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화
#86
“흠…….”
“쿠오오오!”
눈을 멀게 할 정도의 강한 섬광이 터졌다.
고통에 울부짖는 청색이었으나 이한량은 그저 담담히 크게 뜬 눈으로 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눈을 가릴 정도이니 시간은 끌었구나.’
그러나 섬광 따위로 당황할 이한량이 아니었다.
보이지 않던 눈은 금방 보이기 시작했으며 그는 곧바로 천운을 찾으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했다.
“이건…….”
그러나 보이는 것은 칠흑의 어둠뿐.
“호오……. 이건…… 마법이로군.”
그는 금방, 이 현상이 마법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자신의 눈은 어둠 따위로 앞이 보이지 않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크흐흐흐, 재밌는 술래잡기가 되겠구나.”
터벅터벅 여유 있는 발걸음이 천운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비릿하게 올라가는 입꼬리와 그를 생각할 때마다 김천운에 대한 흥미만이 더더욱 커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응?’
휙! 탁!
그의 발에 뭔가 걸려 어처구니없이 넘어질 뻔한 것이다.
곧바로 재주 있게 한 손을 땅에 짚는 동시에 한 바퀴 크게 돌아 착지하는 이한량이었다.
그는 방금 자신의 발에 무언가 걸린 지면을 노려봤다.
“……이런.”
그는 대수롭지 않게 그 상황을 넘어갈 뿐이었다.
“흐음…… 뭐 보이지 않으니……. 나도 늙었나 보군.”
파직-
파지직-
그 순간 천장의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부서지는 건물의 잔해가 정확히 이한량의 정수리를 노리며 무너졌다.
그것 또한 오감을 이용해 감지하고 마기를 두른 단검을 휙 휘두르니 반 토막을 내니 파사삭- 가루가 될 뿐이지만.
“흠…….”
별 이상한 낌새는 느끼지 못했지만 묘한 기시감이 드는 이한량이었다.
그가 천운을 찾으러 갈 동안 그 현상은 계속됐다.
* * *
“헉! 헉! 윽!”
천운은 샌디로 등에 업은 어머니를 고정한 뒤 중앙 계단을 이용해 그 녀석으로부터 도주하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 곧 출구야!]
부서지는 건물들과 동시에 게이트로 넘어온 마수들이 병원을 습격하고 있었다.
병원 안에서는 청색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 병원 밖을 둘러싼 채 기다리고 있을 거다.
‘방법은…… 은신 마법을 써야 하나? 아니야. 놈이라면 금방 알아차릴 거야.’
암 가문의 가주 이한량은 흔히 말하는 육감이 남들에 비해 크게 발달한 인간이다.
아무리 흑암 마법을 전개했다 해도 그 녀석이라면 그저 산책하는 느낌으로 흑암의 공간에서 유유히 빠져나올 것이다.
‘그럼 지금 방법이…….’
“스읍! 후…….”
[곧 있으면 출구다!]
그렇다.
곧 출구에 도착하겠지만…….
[천운아?]
발이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서서히 출구를 향해 달리던 발이 어느새 걷고 있었으며 난 자리에 그대로서 숨을 고를 수밖에 없었다.
도망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생각하고 고뇌했다.
창문을 통해 본 바깥 상황.
그 수많은 마수가 병원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동시에 안 보이지만…… 아마 근처에 청색의 괴물들 또한 대기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방도가 없었다…….
그러나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천운은 자신의 꽉 쥐어진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
이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천운은 자신의 스킬 중 하나이며 가장 많이 쓰이는 행운의 만다라를 발동했다.
사아악!
손에서 피어나는 연꽃 현상을 띤 싱그러운 기운.
그것이 천운의 몸에 흡수되는 동시에 천운의 몸에 알 수 없는 기이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이게 최선이야…….’
만다라와 행운은 동조한다…….
현 상황에 가장 알맞은 스탯.
내 행운이 그것을 선택해 줄 것이다.
‘제발…….’
손에서 피어오르는 만다라의 기운이 천운의 몸에 흡수됐다.
몸에 감도는 기운.
만다라의 흡수가 끝난 상황이었다.
천운은 곧바로 상태창을 열어 스탯을 확인했다.
올라간 스탯은…….
‘이건…….’
