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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 속 운만렙 캐릭터가 되었다-84화 (84/176)

제84화

#83

천운의 질문에 한우성은 생각했다.

예언과 더불어 회귀 능력은 미지의 능력이다.

고유 스킬도 아니며 스탯에도 나와 있지 않은 이질적인 힘.

“글쎄다…… 잘 모르겠네.”

그러나 그 이유로 인해 천운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던 것은 아니었다.

“아직 안 해 봤다는 거죠?”

“그래.”

“왜요?”

천운의 물음에 한우성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글쎄…… 왤까?”

잠시 조용히 침묵하던 한우성.

한우성은 천운의 질문에 이제는 이미 지나갔고 잊어버리려 했던 과거의 처절함에 잠기게 됐다.

“0회 차 때는 이런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한우성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첫 번째 1회 차 때는 이 능력을 얻고 우월감에 잠겼고 2회 차 때는 안도했지 그리고 3회 차에서 깨달은 건…….”

잠시 말을 멈춘 한우성이 천운을 보았다.

“이 능력은…… 저주다. 편해지고 싶어도 편해질 수 없는 저주. 모든 끔찍한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갈 뿐이지.”

“…….”

“정말 다행이었어. 그걸 3회 차에 깨달아서 말이지. 조금 늦게 깨달았다면 아마 내 말대로 시도했을 거다.”

탁-

한우성은 주머니에서 연초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대로 불을 붙이며 말을 이었다.

“원래라면…… 네가 물어보는 질문을 전부 답해 줄 생각이었어. 근데 막상 내가 숨기고 있는 비밀 중에 물어보고 싶은 게 없나 보군.”

“네. 딱히…….”

“그래. 그럼 내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알려 주마.”

한우성이 천운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너를 의심했다.”

“의심이요?”

“그래.”

한우성은 들고 있던 갈히르를 매만지며 말했다.

“하지만 이걸 보니 아닌 거 같네.”

“…….”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신하고 있어. 너도 비밀이 있을 거다. 맞지?”

천운은 그저 한우성의 물음에 침묵했다.

천운의 행동에 피식 웃은 한우성이 말했다.

“지금 당장 숨겨 둔 걸 말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회귀에 대해서 말한 이유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지.”

“믿음이요?”

“그래.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아마 네가 유일할 거다. 그러니 너도 말할 마음이 생기면 그때 말해. 여유롭게 기다려 주마.”

잠시 말없이 한우성을 올려다본 천운이었다.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담배 연기.

한우성은 그저 담담했다.

“여유라…….”

“그래도 이건 하나 궁금하네. 네가 원하는 건 뭐야?”

“유물이요?”

“아니. 네 목표 말이야. 행운 스탯이 100인 걸 보면 돌연변이가 확실하고 아마 다른 스탯은 한 자릿수였겠지. 한민아의 집에서 조용히 살 수 있었을 텐데…… 왜야?”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죠.”

“그런 녀석이 노력해서 스탯을 올리고 길영트에 입학한 뒤 친목회에 굳이 들어와 언더들과 맞선다는 선택을 했다. 예언하여 미래를 알고 있는 너라면 피할 수 있었을 텐데?”

“…….”

“왜냐?”

한우성의 물음에 잠시 과거의 생각에 잠긴 천운이었다.

자신의 가장 큰 목표는 달라지지 않았다.

천운은 그저 나직하게 말할 뿐이었다.

“그냥…… 오래 살고 싶어요. 적어도 길영트에서 졸업은 하고 싶네요.”

천운의 의미심장한 말을 이해한 한우성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소년은 알고 있었다.

3년 안에 세상이 멸망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세상이 멸망하여도 생존하는 사람은 있었다.

그리고 천운의 말은 아마…… 자신은 그들 사이에 속하지 않았다는 거겠지.

소년은…….

김천운은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는 예언자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표정을 푼 한우성이 천운에게 다가가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천운이 인상을 구기며 한우성을 올려다봤다.

한우성은 천운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졸업식은 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 * *

“흐음~ 저기지 분명?”

늦은 밤.

두 명의 남녀가 저 멀리 어느 고층 빌딩 옥상에서 한 병원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래……. 주위에 우리 가문의 암살자를 깔아 놨군.”

그녀의 옆에는 암 가문의 전 가주인 이한량 또한 있었다.

