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81
한민아의 집 천운의 방.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
천운이 기절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천운의 눈은 뜨일 기미는 보이지 않았으며 천운의 방을 찾아온 한우성에게 싸늘한 눈빛을 보내는 한민아였다.
“너무 걱정 마. 나도 어제 일어났거든? 얘도 내일쯤 일어날 거야.”
“묻는 말에나 대답하세요. 화내기 전에.”
한민아의 쏘아보는 눈빛이 한우성을 향했다.
한우성은 별수 없이 말을 내뱉듯 말했다.
“성녀 알지?”
“미국의 상징…… 갑자기 그녀가 왜…….”
“일주일간의 숙면은 걱정하지 마. 성녀가 천운에게 접촉하며 생긴 일종의 부작용이니까. 일어나면 반대로 기량이 늘고 전보다 건강한 모습일걸? 미국에서는 성녀의 꿈 간섭을 축복으로…….”
“그만…… 그녀가 왜 천운이를 찾죠?”
“…….”
그거에 대해서는 크게 할 말이 없는 한우성이었다.
“그건 나도 모르겠네.”
“…….”
하…….
한민아는 애달픈 눈빛으로 천운을 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천운이를 볼 때마다 착잡한 응어리가 가슴에 걸리는 기분이었다.
“평범함을 바라는 게 그렇게 힘든 부탁일까요…….”
“너무 과보호야.”
고개를 휙 돌려 한우성을 노려보는 한민아였다.
한우성은 그런 그녀의 표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암 가문의 장로가 이신아를 찾아왔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건 또 어떻게 아셨죠?”
“나니까 알았지. 이제 슬슬 익숙해질 때가 됐잖아?”
“뭐…… 그렇죠.”
한우성의 정체불명의 정보력은 친목회의 단원들도 익히 아는 사실이니 말이다.
“김천운에 관해서는 얘기했나?”
“네…….”
“그래? 뭐, 보나 마나 경고식으로 말했겠지. 그 애를 찾지 말라고. 어차피 결국에는 만나게 될 텐데.”
“알고 있어요……. 하지만…….”
침울하게 고개를 푹 숙인 한민아는 다시 고개를 돌려 천운을 보았다.
한우성은 묵묵하게 말을 이을 뿐이었다.
“너무 김천운을 애 취급하는군. 내가 하나는 장담할 수 있어.”
그녀는 그저 천운의 손을 매만지며 한우성의 말을 들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본 애 중에 가장 애답지 않은 게 저놈이야.”
“…….”
“나도 이만 가 보지. 일주일을 잠만 잤더니 시간이 지체됐어.”
그렇게 한우성이 방을 나간 후.
한민아는 고요히 자는 천운을 바라봤다.
가장 애답지 않은 아이…….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큰 사고를 당했음에도 의젓하게 행동했으며 가끔 애답지 않은 의젓함과 행동하는 모든 노력에는 커다란 목표가 있었다.
부모님이 큰 사고를 당한 이후 달라진 천운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직 그런 천운이 걱정되는 한민아였다.
* * *
“한국…… 한국이라.”
거대한 흰색의 천연 원석을 조각하여 만든 욕조.
그 욕조에 몸을 담근 푸른 눈과 꿀단지를 머금은 듯한 노란 머릿결의 여인이 누군가를 생각하며 푸념하고 있었다.
그녀가 바로 미국의 수호자 ‘성녀’ 페트리샤였다.
‘나보고 찾아오라고 했지?’
그녀는 어느 한 소년을 생각하고 있었다.
건방진 남자였다.
감히 제 주제에 내게 뭐라고 했더라?
분명 찾아오라고 했지?
“하!”
웃기지도 않는 헛소리와 도발이었다.
미국의 수호신. 지고한 예언자. 평화의 상징.
무수한 이명을 가진 자신과 그는 동일 선상에 놓으려 하고 있다.
건방지게.
하지만…….
‘그놈도 예언자가 분명해. 그리고 나를 알고 있었어.’
그 말은 즉…… 내가 녀석을 만나는 미래가 있다는 것이다.
녀석은 그 미래를 예언한 것이고.
결국 내가 그 도발에 넘어가게 된다는 말이다.
“이익!”
첨벙!
얼굴을 쓸어내리던 손이 힘차게 물장구를 쳤다.
“짜증 나!”
처음이었다.