행운 : (130/?)
알 수 없는 기운…….
자신의 몸에 감도는 감각이 서서히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신체는 예민해지고 감각은 곤두섰으며 몸에 내재된 스킬들이 성장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느낌이었다.
말 그대로 신체의 모든 것이 한 단계 위로 성장하고 있었다.
고양감이 몸을 지배했다.
일전의 한우성의 말 그대로.
‘하지만…….’
예민한 감각에 비해 행운을 제외한 모든 스탯에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분명…….
무언가 성장한 것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띵-
행운 : (131/?)
행운 스탯이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띵-
행운 : (132/?)
행운은 점점 성장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느리게.
그러나 점차 속도가 붙으며 점점 빠르게.
띠띠띠띵!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올라간 스탯은 어느샌가.
행운 : (170/?)
원작의 김천운의 스탯을 넘고 있었다.
‘스킬의 성장…….’
한우성의 말이 기억 속에 흐르기 시작했다.
-몸에 내재한 고유 스킬을 포함한 다른 모든 스킬이 성장하지…….
천운의 눈이 곧바로 상태창에 있는 행운의 만다라를 향했다.
[행운의 만다라 (?)]
스킬 발동 시 힘, 체력, 지능, 마력이 랜덤으로 골라지며 0~70수치가 랜덤으로 상승합니다.
스킬이 성장한 것이다.
행운 스탯은 170.
원작의 김천운을 뛰어넘는 스탯.
감돌고 있는 기운은 여태 초월자의 기운 중 가장 이질적인 기운이었다.
‘그럴 수밖에…….’
힘도 체력도 지능도 마력도 아닌 이 세상에 없는 최초의 행운 초월자니, 말이다.
“드디어 찾았군…….”
천운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이한량이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며 천운에게 다가갔다.
“오늘 운수가 더럽게 없군……. 가는 길마다 지랄을 해 오니…… 응?”
그가 천운을 본 순간 이상을 눈치챘다.
‘왜지?’
저 기운은 자신도 잘 아는 기운이지만 그것은 이질적이었다.
겪어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기운.
스탯 100을 넘은 초월의 경지에 오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기운.
그러나 그 기운에도 종류가 있었다.
스탯 또한 5개가 있으니 각자 오르는 경지가 전부 다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김천운에게 느껴지는 기운은…….
‘어떻게 된 거지…… 녀석이 어떻게 저런 기운을 내뿜고 있는 거지?’
익숙하지만, 알 수 없는 기운이었다.
힘, 체력, 지능, 마력 모든 것을 보아 온 그의 감각에도 알 수 없는 기운이 천운에게 감돌았다.
사실 답은 이미 나왔지만.
‘설마…… 행운?’
“크하하하하하!”
대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그 누구도 손을 안 댄 행운이라니…….
어떤 멍청이가 행운을 올려 초월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할까?
그 멍청이가 바로 눈앞에 있지만.
“정말이지……. 죽이기 아까운 녀석이야…….”
본심이었다.
정말 눈앞에 두고 가지고 놀고 싶은 녀석은 이놈이 처음이었다.
그와 동시에 어이없는 감정까지 튀어나왔다.
“하…… 최초로 행운 초월자가 된 인간이 내 핏줄이라니……. 이 사실을 나만 알아서 다행이구나.”
“…….”
“흠…….”
아까부터 혼자서 떠들고 있던 동안 천운은 계속해서 눈을 감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리고 천운은 처음으로 한 행동은 자신의 어머니인 이신아를 살며시 바닥으로 내려놓는 것이다.
“샌디야…… 부탁할게.”
상황과 맞지 않는 차분한 말투였다.
천운의 손목에서 튀어나온 샌디는 곧바로 그녀를 모래로 뒤덮은 뒤 출구를 향하기 시작했다.
움직임이 그렇게 빠르지 않아서인지 멍하게 지켜보고 있던 이한량이었다.
“뭐 하는 짓이냐?”
“…….”
그의 물음에 천운은 그저 가만히 대답 않고 눈을 감았다.
“허참…… 멍청하게 악수를 두는구나.”
휙!
그의 손에 쥐어진 단검이 이신아를 향했다.
정확하게 그녀의 심장을 향해 노린 단검.
그런 날카로운 암수가 이신아를 향하는 순간.
