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52
‘모습을 드러냈구먼.’
여인상 틈새에서 역한 흑색의 액체가 흘러나왔다.
액체에서 부글거리는 기포가 올라오며 기포에서 터져 나오는 자주색 연기는 마기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뚝뚝-
지면으로 떨어지던 액체가 모여 슬라임의 형태의 무언가로 변하고 있었다.
표면에는 붉은 핏줄이 곤두서 있었으며 그 중앙에는 날카로운 맹수의 눈동자가 자리 잡았다.
형태를 다 잡은 그것이 우리에게 말했다.
{마지막 시련이다…….}
녀석의 눈은 지그시 나를 바라봤다.
정확히 우리를 복사하여 사람의 형태를 이루려 하고 있었다.
그러기 전에 놈을 막아야 한다.
형태를 전부 갖춘 놈은 우리 둘로는 버거운 상대로 변모한다.
“로벤 씨!”
천운이 부르자 질 로벤은 술식을 전개했다.
그녀의 머리 위에서 생겨나는 3개의 얼음창.
아이스 스피어.
1초도 안 되는 술식 연산과 발동 속도는 그녀의 특기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저걸로는 안 돼.’
“놈은 물리 공격이 안 통해요!”
빠르게 놈에게 쇄도하려는 창이 일제히 멈춰 섰다.
그녀의 사고가 빠르게 회전했다.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 상대.
그렇다면 마법으로 형상화된 이 창은 놈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동시에 또 하나의 술식을 떠오르며 마법을 발동했다.
그녀는 손에서 피어오르는 불바람을 놈에게 내지르고 동시에 손에서 피어오른 열기가 놈에게 발화됐다.
동시에 날려지는 아이스 스피어.
불바람과 만난 아이스 스피어는 놈의 몸을 관통하는 동시에 서서히 녹아, 놈의 몸을 축축하게 적셔 놨다.
‘정말로 물리 공격은 안 통해. 하지만 불바람은…….’
자신이 날린 아이스 스피어가 놈의 몸을 관통했음에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불바람은 달랐다.
놈은 열기에 고통을 느끼듯 부르르- 떠는 것이 질 로벤의 눈에 보인 것이다.
질 로벤은 동시에 전격 마법을 발동했다.
파지직-
손에서 흐르는 푸른 전류를 마물을 향해 내리쳤다.
그리고.
파지직!
{끄아아악!!}
마물한테서 들리는 고통의 비명.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아챈 그녀는 계속해서 전류를 내보냈다.
[적당하네.]
질 로벤의 마법을 보며 미소 짓는 미르마였다.
질 로벤의 재능이 생각보다 괜찮다고 평가한 모양이다.
빠른 술식 전개와 발현 속도 정확성.
다른 누가 봐도 흐트러짐 하나 없는 자연스러운 연계였다.
그러나 저걸로는 부족하다.
“로벤 씨.”
천운은 곧바로 뒤로 물러나 그녀의 옆에 나란히 서며 말했다.
“그 마법으로 어느 정도 피해는 줄 수 있지만 죽이지는 못할 거예요.”
곧바로 생각해 낸 작전을 입으로 꺼내는 천운이었다.
“제가 녀석을 반으로 갈라놓을게요. 놈의 성질상 나눠질수록 약체화될 게 분명해요.”
천운의 말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로벤이었다.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아까부터 느껴지는 불운한 낌새.
녀석의 몸이 서서히 인간의 형태로 변모하고 있었다.
아마 저 형태가 전부 갖추어졌을 때, 분명 자신 또한 감당 안 될 존재가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천운은 기별 없이 곧바로 놈에게 달려들었다.
그녀는 눈치 있게 천운이 달리는 동시에 아까와 같은 마법을 발동했다.
천운은 곧바로 검집에서 작은 단검을 꺼내 들었다.
빠르게 녀석의 코앞까지 다가간 천운은 놈을 향해 수직으로 단검을 내리쳤다.
캉!
놈의 몸이 반으로 갈라지며 말 그대로 단검은 땅에 박혀 버렸다.
두 개의 몸으로 분열해 천운의 단검을 피한 것이다.
그러나 천운이 노리는 것은 놈의 분열이었다.
로벤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파지직-
[크으으윽!]
놈의 고통에 신음이 던전에 울렸다.
반으로 갈려져 현저히 약해진 놈의 몸통.
천운은 놈이 다시 합쳐지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저리 비켜라! 우매한 인간아!]
“점잖은 척 조신한 척 다하더니.”
놈의 몸에서 살의가 담긴 가시가 쏟아져 천운을 향해 쇄도했다.
그러나 그냥 맞을 천운이 아니었다.
