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78
“김천운…… 응? 왜 대답이 없어?”
오후 수업이 시작될 무렵.
1반의 출석 체크를 하던 이서린 교관이 천운의 행방을 물었다.
“그 아직 안 왔습니다.”
“뭐? 오전에는 있었고?”
“네. 있었습니다.”
한 응시생의 말에 이서린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수업에 빠졌다는 거지? 그것도 내 수업을? 허락 없이? 그것도 1학년이?”
한마디 한마디가 힘이 들어가 있었다.
대충 들어도 약간의 분노가 느껴지는 말투였다.
이서린의 질문에 또박또박 대답하던 생도의 입이 저절로 닫혔다.
“김천운이랑 가장 친한 생도가 누구야?”
“어…… 저요.”
한설아가 손을 들며 대답했다.
“오전에는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아까 김리안 교관님의 교관실에 다녀온다고…….”
“뭐? 김리안 걔는 뭔데 오자마자 생도를 자기 교관실로 불러?”
“어…… 질문할 게 있다 해서 불려간 거로 아는데요…….”
‘내 수업을 빼먹고?’
“10분간 자습!”
벌컥!
탕!
교실 문에 괜히 화풀이하며 그녀는 김리안의 교관실을 향했다.
향하는 도중에도 구시렁구시렁 불만을 토로했다.
‘지가 뭔데 오후 수업 시간까지 넘어서 상담을 시켜 이게 뒈지려고.’
얼굴이 반반하면 단가?
“분명 저기였지?”
몇 분도 안 돼 김리안 교관의 교관실이 보이는 이서린이었다.
그녀의 터벅터벅 분노로 가득한 힘 있는 발걸음이 교관실을 향했다.
그러나.
터벅…… 터벅…….
그녀의 발걸음이 점차 서서히 느려졌다.
교관실로 가려던 그녀의 발걸음은 어느샌가.
“어?”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 어…….”
그녀의 안색이 하얗다 못해 시퍼렇게 질리기 시작했다.
교관실 너머의 공간.
그녀의 직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허억! 아, 안 돼…….”
목숨과 직결된 감각이었다.
그 이상 저 너머로 다가가면 자신은 죽을 것이라는 감이었다.
‘도대체 저 너머에 무슨 일이…….’
그녀는 곧바로 스킬 투시를 발동했다.
저 너머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 위해서.
그러나 보이는 것은 없었다.
‘안 보여…….’
마치 흑색의 안개가 교관실을 뒤덮은 듯한 광경이었다.
그녀의 투시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저 안에 그 생도가 있다고?’
불길함이 감도는 괴이한 교관실.
곧 저 안에 자신의 수업을 빠진 생도가 있다는 것이 생각난 이서린이었다.
죽음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서늘한 공간이었다.
‘이건…….’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그저 알 수 없는 육감에 의지한 판단이었다.
그러나 트레져 헌터로서의 경력이 말해 주고 있었다.
“빨리 한민아 교관님을 불러야 해!”
후다닥!
이서린은 곧바로 한민아가 수업 중인 반을 향해 달렸다.
* * *
“뭐? 누구?”
만다라를 발동하여 힘겹게 마력을 끌어올린 천운이었다.
반마의 특성으로 상쇄해도 끝이 없는 마기가 천운에게 파도처럼 몰려왔다.
마치 깊숙한 심해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신기한 특성을 지니고 있군…… 김의철.”
그의 가라앉은 듯한 목소리가 나를 향했다.
언더의 장.
흑색인 그가 나를 김의철이라 부르고 있었다.
“김의철?”
“너를 한번 만나 보고 싶었다.”
“나는 김천운인데……?”
“김천운……?”
그가 갑자기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크흐흐, 친구를 팔아넘기다니…… 생각보다 그리 좋은 성격은 아니군.”
“팔아넘기다니…….”
진심인가?
솔직히 그의 등장에 목숨을 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그가 해 온 말은 나를 보며 김의철이라고 부른 것이다.
“난 김의철이 아니야.”
“밀리가 얘기를 안 해 줘 그분께 물어봤지. 분명 밀리의 관심을 받은 녀석의 이름이 김의철이라고 했던가?”
