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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 속 운만렙 캐릭터가 되었다-62화 (62/176)

제62화

#61

일본의 어느 높은 산의 정상.

과거 기타다키산이라 불린 이 산에서는 마기에 전 마수들이 산을 헤집으며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산의 정상.

그곳만큼은 아무리 이지가 없는 마수라 하여도 쉽사리 선을 넘지 못했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정상으로 올라오라는 개방된 기운과 동시에 물씬 풍기는 살기와 피 냄새.

올라올 수 있는 마수들은 언제든 도전하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그리고 그런 산의 정상.

“흠…… 이제는 안 올라오는군…….”

흑색의 키나가시를 입은 붉은 장발의 남자가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가 바로 친목회의 검귀 ‘타카타 준이치’였다.

‘이제 슬슬 하산할 때가 됐나……? 응?’

아래를 내려다보던 그의 시선이 뒤를 향했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하나의 게이트였다.

연푸른색이 일렁이는 게이트.

이 게이트의 주인은 자신도 잘 아는 인물이었다.

“크롬벨?”

“나다. 준이치.”

그러나 예상한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게이트 너머에서 들려왔다.

아니, 애초에 크롬벨은 말을 잘 안 한다.

“어? 대장?”

“한국어가 많이 늘었네. 준이치.”

“대장이 여긴 어쩐 일이야?”

저벅저벅-

한우성의 발걸음은 준이치를 향했고 뒤이어 크롬벨 또한 게이트를 나와 준이치를 향했다.

크롬벨의 손에는 주먹만 한 녹색의 수정구가 달린 기다란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세계수의 지팡이? 저건 웬만한 전투가 아닌 이상 꺼내 들지 않을 텐데?’

의아한 표정으로 한우성을 바라보는 준이치.

한우성의 표정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자신 또한 싱긋- 한우성에게 웃음을 건네며 입을 열었다.

“대장. 오실 거면 미리 연락이라도 하지.”

“준이치. 다 알고 왔다.”

“어?”

“다 알고 왔다고.”

한우성을 보는 준이치의 눈이 좁혀졌다.

잠시 한우성의 말이 이해가 안 되는 준이치였다.

“뭘 말이야 대장?”

“언더 쪽으로 붙었군.”

“대장?”

“연기 그만해도 된다.”

“허…….”

준이치의 미간이 좁혀졌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기색이었다.

준이치는 반대로 한우성에게 담담하게 질문했다.

“어떻게 알았어?”

“하…… 준이치.”

한우성의 눈매가 날카로워지며 준이치를 쏘아보았다.

“이번 회차는 꽝이구나.”

“무슨 소리야?”

“넌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거다.”

준이치는 평생을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한우성을 바라봤다.

막상 한우성은 준이치를 보며 낭패를 느끼고 있었다.

‘여전히 랜덤이네. 이 녀석은…….’

준이치 또한 친목회에 소속된 나비였다.

그런 준이치의 미래는 정확히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하나는 자신을 배신하지 않고 친목회에 도움이 되거나, 다른 하나는 친목회를 배신하여 언더에 소속되거나.

그리고 언더를 선택한 이번 생에 놈은…….

‘후에 자주색이 되겠지.’

간부 중 하나인 자주색의 죽음은 어느 과거라도 필연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놈의 빈자리를 차지하는 게 배신한 준이치 저놈이었다.

문제는 배신한 이유가 저놈의 신념과 관계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을 알려도 변하지는 않겠지.

“준이치. 또 속았나 보네?”

“속아? 속다니 대장. 난 현실적으로 미래를 생각해서 선택한 거야.”

“하…… 준이치 너는 우직하며 항상 미래를 생각했지. 하지만 길게 생각을 못 하더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준이치를 노려보는 한우성.

한우성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이런 말을 했겠지. 마수의 걱정 없이 사람들이 평온하게 살 방법이 있다고. 그리고 그런 세상을 자신이 만들겠다고.”

준이치의 눈이 희번덕 떠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순간의 당황이었다.

다시 한우성을 노려보는 준이치.

준이치가 입을 열었다.

“그래. 그 방법이 마기로 각성하는 거지.”

“맞아. 사실이긴 해.”

“그럼 뭐가 틀렸다는 거지!”

한우성의 들어 올려진 손이 준이치를 향했다.

들어 올려진 손은 허공을 움켜쥐었으며 준이치의 몸이 점점 공중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동시에 떠오른 준이치가 허공에서 바둥거리며 고통으로 신음을 흘렸다.

“끅! 커헉!”

‘목! 목이! 숨!’

