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소설 속 운만렙 캐릭터가 되었다-86화 (86/176)

제86화

#85

이한량이 들고 있던 단도에 짙은 마기가 흘러나왔다.

흘러나온 마기는 단도의 검날을 더욱 길고 날카롭게 만들었다.

마기로 인해 장도로 변한 검이 천운을 가리켰다.

“가만히 있어라. 한 번에 죽이게.”

사악!

그가 횡으로 휘두른 단검에서 마기가 채찍처럼 늘어났다.

날카로운 검날은 여전하였으며 그는 천운과 이신아를 동시에 베어 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캉!!

“응?”

이한량이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천운의 손목에서 나온 무언가가 자신의 검을 막은 것이다.

아니, 막은 수준이 아니었다.

‘마기가 없어졌어?’

마기로 리치를 길게 만든 자신의 칼날이 김천운의 저 흑색의 무언가에 닿자마자 사라졌다.

‘저건…… 유물의 특성인가? 아니면 마력?’

그저 눈으로만 보기에는 그렇게 보였다.

저 알 수 없는 검은 모래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순간 자신의 마기를 없앤 것이다.

‘거기다 내 검에 반응했다라…….’

평범한 아베타라도 보이지 않을 속도의 휘둘렀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 녀석은 그런 자신의 검에 반응했다.

그저 빠르게 처리하고 끝내려던 이한량의 감정에 흥미가 돋아났다.

“호오…… 네놈.”

“…….”

“이신아의 아들이라기에 옛날에는 흥미를 느꼈다만 스탯은 버러지라고 들었는데…….”

천운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뚝- 지면으로 떨어졌다.

그의 말에 대답할 여유가 없었다.

이한량이 평범하게 말을 거는 와중에도 그의 빈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전 4대 가문의 가주이자, 현재로선 스탯이 100을 넘는 괴물이다.

반대로 자신은 빈틈투성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긴장이 무색하게 이한량은 의미 모를 질문을 해 왔다.

“내 검에 반응할 정도면 의안을 강하게 물려받았나 보구나.”

“……뭐?”

“좋다. 네놈은 쓸모가 있겠군.”

캉!

그가 다시 단검을 흔들며 천운을 보았다.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는가?”

“…….”

“절망적인 상황은 변하지 않지. 여기서 테스트를 하고 싶군.”

“테스트라니…….”

“암 가문의 피를 진하게 물려받았다면 고유 스킬뿐만 아니라 성향에도 영향이 간다. 나처럼 말이지…….”

“뭔 헛소리지?”

“이신아가 네놈을 오냐오냐 키웠다지만 가문의 피가 없어지지는 않았을 거다.”

그가 등에서 뽑은 또 하나의 단검을 천운에게 던졌다.

씨익- 소름 돋게 올라간 입꼬리.

그의 시선이 천운을 향했다.

그의 입에서 오물 같은 말이 내뱉어졌다.

“죽여라.”

“……!”

“다시 한번 말해 주마…… 죽여라.”

그의 표정은 무감했으며 마지막 말은 경고처럼 들려왔다.

“네 어머니를 죽여라.”

* * *

“뭐야 대체!”

“아니, 길영트에 마수라고?”

시끄럽게 울리는 경보와 단련실 밖에서 들리는 마수들의 울음소리.

생도들은 알 수 없는 위급 사태에 패닉에 빠졌다.

의철은 급하게 단련실 문을 향해 달려가 문에 귀를 대고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쿠쿠쿠쿵!

단련실 밖에서는 무수한 무언가가 급하게 어딘가로 향했으며.

키릭-

쿠레카투 카!

마수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의철의 귓가에 들려오는 것은 마수의 울음소리가 아니었다.

‘저건…… 길!’

[그래. 확인해 보마.]

곧바로 길은 단련실 벽을 통과해 밖으로 나와 상황을 살폈다.

[흠…….]

상황을 확인한 길은 다시 의철에게 돌아왔고 상황의 심각성에 침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에요?’

[마물이다. 그것도 수백 마리의 마물이 지상을 싸돌아다니는군.]

어쩐지…….

마수가 저런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는 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마치 사람으로 치면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었다.

저렇게 대화가 가능한 언어 체계가 구성된 존재는 분명…….

‘마물…….’

마물밖에 없었다.

‘교관님들은요!’

[전투 중이다. 너희를 구하러 올 여유가 없어 보이는군.]

의철은 현재 바깥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바깥의 마물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던전 브레이크다.

의철은 일단 문에서 떨어지며 한설아와 윤시혁의 곁으로 돌아왔다.

“상황은?”

윤시혁이 의철을 보며 말했고 의철은 고개를 저으며 상황의 심각성을 알렸다.

“단련실 문밖으로 마물들이 쫙 깔려 있을 거야.”

“뭔 소리냐? 마물?”

“마물이라고?”

의철의 말에 한설아와 윤시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마물이라니…….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 장난 같은 걸 칠 리가 없을 터.

“마수라면 분명 근처의 던전 하나가 브레이커를 일으켰다는 거군.”

“아마 그럴 거야.”

