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화
#76
휴일이 지난 월요일 아침.
1교시인 개인 훈련 시간에 천운은 단련실을 찾았다.
‘오랜만이네. 여기도.’
요즘 여러 일이 겹치고 겹쳐 찾아오지도 못했던 훈련실.
막상 오기는 했지만, 체력 단련을 할 생각은 없었다.
천운은 곧장 ‘발산 마법 형상화’ 단련실에 들어갔다.
넓은 방 한쪽 흰 벽면에는 작은 술식이 일자로 늘어서 있었으며 술식에서 발산되는 마법을 피하거나 되받아치는 훈련의 단련실이었다.
[반마의 특성을 얻었으니 아마 특성 중에 가장 쓸모가 있을 거야.]
훈련실에 들어오자 미르마가 말했다.
[그러니 마력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찾아야지. 아마 너라면 잘 해내겠지. 과거에도 한 번 해 봤잖아?]
‘저주 특성을 사용했을 때 말이죠?’
[그래. 사실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 흡수라는 특성을 처음 알았고 더구나 반마의 특성을 또 흡수했으니…… 이런 경우가 있었어야 말이지.]
흡수라는 특성은 자체가 사실 천운이나 미르마한테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천운 소설의 특성 자체를 종류별로 만든 것이 아닌 무수하다고 소설에 표현했으며 그 이질적인 흡수라는 특성과 더불어 반마의 특성 또한 자세한 정보가 없으니 말이다.
미르마가 모르는 것 또한 당연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그래. 오직 마력만 사용해 봐.]
천운이 이 훈련실에 찾아온 이유은 반마의 특성에 있었다.
마력에 닿는 무엇이든 상쇄시키는 특성.
본래 마력을 검에 둘러 형태를 갖추게 하고 사용하는 게 편하겠지만 비상시를 생각해 오직 마력의 제어만으로 쇄도하는 공격 마법들을 막을 생각이었다.
[일단은 연습해 봐. 저번처럼 흘려보낸다는 생각보다는 형태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마력을 느끼고 재능은 있으니 자연스레 컨트롤할 수 있을 거야.]
형태가 없는 마력을 몸속에서 끄집어내 형태를 갖춰라.
마치 마력 순환을 할 때 몸 안의 마력을 둥글게 만드는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문제는 이번에는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그렇게 만들라는 소리였다.
그것도 둥근 원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말이다.
몸을 두르는 갑옷이 될 수도 검이 될 수도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채찍으로도, 여하튼 자신이 원하는 무엇이든 만들어 보라는 말이었다.
‘이렇게인가?’
처음에는 마력을 방출하는 양을 미세하게 조절했다.
마치 수도꼭지를 비스듬히 열어 주르륵- 흐르는 물줄기처럼 말이다.
과거 차진혁과의 대련에서 마력을 미세하게 흘려보낸다는 식과 비슷했다.
지금은 그 마력을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바꿔야 되지만.
곧바로 천운은 흘러나온 마력을 몸 전체에 둘렀다.
수도꼭지를 잠그고 몸 밖으로 나온 마력을 흩어지지 않게 고정시킨 것이다.
물론 외부에 있는 마력은 오래 잡아 두지 못하고 흩어지겠지만 잠시 동안이면 괜찮을 것이다.
이것이 미르마가 생각한 내 마력의 사용법이었다.
미르마는 내가 한 행위에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래. 보기 좋네. 그렇게 해야 마력 소비가 더 적게 들 거야.]
마력이 몸 전체를 단단히 고정시킨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해 그래도 과거에 비슷한 훈련인 마력 순환을 일상처럼 해 온 천운이니 형태를 유지하는 것은 간단하게 해낼 수 있었다. 물론 내부보다 외부에서 형태를 유지하는 게 더 어려웠지만.
‘이제 해 보죠.’
[그래.]
“시작.”
천운이 말하자 벽면에 있던 술식이 붉게 달아올랐다.
마력이 술식에 주입되며 마법이 발동된 것이다.
간단한 발산형 초급 마법 여러 개가 천운을 향해 쇄도했다.
전부 원소로 이루어진 마법이었으며 천운은 그저 가만히 쇄도하는 마법을 몸을 들이대며 대놓고 맞았다.
사아악! 팡!