부스스슥- 파직!
거대한 건물 잔해가 갑작스럽게 무너져 내렸다.
그것이 단검을 가로막았고 샌디는 건물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동시에 또다시 무너져 내리는 건물.
“뭐?”
이한량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이신아가 나간 타이밍에 출구 위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출구를 차단한 것이다.
방금 자신도 뭐가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허…… 거참. 무슨 짓을 한 거냐?”
이 우연하지만 우연치 않은 상황의 주범을 굳이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천운은 그의 말에도 미동 없이 눈을 감고 서 있었다.
그리고 몇 초 뒤.
천운의 눈꺼풀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천운의 덤덤한 시선이 이한량을 향했다.
“빌었어.”
천운의 말에 그가 황당하게 비웃으며 물었다.
“……허허, 빌었다고? 누구에게 말이냐?”
“몰라.”
“…….”
이한량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사나워진 말투가 천운에게 향했다.
“내 상대로 말장난 할 여유가 생긴 거냐?”
“…….”
“허참…… 그냥 죽어라.”
휘릭!
어느새 단검을 현현 시킨 이한량이 채찍처럼 단검을 크게 휘둘렀다.
단검의 마기가 검격이 되어 사나운 기세로 천운을 향했다.
천운은 또다시 눈을 감았다.
쿠르르르릉!
그때였다.
건물 전체가 흔들린 것은.
그러나 건물의 흔들림 따위로 자신의 검이 빗나갈 생각은 죽어도 하지 않았다.
파삭- 쿵!
한순간의 방심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손목을 향해 얼굴만 한 돌덩이가 떨어지기 전까지는.
“큭! 뭐?!”
너무나도 정확한 타이밍에 떨어진 건물 잔해.
그보다 더욱 경악스러운 사실은 그로 인해 자신의 검격이 빗겨나간 것이다.
그대로 땅에 박힌 검격은 김천운의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김천운은 여전히 고요하게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뭐냐? 도대체 무슨 기교를 부린 거냐?”
이한량의 눈매가 사납게 변했다.
방금 일어난 상황에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녀석이 초월한 경지는 지금까지 봐 왔던 초월자와 다른 이질적인 기운을 내뿜었다.
“설마…….”
100을 넘어선 101이라는 스탯 이후.
모든 아베타들은 초월의 경지에 들어선다.
한국에서 그 경지에 도달한 자들은 친목회의 당원들과 4대 가문의 가주들뿐.
그러나 그들 중 행운 스탯으로 경지에 도달한 자는 없었다.
그 말은 곧 행운이라는 스탯이 100을 넘어선 순간 그 누구도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모른다는 말이었다.
“100을 넘는 행운은 주위의 현상까지 영향을 끼치나?”
낮게 읊조린 물음에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행운.
그것은 그저 일상에서도 평범하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이다.
누군가는 이미 이루어져야 할 운명이 자신의 원하는 형태로 이루어져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이 힘을 보니 마냥 그 말은 아닌 모양이다.
‘원작의 김천운은…… 항상 이렇게 살아남았지.’
김천운은 위기의 순간 항상 빌었다.
살고 싶다고.
그 누구보다 살고 싶다고 간절하게 빌었다.
의도한 것이 아닌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속에 터트리며 간절히 빌었다.
그렇기에 천운은 자신에 행운의 힘을 인지하지 못했다.
천운은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다른 초월자들과 다르게 더럽게 좋은 행운으로 초월자가 돼서 말이다.
그리고 지금.
만약 그것을 인지하고 사용한다면?
거기에 더해 150을 넘는 압도적인 경지에 도달한다면?
천운은 빌었다.
‘어머니를 안전하게 탈출시켜 줘.’
원하는 게 전부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머니를 안전하게 탈출시켜 달라고 빌었다.
거대한 낙석이 출구를 차단하는 동시에 이한량의 단검을 막았다.
이한량의 검을 피하고 싶다고 빌었다.
동시에 이한량의 위에서 낙석이 떨어지며 그의 검격이 비틀어져 피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살아남고 싶어…….’
살아남고 싶다고 빌었다.
지금의 나와 원작의 김천운과 다른 점은.
‘녀석을 쓰러트려서.’
나는 지금 이 능력을 자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