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68
수첩의 내용은 누군가의 일기장이었다. 날짜와 그날 있었던 일상이 적힌 평범한 일기장.
첫날의 내용은 이러했다.
[집으로 돌아왔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일단 이득인가? 지금까지 있던 일은 전부 꿈이라고 생각하자. 새 출발 시작이다!]
“……음.”
일기장 주인이 귀차니즘인지 그리 길지 않은 일기였다.
문제는 나름 오래된 일기장인 주제에 하루밖에 적혀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루밖에 안 쓸 거면 일기장을 왜 써?’
[뭐라고 적혀 있는데?]
‘난 집으로…….’
[응? 뭐라고 하는지 안 들려. 말이 일그러져 들리는데? 잠깐만.]
미르마는 다시 수첩에 적힌 술식을 확인했다.
그녀의 표정이 기괴하게 마치 믿어지지 않은 무언가를 본 듯한 표정으로 변했다.
[세상에…… 이렇게 눈으로 보기 힘든 작은 술식 안에 두 개, 아니 세 개의 마법 술식이 있다니…… 하지만 그건…….]
‘왜 그래요?’
[아, 아니 마법이 두 개 더 있어. 그것보다 어떻게 읽을 수 있는 거야?]
‘저도 잘……. 하나는 암호 마법일 테고 나머지 두 개는 뭔데요?’
[정확한 명칭은 없지만 아마 너 이외에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마법. 동시에 하루마다 일기장이 갱신될 거야.]
‘신기한 마법이네. 음…….’
하루마다 갱신된다라…….
그리고 다음 날.
천운은 일기장을 확인했다.
날이 지나고 곧바로 갱신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점심때나 돼서야 글이 갱신됐으니 말이다.
‘음…… 오늘 내용은 분위기가 비장하네.’
물론 그것도 두 줄로 끝나 있지만.
[또다시 그런 비참한 삶을 살아가지는 않을 거다. 기회가 된다면 그것을 막을 힘을 길러야겠다. 아니 잘못 말했다. 막는 게 아니라 그것에서 살아남을 힘을.]
‘이름도 없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다 읽었으며 다시 보여 줄래?]
‘아 여기요.’
수첩의 술식을 알아낸 이후 왜인지 수첩에 대해 무언가 알아낼 게 있다고 말하는 미르마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분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루고 부니 오후는 실전수업빈가?”
“다 먹고 말해.”
우물우물우물 꿀꺽-
천운의 말대로 밥알을 삼킨 의철이 다시 말했다.
“오후 수업 말이야. 던전 실습 아니야?”
“어. 아마 9등급 던전 공략이었나?”
다음 수업은 이영한 교관의 던전 공략 실전 수업이다.
‘분명 그 던전에는 그게 있었지?’
* * *
오후 수업이 시작되기 전.
미르마는 수첩을 들고 도서실을 향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미르마의 표정은 조금 심각해 보였다.
천운은 알겠다며 그녀와 헤어진 뒤, 길영트에서 관리하는 어느 던전 앞에 서 있었다.
오늘 오후 수업이 이루어질 반마의 던전이었다.
“자. 전부 모였나?”
변함없이 피곤한 인상의 이영한 교관이 커피를 홀짝이며 생도들에게 다가왔다.
“뭐 일단 시작하기 전에 길영트의 합격을 축하하마. 하지만 그 일주일보다 힘들게 굴릴 테니 각오해라.”
그는 천천히 반마의 던전 입구로 다가갔다.
굳건한 강철로 이루어진 거대한 문.
문 앞에 선 이영한이 입을 열었다.
“자 이번에 너희들이 들어갈 반마의 던전이다. 다른 던전은 몰라도 이 던전은 수업 시에만 출입이 가능하다. 참고해 두도록.”
“이번 수업은 던전 공략입니까?”
“틀렸다.”
이영한은 말과 동시에 던전의 문으로 다가가 두 손으로 힘껏 밀어젖혔다.
끼이이익.
그 거대한 문이 서서히 열리며 동시에 말을 잇는 이영한이었다.
“이번 수업은 던전의 공략이 아닌 탈출이다. 던전의 끝은 다른 출구와 연결돼 있으니 딱히 귀환석이 필요하지는 않지.”
이영한의 말에 묘한 표정을 짓는 생도들.
던전의 탈출 따위는 어렵지 않게 해낼 생도들이다.
엄청 힘들게 굴릴 거라는 말치고는 첫 수업이 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 그럼 이 던전에 대해서 말해 주지. 방금 너희들은 던전 탈출 따위는 쉽다고 생각했겠지.”
이영한의 손에서 붉은 마력이 서서히 올라왔다.
“잘 봐라. 이번 수업의 핵심이니까.”
마력이 흘러나오는 손을 던전의 입구에 입구를 향했다.
그 순간 이영한의 손에서 흘러나오던 마력이 한순간에 갈무리되듯 사라졌다.
“자. 이걸 보면 알겠지?”
별말 없이 상황을 지켜보던 응시생들의 눈 똥그래졌다.
