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64
“흠…… 그러니까…….”
강화두의 부탁 내용을 들은 한우성은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제발 그것만은…….”
또한 그 말을 들은 이한은 엎드린 채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었다.
“가주와 만나 얘기를 해 보겠다고……?”
강화두는 한우성의 말 그대로 가주 앞에 직접 찾아가 얘기를 나눠 보겠다고 말한 것이다.
불과 몇 초 전에 결심하듯 말한 강화두의 말이 이한과 이연에게 큰 문제로 다가왔다.
말이 얘기지 거의 포스맨이 암 가문과 정면 전쟁을 선포한 것과 다름없다고 이해한 그녀들이었다.
“네 의도는 알 거 같다 화두야.”
“예.”
“너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한우성이 말했다.
“하…… 여전히 깊게 생각하지 않는구나.”
“예?”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네가 그렇게 행동하면 쟤들은 어떻게 될 거 같냐?”
한우성은 눈짓으로 이한과 이연을 가리켰다.
이한은 거의 울먹거리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너무 가혹…….”
“쟤들한테도 그럴까?”
강화두는 암 가문에 찾아가 책임을 묻고 그녀들에게 암살을 그만두게 할 셈이었다.
적어도 성인이 될 때까지는…….
하지만 포스맨이 직접 찾아오게 만든 것 자체가 이한의 책임으로 직결된다.
심하면 그녀는 가주인 아버지와 가문으로부터 버려질 것이다.
“제발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 흑.”
눈가에 송골송골 맺힌 눈물이 흘러나오며 결국 울음을 터트린 이한이었다.
“저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계속 상황을 듣고 있던 천운은 이한에게 물었다.
막상 이한이 대답하지 않으니 한우성이 대답했다.
“뭐가?”
“이한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의외로 감수성이 안 풍부하네? 울고 있는 애한테.”
“조금 중요한 일이라서요.”
그 말에 훌쩍이던 이한이 고개를 들어 천운을 바라봤다.
고개를 든 이한이 천운에게 물었다.
“왜……?”
“그 의뢰가 누구한테서 내려진 거야?”
천운을 보던 이한의 눈동자가 연신 깜빡거렸다.
잠시 고개를 숙이고 생각이 잠긴 이한.
그 표정은 점점 당황으로 일그러져갔다.
“그걸 어떻게…… 하지만 그럴 리가 없어!”
“암 가문의 후계자들에겐 가주가 직접 의뢰를 내리지.”
“그걸 네가 어떻게…….”
“길게 말 안 해도 알지?”
“하지만 가주님은 포스맨의 정체를…….”
“조금만 생각하면 답이 나오잖아.”
흔들리는 동공이 천운을 향했다.
그런 이한에게 천운은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한국 최고의 정보 길드의 수장이 포스맨의 정체를 몰랐을까?”
“그게 무슨 말이지? 김천운.”
물어본 것은 강화두였다.
그의 얼굴 또한 점점 험악하게 굳어 갔다.
“암 가문의 가주는 알고서 이한에게 의뢰를 맡겼을 거예요.”
“자신의 딸에게 일부러?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거야…….”
천운은 이한을 흘겨보며 말을 이었다.
“이유야 저보다 쟤가 더 잘 알 거 같은데요?”
모두의 시선이 이한에게 향했다.
이한의 공허한 눈빛이 허공을 맴돌았다.
* * *
5살 때의 기억이었다.
가문의 암살을 없애고 싶었다.
그냥…… 그 당시에는 딱히 적당한 계기는 없었지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요즘 시대에 암살이라니…….
“언니!”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귀여운 여동생.
나보다 조금 늦게 태어났다고 나를 언니라고 불러 주는 이연이었다.
“너는 뭔데 이렇게 귀여울까?”
“언니도 똑같아.”
“그래도 난 언니잖아.”
“응? 언니는 귀여우면 안 돼?”
“그럼.”
“그렇구나.”
당시의 이연은 순수했다.
그것은 1년이 지나도.
“언니! 사탕주세요.”
2년이 지나도.
“생일 축하해 언니!”
3년이 지나도…….
10살 때까지의 이연은 그저 귀여운 여동생이었다.
그리고 11살.
그때부터였다.
“언니…….”
