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62
“크하하! 죽여주는군! 이 힘!”
강화두를 꿇린 비란은 팔을 활짝 펼치며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그 포스맨을 꿇리는 힘이라니 네 말이 맞았군. 밀리.”
“방심하지 마. 비란.”
“그래, 그래야지…….”
황색의 망토, ‘밀리’의 말대로 그의 눈매가 다시 매섭게 변했다.
활짝 핀 팔과 주먹에 서서히 힘이 들어가는 비란.
그대로 무릎을 꿇고 있는 강화두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쿵!!
팔을 들어 올려 내리친 주먹을 막아 낸 강화두.
힘의 여파로 지면이 움푹 파인 것을 확인한 강화두가 경악하고 있었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그의 힘은 강화두의 예상을 웃돌았다.
언더의 간부를 조심하라는 우성 형님의 말이 떠올랐다.
아마 유독 튀는 색깔을 보니 이자는 간부가 분명했다.
“크하하하하! 밀리! 너는 애들을 맡아라. 내가 이놈을 잡고 있겠다.”
“명령하지 마! 실험용 주제에…… 내가 알아서 할게.”
“크흐흐, 알겠다.”
“크윽!”
대화를 들은 강화두의 안색이 심각하게 구겨졌다.
강화두는 곧장 아이들을 향해 움직이려 했으나 그렇게 놔둘 비란이 아니었다.
비란은 강화두의 앞을 막아서며 자신이 입고 있던 망토를 들쳤다.
모습을 드러낸 그의 모습은 온몸에 흉터가 가득한 민머리의 사내였다.
그가 강화두를 보며 물었다.
“포스맨이여…… 나를 기억하나?”
“누구냐?”
훙!! 팍!!
말과 동시에 나간 강화두의 어퍼컷.
정확히 배를 노린 펀치는 그의 몸에 적중했지만.
“크하하하! 뭐, 그렇겠지. 그저 네놈에게 잡힌 쓰레기 빌런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비란의 몸은 충격을 흡수하듯 충격을 받은 배를 중심으로 꿀렁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힘의 충격을 흡수한 비란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강화두를 바라봤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씨익-
비란의 표정에 미간을 좁히는 강화두였다.
이후 강화두의 연격이 이어졌지만, 모든 충격을 흡수하는 비란에게 큰 타격은 없었다.
‘충격 흡수…… 놈의 고유 스킬인가 보군.’
“크하하하! 이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군. 포스맨! 네놈을 힘으로 이기는 날이 말이야.”
“골치 아프군.”
다급한 마음에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돌린 강화두.
괴한들은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었으나 움직이지는 않았다.
‘녀석이 노리는 건 아무래도 나겠지. 하지만…….’
황색은 그저 상황을 관망하고 있으며 아이들을 둘러싼 괴한들 또한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은 곧 황색은 아이들을 인질로 잡고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크윽…….’
황색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내 앞의 비란이란 녀석과 동등하겠지…….
‘앞뒤가 막혔군.’
그때였다.
“아저씨!”
“응?”
“저희는 신경 쓰지 마세요!”
손을 번쩍 들어 무언가를 알리는 김천운.
천운의 손에는 웬 딸깍이가 하나 들려져 있었다.
“뭐냐 저건?”
의문스러운 말을 뱉는 것은 비란이었다.
그와 반대로 강화두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확실히 형님이 저 아이를 아끼기는 하네.’
* * *
강화두와 비란의 대치가 이어지는 와중.
둘러싼 괴한들이 각자의 병장기를 현현하여 위협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황색의 밀리는 천운을 바라보며 호기심을 보였다.
“넌 뭐지? 네 계획을 방해한 거기 곱슬머리.”
“말해 줄 거 같아? 임산부 아줌마.”
천운의 말에 놀란 듯 동공이 커지는 밀리.
그녀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천운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흐음? 임산부 아줌마라……. 어디까지 알고 있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 애초에 강화두 아저씨가 불륜이라니 말이 안 되거든.”
