
녀석은 초월자가 겪는 특유의 고양감 따위로 저런 침착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을 넘어 마치 인격이 바뀐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감에 예민한 자신이 알아차린 감각이었다.
고작 17살 소년의 목소리에서 있을 수 없는 권태감이 묻어 나왔다.
좀 더 다른 기시감이 드는…….
마치…….
쿨럭-
의식이 멀어지기 시작했다.
감기는 눈이 마지막으로 천운을 향했을 때 그는 확실할 수 있었다.
그는 아까 본 소년과 전혀 다른 별개의 존재였다.
털썩-
“커헉!”
멈출 줄 모르고 흐르는 선혈.
끝이 다가오기 직전 그게 온 힘을 다해 천운에게 말했다.
“너는…….”
천운은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렸고.
“누구냐…….”
이한량의 눈의 이체가 서서히 사라졌다.
천운은 그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에도 담담했으며 고개를 돌려 한민아를 바라봤다.
한민아는 천운을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천운아…….”
한민아가 천천히 천운에게 다가갔을 때.
아오오오오-
마수들의 하울링이 들려왔다.
병원 주위만을 맴돌던 마수들이 병원의 로비로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천운아! 일단 피…… 천운아?”
천운이 머리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윽!”
알 수 없는 심한 두통이 왔으며 혼잡한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부산스럽게 떠도는 기억들이 천운의 정신을 사납게 만들었다.
한민아는 곧바로 그런 천운의 앞에 섰으며 조심스레 천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천운아.”
천운이 고개를 들었고 눈앞에는 쓴웃음을 짓는 민아 누나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나다운 다정함이 느껴졌으나 복잡한 심정이 감춰지지는 않았다.
한민아가 천운을 보며 말했다.
“미안해…… 항상 지켜 주지 못해서.”
누나의 시선이 천운의 피가 흐르는 팔을 향했다.
그녀의 다정한 말에도 천운은 그저 두통으로 미간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어머니는 무사하단다.”
화르륵-
그녀의 등 뒤에서 피어오르는 8개의 흑염.
8개의 흑염의 태양이 그녀의 등 뒤에서 떠올랐으며 태양은 천운의 주위를 지키듯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비로 들어온 마수들은 불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흑염의 태양에 뛰어들기 시작했고 그 무엇도 천운의 몸에 닿을 것은 없었다.
그때였다.
천운의 고통이 더욱 심해지는 것은.
‘이건…….’
8개의 태양.
마수들.
천운의 머릿속에 알 수 없는 기억의 산물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1년 전 기억.
천운이 부모님을 마수들에게 잃었을 때의 기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