그 두 명은 병원을 그저 멀리서 지켜볼 뿐이었다.

“음…… 역시 밤보다는 낮이 좋겠네?”

밀리의 말에 이한량이 물었다.

“왜지?”

“흑색의 말을 지킬 생각은 없는데…… 그렇다고 배신할 생각은 아니거든.”

“그런가…… 아쉽군.”

“뭐가?”

밀리의 물음 이한량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너 또한 좋은 인재이니 갈 곳이 없다면 암 가문에서 받아들이려 했다.”

“푸훗. 퍽이나. 네 딸한테 다시 찾고나 말해.”

“그러지…….”

이한량의 시선이 병원의 달린 어느 창문을 향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밀리가 자조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푸훗, 냉정한 남자야……. 자신의 목적을 위해 누이도 죽이려 하고.”

“네년과 다를 게 없지.”

“하긴…… 그렇네……? 어차피 정도 없지?”

“그녀가 암 가문을 버리기 전부터 없었다. 어느 애송이 때문에 도망 나왔다지.”

“푸후훗. 그 뭐냐? 사랑의 도피 뭐 그런 건가?”

“여러모로 재능은 있었으나 쓸모없는 년이었다.”

“와…… 독해. 하긴 가주가 되기 위해 자신의 가족을 전부 죽였다지?”

“…….”

형제에 이어 마지막에는 가주까지 죽인 그가 바로 전 가주인 이한량이었다.

그 사실에 호기심이 든 밀리였다.

“참…… 신기하단 말이지. 어떻게 가주를 죽인 거야?”

“어렵지 않더군…….”

그의 눈빛이 이신아가 잠든 병실을 향했다.

“아버지는 정에 약한 인간이었다.”

“흠…… 그렇구먼.”

그저 말없이 모든 것을 이해한 밀리였다.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자신의 누나를 이용했다라…….’

푸훗.

그녀가 비웃음을 흘리며 이한량에게 말했다.

“재밌네?”

“…….”

“아들에게 협박당하고 협박 대상이 딸이라…….”

밀리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어리석음이었으나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과연 그 정이라는 감정은 무엇이기에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지 말이다.

물론 궁금하기만 할 뿐 가지고 싶은 감정은 아니었다.

“내일까지 준비해. 청색은 얼마든지 써도 되니까.”

“네놈은?”

“난 괜찮아. 알아서 사고 치면 금방 흑색이 달려올 테니까.”

“그런가…….”

이한량이 돌아서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내일 보지…….”

* * *

다음 날 아침.

오랜만에 천운이 들린 곳은 천운의 어머니인 이신아의 병실이었다.

여전히 곱게 편안한 자세로 숨을 쉬는 그녀였다.

천운의 옅은 미소가 그녀를 향했다.

‘이상하네.’

자신의 진짜 어머니가 아니지만…… 한 번도 그녀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지만…… 항상 느껴 오는 감정이 있었다.

왠지 그녀가 낯설지가 않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기 전부터 정감이 가는 천운이었다.

아마 이 감정은 김천운의 몸에 붙은 감정일 것이다.

어렴풋이 지금까지 겪었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김천운의 기억은 생각이 안 나지만 아마 몸에 남아 있는 게 분명했다.

흔적은 몸에 고스란히 남아 있고 기억은 잠재돼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지금 느껴지는 정은 내 감정이 아닌 게 분명했다.

‘그래도 좋네.’

그렇다고 그 감정을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나쁘지 않은…… 왠지 모를 정겨운 향수가 흘렀으니 말이다.

‘그립다…….’

그녀를 볼 때마다 드는 걱정이 있었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김천운의 몸을 뺏은 거니 말이다.

언젠가 천운은 어떻게든 그녀를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게 할 생각이었다.

그것은 희망이 아닌 지극히 가능성이 있는 말이었다.

유물이 존재하는 세계인 이상.

혼수상태에 빠진 그녀를 깨우게 할 방법은 분명 존재할 테니 말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자신은 과연 원래의 세계로…… 작가였던 이정원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제 이 세계로 온 지 1년이 넘은 시간.

아직까지도 이정원으로 돌아갈 단서도 방법도 찾지 못했다.

‘후…… 별수 없지만.’

