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화
#71
“그 소문 들었냐?”
“뭔 소문?”
“왜, 그 김중안 교관님이…….”
길영트의 2학년 생도들 사이에서는 믿지 못할 소문이 흐르고 있었다.
교관 중 깐깐하기로 유명한 김중안 교관이 조교관을 뽑았다는 소문이었다.
김중안 교관이 누구인가?
깐깐한 성격에 비해 수준 높은 교육을 보여 주는 몇 안 되는 우수 교관이기는 하나, 수준 높은 교육만큼이나 높은 눈으로 인해 여태껏 그 누구도 김중안 교관의 조교관이 되지 못했다.
한데 그런 교관의 조교관이 뽑혔다고?
그것도 1학년이?
일부의 생도들은 삭제 소문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뭔 개소리야?”
“아니, 진짜라고.”
“그 교관이?”
누가 생각하겠는가?
능력은 출중하긴 하나 그 까칠하고 높은 눈 때문에 몇 년이 지나도 조교관을 뽑지 않던 아니, 정확히는 못 한 교관이었다.
마법사라는 족속이 전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교관만큼 두드러지는 교관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실력이나 교육열만큼은 교관과 생도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교관이었다.
누가 말하기를 그가 연구에만 몰두하지 않았다면 아베타로서도 명성이 자자했을 거라는 말이 있었으며 그의 수업을 들은 생도들 또한 그 말이 괜히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확실히 천재라는 족속에 들어간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그 소문은 소문을 타고 2학년 생도의 중심 생도회까지 퍼지고 말았다.
“회장. 그 소문 들었어?”
흑발의 롱 헤어 세팅 펌이 잘 어울리는 소녀.
배시시 활짝 웃은 표정이 아름다운 소녀가 2학년 생도회의 부회장인 최미라였다.
그녀는 책상에 앉아 집무를 보는 회장에게 들러붙었다.
“떨어져 방해돼.”
“우리 회장은 왜 이렇게 차가울까?”
생도회실에서 집무를 보고 있는 그녀.
은은한 은빛이 빛나는 하늘색 머릿결의 소녀.
암 가문의 그녀들과 마찬가지로 마력의 영향으로 그녀의 머리색이 변모한 것이었다.
그녀가 바로 2학년 생도회의 회장 이연화였다.
그녀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저 볼펜을 끄적이며 집무를 보고 있었다.
최미라는 늘 하던 대로 집무를 보는 이연화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김중안 교관님 알지?”
“…….”
“그분이 조교관을 찾았다는데?”
보이는 상황으로는 최미라 혼자 입을 벌이고 있는 거 같지만 제대로 최미라의 얘기를 듣고 있던 이연화였다.
그 증거로 그녀의 말에 이연화의 눈썹이 순간 꿈틀거렸으니 말이다.
듣다 못한 이연화가 최미라에게 물었다.
“조교관을 찾았다고?”
“응. 그것도 1학년에서.”
“조교관을 뽑았다라…….”
자존심은 강하고 까칠하기는 하나 그 교관의 명석한 두뇌를 인정하는 이연화였다.
그런 그가 1학년 사이에서 조교관을 뽑았다고?
자신도 그에게 뽑히지 못했는데?
딱히 질투해서 나온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흥미로웠다.
과연 그에게 인정받은 1학년의 새내기가 누군지 말이다.
“이름은?”
“응? 글쎄?”
“조교관이 된 생도의 이름도 모른다고?”
“소문이니까. 그리고 우리 생도회장님도 모르시잖아요~.”
“음…….”
잠시 생각에 잠긴 이연화는 손에 있던 볼펜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고민했다.
‘찾아가 보는 것도 자존심 상하네.’
“이름을 알아 와.”
“언제까지?”
“오늘 안에.”
“넵!”
* * *
‘난 또 왜 여기 있지?’
천운은 현재 데자뷔를 느끼고 있었다.
천운의 앞에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는 이철한이 있었으며 그는 아까부터 불러내고 무슨 종이만 연신 만지작거리며 볼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침묵을 유지하던 그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
“김천운 생도.”
“네?”
“혹시 아버님이 협회에 종사하시는 분인가요?”
“아니요.”
“음…… 그런가요?”
다시 생각에 잠긴 이철한.
그 생각은 그리 길게 이어 나가지는 못했다.
이철한 교관은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정중하게 물었다.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가 한 장의 용지를 보여 주며 말했다.
“이 마수에 대해서 어떻게 이 정도로 상세하게 적으신 겁니까?”
그가 보여 준 용지에는 빼곡히 적힌 그 마수의 특성과 약점이 적혀 있었다.
그 용지는 어제 천운이 제출한 문제지였다.
“사실 잘못 인쇄한 문제거든요? 이 마수의 특징이 협회에 갱신된 건 수업이 끝난 후 30분 뒤였습니다.”
