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63
“이런 미친! 왜 그런 미친 짓을……! 강화두!!”
“알겠습니다!”
한우성의 말에 강화두는 남은 3명을 팔로 감싸 안고 힘껏 위로 도약했다.
쩌저적-
동시에 천운이 전개한 결계가 서서히 갈라지며 균열이 생겨났다.
“저, 저기 천운이는.”
“……일단 저것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강화두는 대답을 회피했다.
그런 그에게 당황스럽게 되묻는 의철이였다.
“하지만 방금 천운이가 저기로……?”
“……알고 있다.”
“그럼 빨리 구하러 가야죠!!”
“김천운은…….”
그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에 떨림이 느껴졌다.
강화두는 담담함을 가장하고 말한 것이다.
“우리를 위해 희생했다.”
지금은 그저…… 이 말밖에 해 줄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이 상황에 쓸모없는 자신이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행동은 소년의 희생을 의미 없게 만들지 않는 것이다.
[대단하다고밖에 말이 안 나오는구나……. 미르마나 저 소년이나.]
‘예?! 그게 무슨?!’
[저 소년이 죽는 순간. 미르마 또한 소멸하겠지. 미르마는 그것을 말리지 않고 저 소년의 의지를 뒤따른 거다. 과거의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닌데 많이 변했군.]
‘그런…….’
소년이 뛰어든 빛을 바라보는 검성의 경외심이 서린 말이었다.
의철은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녀석이 죽었다고?
우리를 위해 희생해서?
한순간에 일어난 상황이었기에 믿어지지 않는 현실을 부정하는 의철이였다.
“김천운…….”
“어떻게 그럴 수가…….”
점점 멀어져가는 시야.
천운을 삼킨 빛을 바라보며 이한과 이연은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분명 우리를 위해 희생한 것이다.
그 행동에는 망설임이 일절 느껴지지 않았다.
암 가문인 우리처럼 두려움을 없애는 훈련도 고통을 참는 고문도 받지 않은 고작 평범한 집안의 소년이 말이다.
이 감정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그녀들이었다.
‘설마…….’
강화두 또한 그런 영웅적인 면모를 보인 김천운을 생각하고 있었다.
‘설마 잠깐 시간을 벌기 위해 망설임 없이 뛰어들 줄이야.’
그것이 고작 17살의 소년이 한 행동이었다.
자신을 희생해 나를 포함한 아이들을 구하다니…….
그때였다.
파쾅!!! 사아아아…….
결계가 무너지고 빠른 속도로 번져 가는 자주색 빛무리.
‘이런…….’
그 순간.
‘뭐지 저건……?’
그것이 어느 한 구간에서 멈춰 선 것이다.
한우성의 얇게 좁혀진 눈매가 빛무리를 향했다.
‘뭐가 일어나는 거지……?’
그 거대한 빛은 멈춰 선 걸 넘어서 그 중심의 무언가에 흡수되듯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흡수하고 있다고……?’
이윽고 줄어든 빛 너머로 소년의 인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소년의 손가락을 중심으로 거대한 소용돌이가 강대한 빛을 흡수했으며.
“하하, 설마…….”
그 중심에는 자신이 잘 아는 소년이 있었다.
김천운.
그가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것이다.
동시에 천운의 중지에 낀 반지 하나가 파사삭- 힘을 다한 듯 부서져 내렸다.
“어, 어떻게…….”
지금까지 여유롭던 밀리의 표정이 그제야 일그러졌다.
* * *
[휴…… 조마조마했어.]
생환한 천운을 향해 미르마가 말했다.
[그 반지가 도움이 됐네?]
‘대신 다른 특성은 사용도 못 했지만요.’
[목숨값이라고 생각해.]
며칠 전 이영한 교관에게 받은 키빈의 반지.
그 특성 중 하나인 <반지의 희생>이 천운의 목숨을 살렸다.
<반지의 희생> : 착용자가 감당 불가능한 타격을 받을 시 반지를 희생하여 1회 그 충격을 흡수하여 막을 수 있다.
키빈의 반지가 천운의 목숨을 앗아 가려는 그 불길한 빛을 전부 흡수한 것이다.
그 발광하는 빛에 들어선 순간 몸에서 느껴지는 한순간의 고통은 끔찍했다.
아무리 한순간이라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 타격을 느껴야 발동되니 말이다.
‘그래도 설마……. 그걸 전부 흡수할 줄이야.’
물론 자광탄은 부피가 커질수록 효과가 크게 발휘되는 일종의 섬멸탄이었다.
크기가 더욱 늘어나기 전에 뛰어든 것이 천운의 목숨을 살렸다.
그래도 과연 S등급다운 성능이었다.
아직 크지는 않아도 몸으로 느껴 본 그 거대한 충격을 빠짐없이 전부 흡수했으니 말이다.
물론 다른 특성은 사용도 못 하고 파사삭- 부서졌지만.
“내 자광탄이…….”
방금 일어난 상황에 시종일관 웃음기를 유지하던 밀리의 표정이 그제야 일그러졌다.
