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소설 속 운만렙 캐릭터가 되었다-56화 (56/176)

제56화

#55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

그 앞에 앉은 두 소년이 서로 간의 침묵을 유지하며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과 15분 전.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윤시혁이 해먹을 향해 내뱉은 말이었다.

말투에서 흘러나오는 진중함과 고요한 말투로 인해 천운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얼굴을 불쑥- 내밀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내게 풍기는 기세가 왜인지 모르게 조용했으면 언뜻 온화하게까지 느껴졌으니 말이다.

“하고 싶은 얘기?”

“그래.”

훙!

탁!

해먹에서 내려와 지면에 착지하는 천운.

천운은 윤시혁의 얼굴을 바라봤다.

초췌한 인상이었다.

늘어진 다크서클과 힘없는 눈매. 말 그대로 녀석답지 않은 인상이었다.

그것이 단 하루 만에 만들어진 얼굴이니 천운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 내가 조금 밀어주긴 했지만 벌써 이런다고?’

근엄하며 자존심 덩어리인 윤시혁도 힘든 시기가 존재한다.

그것은 사실을 알기 위해 고뇌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지금 윤시혁의 모습은 마치 자신이 소설에 표현한 고뇌하는 윤시혁과 비슷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미안하다……. 5분만 기다려라.”

윤시혁은 그런 말과 함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생각에 잠겼다.

천운은 그의 말을 차분히 기다려 줄 생각이었다.

잘하면 생각보다 일찍 윤시혁이 사실을 알게 될 거 같은 기분이었다.

윤시혁의 반응은 좋은 현상이었다.

그의 성장을 촉진하는 요인 중 하나는 바로 검성의 기술을 포기했을 때다.

자신은 조부와 똑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새로운 검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윤시혁.

그리고 지금.

그는 그런 깨달음을 얻기 전의 고뇌를 겪고 있었다.

타닥- 타닥-

윤시혁이 입을 다무니 조용한 침묵이 흐를 수밖에 없었다.

간간하게 들리는 마수들의 하울링과 모닥불이 타닥- 타오르는 소리가 적막한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렇게 5분만 이라는 시간이.

10분.

15분.

그렇게 현재 상황까지 이루게 된다.

또한 생각을 정리한 윤시혁이 천천히 말문을 열고 있었다.

“처음에는 인정하기 싫었다.”

“뭘?”

“네놈 주제에 수석을 차지한 게 말이다.”

A 돔 스탯에서 가장 낮은 놈이 자신을 도발했다.

그리고 그런 놈이 수석을 차지했다.

자신이 인정 못 한 가장 나약하며 기교한 녀석이 수석을 차지했으니 말이다.

김천운은 윤시혁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끝까지 들은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하나만 했으면 좋겠네.”

나직하게 울리는 천운의 말이었다.

그것도 의미 불명의 말…….

천운의 말에 윤시혁의 미간은 저절로 좁혀지고 있었다.

“무슨 말이지?”

모닥불을 바라보던 천운의 눈이 윤시혁을 향했다.

“강함의 기준을 정할 때 항상 스탯으로 정하지?”

이 세계의 모든 힘의 기준은 스탯에 달려 있었다.

고유 스킬, 마법, 스킬.

모든 것은 성장의 부차적인 것으로 강함을 추구하려면 스탯을 올려야 되는 것이 정상일 터.

윤시혁도 과거의 기억으로 인해 그 흐름에 자연스레 따르고 있었지만 김천운을 만났다.

그는 가장 낮은 스탯으로 누구보다 앞선 결과를 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한 가지만 하라고.”

“그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지금처럼 스탯으로 사람을 구별하고 차별할지. 아니면.”

잠시 말을 멈춘 천운.

천운은 천천히 일어나 말을 이었다.

“네가 더럽게 싫어하는 나를 인정할지.”

“그럼…….”

무겁게 가라앉은 윤시혁의 목소리.

그가 천천히 일어나며 장검을 쥐었다.

“인정시켜봐.”

그의 장검이 영롱하게 울리고 있었다.

천운도 천천히 일어나 검집에서 단검을 빼 들었다.

* * *

“하아……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던 것은 윤시혁이었다.

그는 바닥에 엎드려 있었고 천운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그런 몸으로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냐?”

현재 윤시혁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대충 눈대중으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루 동안 쉴 새 없이 전투를 이루어 한계를 맞이한 몸과 마음속의 자리 잡은 응어리들.

겉과 속이 이미 엉망이 된 윤시혁의 상대로 질 천운이 아니었다.

“인정 못 한다…….”

“그럼 인정하지 마.”

바닥에 누운 채 고개를 돌려 천운을 바라보는 윤시혁.

천운은 윤시혁을 지그시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넌 나의 두 배나 되는 스탯을 가지고 진 거다. 설령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 해도.”

“윽!”

윤시혁의 입 안에서 빠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굴욕이었다.

김천운의 말대로 아무리 몸 상태가 좋지 못해도 30이나 되는 스탯의 차이로도 나는 녀석에게 패배했다.

그렇다.

녀석은 강자였다.