항상 누군가의 위에서 군림하던 자신이 누군가에게 내면을 간파당한 것은.
그 강대한 힘의 한우성조차 자신을 알지 못했는데.
고작 아직 영웅이라고도 불리지 못하는 생도.
그런 놈한테 그것도 초대면에 자신의 정체가 까발려졌다.
짜증 나는 동시에 어찌나 치욕스러운지…….
그러나 자신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똑똑-
-성녀님.
짜증스럽게 물속으로 얼굴을 파묻어 뽀르륵- 보글거리니 누군가가 샤워실을 노크하며 자신을 불렀다.
“네. 주안. 무슨 일이죠?”
-괜찮으십니까?
“하…… 어떤 꼬맹이 때문에요.”
차락-
그녀가 욕조에서 나와 흰색의 비치타월로 몸을 감쌌다.
주안이라는 남자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덤덤하게 물었다.
“꼬맹이 말입니까?”
평범한 검은 머리에 선글라스로 눈을 가린 검은 정장의 남자.
그가 세계에서 2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게이트 능력자 ‘주안’이었다.
그리고 현재로선 한 명이 더 늘었지만, 성녀의 정체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 성녀님을 거슬리게 만든 남자가 있나 보군요? 혼내 드릴까요?”
“어떻게요?”
“잠시 1시간 동안 북극 관광은 어떤가요?”
“그만두시는 게 좋아요. 목숨이 아깝지 않으면.”
“예?”
털썩-
소파에 앉은 그녀가 소파 옆 유리 탁자 위에 올려진 와인 잔을 들었다.
주안은 눈치 있게 그녀의 옆에 다가가 오렌지 주스를 따라 주었다.
“하…… 주안. 당신 분명 한국인이었죠?”
“아닙니다. 한국계의 미국인입니다만…….”
“어쨌든 한국에 대해서는 좀 아세요?”
“평생 미국에서 살았습니다.”
주안의 말에 입술을 삐죽이는 패트리샤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대답에 그녀는 오렌지 주스를 홀짝이며 말했다.
“하…….”
“한국에 관심 있으십니까?”
“네. 그렇게 됐네요.”
“몇 주 뒤에 있을 국가 대항전 때문입니까?”
“무슨 대항전이요?”
패트리샤의 말에 주안이 이상하다는 듯 눈썹을 꿈틀 움직였다.
그런 주안이 의문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
“국가 대항전 말입니다. 성녀님이 다니시는 ‘레버리 아카데미’에서 하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성녀님이 다니시는 아카데미와 한국의 길영트 아카데미와 대항전을 치르지 않습니까?”
주안의 말에 패트리샤가 깜짝 놀란 듯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정말요?”
“이거야 원…… 다니시는 아카데미를 신경도 안 쓰시니.”
“알고는 있었는데 상대 국가를 몰랐을 뿐이에요!”
“하하, 예. 아무튼 대항전은 한국에서 치러지니 그것 때문에 고민하시는 줄 알았습니다만…….”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패트리샤가 부끄러움에 귀가 붉어졌다.
그녀는 얼버무리듯 주안에게 말했다.
“아, 아무튼. 주안 그럼 같이 한국에 갔을 때 조사해 줬으면 하는 게 있어요.”
“성녀님이 원하시는 대로.”
“이름은 김천운. 나이는 17살 저랑 동갑이고 길영트에 다니는 생도예요.”
“정보는 그게 다입니까?”
“아, 그리고 그의 어머니의 상태도요. 섣불리 그의 몸에 손대지 마시고.”
“왜죠?”
“그의 뒤에는 친목회가 있어요. 목숨이 아까우시면 조심하세요.”
싱긋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주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알겠습니다.”
* * *
한편 어느 깊숙한 숲속.
마기 오염도가 8등급의 위험 수치를 자랑하는 이곳에 강화두와 질 크롬벨이 찾아왔다.
일전에 한우성의 말대로 간부들이 모이는 장소를 찾아온 것이다.
‘확실히…… 나만 보낸 이유를 알겠군.’
8등급의 위험 수치를 자랑하는 숲속이다.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내도 인명 피해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분명 흑색이나 녹색이 있으면 도망쳐라 그랬지?’
-흑색은 너희들로서는 상대가 안 될 거니 무조건 도망쳐라. 뭐 아마 황, 홍, 청 녀석들만 있을 거다.
일전의 형님이 하신 말이었다.
