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화
#56
시험을 치르던 모든 응시생은 돔으로 이동되는 동시에 2박 3일이라는 험난한 2차 시험이 막을 내렸다.
“자! 돔 안에 남아 있는 응시생분들은 여길 집중해 주세요!”
이서린 교관은 단상 위에 올라와 통과한 응시생들을 통솔하며 앞으로의 일정을 알려 주었다.
“통과한 응시생. 아니, 생도들은 하루 정도의 휴일이 주어집니다. 반 배정과 순위 등급은 차후에 문자로 알려지니 오늘은 편히 기숙사 또는 집으로 귀가하시면 되겠습니다.”
그 말의 끝으로 살아남은 응시생들은 통과하여 생도라는 자격이 주어졌으며 기쁨을 호소했다.
돔 밖에서는 우글거리는 기자들이 대기했으며 통과한 응시생의 학부모들 또한 통과한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요란하고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막막하여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인물이 있었다.
‘미치겠군.’
시험이 종료되고 합격했음에도 윤시혁의 마음은 더없이 심란했다.
자신도 과거에 한 번쯤은 생각해 본 의문이었다.
그리고 이내 가볍게 여기고 잊어버린 기억이었다.
윤시혁의 힘없는 발걸음은 길영트의 정문을 향했고.
“윤시혁 씨 합격 소감이 어떠십니까?”
“저, 저기 윤시혁 씨?”
붙어 다니는 기자들의 무리를 힘으로 떨쳐 내거나 무시하는 윤시혁이었다.
그의 발은 언제부터인가 정문에 도착해 있었고 윤시혁을 기다리는 리무진 한 대가 주차돼 있었다. 윤시혁은 별말 없이 차 문을 열고 탑승했다.
“본가로 가자.”
“예, 예? 혹시 죄송합니다만…….”
“본가로 가자고 말했다.”
기별 없이 본가로 가자는 윤시혁의 말에 당황한 고용인이었다.
현 검성 가문의 가주이자 조부인 그분과 윤시혁의 사이가 틀어진 이후 윤시혁은 3년간 본가 발을 들인 적이 없었다.
그런 윤시혁이 초췌해진 얼굴과 평소와 다른 힘없는 말투로 본가에 가자고 말했다.
무언가 2차 시험 도중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고용인은 별말 없이 주인인 윤시혁의 말을 따랐고 본가를 향해 운전대를 돌리고 있었다.
* * *
사내들의 기합 소리와 칼이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가 울리는 연무장과 그 옆에 고풍스러운 기와집.
그곳에 윤시혁은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곧이어 어느 방문 앞에 멈춰 선 윤시혁.
방문 앞에선 검을 차고 문을 막듯 서 있는 금발의 소녀가 서 있었다.
“가주께서는 안에 계시나?”
“계시긴 합니다만…….”
“비켜라.”
그녀는 눈을 감고 그저 문 앞을 막아서듯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순간 윤시혁의 표정이 서늘하게 가라앉았으나 잠시 감정을 접어두고 묵묵하게 이어 말했다.
“급히 볼 일이 있어서다.”
“가주께서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 하셨습니다만…….”
잠시 윤시혁의 얼굴을 흘겨본 소녀.
늘어선 다크서클과 초췌해진 얼굴.
무언가 답답하게 막혀 고뇌하고 있는 게 눈에 선명했다.
“피로가 쌓인 듯한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내 몸 상태보다 중요한 볼일이다. 비켜라.”
“……알겠습니다.”
윤시혁을 유심히 바라본 소녀는 이내 한 발짝 옆으로 물러나 자리를 비켜 주었다.
윤시혁은 그저 담담하게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선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는 노년의 사내가 있었다.
흰색 의복에 백발 흰머리가 늘어선 고령의 남자.
그러나 풍기는 기세와 위압은 막연히 80세의 노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가 바로 검성 가문의 가주이자 현 세간에선 검성으로 불리는 윤성훈이었다.
“3년 만입니다. 할아버지.”
할아버님이라는 울림에 그의 눈이 서서히 떠지고 있었다.
서늘하며 날카로운 눈매가 윤시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할아버지라고?”
“예.”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던 것이냐?”
