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87
“상황은?”
“탑 형태의 던전이 브레이크를 일으킨 거 같아요. 대장.”
“하…… 이런…….”
한민아를 제외한 모든 단원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길영트에 모였다.
길영트 주위에 싸돌아다니는 마물을 보니 한우성의 미간이 저절로 좁혀졌다.
본래 던전 브레이크는 한 달 뒤에 있어야 할 재난이었다.
그런데 왜 지금 상황에…….
한우성은 현 상황을 파악한 후 단원에게 각자의 역할을 맡겼다.
“그래 봤자 하급 던전이다. 크롬벨과 최아진은 한민아를 도와 인명 구조를 시작해. 나와 강화두는 마물을 정리한다.”
“예. 그렇게 하죠.”
“알겠습니다. 형님.”
한우성이 곧바로 강화두를 데리고 날았다.
위에서 보이는 무수한 마물들.
협회에서 파견된 영웅들과 길영트의 교관들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무리의 중심에 한우성과 최아진이 착지했으며 눈앞에 보이는 무수한 마물을 잡으려 한우성이 고유 스킬을 발동했다.
교관과 영웅들이 그 두 명을 보며 환호했다.
“S급 1위 한우성이다!”
“포스맨도 있어! 조금만 더 힘내 보자고!”
“헉! 저게 뭐야?”
그때였다.
한우성의 시선이 저 멀리 하늘에 누군가에게 향했다.
“미친.”
한우성의 손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런…… 역시 녀석들의 짓이었나?”
한우성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허공에 떠 있는 흑색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흑색은 잠시 한우성을 노려보더니 뒤를 돌아 도주했고 그 의미를 이해한 한우성이었다.
‘따라오라는 건가?’
“화두야!”
한우성이 급하게 강화두를 불렀다.
강화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가세요 형님!”
훙-
한우성은 곧바로 흑색을 따라갔고 곧이어 흑색의 게이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게이트 속으로 들어갔고.
녀석이 이곳에 있는 게 더 위험하다고 판단한 한우성은 별수 없이 그를 따라 게이트 속으로 들어갔다.
‘여긴 분명?’
나무가 자옥한 숲.
그 중심의 넓은 공터에 한쪽에는 익숙한 묘가 있었으며.
그곳에 흑색이 한우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고 싶은 게 있어 이곳에 불렀다…….”
그가 거칠게 한우성을 향해 내뱉었다.
“일단 덤벼라, 찢어 죽여주마.”
* * *
한우성과 강화두가 떠난 자리.
곧바로 게이트를 열어 인명 구조를 시작하려던 크롬벨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도중에 막히고 말았다.
“뭐야 저건?”
“…….”
크롬벨의 게이트를 겹치듯 막은 흑색의 게이트.
크롬벨의 눈매가 가늘게 좁혀졌다.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 또 다른 흑색의 게이트가 열렸다.
그곳에는 3명의 거대한 몸짓의 괴인과 한 명의 어린아이가 나타났다.
“흥! 이딴 역할이나 맡기고.”
꼬맹이 같은 작은 몸짓 ‘녹색의 크레인’.
언더의 게이트 능력자가 바로 이 소년이었다.
“너는 이거 모르지? 이렇게 또 다른 게이트로 게이트를 겹치면 막힌다는 사실을 말이야?”
크롬벨이 말없이 소년을 노려봤다.
소년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재미없게.”
크레인이 허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후우웅-
허공에서 생겨나는 게이트.
그 너머에서 밀리가 여유롭게 걸어 나왔다.
“아줌마는 상황을 제대로 귀찮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
“어머, 너는 좀 부지런할 필요가 있어 크레인.”
“퍽이나. 아줌마 때문에 자는 시간만 줄었잖아.”
“후후훗, 미안. 그럼 이제…….”
밀리가 최아진을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한민아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아니?”
“밀리…….”
최아진은 염동을 발현했고 크롬벨은 자신의 주무기인 지팡이를 현현했다.
세계수의 지팡이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녀가 쿵! 위엄 있게 내리찍은 지팡이를 시작으로 장엄한 울림과 마력이 퍼져 나갔다.
사아아악…….
그런 크롬벨과 최아진을 계속 지켜본 밀리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어머, 그렇게 위협적으로 대해도 될까? 좋은 소식 하나 전하려고 왔는데?”
크롬벨이 미간을 좁히며 그녀를 노려봤다.
말을 더해 보라는 듯 그녀의 지팡이가 밀리를 향했다.
“이신아 알지? 한민아가 가장 아끼는 언니라고 하는데……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내 아는 지인이 그곳을 찾아갔거든.”
듣다 못 한 크롬벨이 그녀를 향해 일갈했다.
“헛소리!”
“어머. 4대 가문인 너라면 이 이름은 알고 있겠지? 이.한.량.”
밀리의 말에 크롬벨의 눈매에 당혹감이 서렸다.
또한 최아진이 급하게 크롬벨에게 말했다.