잠시 생각에 잠긴 윤시혁이었다.

이상을 눈치챈 건 그때였다.

“왜 비상벨만 울리고 방송이 안 나오지?”

윤시혁의 시선이 단련실 천장 구석에 설치된 스피커를 향했다.

이런 위급 상황에 재난 방송이 안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벨만 울렸다는 건…….”

누군가가 바깥 상황을 파악하고 비상벨을 울린 것이 분명할 터.

안내 방송이 안 나온다는 뜻은 바깥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너희들 유물은 가지고 있지?”

의철이 윤시혁과 한설아에게 물었다.

동시에 한설아는 하르마의 이빨을 꺼냈으며 윤시혁은 칼날이 은은한 푸른색을 띠는 장검을 현현했다.

김의철 또한 현현이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 팔테인을 현현해 보았다.

그런 3명을 제외한 단련실에 있던 다른 생도들 또한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들의 유물을 현현해 보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현현한 자신의 유물을 꽉 쥐고 안심하고 있었다.

“좋아!”

그때 한 생도가 유물을 꽉 쥐더니 문을 향해 나아갔다.

그 생도의 뒤를 따라 2명이 더 달라붙었으며 그들은 하나같이 뭔가를 다짐한 얼굴로 문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의철은 그들을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쳐다보다 이내 급하게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아니, 뭐 하려고?”

“유물도 있겠다 탈출해야지.”

“아니, 바깥 상황이 어떤지 어떻게 알고 뭘 탈출해. 지금 무슨 상황인지는 알고 이러냐?”

“딱 봐도 던전 브레이크잖아.”

입을 삐죽이며 툭 내뱉고 자빠졌다.

알면서 이러니 더 어처구니없는 의철이었다.

어이없게 바라보니 선두에 선 리더 같은 생도 한 명이 의철을 한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길영트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으면 괜찮아.”

“……왜”

“어차피 부지 근처에는 생도용 던전밖에 없는데 그중 하나가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거면 우리 수준으로도 충분히 탈출할 수 있겠지.”

“…….”

일리가 있는 말인데. 그렇다고 바깥 상황의 정황을 정확히 안다는 말은 아니었다.

생도용 던전이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켰다 해도 던전은 던전이다.

정확히 어느 정도의 마물이 몇 마리나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 탈출을 강행한다는 건 자살 행위밖에 더했다.

“너는 학년 수석이란 놈이 자신이 없냐?”

“…….”

“나와. 같이 안 갈 거면.”

“오철아. 그냥 가자.”

“그래. 어차피 남아 있겠다는데. 야. 나가서 교관님 발견하면 단련실에 생도가 남아 있다고 말해 놓을 테니까 비켜.”

의철은 이때쯤 되니 이놈들의 앞길을 굳이 막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시다시피 의철은 선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악인은 결단코 아니고.

지들이 나한테 뭐라고 그러면서까지 탈출하고 싶다는데 그 이상으로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한심하게.”

“그러게 말이야.”

의철의 등 뒤에서 한설아와 윤시혁이 그들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

그들은 그 두 명의 말에 움찔- 떨며 당황했다.

윤시혁이 선도에 서 있는 생도를 쏘아보며 말했다.

“몇 마리의 마물이 싸돌아다니는 줄은 알고 하는 말이냐?”

“그, 그건…….”

“뒈지고 싶으면 나가 봐라.”

한설아는 윤시혁의 말에 덧붙여 말을 이었다.

“대신 나가면 문을 잠가 놓을 테니 그런 줄 알아.”

한설아와 윤시혁의 말에 그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일단 밖에 마물들을 만만하게 보고 탈출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했으나 무려 처음 겪어 보는 던전 브레이커였다.

아무리 자신들의 힘으로 쓰러트릴 수 있을 정도로 약하다 하여도 다구리 앞에서는 장사 없다.

“알아들었으며 포기하고 꺼져라.”

윤시혁의 거친 말투에 그들이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으로 단련실 근처 벽에 기대어 털썩 주저앉았다.

‘참나…….’

친하게 지내서 몰랐는데 다시 한번 그들이 4대 가문이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 장면이었다.

아, 그것보다.

“일단은 구조를 기다리는 거로 하자. 시간은 어림잡아 5시간.”

“왜 5시간이지?”

“그때가 점심시간이잖아.”

“…….”

“……미친 거냐?”

윤시혁과 한설아가 어이없게 쳐다보니 의철이 오해라며 말을 덧붙였다.

“만약 아까 쟤들처럼 탈출하는 것도 생각해 둬야 해. 밖에 마물이 몇 마리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체력을 일단 아껴 둬야지. 저녁까지는 안 돼. 탈출하는 도중에 공복도 여기서 탈출하려면 체력을 최대한 아껴 두는 게 좋아.”

“…….”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거 같기도 하고…….

탈출하는 도중에 구해지는 게 가장 최우선의 시나리오고 만약에 탈출도 못 하고 무수한 마물의 무리와의 싸움이 이어지면 아마 체력이 먼저 없어져 마물의 먹이가 되는 것은 우리들일 것이다.