의안을 발동한 천운은 현저히 느려진 가시를 피하고 단검으로 쳐내며 놈의 공격을 막아 냈다.
“50년 살았으면서 아직도 덜 자랐나 보네?”
{분명 난 마지막 시련이라고 네게 알렸다.}
“헛소리! 처음 온 손님에게 유물을 뺏기기 그렇게 싫었나?”
참 웃기게도 던전 따위가 긍지 높은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다.
‘수많은 인간들을 죽음의 길로 인도하게 할 것이다.’라는 프라이드가 말이다.
하지만 운이 안 좋게도 이 던전은 현재로써는 우리가 첫 도전자이다.
교관들 또한 이곳이 이지의 던전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포기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놈은 실체화한 거겠지.
던전의 이지가 실체화를 한 순간부터 그는 목숨이라는 리스크를 짊어지게 된 것이다.
“사상자 제로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명이 그렇게 갖기 싫었나 보지? 던전아?”
{닥쳐라!}
파바박!!
이지의 몸이 무수한 수로 퍼지며 동시에 천운을 향해 송곳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놈의 행동에 천운의 입꼬리가 뒤틀리듯 미소가 지어졌다.
‘넘어왔네.’
놈은 도발에 넘어왔다.
그리고 그 행동은 놈에게 악수로 돌아올 것이다.
파지직!!
{뭐?!}
남은 반쪽을 쓰러트린 질 로벤이 가세했다.
그녀의 손에서 떠오르는 열풍.
풍과 화속성 마법이 놈에게 발화되었다.
훙!
질 로벤의 공격을 당한 놈의 몸에서 찌꺼기가 타는 듯한 기이한 연기가 흐르고 있었다.
놈은 죽기 전에 내는 단말마도 없이 한순간에 절명한 것이다.
상황이 끝난 것을 확인한 천운은 그녀에게 고개를 돌리며 미소를 지었다.
“후…… 도와주셔서 고마워요.”
“마법…….”
“아, 아! 맞다 참.”
천운은 마력량을 확인했다.
마력 : (25.6/45.6)
‘이 정도면 괜찮은가?’
“그냥 보여 주기만 하면 되죠?”
내 말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는 질 로벤이었다.
그렇다면 뭐.
솔직히 이 마법은 미르마의 마법이니 술식까지 제공할 생각은 없었다.
세상 널리 알려진 마법과는 다르게 이것은 미르마가 직접 술식을 짜 놓은 오리지널 마법이니 말이다.
천운은 이왕 도와준 거 어제와 다른 마법을 보여 줄 생각이었다.
샌디에게 받아 낸 술식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마법을 발동하려는 순간.
그때였다.
{잘도…….}
흠칫!
등줄기에서 뻗어 나오는 소름.
서늘하며 오싹한 말이 귓가에서 던전에 울렸다.
‘설마!’
곧바로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천운.
그곳에는 사람의 형태를 잡은 녀석이 있었다.
흑색의 검은 몸과 얼굴 전체를 차지하는 맹수의 눈동자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이런…….’
던전의 이지가 완전한 형태를 갖추고 말았다.
* * *
“제 마법을 보고 싶다 하셨죠?”
천운은 놈에게 시선을 떼지 않고 질 로벤에게 말했다.
천운의 미간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지금부터 많이 볼 거 같네요.”
그때였다.
천운은 질 로벤에게 보여 주려던 마법을 발동했다.
순간 천운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놈의 주위를 빠르게 뒤덮었다.
미르마에게 배운 흑암 마법이었다.
하지만.
쿵!
‘피한 건가.’
지각을 뒤흔드는 진동이 일어나며 땅을 박차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천운의 흑암 마법을 한순간 피해 낸 것이다.
이것이 흑암 마법의 단점이었다.
정해진 위치를 향해 발현되는 흑암의 구에서 빠져나오기만 한다면 파훼 되니 말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더욱 면적을 넓게 만들면 되지만, 그만큼의 마력을 천운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후…….”
천운은 빠르게 머리를 돌리며 사고를 순환시켰다.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는 동시에 사람의 형태를 갖춘 놈을 상대로는 둘만의 힘으로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약체화돼 있는 게 분명해.’
던전의 이지가 분열된 몸 중 하나를 놓쳐서 형태를 완성한 것이 아마 저놈일 것이다.
그만큼 본래의 힘을 발현할 수 없는 게 분명할 터.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 뜬금없겠지만.”
천운은 조심스레 질 로벤에게 말했다.
“혹시 마력 특성이 어떻게 되세요?”
이미 그녀의 특성을 알고 있지만, 후에 귀찮은 상황을 대비하여 물어봤다.