녹색은 아마 누님처럼 공간 이동 능력자니, 습격 자체가 소용없을 거라고 말했다.
‘저긴가……?’
그리고 몇 분 뒤 강화두와 크롬벨은 늑대형 마수 무리가 어느 한 곳을 지키듯 둘러싸 있는 곳을 찾았다.
그 중심에는 지하로 통하는 둥근 문이 있었다.
‘마수들을 조종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정말일 줄이야…….’
마수는 마기로 각성한 마인을 공격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그 마수를 조종할 수 있는 능력자가 있다는 말은 형님에게 들었다.
아마 홍색의 능력일 것이다.
“누님.”
“여기가 맞아.”
“알겠습니다.”
강하게 울리는 공명.
저 지하 밑에 숨은 마인들을 알아차린 크롬벨이었다.
강화두는 자세를 낮춰 땅에 손을 얹었다.
“시작하겠습니다.”
끄덕.
고개를 끄덕인 크롬벨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동시에.
쿠쿠쿠쿠쿠쿠쿵!!
지진이 일었다.
어느 순간 비대해진 강화두의 팔이 지면에 손을 박아 지진을 일으키고 있던 것이다.
파직! 쿠쿠쿵!!
순식간에 무너지는 노면.
동시에 강화두는 위로 크게 뛰어올랐다.
쾅!
깍지 낀 두 손이 바닥에 문을 향해 내리쳤으며 주위에 문을 지키던 마수들은 그저 강화두가 휘두른 충격파에 의해 저 멀리 떨어져 나갈 뿐이었다.
사아악-
흙먼지가 주위를 가렸다.
이 정도 충격이면 그들도 무사하지 않을 게 분명할 터.
하지만 방심하지 않은 강화두는 파워 스캔을 발동했다.
‘응?! 아니!’
무언가를 알아차린 강화두가 급하게 크롬벨을 불렀다.
“누님!!”
스르륵-
강화두의 부름에 곧바로 근처에 생겨난 게이트가 강화두를 낚아채듯 이동시켰다.
그때였다.
사아아아악-
거대한 반구 형태의 자줏빛이 한순간에 주위로 번져 나간 것은.
“저건 분명…….”
어느 순간 크롬벨의 옆으로 이동한 강화두가 그 광경을 경악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질 크롬벨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건 분명 일전에 황색이 쓴 폭탄입니다…….”
“그럼 녀석들은?”
“제 고유 스킬로 확인해 봤지만, 녀석들은 없었습니다.”
크롬벨의 미간이 심각하게 구겨졌다.
“그 말은…….”
“예. 녀석들은 저희가 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 * *
“흐음~ 정말이었네?”
한편 황색의 밀리는 저 멀리서 퍼져 나가는 자광탄을 게이트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녀석은 어떻게 알았대?”
흑색이 알려 준 말은 사실이었다.
얼마 후 친목회가 자신들을 습격할 거라는 사실이 말이다.
“흐음~.”
가라앉은 눈.
밀리는 생각에 잠겼다.
‘그 완고한 흑색이 칭송하는 자라…….’
분명 흑색이 칭송한다는 그 녀석의 말일 게 분명할 터.
하지만 오직 흑색만이 그자의 얼굴을 알고 있다.
‘나는 아직 신용하지 못한다라……?’
흑색이 말하는 그분이라는 놈을 만나 보고 싶다고.
그래서 부탁했더니.
‘너는 아직 신용 받지 못한다. 밀리.’
흑색은 대놓고 내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내 속을 꿰뚫는 듯한 말이었다.
‘생각보다 거물일 거 같네? 내 목적도 이미 알고 있는 거 같고……. 뭐 상관없나?’
해마다 높아지는 마기 수치.
그리고 그런 상황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면 아마 누구라도 예상할 수 있는 미래가 찾아올 것이다.
종말.
그리고 그것을 막으려는 두 단체가 있었다.
모든 재앙을 없애려는 친목회.
재앙과 공존하여 살아남으려는 언더.
사실 자신은 어느 쪽이어도 상관없었다.
‘내 목적을 알면서도 날 곧바로 날 죽이지 않는다는 말은 내가 아직 필요하다는 거겠지?’
내 속셈을 알았음에도 놈은 흑색에게 날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다.
‘흐음~ 후후훗. 다음 주였나?’
밀리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조금 더 해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