조용하고 무겁게 울리는 검성의 말.
손자의 변화에 의문이 든 검성이었다.
거의 3년 만에 들어 보는 말이었다.
관계가 틀어진 이후로 들어 보는 할아버지라는 호칭에 항상 냉정하게 평정을 유지하던 검성의 미간이 꿈틀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앉거라.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으니.”
“예.”
조부를 마주 보며 방석에 앉는 윤시혁.
먼저 입을 연 것은 검성이었다.
“많이 피로해 보이는구나.”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무슨 일로 찾아왔느냐.”
윤시혁은 조부의 물음에 잠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선 과거의 의문과 더불어 사고의 침전물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한 가지 알 수 있던 사실은 할아버지는 어느 때라도 자신을 검성이라고 지칭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물어보겠습니다.”
“뭘 말이냐?”
윤시혁은 고개를 숙이고 마주 보던 시선을 거두며 힘없이 말을 이었다.
“70년 전 던전에서 발견된 가문의 비보 ‘검성의 문헌’……. 그것을 읽고 난 뒤 그저 어릴 때의 호기심이었습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게냐.”
“문헌에는 그저 그의 위업과 기량만이 상세하게 적혀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의 할아버지와 극명하게 차이가 났습니다.”
“…….”
“허황된 거짓 속에 자긍심을 가지고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저…… 사실을 알고 싶습니다.”
사실…… 사실이라…….
윤시혁의 말을 되새김질하듯 몇 번이고 읊조리는 검성.
그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구한테 들은 것이냐 아니면 혼자만의 힘으로 알아차린 것이냐.”
“그 말은 설마…….”
“그래.”
고개를 들며 다시 조부를 바라보는 윤시혁.
조부의 표정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나는…… 검성이 아니다. 그 영역에 도달하지도 못했다.”
“왜…….”
으득-
미간이 좁혀지며 조부를 노려보는 윤시혁.
윤시혁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내뱉듯 소리치고 있었다.
“왜 사실을 날조하신 겁니까!”
“날조하지 않았다 믿어 주지 않았을 뿐. 실제로도 나 이상의 경지에 오른 자는 없었지, 그러나 차마 이 경지를 검성이라 부르기도 부끄럽구나.”
“그게 무슨 말입니까?”
“과거의 너라면 이런 내 말을 모욕으로 들었겠지. 너를 후계자로 삼지 않은 명분으로 생각해서 말이다. 나는 검성이 아니다 라는 말을 네놈이 쉽게 믿지도 않았을 게 분명했다.”
그의 말에 대꾸 없이 입을 꾹 닫는 윤시혁이었다.
할아버지의 말이 맞았다.
과거의 자신은 가문과 검성인 할아버지를 긍지 삼아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니 말이다.
할아버지가 검성이 아니었다는 말은 믿기도 싫었으며 분명 자신을 우롱한다고 생각했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분명…….
“믿겠습니다.”
믿을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의 말은 진중하였으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침전물들이 사실임을 강조하니 말이다.
“네게 사실을 빨리 알렸어야 했다.”
“어차피 빨리 알리셨어도 그때의 저라면 안 믿었을 겁니다.”
“……많이 바뀌었구나.”
언제부턴가 검성의 기세는 누그러지고 있었다.
‘후회도 막연히 들었다.’
과연 이 선택이 옳은 길인가 말이다.
이 아이의 자긍심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였을까 자신의 한계를 눈치채고 그것은 자신이 몇십 년을 쏟아부은 검술에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어떻게 사실을 말할 수 있었을까…….
방법이 생각나지 않으니 억지로라도 이 검술로부터 손자를 떨어트릴 수밖에 없었다.
설령 안 좋은 결과로 이어져도.
그리고 그것은 현실로 이어졌다.
3년간의 손자와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기에는 너무 멀어졌으며 그럴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항상 가문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긍지를 가지고 사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에게 자신은 검성이 아니라는 말을 쉽게 믿어 줄 리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었던 건.
“저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은 것도 그 이유였습니까?”
“그래.”
자신의 기술은 전수하지 않는 것…… 그뿐이었다.
이것은 극에 도달하기도 전 끝을 보인 실패한 검술이었다.