일주일 전 아버지가 선물해 준 강아지가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이한은 그것이 감정을 죽이는 수련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애정 한번 안 주던 아버지가 생일도 아니고 선물이라니…….
하지만 이연은…….
“뽀삐가…….”
촉촉해진 눈가에 마음이 저려왔다.
이연은 눈물을 애써 참아 보려는지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저 지금 여동생에게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위로밖에 없었다.
“미안해 연아…….”
연이의 감정은 그때부터 천천히 마모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수련은 연이의 감정을 점점 식어 가게 만들었다.
그저 난…… 처음부터 아버지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이는 다른 모양이다.
연이는 내 애정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언니.”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이연의 표정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죄책감 또한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이 이연은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연아 괜찮아?”
“응……. 늦었으니까 돌아가자.”
과거 키우던 강아지가 죽어 울먹이던 이연은 눈앞에 없었다.
그저 작업을 마치고 덤덤하게 돌아가자는 이연이었다.
‘이건…… 이건 아니야.’
이한은 이때부터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는 걸 인지했다.
“연아.”
그때 이후로.
나를 대할 때의 이연은 평소와 같았다.
하지만 의뢰가 들어올 때마다 가끔 도를 넘는 행위가 서서히 증가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곧바로 죽이지 않고 간교하게 상처를 주는 것처럼 말이다.
“연아!”
짝-
그런 연이의 뺨을 치며 화낼 수밖에 없었다.
“한 번만 더 그러면 진짜 화낼 거야!”
“어, 언니?”
난 칼을 내질러 타깃의 숨통을 끊었다.
그때 동안 이연은 계속 휘둥그레진 눈동자로 자신의 뺨을 매만지며 나를 바라봤다.
“왜, 왜 그래 언니?”
“왜 그런 거야?”
“하지만 이 사람은…….”
“연아.”
이한이 지그시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일하러 온 거야. 아무리 곧 죽일 사람이라도, 이 사람이 쓰레기 같은 짓을 했다 해도 그것만큼은 무조건 구분해야 해. 살인은 놀이가 아니야.”
그때 이후로 도를 넘을 때마다 연이를 말려야만 했다.
다행히 연이는 내 말은 잘 듣는 편이긴 했다.
하지만 곧, 나와 있었을 때만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하하!”
혼자서 임무를 나간 이연의 행동은 잔악하며 포악했다.
나와 같이 이연을 미행한 아버지인 가주의 표정은 그것을 흡족하게 바라봤으며 나는 그저 멍하니 이연을 볼 수밖에 없었다.
‘안 돼……. 이건 아니야.’
그것이 16살 때의 이연이었으며 내가 크게 다짐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 무슨 부탁 말이냐?”
“가주의 자리를 약속받고 싶습니다.”
“하!”
헛웃음을 짓는 아버지가 어이없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봤다.
“어디 가주의 자리가 탐이 나더냐?”
“가주님께서는 이미 연이를 마음에 드셨나 보군요.”
“그래. 너 또한 그것을 알면서 부탁하는 것이냐?”
“하지만 괜찮겠습니까? 연이는 현재 조금 위태롭지 않습니까?”
“흠…….”
스읍- 후…….
가주의 담뱃대에서 연기가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가주의 눈동자가 이한을 향했으며 이한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노려봤다.
‘호오…….’
비릿한 웃음을 짓는 가주가 이한에게 말했다.
“반대로 말하면 기회를 달라는 거구나?”
“예.”
“그럼 1년의 시간을 주겠다. 그동안 연이에게 의뢰를 내리지 않겠다. 어디 한번 나를 만족시켜봐.”
“알겠습니다.”
* * *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 노력은…….”
“가주는 처음부터 가주 자리를 넘길 생각이 없었겠지.”
“아……. 끅!”
눈물이 글썽글썽 흐르는 와중에도 그녀의 주먹은 꽉 쥐어졌으며 분한 듯 이를 아득- 물고 있었다.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
계약에 의존해 가주를 믿고 있었다.
과거에 그렇게 당했는데 말이다.
내가 죽으면 계약은 무용지물이 되니 말이다.
“이거 참 곤란하게 돌아가네…….”
한우성이 심각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사실이면 언더가 암 가문과 내통하고 있다는 말인데…….”