형태가 있는 흙 마법은 부서지고 공기와 불은 흩어지듯 사라졌으며 물은 천운의 몸을 차갑게 적셨다. 초급 마법 자체가 마력으로 형태를 유지하여 발산되는 것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 정도면 괜찮네.]
미르마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반마의 특성은 마력 자체가 도움이 되는 특성이니 이렇게 활용하면 아마 천운의 전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반마력은 말 그대로 최고의 창이자 방패였다.
공격하는 동시에 방어도 되니 말이다.
[솔직히 이 방법은 마력의 특성이 강하게 발현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방법인데……. 네 누나처럼 말이야.]
‘민아 누나 말이죠?’
[그래.]
특성이 강하게 발현된 한민아.
누나의 흑염이라는 특성은 그저 마력 자체에서 발화되는 힘이었다.
마법도 스킬도 없는 그녀의 마력 특성 자체가 무기인 것이다.
‘물론 그 정도 경지를 오르려면 100 스탯은 가뿐하게 넘어야겠지만.’
현재로선 천운에게 멀고도 먼 이야기였다.
“앞으로 10번만 더 해 보죠. 어차피 오늘 실습수업도 없고.”
[그래.]
* * *
훈련이 끝난 천운은 반을 향하고 있었다.
도중에 미르마는 평소대로 도서실을 향했다.
‘오늘 오전 수업이 뭐더라?’
그런 생각을 하며 복도를 걷자, 어느새 반에 도착했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미 자신을 제외한 생도들은 반에 도착해 있었다.
“와…… 너는 뭐 항상 늦냐?”
내 좌측 대각선 창가 자리에 앉은 의철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운동하고 왔지.”
“하하, 그래? 그것보다 쟤는 왜 저래?”
의철은 내 바로 옆자리의 한설아를 보며 말했다.
아침부터 계속 뭔가 영혼이 빠진 표정으로 멍하게 있었던 모양이다.
“1교시에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교실에 있던데.”
생각보다 어제 대련에서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하긴 듣기로는 마지막 일격이 자신이 노력으로 만들어 낸 필살기라고 한 거 같은데…….
어차피 점심시간에 카페에 초코 스무디만 사 줘도 정신이 확- 돌아오겠지.
“그것보다 오늘 수업이…… 뭐더라?”
“응? 오늘 그 신입 교관님 수업이잖아. 그 유물의 원초였나?”
“유물의 원초?”
유물의 원초…….
유물의 원초…… 뭔가 머릿속을 맴도는 과목이었다.
분명 중요한 수업이…… 설마!
드르륵-
그때 교실의 문이 열리고 갈색 정장의 안경을 쓴 밝은 표정의 남자가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싱글벙글한 말투와 강아지 계열의 순둥이 같은 외모.
그가 친절히 미소 지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이번 유물의 원초 과목을 맡은 김리안입니다.”
그를 보자 천운의 미간이 심상치 않게 좁혀졌으며 표정이 굳어졌다.
의외로 담담한 표정으로 변했으며 그 순간 김리안의 시선이 한 번 자신을 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긴 이상할 것도 없지…….’
그를 보자 시기가 너무 빠르다고 한순간 생각하긴 했지만 크게 이상할 건 없었다.
이한과 포스맨의 사건이 너무 이른 시기에 일어났으니 다음 스토리 또한 자연스레 시작되는 게 분명할 터.
김리안.
그는 초빙된 신입 교관을 죽이고 변장한 황색의 밀리일 수도 있다.
“오늘 수업은 첫날이니 간단하게 진행할까요?”
그의 씨익 웃는 표정이 생도들을 향했다.
* * *
언더의 간부 황색의 밀리.
그녀의 고유 스킬은 아베타로 각성한 고요 스킬 하나와 마기로 각성한 고유 스킬로 두 개의 고유 스킬을 가진 각성자였다.
물론 언더의 간부들은 하나같이 두 개의 고유 스킬을 가지고 있지만 특이하게도 밀리의 고유 스킬만큼 마기를 숨기는 데 특화된 고유 스킬은 없다.
“유물의 원초는 어디일까?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분명 다른 세상의…….”
김리안 교관이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난 그에게서 어떠한 공명 현상도 느끼지 못했다.
이것이 밀리의 고유 스킬 중 하나인 ‘현상막’이었다.
자신의 몸 주위에 막을 형성해 자신의 몸에서 풍기는 마기를 외부와 차단한 것이다.
그러니 어떠한 기운조차 느끼지 못하는 게 당연하겠지.