벼랑 끝인 길을 걷는 것은 자신만으로 충분하다.
“왜…….”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윤시혁은 비통하게 숨을 삼키며 물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동경하던 할아버지이자 검성이었다.
그리하여 자신을 인정하지 않은 할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으며 또한 할아버지가 주장하는 말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든 사실이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쾅!
주먹을 꽉 말아진 손은 바닥을 내리쳤으며 분통함에 눈물이 흐르는 윤시혁이었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윤시혁은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조부가 검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상실된 존경과.
그런 사실을 알지 못했던 자신의 무지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바뀌었다.
너무 무지했다.
자신은 그저 검성 가문이라는 위명에 숨어 거짓된 존경을 하고 있던 것이다.
“그럼 지금까지 제 노력은…….”
“한 가지 알아 둘 게 있다.”
그가 윤시혁을 보며 나직하게 말문을 열었다.
“분명 내가 걸어온 길은 틀렸다. 하지만 네 노력을 부정하지 말거라.”
“부정하지 말라니, 제 목표는 할아버지였습니다!”
“나는 너를 인정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게 무슨…….”
“시혁아.”
검성의 올곧은 눈매가 윤시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목표는 내가 아니지 않느냐.”
“그게 무슨…….”
“검성. 그 경지 올라 내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았느냐?”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윤시혁.
그는 그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네 본래 목표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하던 대로 하거라. 나를 본받지 말고.”
조부의 말에 그저 고개를 푹 숙이는 윤시혁이었다.
몇 분 동안 그저 말없이 조용하게 입을 다물던 윤시혁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저 지금으로서 이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조부의 의중을 그제야 이해하게 된 윤시혁이었다.
그의 말대로 자신은 그저 변함없이 검술을 갈고 닦으면 되는 것이었다.
달라진 사실이라면 윤시혁은 이제 자신의 조부가 아닌 검성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의 조부는 이제 존경의 대상도 목표도 아니었다.
“하나. 네게 조언해 주마.”
천천히 고개를 든 윤시혁.
그저 아무 말 없이 그는 조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느 한순간 네가 그 영역에 도달했다고 깨닫게 되면 이지의 공간에 거대한 빛이 보일 것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난 결국 그것을 보지 못했다. 과거 초대 당주 또한 내게 그런 말만 남기셨지.”
“…….”
“그저 네게 해 줄 말은 이것뿐이구나…….”
무겁게 울리는 조부의 말.
그곳에 숨은 사실을 알 수 있었던 윤시혁이었다.
조부 또한 자신과 같다는 사실을.
“저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겁니다.”
그저 이 말만 남기고 방을 나서는 윤시혁이었다.
* * *
“이익! 짜증 나 죽겠네.”
“에휴…… 또 왜?”
2차 시험이 끝난 직후.
암 가문의 본가를 향하는 차 안에서 이연은 구시렁구시렁- 시끄럽게 불만을 토해 내고 있었다. 2차 시험이 종료됨과 동시에 몸은 이동되어 결국 된통 처맞기만 하고 끝난 이연이었다. 김천운 그놈과 다른 돔이었기에 별수 없이 빠르게 A돔에 찾아가 봤지만, 이미 그 돔 안에서는 김천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으그극! 짜증 나!”
“에휴…….”
“아니, 그놈 진짜 대체 정체가 뭐야! 응? 언니는 안 궁금해? 응?”
“연아. 먼저 네가 손대 놓고 그렇게 굴면 비굴해 보여.”
“그치만!”
“네가 잘못한 건 인정하지?”
“응? 으, 응…….”
“자업자득이야.”
이한의 말에 그저 입을 삐죽이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연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창문을 바라볼 뿐이었다.
띠링-
“응?”
그때 폰에 문자가 온 것을 확인한 이한이 주머니에 폰을 꺼내어 확인했다.
“하…… 오랜만에 휴일이라서 기분 좋았는데.”
문자를 확인한 이한은 연신 힘없는 한숨을 쉬었다.
문자로 온 것은 길드의 의뢰였다.
누군가를 몰래 암살해 달라는 살해 의뢰.
“내일 쉬기는 글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