이영한은 그대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던전. 반마의 던전이 이 던전이다. 다행히 마물이나 보스는 서식하지 않는 미로 던전이긴 하지만 너희들은 이 던전을 탈출할 때 오로지 스탯과 직감으로만 판단하여 탈출해야 할 거다. 함정은 아직 작동하니 말이다.”
마력을 쓸 수 없는 던전.
체내의 마력을 방출할 수 없는 던전이 이 반마의 던전이다.
스킬은 물론 마법은 일절 사용이 불가능하며 오로지 피지컬과 판단만으로 이 던전을 탈출해야 된다는 말이었다.
“자, 정확히 30분이라는 시간을 주겠다. 그 시간 안에 반마의 던전을 탈출하면 통과다.”
후르릅-
무심하게 커피를 마시는 이영한 교관.
그가 곁눈질로 입구를 보며 시작을 알렸다.
“자 그럼 시작!”
* * *
들어가는 순서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저 이영한의 한마디에 쭈뼛거리던 생도들은 잠시 당황하다 몇 명이 출발하자 그제야 출발한 몇 명을 뒤따를 뿐이었다.
선두로 달리던 생도는 윤시혁이었다.
오늘 종일 조용하던 그였지만 수업만큼은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다.
나 또한 그를 뒤따라 빠르게 내달렸다.
‘분명 3개의 통로였나?’
반마의 던전은 생각보다 단순한 던전이다.
미로 던전이라고 하기에는 단순하게 쭉 뻗어진 길밖에 없으며 3갈래의 길이 3번 나타나는 던전이다. 참고로 잘못 들어선 길을 갔을 때는 막다른 길밖에 없다.
‘분명 왼쪽으로 가면 막다른 길이지?’
하지만 마력을 못 쓰는 거 빼고는 특별할 게 없는 이 던전에 교관들이 하나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천운은 곧장 3개의 통로 중 왼쪽을 향해 달렸다.
그때 왼쪽 통로에서 누군가 빠르게 뛰어나오고 있었다.
나보다 먼저 앞서간 윤시혁이었다.
난 아는 채 안 하고 곧바로 윤시혁이 나온 통로를 향해 달려 나갔다.
윤시혁은 무심한 눈으로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뜻밖의 말을 건넸다.
“그쪽은 막다른 길이다.”
“응?”
“내가 나온 것을 보면 모르겠나?”
무심한 표정으로 윤시혁은 중앙 통로를 향해 다시 달려갔다.
천운은 그런 윤시혁을 멍하게 바라보다 이내 떠오른 게 있었다.
“그쪽도 막다른 길인데…….”
뭐 별수 없나? 이미 가 버렸고.
천운은 윤시혁의 친절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왼쪽 통로를 향해 나아갔다.
통로를 나아가는 도중 이미 여러 함정이 발동돼 있었으며 어느 장치는 반 토막이 나 있었다.
아마 이 던전 안에서는 생도용 무기는 현현이 불가능하니 녀석은 고유 스킬을 사용한 듯하다.
“그럼 어디 보자. 여긴가?”
도중에 함정을 몇 번 밟기는 했지만, 의안을 발동하여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
길의 끝은 두꺼운 흙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천운은 막힌 벽에 손을 대 가며 벽면에 마력을 흘려보냈다.
스르륵-
손에서 흘러나온 마력은 갈무리되기도 전에 벽면에 흡수되었다.
소량의 마력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한 천운은 천천히 벽면에 손을 뗐다.
쿠쿠쿵! 드르륵-
그 순간.
약한 여진이 일어나며 벽면에 사람 한 명 들어갈 정도의 문이 생겼다.
천운은 곧바로 그 문을 통해 앞으로 나아갔다.
드르륵-
천운이 들어가자 문은 곧바로 닫히고 말았다.
딱히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 길로 쭉 나아가도 출구로 이어지니 말이다.
‘음…… 역시 발동이 안 되네?’
천운은 혹시나 해서 의안을 발동해 보았다.
그러나 이 기이한 공간에서는 마력이 필요 없는 고유 스킬조차 발동되지 않았다.
이 공간 자체가 던전의 특성이 강하게 발현되고 있다는 말이었다.
또한 힘이 푹 빠져나가는 느낌을 보니 스탯 또한 일반인으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아마 이 공간의 존재하는 그것 때문일 것이다.
그 유물의 특성으로 인해 어느 뛰어난 감지 계열의 고유 스킬을 가진 교관들이라도 이 장소를 찾지 못했으니 말이다.
여기서부터는 어떠한 능력도 통용되지 않는 평등 구역이란 뜻이다.
‘저기 있네.’
길을 따라 몇 분쯤 걸었을 때, 천운의 눈에는 위를 향해 손을 뻗은 천사상이 보였다.
주위는 마치 말 그대로 평화로우며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손을 뻗은 천사상의 손에는 영롱한 빛을 뽐내는 돌이 들려 있었다.
‘원래라면 꽝인 유물이지만.’