교관의 말에 천운의 입이 벌어졌다.
‘그럼…….’
갱신도 안 된 정보를 자신은 미리 써 내린 것이다.
“종명도 그렇고 서식지 습성도 그렇고 갱신된 마수의 정보와 일치하더군요. 거기다 약점은 아직 밝혀지지도 않았습니다.”
이철한 교관의 용지를 팔락 흔들며 질문을 던졌다.
“뭐가 이상한지 아시겠습니까?”
“…….”
“저는 단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쉽게 말해 아직 갱신도 안 된 정보를 어디서 들었는지 말입니다.”
내가 황당한 표정을 계속 짓고 있자니 이철한 교관이 미간을 좁히며 내게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협회 관계자와 아는 사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만…….”
“딱히 그거는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잠시 눈을 감은 천운은 이 상황을 도피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했다.
‘역시 그거밖에 없나?’
눈을 뜬 천운이 이철한을 응시하며 말했다.
“직관입니다.”
천운은 그냥 억지 부리기로 결심했다.
“직…… 관 말입니까?”
“네.”
“…….”
그가 말을 잇지 못하자 천운은 억지 부리듯 설명을 이어 나갔다.
“여기 이 마수의 특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이 많죠.”
억지 부리기 첫 번째는 아는 척이다.
미리 아는 정보를 그저 이 마수의 생김새를 근거해 밀어붙이는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등에 등딱지와 물갈퀴를 보면 바다 또는 강에 서식할 것처럼 보이지만 몸체의 두꺼움과 중량이 느껴지는 걸 보니 늪 주위에 서식하는 육지 거북처럼 보이긴 하네요?”
“흠……. 이름은?”
“그것도 생김새를 보고 판단했습니다.”
하…….
한숨을 쉬는 이철한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가 이것이 핵심이라며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약점.”
“…….”
“다른 거라면 뭐 직관으로 확인하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 김천운 생도. 하지만 약점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요. 그것도 생김새를 보면 판단할 수 있어요.”
“네?”
천운은 마수의 등딱지를 가리켰다.
“물론 반은 상상이니 너무 요주의하게 생각하지는 마세요. 제가 직관으로 보고 상상한 약점이니까요.”
“뭐 일단…… 알겠습니다.”
“교관님은 만약 이 마수를 공격한다면 어느 부위를 공격하겠습니까?”
“등딱지를 제외한 어디든 이겠죠?”
“네. 물론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종명 기간트 터틀 코요테.
큰 덩치에 기간트를 붙였으나 후에 작은 몸짓이 성체인 개체 또한 발견되어 기간트라는 이름이 없어지는 마수이다.
생김새는 등에 등딱지가 달렸으며 늑대거북 같은 사나운 얼굴과 그런 주제에 이족 보행을 한다는 게 특징이었다.
“등은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어서 웬만해서는 공격하는 사람은 없겠죠?”
“예. 그렇고말고요.”
“만약 그게 일부러 유도하는 거라면요?”
“무슨 말입니까?”
“그냥 제 상상이에요. 등이 약점이니 일부러 공격 못 하게 튼튼하게 보이는 거 일수도 있잖아요.”
“……하하! 정말 상상이네요…….”
“또는 등 전체가 아닌 등딱지 어딘가에 약점이 있을 수도 있죠.”
“…….”
잠시 천운의 말에 깊이 있게 듣던 그가 싱긋 웃더니 기분 좋게 웃었다.
“정말 말 그대로 상상이시네요.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그쵸?”
“뭐 설명과 다르게 적힌 약점은 생각보다 상세하게 적었지만요.”
“그냥 이 상상을 중점으로 심도 있게 적은 거뿐이에요.”
“그렇군요.”
이철한이 김천운을 보며 싱긋 기분 좋은 미소를 보였다.
“그렇다 해도 종명과 특징을 그저 생김새를 보고 직관으로 판단한 실력은 정말이지 대단하네요.”
“감사합니다.”
“아주 재미있는 추리였습니다. 그 일부는 전부 맞췄으니 말이에요.”
그가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제가 너무 시간을 잡아먹었네요. 여유로운 1교시를 저 때문에 허비하고.”
“아닙니다. 딱히 할 게 없었거든요.”
“이만 가 보셔도 됩니다. 그럼 나중에 수업에서 보죠.”
가르치는 입장이신 교관이 생도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예의 있게 대해 주는 사람은 이철한밖에 없을 것이다.
생각보다 인상 깊은 사람이었다.
소설에서는 그저 엑스트라에 불과했던 인물인데 말이다.
“감사합니다 교관님. 그럼 저는 이만.”
천운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왔다.
교관실에 혼자 남은 이철한은 생각에 잠겼다.
생각보다 흥미로운 생도였다.