어떻게 보면 천운은 한우성에게 힌트를 준 것이다.
천운의 힌트대로 한우성은 이해하고 알아들은 모양이다.
‘암 가문이 언더와 내통한다라…… 이런 기억은 과거에도 없었는데? 후에 몇 년 뒤에 2, 3년 뒤에 일어나는 사건인가?’
미래가 바뀐 건가?
현재의 기억으로는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과거 영웅들의 가문이 빌런과 내통한다라…… 썩어 문드러졌군요.”
그것은 강화두의 말이었다.
그리고 이한은.
“죄송합니다…….”
이한이 강화두를 향해 힘없는 목소리로 울먹이며 말했다.
“제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가문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말에는 원통함이 고여 있었으며.
“하지만 이제 포기할래요.”
울분이 묻어 나왔다.
“포스맨 님의 힘으로 암 가문을 어떻게 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이한을 잠시 지그시 바라보던 포스맨의 입에서 무겁게 가라앉은 말소리가 들렸다.
“……알겠다.”
* * *
시간은 늦은 밤 10시.
“후…… 쌀쌀하네. 안 그러냐?”
한우성은 화원을 나와 잠시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의철과 천운 또한 서 있었다.
한우성이 할 얘기가 있다며 천운을 부른 것이다.
의철은 그저 집에 돌아가기 위해 같이 나왔다.
천운이 한우성에게 말했다.
“이제 뭐 어떻게 할 거예요?”
“화두를 도와줘야지. 쟤들이 괜찮다는데.”
“그래요? 그럼…… 아, 잠시만요. 야 의철아.”
“응?”
천운은 주머니에서 분홍빛을 띠는 작은 병을 꺼냈다.
‘원래 이 유물을 줄 생각이 없었는데…… 뭐, 별수 있나.’
원래 있어야 하는 유물이 없어졌는데.
천운은 던전에서 얻은 병을 의철에게 건넸다.
“아까 던전에서 얻은 유물이네?”
“너 가져. 팔면은 돈 좀 될 거야.”
“어, 그래? 주면 나야 고맙고. 근데 아까 다른 유물도 있었잖아. 그거 확인해 봤어?”
“이거?”
“어. 유물이 맞는 거 같긴 한데. 특성이 없던데?”
“특성이 없다고?”
천운은 수첩을 꺼내 수첩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수첩}
등급 : F급
설명 : 그저 오래된 수첩이다.
‘진짜네…… 실화냐?’
심지어 유물 이름도 그냥 수첩이다.
오묘한 표정으로 수첩을 흔들어 보고 마력을 주입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천운은 일단 수첩은 다시 주머니에 넣고 의철에게 말했다.
“이제 갈 거지?”
“그래야지. 내가 여기 있어 봐야 할 게 없고……. 물론 너한테 묻고 싶은 게 많긴 한데. 늦었으니 다음에 보자.”
“그래. 잘 가라.”
의철과 헤어진 뒤.
천운은 잠시 옆에서 연초를 피우는 한우성을 바라봤다.
그는 허공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녀석은 동기냐?”
“예. 알고 지낸 지 일주일밖에 안 됐지만.”
“어린 나이에 대단한 놈이네? 벌써 60에 도달했다니.”
“그쵸?”
“그래.”
스웁- 후…….
“이제 본론에 들어가자.”
그 말과 함께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 한우성이었다.
처음 봤을 때의 마력과 기세는 풍기지 않았지만 무언가 의심이 서린 눈초리였다.
“넌 정체가 뭐냐?”
“말에 의미를 정확히 모르겠는데요?”
“나이 17살의 길영트 1차 시험 수석 합격자 김천운 같은 자기소개를 말하는 게 아니다.”
“예. 뭐 그렇겠죠?”
“아무리 너희 어머니가 암 가문 사람이라 해도 넌 너무 많은 정보를 알고 있더군.”
후…….
툭-
한우성이 입에 문 담배에서 담뱃재가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눈은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이 사건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왔지?”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너를 포함해 저기 있는 김의철이란 놈과 무관한 사건이니까.”
“우연히 만나서 도와줄 수도 있죠.”
“그래. 하지만 난 아닌 거 같거든.”
“왜요?”
“짐작 가는 게 있어.”
한우성이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는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너 회귀자 아니면 예언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