어떻게 동상 위를 힘겹게 올라 온 천운이 손을 뻗어 돌을 집었다.
화악!
동시에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는 듯이 한순간에 환한 빛을 내뿜던 돌이었다. 그것도 잠시…… 서서히 빛이 꺼져 가며 몸에 있던 스탯이나 마력 또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천운은 곧바로 들고 있던 돌을 확인했다.
{평화석}
등급 : ?급
설명 : 반마의 던전에서 흐르는 반마의 마력을 흡수한 돌이다. 모든 생명체는 이 돌 앞에서는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된다.
누구라도 이 돌 앞에서는 그저 평범한 일반인에 불과할 것이다.
물론 마기로 각성한 언더들도 예외는 없을 거다.
그러나 소유주인 자신마저 힘을 못 쓰니 원래라면 꽝인 유물이지만 한 가지 시험해 볼 것이 있어 이 유물을 찾게 됐다.
난 천사상 뒤에 열린 출구를 통해 앞으로 나아갔다.
통로의 끝에는 또다시 막다른 길이 앞을 막아섰지만 옆에 누르라는 듯이 벽에 붙여져 있는 버튼을 보고 천운은 망설임 없이 버튼을 눌렀다.
드르르륵-
흙먼지를 일으키며 거대한 벽이 위로 올라가며 출구가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그 너머에는 이곳을 멀뚱멀뚱 쳐다보는 소년 또한 보이기 시작했다.
윤시혁이었다.
윤시혁은 다소 당혹감에 얼어붙은 듯 천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너! 어떻게?”
“응? 그 길이 있던데?”
천운은 그런 윤시혁을 뒤로하고 출구를 향했다.
윤시혁은 곧장 뭔가를 깨달았는지 희번덕 떨며 천운을 제치고 출구를 향해 달렸다.
천운은 그런 윤시혁을 무심하게 바라봤다.
딱히 1등을 원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 * *
수업이 끝난 저녁.
곧바로 집이 아닌 기숙사로 귀가한 천운이었다.
천운의 눈앞에는 만드라고라의 수정과 오후 수업에서 얻은 평화석이 놓여 있었다.
“미르마 확인해 주세요.”
[오냐.]
미르마는 만드라고라와 평화석을 한 번씩 번갈아 보며 감정하고 있었다.
[응. 확인했어. 일단 있기는 하네? 그것보다 평화석이라…… 어디서 얻은 거야? 왕족들만 사용할 수 있는 돌인데.]
“오늘 던전에서 얻었어요. 그것보다 그럼 둘 다 마력이 있다는 거죠?”
[만드라고라는 네가 예전에 먹은 산삼과 같이 마력이 깃든 영약이라 당연하고 평화석 안에는 아주 미세한 마력이 있기는 해…… 너 설마!]
“맞아요.”
내 의도를 짐작한 미르마가 화들짝 놀라며 당황했다.
[안 돼. 너무 위험해! 영약은 몰라도 평화석을 잘못 흡수하면 일반인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미르마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음…… 뭐 그것도 그건가? 그럼 반발 현상이 일어나면 곧바로 그만둘게요.”
천운은 처음으로 만드라고라의 수정에 손을 댔다.
본래 이 영약을 섭취하면 그 특성이 고스란히 내 몸에 적용되겠지만 만약 마력을 흡수하면 그 특성이 뒤따를 것이다.
말 그대로 현재 어둠, 빛, 불, 저주 속성에서 회복 속성이 더해진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나뿐만 아닌 다른 사람의 저주나 독까지 해주가 가능하다.
“좋아! 간다!”
힘차게 말하며 마력을 흘려보내 수정 전체를 둘렀다.
스르릅-
천운의 마력은 수정의 마력을 흡수하고 있었다.
뭐, 일단 첫 번째는 실패할 가능성은 생각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쩌저적-
‘성공이다!’
마력 흡수에 성공한 수정은 기가 전부 빨렸는지 쩌저적- 가루가 되며 부서졌다.
천운의 마력 특성 중 회복을 얻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일단 한번 시험해 볼까?’
천운은 한쪽 손가락에는 저주를 반대쪽 손가락에는 회복 특성을 흘려보냈다.
동시에 손가락을 맞물리니 저주 특성이 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흡수라는 특성이 정확히 회복 특성을 흡수했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신기한 점은 저주와 회복이라는 특성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첫 번째는 성공이네요.”
[두 번째가 문제지. 평화석에 깃든 반마의 힘 자체가 이질적이라 무엇과도 어울릴 수 없는 게 정상이야. 아주 조금이라도 시도한다면 위험할 수도 있어.]
미르마의 말대로 위험한 시도였다.
하지만 조금 전 회복 특성을 흡수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천운의 저주 특성과 회복 특성은 거의 뭐 앙숙 관계나 다름없는 특성들이다.
하지만 그런 특성들이 천운의 마력 안에서는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천운의 예상이 맞다면 가능할 것이다.
“분명 반발 현상도 생길 거예요. 조금이라도 생기면 그만둘게요.”
천운은 천천히 돌을 향해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