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66
다음 날 아침.
“조회는 여기서 간단히 끝낼게요.”
휴일이 지나고 천운은 길영트에 등교했다.
생각보다 활기찬 입학식을 끝내고 방금 막 민아 누나의 조회가 끝난 시점이었다.
천운은 자리에 앉아 손에 든 투명한 수정을 만지작거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드디어 받았네. 만드라고라…….’
만드라고라의 즙을 짜내 만든 수정이었다.
복용만 해도 A급 정도의 저주나 병 정도는 쉽게 완치가 가능한 영약이었다.
1차 시험에서 각 돔의 수석에게만 주어지는 영약.
물론 2차 시험의 수석과 총 입학 성적 수석에게는 무기 형태의 유물이 주어지는데 내게는 딱히 필요 없는 유물이었다.
참고로 총 합격 성적 수석은 김의철이었다.
1차 차석, 2차 수석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천운아.”
그때 한설아가 말했다.
“이제 뭐 할 거야?”
“글쎄다?”
길영트의 1교시는 자기 개발 시간이었다.
적어도 1시간 동안은 단련실을 가든 이론 공부를 하든 뭘 하든 자유라는 뜻이었다.
“신기하게 아는 애들은 안 갈라지고 같은 반이 됐네?”
참고로 합격과 동시에 반 배분도 같이 일어났다.
근데 딱히 바뀐 게 없었다.
바뀐 애들은 엑스트라뿐이었으며, 이제 응시생이 아닌 생도라는 신분이니 반으로 등급이 나뉘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각 반의 S등급 생도가 한 명씩은 무조건 존재한다는 말이었다.
“그것보다 이한은 오늘 아픈가?”
“이한?”
“응. 오늘 첫날인데 결석했잖아. 이연하고 같이.”
“무슨 사정이 있겠지.”
그녀들의 사정은 아직 한설아에게 말하지 않았다.
말 안 해도 조만간 다시 학교에 올 테니 말이다.
그때였다.
-띠띠딩~ 1학년 1반의 김천운 생도는 김중안 교관님의 연구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1학년 1반의 김천운 생도…….
“응?”
방송실 마이크에서 천운을 부르는 방송이 나왔다.
김중안이라면 분명 그 깐깐하고 고지식하게 생긴 마도 술식 재구성의 교관이었다.
“음…… 가 봐야겠지?”
“얼른 다녀와. 난 단련실에 가 있을게.”
뭐, 그렇다고 하니 한설아의 말대로 천운은 김중안 교관의 연구실로 향했다.
연구 부동은 그렇게 멀지는 않았다.
바로 옆 건물과 이어진 복도를 걸으면 금방 마법 관련 교관들의 연구실이 보이니 말이다.
똑똑-
김중안 교관의 연구실 문 앞에 도착한 천운은 가볍게 노크했다.
-들어와라.
문 너머로 들어오라는 소리를 들은 천운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와…… 뭐야 이게?’
수북이 쌓인 서류와 쌓여 있는 게 무너졌는지 어지럽혀져 있는 종이들.
그냥 더럽게 지저분했다.
“오랜만이군. 김천운 응시…… 아니, 이제 생도군.”
김중안은 헝클어진 머리와 피곤함에 찌든 얼굴이었다.
말 그대로 정상이 아니었다.
마치 며칠 밤을 꼬박 새운 사람처럼 말이다.
“응시생이라는 신분만 아니었으면 조금 더 일찍 보고 싶었다.”
“저를 무슨 일로……?”
“이걸 잠시 봐주겠나?”
김중안이 내 쪽을 향해 칠판을 돌렸다.
칠판에는 익숙한 술식이 그려져 있었다.
과거에 내가 그에게 제출한 결계 마법 술식이었다.
“한동안…… 이 술식에 대해 연구했다.”
저건 분명…… 저번 수업 때 김중안 교관에게 제출한 미르마의 술식이었다.
천운은 곧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하긴 누구 술식인데.
골머리를 앓을 만했다.
“여러 가지 조사한 끝에 몇 가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을 다른 술식에 적용해 봤지.”
[내 술식을 조금 이해했다라……. 그리 멍청하지는 않네?]
‘그래도 교관인데. 당연하죠.’
[저번에 네가 알려 준 술식이 정도껏 엉망이어야 말이지.]
미르마가 저렇게 말하니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녀로서 상식적으로 알려진 이 세계의 술식은 모두 엉터리일 테니 말이다.
“저기 그래서 무슨 일로?”