두 번째 고유 스킬은 현재 밀리의 생김새로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변장은 성별까지 초월하게 만드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 그가 밀리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 어디…… 이 문제는 아! 거기 김의철 생도가 한번 앞으로 나와 풀어 보실까요?”
“예. 알겠습니다.”
아직 밀리가 죽이기 전 진짜 김리안 교관일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천운은 그의 모든 행동을 의안을 발동하여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만약 밀리라면 평범하게 수업을 하고 끝내는 어림도 없는 행위를 할 리가 없으니 말이다.
분명 뭔가 수작을 부릴 게 분명하다.
소설에서도 그렇게 자신의 계획을 방해한 의철에게 보복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천운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의 행동에 의심 가는 부분은 없었다.
살짝 등이나 어깨를 어루만지는 거 빼고는.
아니, 아니다.
“다음은 한설아 생도.”
“아 윤시혁 생도도 풀어 볼까요?”
“질 로벤 생…… 도? 자고 있네?”
김리안 교관은 4대 가문의 아이들을 한 명씩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김천운 생도.”
나를 불렀다.
드르륵-
천운은 의자를 뒤로 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천천히 칠판에 다가가 그를 마주 보며 앞에 섰다.
“음…… 김천운 생도는 이 문제를 한번 풀어 볼까요?”
유물의 원초는 과연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미국의 성녀가 존재하니 신의 기적이라는 의견 또한 존재했으며 이지를 가진 마물들이 만든 마물들의 작품이라는 소리도 있었다.
어느 하나 제대로 된 의견이 없었지만 만약 밀리라면…….
끄적끄적.
칠판에 답을 적는 천운이었다.
내용은 ‘멸망한 세계’에서 넘어온 기적의 산물.
이라고 적었다.
그저 다른 세계가 아닌 멸망한 세계를 강조했다.
보통의 교관이라면.
-음…… 상상력이 풍부한 답안이네요. 생각보다 흥미롭고요.
이런 반응이 당연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 그녀라면 분명.
“응?”
그때였다.
한순간 김리안 교관의 눈이 미미하게 떨렸다.
정말 한순간의 일이었다.
김리안 교관은 곧바로 평정심을 유지하며 천운을 바라봤다.
“상상력이 풍부하시네요. 김천운 생도.”
“감사합니다.”
“혹시…… 시간이 되시면 점심시간에 잠깐 제 개인 교관실로 찾아오실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천운은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로 돌아가는 와중 천운은 혹시 몰라, 아주 미세한 마력을 실처럼 길게 뻗어 컨트롤했다.
일부러 속도를 낮추며 자리로 돌아갔으며 가늘게 뻗은 4개의 마력은 천운의 발밑에서 시작해 의철과 한설아, 질 로벤과 윤시혁의 곁으로 이어졌다.
“응? 으, 음……. 후아암~ zzZ.”
도중에 질 로벤이 눈치챈 듯 고개를 들었지만, 하품을 하며 다시 잠드는 그녀였다.
그녀 또한 천운과 비슷할 정도의 마력을 느끼는 감각이 뛰어나니 말이다.
천운은 그대로 자리에 앉으며 작업을 이어 나갔다.
‘됐어. 지금!’
곧바로 반마의 특성을 빠르게 발현한 뒤 곧바로 마력을 거두었다.
내포된 마력량이 적기에 할 수 있던 천운의 기교였다.
많은 마력량이면 몰라도 적은 마력량이기에 천운의 컨트롤은 어느 때보다 정교하게 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할까요?”
김리안 교관은 수업이 끝났을 때도 여전히 마이페이스를 유지하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드르륵-
김리안 교관이 문을 열고 교실을 나가기 전.
“아! 김천운 생도는 점심 먹고 천천히 와 주시면 돼요. 그럼 좀 이따 봐요.”
휙휙 손을 흔들며 교실을 나가는 김리안 교관.
제 딴에는 꿈에도 생각 못 하겠지.
이미 다 들킨 사실을.
그녀가 나가자 천운은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했다.
띠리리링- 뚝-
-여보세요? 아! 반갑습니다. 천운 군.
전화를 받은 남자는 알 수 없는 흐뭇한 웃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일로?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언더의 황색이 아카데미에 온 거 같아요.”
어렵게 갈 일이 있나.
천운은 그저 그녀에게 걸맞은 상대에게 고자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