내 말이 의미심장한지 고개를 돌려 질문을 하는 이한이었다.
“저, 저기 그게 무슨 말이야?”
그녀의 말투가 떨리고 있었다.
천운의 말에 이한 또한 무언가를 짐짓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한의 말에 천운은 그저 담담히 사실을 말했다.
“말 그대로. 저놈이 너한테 의뢰한 의뢰주야.”
천운의 말에 희번덕 떠진 눈.
자신의 짐작대로였다.
“그럼 설마 일부러…….”
“가문의 직계와 포스맨을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으니까.”
언더의 황색 ‘밀리’.
그녀의 계략으로 포스맨과 대치하게 된 이한.
마력이 없는 포스맨으로서 공명을 못 느끼니 모든 것을 치밀하게 계산한 그녀의 계략이었다.
그런 이한을 구하고 황색의 계략을 저지하는 게 김의철이지만 현재 스토리와 다른 점은 이 스토리는 길영트의 1학년 2학기 시점에 시작되는 스토리였다.
어느 정도 미리 방지하려 준비는 해놨지만 이렇게 일찍 사건이 터질 줄은 예상 못 했다.
이미 뒤틀린 시나리오라는 걸 인지했어야 했다.
동시에 문제가 있다면.
‘의철은 아직 성장하지 않았어.’
김의철뿐만이 아니었다.
이한과 이연.
그녀들도 중반부와 비교하면 스탯과 기량이 극명하게 갈리니 말이다.
말 그대로 지금의 기량으로 밀리와 싸울 힘이 없었다.
동시에 부상을 입은 이한과 이연이었다.
나와 의철 또한 던전을 공략하고 이곳으로 달려왔으니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누가 봐도 절망적인 상황.
하지만 내게는 그것이 있었다.
“아저씨!”
곧장 포스맨을 부르는 천운이었다.
동시에 병장기를 들고 있던 언더들이 움직였다.
밀리는 여유가 넘치다 못해 흘러나와 상황을 계속 지켜볼 심산이었다.
“저희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나 그 여유가 곧 독으로 돌아올 것이다.
딸깍-
* * *
휘이잉~
휘몰아치는 산바람이 쌀쌀맞은 그곳.
한우성은 자신의 전 동료였던 준이치를 산 정상에 묻어 주었다.
“이만 가자. 할 거 다 끝났어.”
그저 형식적인 무덤이었다.
준이치에게 느끼는 동료애는 없었으니 말이다.
한우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크롬벨이 손을 뻗자 허공에서 게이트가 열렸다.
그녀의 고유 스킬인 ‘게이트’는 희귀한 측에 속한다.
다른 신체를 각성하는 아베타들의 고유 스킬과 달리 게이트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동시에 그녀를 제외한 세간에선 아직 2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고유 스킬이지만 후에 그녀를 포함해 4명으로 늘어날 예정이었다.
‘크롬벨은 둘째 치고 언더의 그놈도 모습을 드러내겠지.’
과거 쇼핑몰 테러 사건에 자주색 망토의 시체를 가져간 그놈.
그때는 갱신받은 기억이 없어 몰랐지만, 이번 연도의 기억으로 녀석의 정체를 알아낸 한우성이었다.
‘생각보다 성가신 녀석들이 많군. 응?’
그때였다.
“이건…… 크롬벨. 신기술이야?”
한우성의 몸이 서서히 어딘가로 이동되듯 사라지고 있었다.
한우성의 말에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휘젓는 크롬벨.
그녀 또한 알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래? 그럼 뭐야 이건…… 아! 그건가?”
갑자기 떠오른 게 있던 한우성은 크롬벨을 보며 말했다.
“먼저 가서 쉬어. 난 잠시 어디 들렀다 갈 테니까.”
한우성의 말에 그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이는 크롬벨.
이후 한우성의 신형은 어딘가로 이동되듯 사라졌다.
잠시 눈을 감은 한우성.