“크롬벨! 한민아 씨를 얼른 찾아야 합니다! 얼른!”
크롬벨이 급하게 탐색 마법을 발동해 한민아의 위치를 찾았다.
곧바로 게이트를 연 크롬벨이었다.
“크롬벨?”
게이트 너머의 한민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교관들과 함께 마물들을 불태우고 있었다.
크롬벨은 급하게 손을 내밀며 한민아에게 말했다.
“이신아가 위험해!”
크롬벨의 말에 얼어붙은 한민아였다.
크롬벨이 내민 손에서 또 하나의 게이트를 열었다.
이신아의 병원 근처로 통하는 게이트였다.
“빨리 가!”
“저희에게 맡기고 빨리! 이신아 님이 위험합니다!”
경악한 한민아가 제차 고개를 끄덕인 뒤 게이트를 향했다.
동시에 한 교관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한민아 교관님 대체 어디를 가십니까!”
“죄, 죄송해요.”
떨리는 목소리로 연신 미안하다고만 외치는 한민아.
“조금만 버텨 주세요. 금방…… 금방 올 테니까.”
훙!
한민아가 게이트를 넘어가고 교관들의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녀가 넘어간 게이트를 향했다.
그러나 그것도 곧이었다.
곧바로 쉴 새 없이 쇄도하는 마물로 인해 당황할 시간도 없었다.
“이런 대체 왜! 큭!”
* * *
“지금 몇 시야?”
“정오다.”
“그래? 음…….”
쾅! 쾅!
단련실의 의철은 현재 상황에 결단을 내려야 했다.
단련실 밖에서 쏴 돌아다니던 마물들이 기어코 단련실의 문을 두드리며 부수려고 했으니 말이다.
‘언제까지 버틸지는 모르겠네.’
일단 길영트의 그것도 생도들이 머무는 기숙사 지하에 위치한 단련실이다.
생도들의 안전을 위해 나름 튼튼하게 만든 게 지금까지 버틴 요인이었지만 아마 그것도 시간문제일게 분명하다.
“좋아. 슬슬 준비하자.”
“어떻게 할 생각이지?”
“사람을 편성할 거야. 단련실 밖으로 나가서 구조할 사람.”
키륵!!
쿠오오오!!
의철이 단련실의 출구를 가리켰다.
여전히 들려오는 마물의 괴성.
뭔가 알 수 없는 심리적 압박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슬슬 저 소리가 짜증 나기 시작했는데 다행이군.”
윤시혁이 검을 들며 말했다.
한설아 또한 윤시혁과 같이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나도 갈게. 뭔가 이상해서.”
“응? 뭐가?”
“이상해…… 아무리 그래도 언니가 있는데 상황이 이렇게 늦게 끝날 리가 없어.”
사실 의철 또한 이상하게 생각하기는 했다.
아무리 그래도 생도들 수준의 하급 던전이 일으킨 던전 브레이크다.
한민아 교관님이 있는 상황이 이렇게 오래갈 리가 없으니 말이다.
“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
“그럼…… 이렇게 세 명인가?”
“자, 잠깐만 너희만 나가려고?”
한 생도가 의철에게 다가왔다.
상황이 벌어진 후 맨 처음 탈출을 시도하려던 장오철이라는 소년이었다.
“나도 같이 나갈래.”
솔직히 말해 이 3명이 전부 단련실을 나간다면 여기가 안전하다고 볼 수도 없으니 말이다. 이 3명을 따라가는 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 장오철이었다.
‘미쳤다고 여길 남겠냐?’
처음에는 기고만장하게 밖으로 나가 마물을 쓰러트리고 생도들의 영웅이 되어 탈출할 생각이 가득했지만, 그것이 곧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 세 명이 함께라면 분명 운 좋다면 먼저 구조가 될 테니 말이다.
동시에 지상에서 들려오는 마물들의 발소리.
쿵! 쿵!
아까부터 무직한 무언가의 떨림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마 지상에 거대한 무언가가 있는 게 분명할 터.
그런 마물이 만약 건물은 부수고 지하를 무너트린다면
최악이 죽는 거밖에 더 있겠나?
당연히 탈출해야지.
이렇게 보여도 도망 하나는 자신 있으니 말이다.
“알겠어. 다른 애들은?”
“너무 많으면 오히려 걸리적거린다. 우리는 마물을 죽이러 가는 게 아니라 구조 요청을 하러 가는 거다.”
윤시혁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웬만하면 전투를 벌이는 게 아닌 숨어서 도망치는 게 좋을 테니 말이다.
“그럼 이렇게 4명인가?”
“……난 여기 남을게.”
그것은 의철의 말이었다.
밖으로 나가려던 3명이 눈을 크게 뜨며 놀라고 있었다.
막상 밖으로 나가자고 제안한 것은 의철이니 말이다.
한설아가 차분하게 물었다.
“이유가 있는 거지?”
“…….”