“그다음 길이 막혀 버렸다. 그러니 이 술식에 대해 조금만 가르쳐 주지 않겠나?”
“방금 술식을 조금 이해하셨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해는 했다. 문제는 다른 마법과 조합해 봐도 소용이 없더군. 내가 전부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거겠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 술식을 더욱 파고들어야겠다고 판단했다.”
흠…….
김중안 교관의 말은 이해가 갔다.
문제는 막상 당사자가 허락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바로 옆에 미르마가 말이다.
[어이가 없어서…….]
미르마는 반대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이해한 게 아니잖아!]
오히려 성을 내는 듯했다.
[내 말 그대로 녀석에게 따라 말해.]
‘알려 줘도 돼요?’
[그래.]
천운은 미르마의 말을 그대로 따라 말했다.
“여기 보세요. 이게 총 54획의 선으로 만들어진 술식이잖아요.”
선의 숫자를 천운이 알 리가 없었다.
그냥 무슨 바둑 두는 만화의 유령처럼 미르마의 말을 따라 말했다.
“술식에 뭘 이해하셨어요?”
“2개밖에 없다. 적은 마력양으로 발동이 가능한 이유와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지는 이유.”
김중안이 술식 상단에 위치한 무슨 이파리 모양을 가리켰다.
“아마 이 문양 때문이겠지. 여기서 마력이 통과하는 동시에 효과가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군요. 응?”
천운이 설명하다 말고 뜬금없이 움찔 당황했다.
천운은 침착을 가장하며 입을 열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셨군요.”
[왜 뒤에 버러지는 빼먹냐?]
“이해하지 못했다고?”
김중안이 반대로 희번덕 놀라며 천운에게 되물었다.
“이해하지 못했다니? 그럼 틀렸다는 말인가?”
“아니요 정확히 그 문양이 효과를 그렇게 만들어 주는 건 맞아요.”
“그럼?”
“아마 적용한답시고 그대로 그 문양을 다른 술식에 붙어 넣었겠죠.”
천운의 말을 이해했는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다시 말해 이 문양의 근본을 이해 못 했다는 말이군. 너는 네게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고 알려 주는 거고.”
“그, 그게.”
“맞는 말이다. 틀린 거 하나 없는.”
다행히 화내지는 않는 모양이다.
반대로 김중안의 눈에서 이채가 띄고 있었다.
기대감에 흥분한 어린아이처럼.
자존심 강하다고 소문난 김중안이라도 마법사는 마법사였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는 순간의 고조되는 흥분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러니 가르쳐 다오. 이 문양의 근본과 특성을…… 부탁한다.”
[알겠다. 이 버러지야.]
“알겠어요.”
* * *
[다행히 이해는 빠르네.]
김중안은 미르마가 가르쳐 준 술식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과연 문양의 연결 회로를 늘리는 게 아닌 줄여도 다른 효과가 나타나는군.”
“위치에 따라 전부 달라져요. 이건 이렇게 뒤집어서.”
술식에 그려진 문양에 연결된 선의 횟수마다 그 효과가 천차만별이다.
뭐 딱히 천운이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갔으나 김중안 교관님은 알아듣는 모양이다.
“세상에 이런 미친 세상에 이런 미친……!”
김중안은 말을 반복하며 이상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그저 술식도 아니고 술식 안의 문양 위치와 생김새 그리고 연결해야 하는 선의 수를 조금 바꿨을 뿐인데 여러 효과가 뒤바뀌고 있었다. 말 그대로 이 하나의 문양에 여러 성능이 부여됐다는 뜻이다.
“허…… 이건 누구한테 배운 건가?”
“예? 그 스…….”
[쉿. 그냥 네가 만들었다고 말해.]
‘그건 좀 부담스러운데…….’
[교수라는 인간이 엉터리 술식을 자랑스럽게 애들한테 가르치니 기세를 꺾어 주려고. 그래야 발전을 하지. 마법사란 그런 놈들이야.]
뭐, 그렇다고 말한다면…….
천운은 쭈뼛- 소심하게 말했다.
“제가 만들었어요.”
“허…….”
미르마의 예상대로 넋이 나간 표정을 짓는 김중안이었다.
“네가 말이냐?”
“네.”
“세상에…… 정말이냐?”
“네…….”
“…….”
김천운.
이 소년이 한 행위는 직관이었다.
그저 알려지지 않은 문양을 만들어 문양에 효과를 부여해 직관으로 술식을 만들었다.
그것도 고작 17살에…….