보이지 않은 무언가가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 들어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 무언가의 정체를 알아차린 준이치였다.

‘대, 대장의 고유 스킬?!’

“길게 생각하면 간단하게 떠오를 수 있다. 준이치.”

점점 힘이 들어가는 한우성의 손.

한우성은 그저 준이치를 무심하게 노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마기로 각성하면 그야 마수의 걱정 없이 평온한 삶을 살 수 있겠지.”

“윽! 크학!”

꽈아악!

“하지만 각성을 못 한 일반인은 버려진다.”

“큭! 소수의 희생이 다수를 살릴 수 있어!!”

“그래, 그렇다고 놈들이 그 약속을 지킬 거 같나?”

“언더의 수장과 사슬의 계약을 했다고!”

“그놈의 능력상 계약은 안 통할 거다. 그리고 그놈이.”

한우성의 서슬 퍼런 안광이 준이치를 향했다.

허망한 표정을 짓는 준이치.

그러나 한우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실을 고했다.

“그 말을 지킬 리가 없잖아?”

“그럴, 그럴 리가 없…….”

뿌득-

무언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없…… 어…….”

그것이 준이치의 마지막 말이었다.

준이치의 숨통이 끊어진 것을 확인한 한우성이 준이치의 시신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의 죽음을 아는 존재는 한우성과 그와 함께 있던 크롬벨뿐이었다.

“그걸로 된 거야?”

한우성의 뒤에 있던 크롬벨이 작은 목소리로 한우성에게 물었다.

한우성의 공허한 눈매는 준이치를 보고 있었다.

“그래. 이놈은 이미 친목회의 정보를 놈들에게 퍼트렸어. 너도 몸조심해 크롬벨.”

“너는?”

“나는 괜찮아.”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니야.”

“…….”

뒤돌아선 한우성의 시선은 크롬벨을 향했다.

마찬가지로 크롬벨도 한우성을 보고 있었다.

그런 크롬벨이 한우성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기분은 어때?”

한우성은 크롬벨의 물음에 그저 묵묵히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나 끝내 천천히 입을 여는 한우성이었다.

“……더러워, 굉장히…….”

말은 그렇게 했으나 감정은 무감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그렇게 속여 넘길 수밖에 없었다.

방금 동료를 죽이고 느껴지는 감정은 자신 또한 크게 잘못됐음을 알고 있었기에…….

* * *

“네놈들도 동료애가 있었군. 언더.”

“크윽…….”

언더.

그는 아까부터 자신을 그런 식으로 부르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이한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을 암 가문이 보낸 암살자라고 소개할 수도 없는 노릇.

어떻게 보면 그가 오해하고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 이한이었다.

“정보를 토해 낼 때까지 살려 두겠다. 말해라.”

이한의 목을 잡은 채 들어 올린 강화두.

그의 매서운 눈매가 이한을 향했다.

마력이 느껴지지 않은 그였지만 알 수 없는 패도적인 기운이 이한을 덮치고 있었다.

두려움에 몸이 떨렸다.

두려움을 없애거나 숨기는 훈련을 버텨 온 이한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니었다.

당장 자신이 해야 할 행동 또한 두려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연아…… 미안해…….’

그녀의 복면 안에 드리운 칠흑의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하나의 작은 알약이 서서히 올라왔다.

이한은 그림자를 조종해 알약을 벌린 입 안으로 넣었다.

곧바로 알약을 깨물려는 순간.

“응? 허…….”

훅!

“우붑!”

낌새를 눈치챈 강화두가 그녀의 볼을 검지와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억지로 입을 벌리게 만들었다.

고유 스킬인 파워 스캔으로 그녀의 심정까지 알 수 있던 강화두이기에 그녀가 자결하려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정보를 토해 낼 때까지 죽이지 않겠다……. 말해라!”

“큭…….”

그때였다.

“암 가문입니다.”

“응?”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강화두.

그곳에는 울먹이는 소녀와 두 명의 소년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의 반 곱슬머리.

“암 가문이에요.”

“너는 분명……?”

김천운이 자신을 향해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연아! 저 녀석 입을 막아! 빨리!”

이한은 마지막 온 힘을 쥐어짜 내 이연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이연은 주먹을 꽉 쥔 채 말없이 울먹이며 천운의 옆에 서 있었다.

천운은 그저 강화두를 향해 말을 이었다.

“두 녀석은 암 가문이에요. 포스맨 아저씨.”

“너는 분명 김천운이군. 네가 어떻게 여길……. 그것보다 암 가문이라니?”

“4대 가문의 암 가문이요.”