물론 포기는 안 했지만 별 방도가 없으니 지금으로서는 그녀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날 동안 아들이 자랑스럽다 여길 정도로 노력하는 수밖에…….

천운은 그녀의 침대 옆 탁자에 올려진 상장을 보았다.

과거 1차 시험 수석 합격자에게 주어지는 상장이었다.

민아 누나가 몰래 가져와 액자에 끼워 넣어 탁자 위에 올려 둔 모양이다.

‘그래도 일어나시면 좋아하시겠네.’

소설 속의 김천운이라면 상상도 못 했을 결과물이니 말이다.

[천운아. 슬슬 갈 시간이야.]

‘네 알겠어요.’

천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 정도 오래 있었으니 슬슬 돌아갈 생각인 천운이었다.

그렇게 천운이 병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쿠쿠쿠쿠쿠쿵-

병원 전체를 뒤흔드는 지진이 일었다.

* * *

“하, 하, 후!”

한편 생도들의 기숙사 지하에 위치한 길영트의 단련실.

1교시의 자율 시간을 이용해 단련을 하는 의철이었다.

그의 옆에는 한설아와 윤시혁 또한 제각기 단련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와…… 대단하네…….”

한설아는 러닝머신을 타고 달리는 의철을 감탄스럽게 바라봤다.

“속도 최대치로 한 번도 안 쉬고 40분이나…….”

길영트에 설비된 운동 기구들은 보통의 일반인용이 아닌 제각기 각성된 아베타들에 맞춰 개량된 기구들밖에 없었다.

그 말의 뜻은 개량된 러닝머신의 최대치는 일반인의 몇 배나 되는 체력과 힘을 가진 아베타라도 숨을 몰아쉬며 힘들 정도로 운동이 된다는 말이었다.

“후! 후! 하!”

그리고 김의철은 그런 운동 기구를 기이한 숨소리와 함께 40분 동안 유지하며 달리고 있었다.

땀을 흘리고 호흡도 거칠지만, 왠지…… 보이는 모습으로는 아직도 여유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삑-

“하! 끝났다.”

결국 50분을 넘긴 의철이 그제야 정지 버튼을 누른 뒤 러닝머신에서 내려왔다.

의철은 개운하다는 듯 수건으로 땀을 닦고 생수를 마시며 가쁜 숨을 내뱉었다.

“후……. 역시 50분은 좀 힘드네.”

“너는 맨날 그렇게 운동하면 안 힘들어?”

“습관처럼 만들어야지. 그리고 쟤도 만만치 않구먼.”

의철의 시선이 자연스레 윤시혁에게 향했다.

한설아 또한 뒤따랐으며 의철의 말에 조금 이해가 가는 한설아였다.

‘쟤도 참 대단하네.’

언뜻 봐도 몇 킬로는 돼 보이는 기다란 철봉을 손에 쥐고 몸을 천천히 움직이며 동작을 취하는 윤시혁이었다.

흐트러짐 없이 자연스러운 동작은 일정했으며 무려 그 행동이 50분간 유지되고 있었다.

참고로 이 둘이 이런 고행에 가까운 단련은 일주일 동안 이어져 왔다.

모든 것은 그 사건이 일어난 이후였다.

김천운이 의식을 잃기 전.

7등급 마수를 혼자서 막아 냈다는 무용담은 이미 길영트의 누구도 모를 수가 없는 유명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소식을 접한 김의철과 윤시혁은 그 이야기가 트리거가 된 듯 그때 이후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후…….”

훈련을 끝낸 윤시혁은 무거운 철봉을 바닥에 내려 두며 몸을 풀었다.

그런 윤시혁에게 생수를 건네는 의철이었다.

“이만 가자. 곧 수업 시간이고.”

“그래.”

고작 1시간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단련을 끝낸 그들이 교실을 향하려 할 때.

위이이이이잉!

그 순간 단련실 전체에서 비상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어, 어? 뭐야?”

“비상벨? 길영트도 비상벨이 울릴 때가 있나?”

비상벨이 울리기는 했으나 한설아와 윤시혁은 그리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아직 위기감이 없다고 해야 하나 관계자 측에서 실수로 울린 비상벨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의철의 생각은 달랐다.

의철의 표정이 당혹스럽게 굳어갔다.

‘……마기?’

그때였다.

키릭-

쿠루루룩-

괴물의 울음소리가 들린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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