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화
#74
“이…… 이게 대체 무슨…….”
이신아를 본 1장로의 손이 떨려 왔다.
그의 허망한 눈빛이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를 향했다.
“아, 아…… 어떻게 이럴 수가…….”
그가 이신아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늦게 찾아왔습니다…….”
“정말…… 몰랐나요?”
한민아가 그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말했다.
“이신아 님의 사정은 전 가주만인 이한량 님만이 알고 있었습니다……. 저희 장로들이 조사하는 것 또한 금지하셨죠…….”
“과연…….”
장로는 가주의 말을 어길 수 없다.
그것은 무암으로 서약된 계약이었다.
“설마 이런 사태까지 비밀로 하셨을 줄이야…….”
그가 고개를 푹 숙인 채 흐느끼듯 신음을 흘렸다.
맞잡은 손은 부드럽게 감쌌으나 노여움에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예요.”
한민아가 그에게 말했다.
“언니의 상태가 이러니 무암의 허락을 받을 수는 없어요.”
“……그렇군요.”
잠시 흐느끼듯 침음을 흘리던 그가 한민아를 보며 말을 이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뭐죠?”
“이신아 님의 상태가 진전될 때까지만이라도 저희가 돕게 해 주십시오.”
지그시 그를 노려보는 한민아의 시선.
“알겠어요.”
그러나 어떠한 의도도 보이지 않았다.
한민아는 흔쾌히 허락해 줬다.
1장로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약조 때문이라도 언니의 상태를 몰랐으니 말이다.
더구나 다른 장로는 몰라도 1장로라면 믿을 수 있었다.
“당신이라서 허락한 거예요. 누구보다 신아 언니를 아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잠시 이곳에 있어도 되겠습니까?”
“알겠어요.”
그 말과 함께 한민아가 병실을 나가자 이신아를 향해 측은한 눈빛을 보내며 1장로가 입을 열었다.
“과거에 그 사내를 따라 가문을 나간다고 하셨을 때 말리지는 않았습니다. 그게 더 행복해 보이셨으니까요…….”
그의 얼굴에 근심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후회되는군요…….”
* * *
[유물을 3개나 줬으면 3개 다 가져오면 되지 왜 겸손한 척한 거야?]
‘그게 더 보기 좋아 보이니까요.’
[좋아 보여? 이미지 관리야?]
‘비슷하다고 할게요.’
집무실을 나온 천운은 곧장 누나의 집을 향했다.
균형의 돌은 기숙사에 있지만 어차피 마력 스탯을 올리는 데 시간이 걸리니 말이다.
[너무 아까운데…… 나머지 유물도 그냥 가지지.]
‘항상 미래를 생각해야죠.’
[나름 예언자다운 말이네? …… 응?]
‘왜 그러세요?’
뭔가 낌새를 눈치챈 미르마의 눈빛이 변했다.
[천운아 뒤에 둘. 누군가 미행하고 있네?]
‘미행이라면…… 회장님인가 보네.’
최아진은 항상 심중하며 조심성이 넘쳤다.
아마 내가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미행을 붙인 거 같은데…….
[은신 마법이네. 내가 아니었으면 기척도 못 느꼈겠지.]
‘실제로 아무것도 안 느껴지긴 하네요.’
[오른쪽 골목으로 돌자마자 은신 마법을 발동해.]
‘알겠어요.’
그녀의 말대로 천운은 곧바로 보이는 오른쪽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운은 골목을 돌자마자 은신 마법을 발동했다.
천운의 인기척이 서서히 옅어지며 몸은 한 순간에 투명하게 사라졌다.
‘딱히 미행해도 상관없지만…….’
딱히 이유 없이 미행당하는 것도 기분이 나쁘네.
“이런!”
나를 미행하던 어느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몸은 보이지 않으니 확실히 이 사내도 마법을 쓴 게 분명했다.
“타깃이 사라졌다. 반복한다. 타깃이 사라졌다.”
그 말과 함께 그들의 형체가 서서히 나타났다.
검은 점장을 입은 두 명의 사내가 휘둥그레진 눈빛으로 아무도 없는 골목을 바라봤다.
“곧바로 회장님께 연락하지…….”
역시 천운의 예상대로 그들은 최아진이 미행하라 보낸 정보원이었다.