자신이 무시하고 경멸하던 놈은 스탯이라는 굴레를 벗어난 힘을 가진 존재였다.

하지만 한 가지 더.

녀석이 왜 자신을 왜 그런 굴욕적인 말을 내뱉었는지 이해가 안 가는 윤시혁이었다.

“너는 분명…… 검성의 검에 얽매이지 말라고 했다. 무슨 말이지?”

천운은 털썩- 주저앉아. 꺼진 모닥불 앞에 불을 붙었다.

전투 중에 생각했던 말들 이 말이 녀석에게 상처가 될지 아니면 성장으로 이어질지 어느 정도 도박이었다.

“누구나 우러러보는 검성의 검술. 대단하지.”

“…….”

“근데 너랑은 어울리지 않아.”

“나를 조롱하…….”

윤시혁의 말은 거기서 끊어졌다.

자신을 쳐다보는 김천운의 눈은 한 치의 조롱도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이 곧 조롱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복잡했다.

저 말의 의미를 말이다.

답을 가르쳐 주지 않는 이상 자신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천운은 윤시혁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예전부터 의심스러운 게 있었어. 검성이라는 경지는 대단해. 검의 끝에 도달한 자를 말하는 거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근데 그런 너의 할아버지가 다른 4대 당주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 있지?”

천운의 말을 들은 윤시혁의 눈은 쉴 새 없이 떨리고 있었다.

“왜 검성보다 강한 아베타들이 존재하는 건지?”

자신도 과거에 생각했던 의문.

그러나 어릴 적 호기심으로 이루어 낸 헛생각이라 다짐하며 잊어버린 의문.

그리고 갈무리했던 기억.

김천운은 그것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너는 의심스럽지 않아?”

“억- 크으윽…….”

자신은 언제부터인가 흔들리고 있었다.

과거 자신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본 의문이 막연히 떠올랐다.

검성이란 말 그대로 검의 끝에 도달한 자를 일컫는 말이다.

검성 가문의 대대로 전해지는 문헌 또한 그렇다고 적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계는 넓었으며 지금의 검성이라 불리는 조부와 동등한 위치에 존재하는 강자들이 많았다.

그런 의혹 속에서도 자신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곧바로 갈무리하고 말았다.

검성 가문의 혈연이자 후계자라는 위명 속에서 잊어버린 의문.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더는 안 말할게.”

그것이 천운의 마지막 조언이었다.

천운은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나 윤시혁의 곁을 떠났다.

윤시혁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천운이 사라진 방향을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오전 7시.

2차 시험의 마지막 날이자 시험 종료 1시간 전.

2박 3일간의 서바이벌과 마수와 응시생들과의 격전이 곧 끝나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무 위를 올라가 하룻밤을 머문 천운은 골치 아픈 상황에 놓여 있었다.

‘2시간 전부터 뭐 하는 짓거리인지.’

천운이 올라가 있는 나무 주위에 원형 결계 마법을 손으로 쾅쾅! 치고 있는 이연이 있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시끄럽게 쩌렁쩌렁- 소리치는 이연의 고함.

느긋하게 잠을 청하려던 천운은 2시간 전부터 자신에게 찾아온 이연 때문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제 한 시간 남았어. 그만 좀 해라.”

“너 나올 때까지 계속 이럴 거니까 얼른 튀어나와!”

하…….

이연을 보니 무거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제 언니인 이한의 1할만 닮았어도 이러지는 않을 거 같은데.

아 1할은 거의 외모로 치중돼서 그런가?

빼에에에엑-

나이에 맞지 않은 이연의 고함 소리에 절로 짜증이 확 솟구치는 천운이었다.

별수 없이 천운은 전개했던 결계를 풀 수밖에 없었다.

“히힛! 어제는 방심했지만 오늘은 아니야!”

“그래. 동생아.”

“누가 너 동생이야!!”

어디 주변 나뭇가지를 꺾어 손에 쥔 이연.

동시에 암 가문의 고유 스킬인 의안을 발동하고 있었다.`

사고가 빠르게 회전하며 김천운의 행동 하나하나를 반응하고 대응할 준비를 했다.

어제보다 심중히 더더욱 차분하게.

그러나 천운은 여전히 가만히 서서 자신의 행동을 지켜볼 뿐이었다.

천운 또한 이연이 먼저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차피 지금의 이연은 자신의 상대가 안 된다.

언니의 허락 없이 자신의 주스킬, 암살 계열의 스킬을 발동할 수 없으니 말이다.

단순히 고유 스킬인 의안과 스탯 싸움이라면 천운이 질 일은 없었다.

“너는 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하냐. 부산스럽게.”

“정말 몰라서 물어!”

“응.”

어제 때린 건 제가 매를 벌어서 그렇고 전반적으로 내 잘못은 없었다.

얘 손에 쥐어진 나뭇가지를 보면 그냥 분풀이로 온 게 뻔했다.

그러면.

훅!

빠르게 내달리는 천운.

동시에 만다라와 마의 다리를 발동하여 이연의 앞에 접근했다.