자신의 모든 계획이 고작 애새끼 한 명 때문에 망쳐졌으니 말이다.
“대체 저 녀석은 정체가 뭐야?”
“하하하! 황색의 밀리. 너도 당황할 때가 있었군.”
밀리의 반응이 만족스러운 듯 시원스럽게 웃는 한우성이었다.
자신 또한 예상 못 한 상황이니 말이다.
더구나 그녀의 반응도.
지금까지 황색의 밀리를 이 정도까지 당황스럽게 만든 인간이 있었을까?
자신이 알기로는 김천운이 처음이었다.
천운은 항상 흥미 그 이상의 행동을 자신에게 보여 주고 있었다.
“더더욱 마음에 드는군.”
욕심이 일렀다.
김천운은 무조건 친목회로 끌어들여야 한다.
왜 지금까지 회귀의 삶 중에 저런 인재를 찾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한우성이었다.
“밀리. 지금만큼은 네 마음도 이해가 되는군. 하하하!”
“닥쳐!”
“하하하!”
한우성의 웃음소리가 밀리의 화를 돋우고 밀리의 미간이 짜증스럽게 구겨졌다.
소년이 등장하기 전 처음에는 차질 없는 완벽한 계획이었다.
저 소년이 등장했을 때도 괜찮았다.
암 가문의 꼬맹이들을 포함해 전부 죽이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한우성이 등장했을 때도 괜찮았다.
계획에는 크게 차질이 없었으니 말이다. 비란은 포스맨의 힘을 측정하기 위한 실험쥐였다. 비란의 희생 또한 예상했던 일이고 어차피 다시 만들면 되니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자신이 준비한 자광탄이 포스맨에게 치명상을 줄 계획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자광탄’이 저 소년에 의해 갈무리됐을 때…….
빠드득-
괜찮지 않았다.
‘감이 안 좋아…….’
알 수 없는 무언의 압박이 소년에게 느껴졌다.
소년을 지금 당장 없애야 한다.
하지만…….
‘큭!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왔어야 하는 건데.’
자신의 본체는 이 자리에 없었다.
큰 희생을 치르더라도 왠지 모르게 지금 당장 저 소년을 죽이라는 오랜 세월의 감이 말해 주고 있었다.
‘청색은 괜찮아. 다시 만들면 되니까. 하지만 저 소년은 지금 없애야 해…….’
당장 저 소년을 죽여야 한다.
소년은 후에 언더를 더불어 자신의 이상에 큰 위협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현재 상황으로선 방도가 없었다.
“꺼져라 밀리. 다음에 만나면 죽여 버리겠다.”
“후…….”
한우성의 말대로 후퇴를 결정한 밀리였다.
동시에 제거 1순위를 저 소년으로 정하면서 말이다.
“혹시나 말인데 소년을 건들 생각은 하지도 마라.”
한우성이 밀리를 노려보며 사납게 말했다.
“소년의 뒤에는 우리가 있다.”
그 말에 밀리 또한 한우성을 매섭게 노려봤다.
하지만 먼저 표정을 푼 것은 밀리였다.
그녀는 여유로움을 가장한 가증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헛웃음을 찼다.
“하! 재밌네? 그래…… 어디 한번 막아 봐.”
스르륵-
그렇게 밀리의 몸이 사라져갔다.
드디어 모든 상황이 끝난 것이다.
* * *
“끝났군…….”
밀리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한우성은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바라봤다.
그때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강화두가 입을 열었다.
“후…… 저 소년은 대체?”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때? 네가 보기에는?”
“후훗, 예전에 한 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친목회에 있기에는 아까운 인물이라고.”
“그래. 그렇지.”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돌린 한우성.
자연스레 강화두의 고개 또한 그곳을 향해 뒤따랐다.
아이들의 뒤에는 천운이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다.
의철을 포함한 이연과 이한은 무슨 귀신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껌벅거리며 천운을 보고 있었다.
그런 천운을 향해 의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하 진짜…….”
왠지 모르게 안심이 들었다.
고작 천운을 안 지 일주일밖에 안 됐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정이 들었을 줄이야.
천운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기분 좋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의철이였다.
“걱정했잖아. 죽은 줄 알아서.”
“다 생각이 있었지.”
천운은 의철을 향해 싱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 알지? 운 좋은 거?”
“어, 알지…… 어, 어?”
“왜 그래?”
의철은 한순간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넋이 나간 듯 천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멍하게 벌어진 입과 희번덕 떠진 눈동자.
한순간 의철은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들고 있었다.
“야, 야? 괜찮아? 갑자기 왜 그래?”
“어? 어, 어 그래 아니야 아무것도.”
“많이 피곤한가 보네.”
“그런가 봐.”
천운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천운이 한 말.
그 말이 연신 의철의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듯 울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처음 듣는 말이었으나 왜인지 모르는 익숙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알기로는 이 감각은 마치.
‘데자뷔?’
현재로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으나 말도 안 되는 감각이기도 했다.
천운을 안지 정확히 일주일밖에 안 됐으니 말이다.