천운은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사태를 관망했다.
천운이 사라진 사실을 알자 곧바로 누군가에게 연락하던 한 사내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 그게 타깃을 놓쳤습니다. 예. 놓쳤다기보다는 사라졌다는 표현이…… 예……? 알겠습니다.”
사내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통신을 끊었다.
“돌아가자.”
“회장님께서는?”
“더는 소년에게 손대지 말라고 하셨다.”
“알겠다.”
두 정보원은 터벅터벅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사라지자 천운은 곧바로 은신 마법을 풀었다.
“갔나 보네?”
피식-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 천운은 다시 누나의 집을 향했다.
“이 정도면 경고는 됐겠지?”
[응? 뭐가?]
* * *
정적만이 흐르는 넓은 공터에서 흑색 망토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쓴 사내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왔나?”
사내는 순간 인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황색의 후드를 뒤집어쓴 밀리가 흐뭇하게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비란은?”
“죽었어……. 오래갈 줄 알았는데.”
“청색은 다시 만들면 된다. 그래서 결과는?”
“일단 성공이긴 한데 실패야.”
“반은 해냈다는 거군.”
“그래.”
밀리의 실험은 간단했다.
과연 비란의 힘이 포스맨과 비교하여 어느 정도인지의 실험이었다.
“비란이 전력을 다해서 포스맨의 50% 정도는 되던데?”
“그 정도면 충분하다. 실패는 뭐지?”
“한우성이 왔어.”
“그런가…….”
그가 욱신거리는 배를 부여 만졌다.
일전의 한우성과의 사투에서 얻은 상처였다.
“슬슬 친목회가 움직이려 하고 있다.”
“그래? 그럼…… 다음 청색은 누구로 할까?”
“천천히 정하지. 지원자는 많으니 말이다.”
그의 뒤에서 10명의 실루엣이 나타났다.
청색 망토를 뒤집어쓴 사내들.
그 모두가 포스맨의 규격 외의 힘에 반을 이끌어 낼 청색들이었다.
“상태는?”
“준비해 놨다.”
“정신이 없는 인형으로 만들어야 말을 잘 듣거든. 전투 센스는 없겠지만 이게 편하겠지. 비란은 좀 짜증 났거든.”
“그래. 그리고 한 명 더.”
저벅저벅.
그들에게 다가오는 한 사내의 발소리.
자줏빛의 망토를 둘러 싼 사내.
후드가 드리운 그림자가 얼굴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으나 곧 사내는 후드를 뒤로 들치며 얼굴을 드러냈다.
“호오……?”
밀리는 흥미로운 눈빛으로 사내의 얼굴을 바라봤다.
“네가 새로운 자주색이라고? 이한량은?”
“그는 처음의 뜻을 함께할 뿐, 후에는 사라질 인간이다.”
“그래? 그럼 얘는 괜찮다는 거지?”
사내의 머리에 늘어선 백발.
그의 한쪽 눈매에 그어진 상처.
“일전의 약속을 지키신다면 따르겠습니다.”
윤현이 그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싱긋 웃는 밀리가 흑색에게 말했다.
“아, 맞다 어제 실험에서 거슬리게 방해한 놈이 있어.”
그녀의 입가가 소름 돋게 올라갔다.
평범한 말에서 느껴지는 말투에선 분노가 묻어 나왔다.
“사고 쳐도 돼?”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해라.”
“당연하지 내 능력 알잖아?”
빠득- 빠가각-
밀리의 몸에서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뼈의 뒤틀림.
그녀의 몸에 형태가 서서히 변해 갔다.
어느 순간 한 사내의 모습으로 변모한 밀리가 입을 열었다.
“후훗. 어때? 목소리까지 변했지?”
“네가 만든 청색을 1명 데려가도 좋다. 무슨 짓을 저지를 거지?”
“흐음…….”
그녀가 잠시 흐뭇하게 웃으며 어느 소년을 생각하고 있었다.
“내 고유 스킬 알지? 잠시 잠입 좀 할까 해서.”
“어디로 말이냐?”
“길영트. 여차여차해서 4대 가문의 애들도 죽이고.”
“……알겠다. 그 이상의 쓸데없는 짓은 삼가라.”
“알겠어.”
* * *
“그러니까…… 쉽게 말해 놓쳤다고요?”