“암 가문이라…… 그럼 얘들은 언더가 아니라고?”

“네. 맞아요.”

“허 거참.”

허탈한 마음에 혀를 차며 이한을 서서히 내려놓는 강화두였다.

그러자 이한은 곧장 분노하여 천운에게 달려들었다.

“네가! 네가 무슨 짓을 한지 알아!”

“언니!”

곧바로 이한의 앞을 이연이 막아섰다.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그저 이한을 바라보며 울분을 토하듯 말을 내뱉었다.

“이제 됐잖아 그만해!”

“가문이 걸린 일이야!”

“그 가문이 언니를 버렸다고!”

“후…… 그만…….”

상황을 갈망하던 강화두가 정신이 사나운지 머리를 부여잡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네놈들은 암 가문이라는 거군. 설마 그 자산가 놈들이 암살도 할 줄이야.”

“윽……!”

“무엇보다 너희들 나이가…… 아니, 됐다……. 예상이 가니까.”

골칫거리군…….

암살자가 찾아왔다는 말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원한을 사고 노려졌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저 아이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애들일 줄이야. 그저 몸짓이 작은 놈들이라 생각했는데.’

어쩐지 작은 키와 애티가 나는 목소리였다.

그럼 자신은 고작 애들을 상대로 자신의 무력을 행사했다는 건가?

어이가 없군…….

그렇다 하여도.

“모든 사실을 바른대로 말해야 할 거다. 애들이라 해도 내 목숨을 노렸으니 말이다. 내 직접 가문에 찾아가는 일이 없어야 할 거다 얘들아.”

불끈- 쥐어진 그의 주먹이 기이하게 뒤틀리며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말투는 분노에 차듯 곤두서 있었으며 알 수 없는 위협을 내뿜고 있었다.

협박에 가까운 말이었다.

물론 연기지만.

천운은 곧장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물론 너도 마찬가지다 김천운.”

“예? 저도요?”

“그래. 너 또한 뭔가를 알고 있는 거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어차피 그럴 생각이었다.

물론 이 상황이 끝나면 말이다.

“응? 뭐야?”

먼저 눈치를 챈 것은 김의철이었다.

강하게 울리는 공명 현상.

자신의 마력이 어디선가 다가오는 마기에 반응하고 있었다.

그것은 곧 강화두를 제외한 3명 또한 느낄 수 있는 현상이었다.

그런 아이들의 반응에 강화두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질문했다.

“왜 그러지?”

“공명 현상…….”

너무나 갑작스러운 공명이었다.

4명의 고개는 마기가 느껴지는 방향을 향했다.

강화두 또한 자연스레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 저것들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발판 삼아 허공에 떠올라 있는 그들.

망토를 뒤집어쓴 괴한들이 강화두를 포함한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무리의 중심에는 더욱 튀는 색깔인 청색과 황색의 망토가 서 있었다.

그들이 뒤집어쓴 후드의 그림자가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허…… 거참 설마 저놈들이?”

그들의 중심.

황색의 그녀는 강화두를 보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 * *

“저놈이 포스맨인가?”

“그래.”

“크흐흐, 저놈은 내가 맡지.”

“그러려고 너를 데려온 거야 비란.”

“크흐흐흐, 아이들을 맡아라 밀리.”

그 말과 함께 청색의 망토 ‘비란’이 허공에서 내려와 강화두를 향했다.

쿵!

파사삭!

지면을 착지한 비란을 중심으로 바닥이 거미집 형태로 움푹 파였다.

비란은 아랑곳하지 않고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강화두를 향해 다가갔다.

터벅터벅 다가오는 그의 발걸음에는 언뜻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무겁군…….’

그의 걸음걸이만 봐도 그의 힘을 대강 알 수 있던 강화두였다.

몸집 이상의 중량이 느껴지는 무거운 발걸음이었다.

그리고 그가 강화두의 목전에 섰을 때.

훙!!

풀 스윙을 한 묵직한 주먹이 강화두의 얼굴을 향해 휘둘러졌다.

강화두는 그저 피할 생각 없이 맞아 줄 생각이었다.

몸의 튼튼함과 힘에서 나오는 여유였지만.

쿵!!

털썩-

골을 뒤흔드는 충격과 함께, 자신은 어느샌가 무릎을 꿇은 채 땅을 짚고 있었다.

“큭!”

강화두가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 황색의 입가에는 서서히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 상황을 지켜본 천운의 미간은 심각하게 좁혀지기 시작했다.

‘역시…….’

현재로선 비란의 힘은 강화두를 압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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