“그럼 이제.”
그때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우성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그래. 많이 피곤한 건 알겠지만, 일단 상황 정리부터 하지.”
김천운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잠시 참고 말을 잇는 한우성이었다.
“너희들도 물어볼 것도 할 얘기도 많을 거 같으니 말이다. 안 그렇냐? 암 가문 꼬맹이들.”
꿀꺽- 침을 삼키며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이한과 이연.
그 괴한의 계략이었다고는 하나, 포스맨을 암살하려 했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강화두. 네 생각은 어때?”
“흠…… 일단 화원으로 들어가죠. 좀 무너지긴 했지만. 지하는 괜찮을 겁니다.”
강화두의 화원은 말 그대로 엉망이었다.
자신이 일으킨 힘의 반동을 포함해 이연과의 전투에서 크게 무너져 내렸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화원의 지하에는 작은 살림이 차려져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곳이 강화두의 집이였으며 생활공간이었다.
“그럼 들어가지…….”
강화두의 뒤를 따라 한우성과 아이들은 화원으로 들어갔다.
* * *
이한과 이연, 김의철은 얼떨떨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차를 좋아하나?”
포악하다고 정평난 그 포스맨이 자신들을 위해 차를 타 주고 있었다.
“저는 커피요.”
그 와중에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김천운이 커피를 주문했다.
그 말을 들은 강화두가 싱긋 웃으며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타 주었다.
“그것보다 화두야. 지하는 괜찮을 거라며?”
“생각해 보니 지하가 멀쩡한 게 더 이상하겠다고 중간에 생각났습니다.”
“그래. 솔직히 나도 그랬다.”
지면을 뒤흔들 지진을 일으킨 강화두의 힘이었다.
애초에 지하가 멀쩡한 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그래도 화원을 운영하는 위층보다는 나은 모습이었다.
망가진 것이라고 해 봤자 서랍에 무너진 책들과 깨진 접시들뿐이니 말이다.
“그럼…… 우리 할 얘기가 많지? 암 가문?”
그녀들을 향해 매섭게 노려보는 강화두.
그의 묵직한 말이 이한을 향했다.
“암 가문은 암살 의뢰도 하나?”
“예.”
“흠…… 그건 몰랐군. 우성 형님은 알고 계셨습니까?”
“어. 알고 있었어.”
“그렇다면…….”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턱을 매만지는 강화두.
그가 곧이어 입을 열었다.
“고위층 인사들의 암살 의뢰도 잘 들어오나?”
“……예.”
“그러냐…… 그럼 지금부터 하는 말에 한 치의 거짓도 없어야 할 거다.”
그의 몸에서 불운한 기세가 풍겨져 나왔다.
“내가 포스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나?”
그의 말에 고개를 푹 숙인 이한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몰랐습니다.”
“그 말을 내가 어떻게 믿지? 암 가문의 정보력으로는 날 알 수 있을 건데?”
“저 말은 사실일 거다 화두야.”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실임을 알린 것은 다름 아닌 한우성이었다.
“암 가문을 포함해 나머지 4대 가문에는 하나의 불문율이 존재한다.”
“그게 뭡니까?”
“친목회의 단원을 건드리지 말 것. 그리고 만약 건드린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가문에서 버려집니다.”
질문에 대답한 건 이한이었다.
이한은 그대로 일어서 강화두를 향해 크게 절을 하며 말을 이었다.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비록 그 괴한의 계략이었다고는 하나 암살 의뢰를 수락한 저에게도 잘못이 있습니다. 포스맨 님.”
이한이 간청하듯 말을 이었다.
“부디 제 목숨 하나만으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언니!”
“…….”
“잠깐 기다려라 얘들아. 그리고 이한이라고 했나? 너는 고개 좀 들고.”
그러나 이한은 자리에서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에 당혹스러운 강화두였다.
‘허, 참…… 고작 17살 꼬맹이가 짊어진 게 많군. 하지만.’
어이가 없었다.
자신을 암살하려 했던 이유 때문이 아니다.
고작 17살 애들에게 암살을 시키는 미친 가문이라…….
‘이 아이들은 분명 직계일 게 분명할 터. 자신의 딸들에게 무참하게 암살 의뢰를 시킨다고?’
거대한 덩치와 비례하듯 포악하다고 소문난 생김새와 달리 누구보다 도덕적이며 평화로운 사내가 강화두였다.
그런 그는 암 가문이 운영하는 암살에 더 없이 이해가 안 됐다.
고작 17살 아이들이었다.
그런 아이들이 가문의 무게를 짊어진다며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내놓고 있었다.
‘가문이 미쳐 돌아가는군.’
용납할 수 없는 상황에 생각에 잠긴 강화두가 잠시 후 이한을 보며 말했다.
“그래 네 말은 잘 알아들었다. 하지만 너와 이야기할 게 아닌 거 같구나.”
“예?”
“오늘은 늦었으니 돌아가거라. 돌아갈 곳이 없다면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가거라. 우성 형님.”
“왜 그래?”
“잠시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