그대로 손바닥을 쫙 핀 뒤, 훙- 휘두르며 등짝을 내리치려는 천운이었다.

그러나 천운의 모든 동작이 보이는 이연으로서 굳이 천운의 손을 피할 필요도 없었다.

턱-

손으로 잡으면 되지.

천운의 손목을 잡아 막아 낸 이연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각오는 됐냐?”

자신의 승리를 확정한 이연.

변수는 전혀 생각치도 않고 있었다.

해 봤자 어제의 마법과 버프 스킬?

그러나 마법이든 스킬이든 무조건 필요한 것은 마력이다.

조금 이른 시간 새벽 5시쯤에 찾아와 방해한 것도 그 이유였다.

잠도 제대로 못 잤으니 마력이 변변치 않게 채워 줬을 게 분명할 터.

또한 자신이 오기 전에 결계 마법까지 발동하고 있었으니 김천운의 현재 마력량은 최소 5언저리 되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빌면 금색 패는 안 뺏어 줄게.”

“연아.”

“푸후후훗- 자존심은…….”

“네 언니가 너 정신 교육을 똑바로 안 시켜 줬나 보네?”

그때였다.

“응?”

천운의 행동에 미간이 좁혀지는 이연이었다.

천운은 반대편 손을 주먹을 꽉 쥐고 그대로 이연에게 내지르고 있었다.

묵직한 파워가 느껴지는 무거운 주먹이었다.

그러나 의안을 발동한 이연에게 천운의 주먹은 느릿하게 다가왔다.

당연히 몸을 돌려 피해 내는 이연.

훅! 휙! 훅!

곧바로 나뭇가지를 연이어 천운에게 휘두르는 이연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눈에도 따라잡지 못할 고속의 움직임이었다.

나뭇가지는 잔영을 남기며 천운에게 휘둘러졌지만.

“뭐야!”

천운은 그 전부를 피해 내고 있었다.

그것도 나뭇가지를 눈으로 주시하며 말이다.

자신의 속도를 따라잡고 있는 것이다.

“이익!”

분풀이로 마지막에 크게 휘두르는 이연.

큰 동작이었기는 하나 빠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곧.

이 동작이 악수라는 것을 깨달은 이연이었다.

텁-

“뭐, 뭐?! 놔! 안 놔!!”

아까와 비슷하게 손목이 잡히기 말았다.

입장은 뒤바뀌었지만 말이다.

천운은 그대로 이연의 손목을 꽉 잡은 채 위로 들어 올렸다.

천운과 눈이 마주친 이연.

동시에 천운의 미간을 향해 발차기를 넣는 이연이었다.

훙!

텁-

물론 그 발차기도 손쉽게 잡혀 제압당했지만.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천운을 바라보는 이연.

그녀의 눈빛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모든 공격이 막혀 제압당한 이연은 상황이 이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김천운의 힘은 예상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 높게 보면 자신보다 더욱 높은 스탯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속도는 아니다.

그가 반사 신경으로 어떻게 막거나 잡아 볼 속도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너 뭐야?! 어떻게…….”

“그게 중요해?”

한 손과 다리가 잡혀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취하는 이연.

천운은 이연의 두 팔을 자신의 팔 한 짝으로 통째로 감싸 안아 못 움직이게 막은 뒤 남은 한 손을 아까 이연이 떨어트린 나뭇가지를 주워 이연의 허벅지를 향해 크게 휘둘렀다.

훅!

쫙-

“악!”

“악! 이 아니라 맞을 때마다 한 대다. 엄살은, 이 정도 가지고 안 아프면서.”

“내려놔 이 X발놈아!”

쫙-

“악!”

“두 대.”

“내려놓으라고!!”

쫙-

“세 대.”

“세, 세대…….”

“좋아. 이렇게 열 대만 더 맞자.”

“뭐, 뭐?! 그만 X발 아프다고!”

“말 못할 때마다 한 대식 늘어난다.”

훙!

쫙!

그렇게 10대를 다 맞은 이연.

그제야 이연을 놓아주는 천운이었다.

바닥에서 내려놓자 주저앉은 이연은 연신 허벅지를 문지르며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힝! 이익!!”

분노를 머금으며 눈물이 날 듯 안 날 듯 그렁그렁 우는 이연.

그런 그녀를 보니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천운이었다.

‘그러고 보니 얘도 언제 그 사건이 터질지 모르겠네? 이미 원작 스토리가 물 건너갔으니까.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고.’

슬그머니 천운의 손목에서 흐르는 조그만 샌디의 알갱이들.

그 알갱이들이 이연에게 떼굴떼굴 구르며 이연의 주머니에 몰래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도 동시에 그녀의 신형이 사라지고 있었다.

‘응? 설마?’

“죽어 X발아!”

이연은 분통이 터지는 마음으로 마지막에 달려들어 내게 주먹을 꽂아 넣으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그녀의 신형은 어디론가 이동되듯 사라졌다.

현재 시간은 오전 8시.

살아남은 응시생의 귀환조끼가 발동되며 2차 시험이 종료된 것이다.

곧이어 천운의 신형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