한순간에 여러 빛이 눈을 어지럽혀 정신이 사나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장 그대로 한순간이었다.
곧 이동이 끝났다는 것을 인지한 한우성이 눈을 떴을 땐.
“과연…… 나를 부를 만했다는 거네? 천운아.”
아이들과 대치 중인 언더.
그리고 그 뒤에서 여유롭게 상황을 갈망하는 황색의 밀리.
밀리는 갑작스러운 한우성의 등장에 미간을 좁혔다.
“……한우성?”
* * *
“좋아. 그럼…….”
휘릭-
한우성의 검지가 아이들과 대치 중인 괴한들을 향했다.
그가 손가락을 까딱하자, 아이들을 둘러싼 괴한들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천운을 포함한 아이들은 그저 그 상황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뭐야?”
“한우성 아저씨의 고유 스킬.”
“아저씨라면…… 헉! S급 1위 한우성이다!”
의철은 공중에 떠오른 괴한과 한우성을 번갈아 보고 신기해했으며 아직도 상황 파악이 덜 된 이한과 이연은 그저 멍하니 입을 벌리고 놀라고 있었다.
“흐음~ 설마 한우성이 올 줄이야. 작전 실패네? 비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밀리가 비란을 불렀다.
강화두와 두 손을 맞잡고 밀어붙이며 힘 싸움을 벌이던 비란이었다.
비란이 고개를 돌리자 그의 안색이 시퍼렇게 질려 있었다.
“한우성?”
“크흐흐, 하하하! 형님!!”
동시에 호탕하게 웃으며 한우성을 부르는 강화두.
강화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던 한우성이었다.
“그래. 애들 주위의 공간 전체를 강화해 놨다. 마음대로 해 봐.”
“감사합니다! 형님!”
그것이 시작이었다.
강화두의 모든 근육이 꿈틀거리고 패도적인 기세를 풍기며 모든 몸 전체가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몸은 달아오르는 듯 붉은빛을 띠었으며 무언가 증발하듯 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의 눈이 붉게 충혈되어 비란을 매섭게 노려봤으며 씨익 벌어진 미소는 과연 과거 빌런이라 오해받을 만한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손대중해서 미안하다…….”
빠드득!!
“크아아아악!!”
강화두는 맞잡고 있던 비란의 손을 꽉 쥐어 뭉그러트렸다.
살이 터지며 피가 튀고 뼈가 뭉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비란.
고유 스킬인 충격 흡수로는 도저히 전부를 흡수할 수 없는 파워였다.
“큭! 네놈!!”
“내가 전력을 발휘하면 이렇게 되니 말이다.”
그 순간.
쿠쿠쿠쿠쿠쿠쿠쿵!!!
땅이 흔들렸다.
쿠쿠쿠쿠쿠쿠쿠쿠 콰! 쾅!!
지면을 뒤흔드는 충격.
그 중심에 서 있는 강화두의 발밑을 시작으로 균열이 번져 나갔다.
한우성의 마법으로 주변을 감싸 고정 및 강화를 했음에도 부서지는 지면이었다.
“어이…….”
그의 진심이 비란을 향했다.
“지금도 네 놈이 누군지 기억도 안 나지만.”
팔을 좌우로 쭉- 벌려 활짝 핀 손.
“앞으로도 네 놈을 기억하지 못할 거다.”
짝!!
빠드득-
그의 활짝 펴진 손바닥은 비란의 머리를 향했고 동시에 무언가 뭉개지는 소리가 주위를 감쌌다.
강화두의 손바닥을 중심으로 한순간 공간이 일렁이는 느낌이었다.
파아앙!
보이지 않은 파공음이 주위에 번져 나갔으며 공간 안에 비란을 제외한 그 누구도 곧바로 느낄 수 있는 풍압이 불었다.
이 파워를 정면에서 맛본 비란은 그것을 느끼기도 전에 절명했을 것이다.
후우웅…….
“끝났군.”