“……무슨 소리지?”
“전능하신 그분의 말이다. 나를 속이려 들지 마라.”
그분? 그분이 누구지?
천운의 표정이 심각하게 구겨졌다.
소설에도 없던 누군가가 언더의 뒤에 있다.
언더의 장은 자신의 설정대로라면 지금 내 앞에 있는 그가 분명할 터.
그러나 그는 누군가를 존칭하는 듯이 부르고 있었다.
“그분이 누구지?”
“그걸 네놈이 알 필요는 없다. 어차피 곧 만나게 될 테니 말이다.”
예상했던 대답이었으나 마지막 말이 천운의 귀에 거슬렸다.
녀석의 말대로 본래의 스토리라면 밀리의 관심을 받는 건 내가 아닌 김의철이었다.
“난 김의철이 아니야. 김천운이지. 그분인지 뭔지 똑바로 전해.”
“김의철이 아니라 김천운이라고? 흠…….”
그의 몸에서 마기가 터져 나왔다.
“재미없는 농담은…… 싫어하는데 말이지.”
방충하는 무수한 마기가 천운을 압박해 왔다.
그러나 그의 터져 나오는 마기가 방 밖으로 새어 나갈 일은 없었다.
모든 마기가 교관실 밖으로 새어 나가지 못하게 그가 컨트롤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몸에 내포된 무수한 마기를 자신의 손속대로 움직이고 컨트롤할 수 있는 자.
말 그대로 그는 괴물이었다.
“네놈과 농담하러 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스으윽-
“대화를 하지.”
뿜어내던 마기를 걷으며 그가 말했다.
천운은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그에게 말했다.
“대화? 그런 것 치고는 너무 위협적인데?”
“주도권을 잡고 싶었다.”
꿀꺽- 침을 삼킨 천운이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말 그대로 내 목숨줄은 그의 손에 있었다.
“뭘 말하고 싶은 거지?”
천운은 여전히 자세를 잡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마기를 걷었음에도 그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위협적인 압력은 끊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너를 어떻게든 언더로 데리고 오라더군.”
“무슨 말이지?”
“친목회를 버리고 언더로 와라. 그분은 너의 미래를 알고 계신다.”
미래?
김의철의 미래라고?
천운은 김의철이 아니라는 설득을 포기하고 되물었다.
“내가 어떻게 되는데?”
“그걸 굳이 지금 말할 필요는 없지. 그러나 한 가지. 네놈의 끝은 좋지 않을 거라는 것은 확신하마.”
“왜 하필 나지?”
“그분께서 말했다.”
그가 갑자기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언더든 친목회든 결국 우리의 목표는 하나일 것이다. 언더와 친목회는 그 과정의 문제로 서로의 정의를 밀어붙이는 것뿐이지. 결국에 목표는 똑같은데 말이다.”
“재앙을 막는 걸 말하나?”
“…….”
잠시 천운의 말에 침묵을 유지하는 그였다.
“지금의 너도 알고 있나 보군…….”
“목적은 같지만 과정이 다르다는 거겠지.”
“……그래. 종말을 막으려면 좀 더 현실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한우성과 같이 영원한 꿈에 빠지는 게 아닌.”
그의 말에 천운이 비웃는 듯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게 마기로 각성자를 만들어 살리는 방법이겠지.”
“……네놈은 생각보다 알고 있는 게 많군. 너는…….”
“일단 거절하지.”
천운이 그의 말을 끊고 대답했다.
그의 입가가 미묘하게 비틀어졌다.
“……왜지?”
“각성하지 못한 사람들은 버려지잖아.”
“다소의 희생은 필요한 것이다.”
“그 다소가 다소가 아니잖아.”
“흠…… 희생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지. 네놈도 한우성과 같은 생각인가?”
천운은 잠시 말을 멈추고 그를 노려봤다.
마기로 각성자를 늘려 인류를 멸망시키는 재앙과 공존한다.
그것이 흑색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계의 결말이다.
말로만 들으면 나쁘지 않은 방법이지만…….
“그 방법이 맞다고 볼 수는 없지.”