의철은 그저 말없이 어느 벽면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지그시 노려봤다.
정확히 저 벽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말이다.
그리고 조금 후에야 셋은 동시엔 느낄 수 있었다.
“문을 통해 나가자마자 무조건 왼쪽 계단으로 달려.”
“……알겠다.”
“어…… 어 진짜?! 아니, 왜?!”
장오철은 의철을 보며 얼 타 있었다.
‘아니, 네가 그러면 안 되지!!’
제일 스탯이 좋은 놈이 안전하게 남는 선택을 한단다.
솔직히 말해 저놈을 믿고 같이 따라 나가려는 거였는데.
“찡찡거리지 말고 따라와라.”
“아니, 진짜…….”
“내가 먼저 앞장서지. 따라와라.”
스르릉-
윤시혁의 장검이 청아한 울음소리를 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벌컥- 윤시혁이 문을 세차게 열었다.
쾅!
키엑!
문 앞에 대기하던 마물 한 마리가 충격에 벽면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검을 휘둘러 그 마물을 베어 낸 윤시혁이 곧바로 왼쪽 통로를 향해 달려 나갔다.
키릭?
캬아아악!
모든 마물들이 소란을 듣고 윤시혁을 뒤쫓았다.
상황을 확인한 한설아가 의철에게 말했다.
“그럼 갈게. 조심해.”
“아, 안 돼…….”
“넌 좀 조용히 하고 따라와.”
“잠, 읍!”
그대로 한설아에게 입이 틀어 막힌 채 우스꽝스럽게 끌려가는 장오철이었다.
“후…….”
3명이 떠난 자리.
의철의 무거운 한숨이 이어졌다.
의철은 팔테인을 현현하며 단련실 밖으로 나왔다.
어두컴컴한 복도.
의철에 시선이 한곳을 향했다.
“얘들아. 바로 문 잠가 놔.”
“어, 어? 너는 어디…… 헉!”
어디 가려고 질문하려 했던 한 생도가 경악하며 입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열린 문을 통해 거대한 마기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단련실에 있던 모든 생도가 공명을 일으킬 정도의 마기였다.
이 정도의 마기가 느껴지는 마물이라면 분명…….
“문 잠가. 위험하니까.”
의철은 애들에게 나직하게 경고한 뒤 오른쪽 통로를 향해 걸어갔고 꿀꺽- 침을 삼킨 한 생도가 의철을 말대로 단련실의 문을 잠갔다.
그들은 방금 느낀 마기와의 공명에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처음 느껴 보는 공명.
분명…… 이 정도의 공명이라면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분명했다.
‘어떻게…….’
실전을 위해 던전을 몇 번 가 본 엘리트 생도라도 아직 그들은 1학년에 불과했다.
던전은 가 봤으나 당연히 보스 몬스터는 본 적이 없었으니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근데 쟤는 어떻게…….’
의철이 나가자 점점 단련실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마기.
그 마기가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섰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들은 알 수 있었다.
키리리리리…….
의철의 눈앞에는 혐오스러운 마물 한 마리가 서 있었다.
4개의 파리 같은 눈.
8개의 곤충의 날개.
6개의 팔에 비해 사람처럼 서 있는 두 다리.
6개의 팔 중 4개의 팔에 손은 날카로운 낫으로 돼 있었다.
키릭- 키에에에에에엑!!!
단말마와 비슷한 찢어지는 듯한 괴성.
동시에 몸에 내재한 마기를 터트리며 의철을 위협했다.
‘이 녀석은…….’
길영트에 이 정도의 강한 마기를 보유한 마물은 탑에 서식하는 마물밖에 없다.
총 10층으로 이루어진 탑은 층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강한 마물들이 서식한다.
그리고 녀석은 대충 짐작해 보면 아마 못해도 7, 8층에 서식하는 보스일 것이다.
‘졸업반 수준인가?’
탑의 7층 이상.
본래 던전은 당연하고 보스 레이드 자체가 4명 이상의 인원으로 협력하는 게 정상일 터. 하지만 현재 의철은 혼자였다.
“후…….”
[조심해라 의철아. 성가신 녀석이다. 녀석의 몸에 뿜어져 나오는 마기의 특성이 아마…….]
“독이죠?”
[……그래.]
후웅! 쾅!
의철은 팔테일을 휘둘러 바닥에 내리찍었다.
“어차피 마기로 이루어진 독이니까.”
파아아앙!!
팔테인에서 거대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의철의 팔테인에서 거대한 빛이 어두운 공간을 밝혔으며 그 빛이 마물의 마기를 밀어내고 있었다.
키에에에에엑!!
그에 밀리지 않는 마물이었다.
녀석이 마기를 터트리며 의철에게 대항했다.
서로 간의 물러섬이 없는 기세 싸움이 시작됐다.
의철은 다시 팔테인을 들어 올리며 자세를 잡았다.
“덤벼!”
키에에엑!
의철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녀석이 매서운 기세를 풍기며 의철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