상급 마법사들이 술식 하나 만드는 데 1년을 소비한다.
물론 그것 또한 기존에 존재하는 문양을 붙여 만든 술식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소년은 문양까지 혼자 만들었다…….
문양의 효과 또한 경이로우니 말을 잃게 만들 정도였다.
“너는 무슨 질 룸벨의 환생이냐?”
[그게 누구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마법사가 있어요. 현자라는 경지에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죠.’
[웃기는군. 그럼 놈과 내 술식을 비교하다니.]
미르마가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였다.
뭐 막상 현자가 될 뻔한 자와 현자가 된 미르마하고 비교하면 그렇다고 생각할 만한데 조금 속이 좁아 보인다.
“그것보다 이제 가 봐도 될까요? 슬슬 2교시 시간인데…….”
“자, 잠깐 제안할 게 있다.”
“네?”
“혹시 내 조교관이 되지 않겠나?”
조교관이라면 분명 생도라는 신분으로 교관에게 인정받아 교관의 밑에서 일을 돕는 생도를 말한다.
그 권리 또한 교관과 동등하며 가끔 교관을 대신해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1학년이 그것도 마법 관련 조교관이라…….’
물론 1학년이 조교관이 된 유례가 몇 번 존재하기는 했다.
그게 이론 수업이나 마법 수업이 아닌 육체를 단련하는 실습 과목의 조교관이지만.
이론이나 마법 과목 중 1학년에 조교관이 된 생도는 여태 없었는데.
이유야 당연히 그 나이에 동급생 또는 한 학년 위의 선배를 가르칠 정도로 머리가 비상한 인물을 찾기는 힘드니 말이다.
‘음…….’
천운은 다시 고개를 돌려 미르마를 보았다.
[조교관이 뭐야?]
‘교관이랑 동급의 권리를 지닌 생도요. 수업도 가끔 교관님이 바쁘면 대신 해 주고요. 뭐, 대부분은 자습을 시키지만.’
[그래? 흠……. 천운아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저야 뭐, 미르마가 안 된다면 안 하는 거죠.’
[그렇겠지? 그럼 하는 거로.]
‘예? 괜찮아요?’
[뭐, 마법이 아닌 상식을 가르치는 거라면.]
뭐 수업 자체가 마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상식을 설명하는 거니까.
[그리고 도서실에 책을 한번 살펴봤다. 상식 중에서도 살짝 이상한 점을 발견했거든?]
물론 그 상식도 틀렸다고 말하는 거 같지만…….
아마 조교관이 되면 미르마는 자신이 아는 이론을 설명할 듯싶다.
“알겠습니다. 그럼 조교관이 되겠습니다.”
“그래. 말이 조교관이지 나도 네게 가르침을 받고 싶구나.”
“농담이시죠?”
“후훗.”
정말 부담스러웠다.
정확히 내가 아닌 그녀가 가르치는 건데 내가 했다고 알려지는 게.
뭔가 양심이 찔렸다.
[너무 부담 갖지 마. 천운아.]
‘네?’
[내 유일한 제자의 위명이 높아지면 스승도 기분이 좋아지거든.]
싱긋 웃은 미르마의 표정이 뭔가 예쁘다고 느껴졌다.
모르는 사이 미르마는 나를 제자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 * *
결국 생각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천운은 반에 도착했다.
한설아도 이미 단련실에서 반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이번에 막 같은 반이 된 이수연이 한설아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둘이 대련이라도 했나 보네.’
뭔가 들려오는 말로는 이수연이.
“오늘 대련 감사합니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김천운하고도 한 번 더 대련하고 싶네요.”
라며 쓴 웃음을 지으니 한설아가.
“그럼 내가 부탁해 볼까?”
라고 말하고 있다.
나는 애써 둘을 무시했다.
“자. 전부 자리에 앉아 주세요.”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교관이 있었다.
오전 수업을 맡은 엑스트라 교관인데 이름은 정확히 모른다.
“마수와 마물의 종과 생태학 과목을 맡은 이철한입니다.”
교관 중에서는 생각보다 댄디한 남성이었다.
훤칠한 옷과 높은 키.
솔직히 교관으로 있기에는 아까운 외모의 인물이었다.
“오늘은 첫 수업이니 간단한 마수와 마물의 차이부터 배워 보죠.”
이철한 교관이 책을 펼치며 수업을 시작했다.
‘마수와 마물이라…….’
천운은 이 수업을 살짝 기대하고 있었다.
마수와 마물.
그 괴물들을 설정한 장본인이 자신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