생김새로 어느 정도 짐작하기는 하나 용지에 적힌 설명과 약점은 상세했으니, 마치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직관 하나만으로 전부 적었다라…….’
띵-
동시에 컴퓨터에 울리는 알림 소리.
그가 컴퓨터를 보니 화면에는 예전에 즐겨찾기해 놨던 기간트 터틀 코르테의 정보가 추가로 갱신되어 있었다.
그 마수의 약점이었다.
“헉!”
이철한의 표정은 더없이 놀란 듯 입이 벌어졌다.
* * *
“오늘 오전 수업이 뭐였더라?”
그렇게 1교시를 어제처럼 교관실에 보낸 천운은 반을 향했다.
‘이러다가 또 문제아로 소문나겠네.’
하루도 아니고 이틀이나 교관실에 불려갔으니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오후 수업은 김중안 교관님 수업이지?’
김중안 교관의 조교관이 됐으니 아마 교관님께 허락받고 수업을 빼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조교관의 특권 중 하나였다.
‘그럼 오후에 던전이나 가 볼까?’
어차피 오후에는 여유가 있으니 빨리 하교해서 마력을 올릴 유물이나 찾는 게 이득이다.
요즘 안 그래도 스탯 성장을 소홀히 한 느낌이니 말이다.
‘그때 이후로 오른 스탯도 별로 없고…… 응?’
그때 복도 저 멀리서 뚜벅뚜벅 걸어오는 한 여인이 보였다.
긴 흑발과 매혹적인 미소.
점점 다가오는 그녀는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흘리고 있었다.
보자마자 천운의 눈이 홀릴 정도로 말이다.
‘……예쁘시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지나치려고 하니 그녀는 반대로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저, 저기 있잖아요.”
“네?”
“혹시 내가 누군지 모르세요?”
천운은 반대로 황당한 표정으로 되돌려줬다.
“누구세요?”
“……크흠.”
그녀가 고까운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며 싱긋 온화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 초면이죠? 모를 만하네? 2학년 생도 부회장인 최미라입니다. 후훗.”
그렇고 미소를 지으며 한 손을 반갑게 흔드는 그녀였다.
뭔가 오묘한 분위기가 풍겼다.
“선배님이시네요. 안녕하세요.”
최미라.
천운도 아는 인물이었다.
2학년 생도회 부회장이니 말이다.
단지 얼굴은 몰랐을 뿐.
그런 그녀가 왜 나를 찾는 거지?
“김천운 생도 맞으시죠?”
“제 이름을 어떻게……?”
“반에 친절한 후임들이 많더라고요.”
“아, 그런가요?”
“네.”
“…….”
“…….”
말은 그리 길게 이어 나가지 못했다.
대답한 후에 그녀가 멀뚱멀뚱 나를 쳐다봤으니 말이다.
뭔가 신묘한 눈빛이었다.
계속 그녀의 눈빛을 보면 빨려 들어갈 거 같은?
아름다우며 알 수 없는 매력이 느껴지는 그녀의 표정에 나는 계속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건…….’
나는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노려봤다.
내 반응에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는 최미라였다.
“어머.”
그녀는 내게 고유 스킬을 발동한 것이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죠. 선배님?”
그녀의 고유 스킬은 ‘마인드 컨트롤’이었다.
어느 순간 멍한 상태에서 최면에 걸리고 아마 노예처럼 그녀의 말에 복종했을 것이다.
“어머, 뭐가요?”
“후배를 상대로 고유 스킬을 사용한다라…….”
내 말에 그녀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
“최면 계열인가 보네요.”
“어머, 어머, 어머.”
그녀는 신기하게 바라보며 연신 어머를 외쳤다.
그녀의 눈빛이 흥미로 물들었다.
“어떻게 아신 거예요?”
“글쎄요. 그것보다 하실 말씀은?”
“어머, 죄송해요. 사실 생도한테 흥미가 있어서…….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런 말을 하며 우는 시늉을 하는 최미라였다.
뭔가 어처구니없는 태도에 그녀를 보니 그녀가 사과의 뜻으로 무언가를 전했다.
“그 사실…… 우리 회장님께서 생도님을 흥미롭게 보고 있거든요. 그래서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서 고유 스킬을 사용한 건데……. 이건 사죄의 뜻으로 받아 주세요.”
그녀는 자신의 연락처를 건넸다.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여기로 연락해 주세요.”
“무슨 일이요?”
“예를 들어…… 음, 그러게요? 헤헷?”
좋게 말하면 순수해 보이며 나쁘게 말하면 속을 알 수 없는 꺼림칙한 여자였다.
내가 그렇게 설정했지만.
“예.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꼭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후훗.”
그렇게 그녀와 헤어지니.
시간은 오전 9시 3분.
오전 수업은 지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