오직 아베타로 각성한 각성자만이 마기를 받아들인 마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 또한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각성도 못 한 일반인들은 당연히 예외였으며 그렇게 되면 녀석은 인류의 50%도 아닌 그 반의반을 버린다는 말이었다.
물론 천운이 거절한 가장 큰 요인은 따로 있었다.
마기로 각성한 각성자들은 사람으로서 중요한 무언가를 잃게 된다.
그것이 감정이든 기억이든 말이다.
“그게 정말 재앙을 막아 낸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그가 잠시 침묵하며 천운을 보았다.
생각에 잠긴 듯 말없이 천운을 보니 교관실 안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리고 몇 분 뒤, 그런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결렬인가…….”
동시에 천운의 손목에 있던 샌디가 천천히 형태를 변형시키고 있었다.
“그분께서는 너를 살려 두라고 하셨다…….”
뚝-
천운의 관자놀이에서 흐르던 식은땀이 뚝- 바닥에 떨어졌다.
그가 천운을 향해 기세를 올리며 말했다.
“그러나…… 왠지 네놈을 살려 두면 후에 귀찮게 될 거 같군.”
후아아아!!
그의 몸에서 피어오른 마기가 형태를 갖춰 천운에게 향했다.
천운은 마지못해 마지막 남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그때였다.
똑똑-
누군가 교관실 문을 노크한 것은.
* * *
‘……누구지?’
머릿속에 의문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 누구라도 현재 녀석을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천운아 거기 있니?
문 너머로 들린 목소리는 자신도 잘 아는 민아 누나의 목소리였다.
‘누나…….’
대치 상태에서 몇 초간의 고요함이 감돌았다.
천운은 누나의 말에 대답할 상황이 아니었다.
대신 그런 그가 조용히 천운에게 물었다.
“한민아인가?”
천운은 말없이 그를 노려봤다.
“왜 도움을 안 바라지?”
“…….”
“크흑.”
크흐흐흑.
그는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에 자조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내 상대로 말인가…… 마음에 드는군.”
후웅!
그가 천운을 뒤로하고 교관실 벽면을 향해 다가갔다.
동시에 칠흑의 게이트가 생겨나며 그 너머에서 4마리에 늑대 형태의 마수가 튀어나왔다.
“그분께서는 사고를 치지 말라고 했지. 이것으로 봐주마.”
그의 여유로운 발걸음이 게이트를 향했다.
“한민아가 전력을 다하면 나 또한 버거운 존재지. 그분께서 당분간 조용히 있으라 하셨으니.”
“네가 언더의 장이 아니었나?”
“곧 알게 될 사실이다. 그때를 기다려라…….”
그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그는 천운을 등지고 게이트 속으로 걸어갔다.
동시에 천운에게 달려드는 4마리의 마수들이었다.
벌컥!
상황에 맞춰 벌컥! 교관실의 문이 열리며 다급하게 한민아가 천운에게 다가왔다.
“천운아!”
화르륵!
그녀의 등 뒤에서 피어오르는 칠흑의 불꽃.
4개의 불꽃이 정확히 4마리의 마수를 향했고 곧바로 단말마를 울리며 곧바로 타들어 가는 마수였다.
“세상에 이게 무슨.”
민아 누나의 뒤에는 전투 교관들 또한 모여 있었다.
그들은 교관실에 뒤덮인 무수한 마기에 경악하고 있었다.
“이건 대체…… 못 해도 7등급 정도의 마수 수치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김리안 교관은! 그 교관은 어디 있고요?!”
혼비백산의 상황에 천운에게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한민아였다.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교관들의 시선이 천운에게 향했다.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눈이 서서히 감겨 왔다.
뿜어져 나오는 압력과 마기를 막는 데에만 마력을 다 쓴 천운이었다.
그러나 안심할 수 있었다.
‘버겁기는 개뿔…….’
현재 그로서는 한민아를 포함한 이 길영트의 어느 누구도 그를 막지 못할 것이다.
그가 얌전히 돌아간 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한 천운이었다.
“나중에 전부…… 말해드릴게요.”
천운의 정신은 거기서 끊겼다.
갑자기 나타난 흑색으로 인해 마력 고갈로 기절한 천운이었다.
그러나 천운이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의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