몸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잦아들었다.
부풀려진 몸은 본래 상태로 돌아왔으며 그는 다시 매섭게 고개를 돌려 밀리를 노려봤다.
밀리 또한 흥미로운 시선으로 강화두를 보고 있었다.
“우성 형님. 저 녀석은 어떻게 합니까?”
“내가 맡을 게 너는 아이들과 쉬고 있어.”
한우성의 몸이 동시에 떠오르며 밀리를 향했다.
자못 여유롭게 팔짱을 끼며 도도하게 서 있는 밀리.
한우성이 그녀에게 입을 열었다.
“황색의 밀리. 여전하군.”
“우리…… 초면이 아닌가?”
“그래. 그렇겠지.”
한우성이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역시…… 여우같은 계집이네.’
무언가를 알아차린 한우성은 포기한 채 손을 내렸다.
“어머? 봐주는 거야?”
“여전히 간교하군.”
“우후훗.”
밀리의 여유로움에는 이유가 있었다.
애초에 그녀는 이 장소에 오지도 않았다.
눈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것은 그녀가 만들어 낸 환영에 불과했다.
“네년은 과거에도 항상 골치 아팠지.”
미래를 바꾸는 자.
한우성이 칭하는 나비 중에 그녀만큼 다양한 미래와 변수를 만드는 녀석은 없었다.
동시에 과거의 한 번은 자신을 몰아세운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회귀 때마다 그녀의 전략은 바뀌며 다양했지.’
과거에 몇 번은 그녀를 자신 쪽으로 끌어들이려 시도한 적이 있었으나.
헛수고였다.
그녀의 이상과 자신의 이상의 확고한 차이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보다 이렇게 그냥 도망가는 것도 좀 그렇네?”
“그럼 다시 오든가.”
“그건 무리고 대신 선물을 줄게.”
그녀는 검지는 들어 올려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한우성.
그녀가 손짓 한 방향에는 강화두를 포함한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변이 일어났다.
빠득-
뿌드득-
빠각-
공중에서 넋을 놓고 있던 망토 무리의 몸에서 들리는 기이한 뼈의 뒤틀림 소리.
축 늘어진 그들의 몸에서 자주색의 끈적한 실이 튀어나와 서로를 연결하고 한데 모이기 시작했다. 뭉쳐진 그들의 몸은 흐느적 녹아내리며 자주색의 둥근 액체로 일변하고 있었다.
“설마…… 저건?!”
기이잉!
동시에 들리는 굉음과 자주색으로 발광하며 부풀어 오르는 액체.
“이런……. 강화두!!!”
크게 당황하며 강화두를 외치는 한우성.
그런 그를 바라보는 밀리의 입가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못 구할걸? 위력만큼은 자신 있거든. 저 포스맨의 근육도 찢어 버릴 자신이 말이야.”
폭탄의 제작자만큼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녀가 제작한 폭탄의 위력은 과거에도 한 번 강화두를 죽였으니 말이다.
일대를 저 빛으로 감싸 무로 되돌리는 폭탄.
그녀가 주로 사용하는 자광탄이었다. 하지만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한우성은 저런 식으로 제작되는 폭탄일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목숨을 불태워 만든 폭탄이라니…….
아직 기억에도 없는 제조법이었다.
위이이잉!
“강화두!!”
“예, 예?”
“아이들을 데리고 떨어져!! 빨리!!”
번쩍-
그것이 자주색 빛을 내뿜으며 폭발하려는 순간.
“어?! 너, 너 뭐 하는 거야! 멈춰! 김천운!”
김천운이 그 빛을 향해 급히 뛰어들고 있었다.
한우성은 급하게 말렸으며 강화두와 다른 아이들 또한 희번덕 떠진 눈으로 천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달려든 천운은 그 빛에 먹혔으며.
팡!!
동시에 반구의 푸른 결계가 생성되며 충격을 막아섰다.
‘설마!’
한우성은 그 결계가 김천운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마법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