“예. 죄송합니다.”
최아진의 집무실.
그곳에 두 명의 사내가 최아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불과 몇 분 전 천운을 미행하던 아산 그룹의 정보원이었다.
“놓쳤다라…… 골목으로 들어선 순간 사라졌다는 얘기죠?”
“예. 죄송합니다…….”
“그 말은 눈치챘다는 말이군요?”
“…….”
“은신 마법은?”
“제대로 쓰고 있었습니다…… 저희도 어떻게 눈치챘는지 원…….”
그들은 낭패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마법은 제대로 발동되었다.
A급 아베타들도 눈치 못 챌 중급 은신 마법으로 말이다.
한데 어떻게 그 소년이 자신들을 눈치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훙!
최아진이 손가락을 까딱 흔들자 그들의 앞에 두 개의 유물이 날아들어 공중에서 멈춰 섰다.
최아진은 그 유물을 포함해 하나의 쪽지를 건네며 말했다.
“일단 이 유물과 쪽지를 그 소년에게 건네주세요. 곧바로 주지는 말고 택배로요.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으니까요.”
“예? 예. 알겠습니다.”
회장의 명령에 의문이 들었으나 묻지는 않았다.
그것은 회사의 불문율이었다.
아진 그룹의 회장 최아진의 말에 이유를 묻지 말라.
모든 것은 이유가 있으니 말이다.
그냥 상사가 까라면 까라는 말이었지만 그 행동에 모든 것은 정말로 올바른 이유가 존재했다.
“최대한 정중하게 말입니다. 아시겠죠?”
“예. 알겠습니다.”
* * *
“호, 혼수상태라고요?”
“예…… 그렇습니다.”
이한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그렇다면…… 현재로선 무암을 쓸 방도가 없다는 말이었다.
“대체 언제부터…….”
“작년부터라고 하십니다.”
“전 가주는 물론 이 사실을 알고 있었겠죠.”
“예…….”
“이익!”
탕!
노여움에 책상을 치는 이한이었다.
“하……. 다른 정보는요?”
“그게…… 이신아 님에게 아들이 계신다고 합니다.”
“아들이요?!”
“예…….”
그건 또 무슨…… 아니 생각해 보니 없는 게 더 이상했다.
그렇다는 말은…….
“걔는 자기가 암 가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나요?”
“그, 그게 그것에 관하여 또 할 말이 있습니다.”
“뭐죠?”
“한민아 님께서는 그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그리하여 쉽게 묻지는 못 했습니다만…… 이름만은 가르쳐 주시더군요. 아마 그 소년에게 접근하지 말라는 말이겠죠.”
“하…… 알겠어요. 일단 조치는 취해 뒀나요?”
“예.”
전 가주는 자신의 예상이지만 무암을 찾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것이다.
가족애가 없는 무감정의 사내이기는 하나 자신도 인정하는 계략가인 사내이다.
아마 무암의 허락을 고모를 제외한 전부에게 받았을 거라 생각하고 있을 거다.
‘그렇다면……. 분명.’
녀석은 고모를 노릴 것이다.
무암은 허락은 죽은 자에게까지 받을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정예 암살자를 주위에 항상 배치시켜 두세요. 이한량은 무조건 올 겁니다. 무조건이요.”
“예. 명심하겠습니다.”
“한민아 님에게는 이 사실을 알렸나요?”
“혹시 몰라 비밀로 해 두기는 했지만 시간문제겠죠.”
“하…….”
푹 늘어져라 한숨을 쉬는 이한의 표정에 근심이 어렸다.
만약 가문과 연을 끊은 고모가 녀석에 의해서 죽게 된다면…… 과연 한민아의 분노는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과연 이한량일지 아니면 암 가문일지.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소중한 사람을 잃는 순간까지 이성적일 수는 없다.
그것이 규격 외의 힘을 가진 그녀라도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먼저 소년의 행방이군요. 아마 이한량이 이 사실을 알고 있다면 걔 먼저 노려질지도 모르니까요. 혹시 이름이?”
잠시 침을 꿀꺽 삼킨 1장로가 이한에게 말했다.
“그, 그게 이한 님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네?”
“같은 학우이신 ‘김천운’ 님이십니다.”
이한의 표정이 더없이 경악스럽게 변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