의철이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문도 언제까지 버텨 줄지 모르니까…….”

의철의 시선이 문을 향했다.

동시에 한설아와 윤시혁을 더불어 단련실의 모든 생도의 시선이 문을 향했다.

쾅! 쾅!

마물들이 문을 향해 거세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기숙사 지하에 위치한 단련실이니 아마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다.

그게 5시간인지 6시간인지는 모르겠지만.

한설아는 의철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래도 기다리면 구조가 오겠지. 일단 길영트에 교관님하고 언니가 있으니까.”

솔직히 단련실의 생도들은 그리 큰 걱정을 하고 있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과거 이름을 날린 프로 아베타들과 S급 아베타 한민아가 교관직을 맡은 아카데미이다. 동시에 이 사건이 벌어진 순간, 지금쯤 한창 길드나 협회에 영웅들이 파견되어 구조에 나서고 있을 거다.

던전 하나가 그것도 생도용 던전 하나가 브레이커가 됐으니 상황은 빨리 종결될 게 분명할 터였다.

그러나.

1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5시간이 지났을 때.

그제야 사태가 자신들의 예상보다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이었다.

* * *

한편 테러가 벌어지는 병원에서는.

“어머니를 죽이라고?”

이한량의 말에 미간을 찡그리는 천운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천운의 찡그린 미간을 즐기며 말을 이었다.

“그럼 네놈은 살려 주지. 계약해도 좋다. 네놈이 만약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면 네가 너를 거둬 주마.”

“영웅 가문이었던 암 가문의 피가 그딴 더러운 피였나.”

“크흐흐흐. 재밌는 사실이지. 과거 4명의 영웅 중 한 명 1대 암 가문의 가주는 나와 아주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더군.”

헛소리였다.

암 가문의 초대 가주는 그딴 더러운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한량은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과거 혼돈의 시대에서 4명의 영웅 중 가장 자신을 희생한 인물이었다.

천운의 대답은 당연히 거절이었다.

천운이 거절하자 그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그건 네놈이 아직 궁지에 몰려 본 적이 없어서 하는 말이로군. 생각하고 상상해라.”

그가 흥분의 미소를 머금은 채 손을 활짝 피며 말을 이었다.

“사람 한 명의 긍지가 얼마나 오래가고 강한가? 너 또한 사람으로서 지키고 싶은 도리가 있어서겠지. 그러나 긍지나 자존심은 힘 있는 자의 권리다.”

“그런 걸 넘어서 애초에 부모를 죽이는 패륜아가 될 바에는 자살하는 게 낫지.”

“그것 또한 한낱 자존심에 불과하지. 너 또한 살고 싶은 욕망이 있을 거다. 물론 지금 우선적으로 그 욕망보다 네 어머니를 살리고 싶은 간절함이 더 크겠지만…… 만약에 말이다.”

휘리릭-

그가 또 다른 단도를 손가락으로 재주 있게 돌리며 천운에게 다가갔다.

“만약에…….”

어느새 천운의 코앞까지 다가온 그의 칼끝이 천운의 이마를 콕 찔렀다.

주르륵-

툭- 툭-

이마에서 흐르는 선혈은 노면으로 떨어졌으며 천운은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노려봤다.

그가 마음에 드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천운에게 말했다.

“만약에…… 지금까지 살면서 겪어 보지도 못한 고통을 겪어 보면 네놈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그의 칼끝은 다시 천운의 왼팔을 향했다.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면 죽이겠다.”

뒤에 청색이 자세를 취했다.

꽉 쥐어진 주먹은 천운이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그것에 반응하여 곧바로 내지를 것이다. 천운의 어머니가 인질로 잡힌 것이다.

“고통 속에서는 그 누구도 똑같은 행동을 취하지. 사람마다 반응하는 그 고통의 종류는 다르겠지만 지금으로선 가장 심플한 방법이 이거겠지.”

“큭!”

그가 천천히 천운의 팔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동시에 아주 천천히 비틀자 천운은 거친 숨소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천운아!]

‘괜찮아요. 맷집 스킬을 발동했으니까요.’

[조금만 기다려라!]

그가 단검을 비틀며 천운에게 말했다.

“아플 수밖에 없을 거다. 너는 아는지 모르겠다만, 암 가문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고문이거든.”

“크윽!!”

칼날에 비틀어지는 팔뚝은 정말이지 그의 말대로 더럽게 아팠다.

처음 겪어 보는 고통의 감각은 마치 뜨겁게 달궈진 불쏘시개로 살을 후벼 파내며 비비는 느낌이었다.

[천운아! 끝났다!]

그때였다.

고통의 신음을 흘리니 미르마가 다급하게 신호를 알렸다.

천운은 그것을 확인한 뒤 그를 노려보고 거칠게 말했다.

“어머니를 죽이면 된다고 했지?”

내 말에 그가 비웃는 듯이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크흐흣, 그래.”

“그러냐?”

천운은 그에게 쫙 편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

“X까.”

위이이이잉 화아아악~

천운의 손에서 한순간 거대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