동시에 질 로벤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성 하나를 천운에게 말했다.
“화속성.”
3개의 특성을 가진 그녀는 그중 하나를 천운에게 말했다.
전부 가르쳐 줄 의향은 없으니 말이다.
“그럼 죄송한데 저한테 마력을 흘려보내 줄 수 있을까요?”
더욱더 그녀의 미간을 꿈틀거리며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물론 자신도 알고 있다.
내 말이 이상하게 들리겠지.
그래서 상황에 맞게 진중하며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것은 한 번만 믿어 달라는 의사였다.
“알겠어.”
동시에 그녀는 화속성 마력을 천운에게 흘려보냈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붉은빛의 마력.
천운은 곧바로 자신의 마력 특성을 발동했다.
“뭐?”
곧장 일어난 현상에 당황하는 그녀였다.
자신의 마력이 갈무리되고 있었다.
아니, 천운의 몸에 흡수되고 있었다.
그 기이한 현상에 눈을 떼지 못하는 질 로벤이었다.
동시에 천운은 곧바로 단검을 들고 놈에게 달려들었다.
캉!
사선으로 내리치는 단검.
그러나 놈의 들어 올린 팔뚝으로 인해 단검은 그대로 막히고 말았다.
{우롱한 네놈에게 죽음이라는 선물을!}
놈의 말을 깔끔하게 무시한 천운은 미르마에게 전음을 보냈다.
‘미르마! 제 마력을 써도 되니까 놈의 밑에 화염 마법 술식 중 괜찮은 거 하나 그려 주세요!’
[알겠어!]
곧바로 만다라를 발동하는 천운.
그러나 공교롭게도 올라간 스탯은 힘이었다.
10 정도의 힘이 올라간 천운의 스탯은 32.
별수 없이 미르마가 술식을 전부 그려내는 동안 천운은 힘으로 버티며 대치할 생각이었다.
“뜨거운 거 좋아하지?”
천운은 단검에 자신이 방금 흡수한 화속성 마력을 주입했다.
영롱한 붉은빛을 띠는 단검.
평범한 단검이 화속성 마력을 만나 뜨거운 열기를 내뿜었다.
천운은 그대로 단검을 밀어냈다.
끼기긱!
{큭!}
단검의 열로 인해 그대로 녀석의 팔이 잘려 나갔다.
하지만 이 정도의 공격으로는 녀석을 쓰러트리는데 어림도 없을 것이다.
녀석의 잘려 나간 팔은 서서히 돋아나고 있었다.
{고까운 기교를 부리는구나!}
스르륵-
돋아난 팔은 서서히 비대해지고 있었다.
훙!
비대해진 팔은 공기를 가르며 휘둘러지고 천운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대로 스킬 마의 다리를 발동하여 온몸에 힘을 주고 충격을 버티려는 천운이었다.
‘녀석을 자리에서 움직이게 만들면 안 돼.’
쿵!
천운은 그대로 팔을 들어 올려 녀석의 공격을 막아 냈다.
그러나 놈의 비대해진 파워로 인해 몸이 조금씩 뒤로 밀려 나가고 있었다.
“물러나!”
질 로벤의 목소리를 들은 천운은 곧바로 뒤로 크게 빠지며 숨을 골랐다.
동시에 놈에게 쏟아지는 화염.
화르륵-
그녀의 손에서 나오는 붉은 화염이 놈에게 발화됐다.
그러나 놈의 들어 올린 손이 발화되는 불꽃에 향했고 손의 면적이 서서히 늘어나며 한 손으로 발화된 불꽃을 막고 있었다.
‘미르마! 술식은요!’
[10초만 버텨!]
내 쥐꼬리만 한 마력으로 힘겹게 술식을 만들어 내는 미르마.
동시에 놈이 자리에서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천운은 곧바로 놈에게 달려들어 움직이는 것을 막았다.
어차피 놈이 노리는 것은 나니까.
캉!
챙!
휘두르고 찌르는 여러 공방이 오가고 있었다.
또한 놈의 움직임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전투 중에도 천운의 움직임을 읽어 내 습득하고 있던 것이다.
몸통을 향해 쇄도하는 단검을 자신의 몸에 구멍을 내어 피하고 사선으로 그어지는 단검을 경로를 먼저 읽어 내 자신의 몸을 갈라내며 피해 내고 있었다.
{재밌구나.}
동시에 놈은 손을 번쩍 들더니 손을 모아 크게 내리찍으려는 자세를 취했다.
또다시 비대해지는 녀석의 손.
이번에는 망치 같은 형태로 변하며 내게 내리치려 하고 있었다.
‘저건 안 돼.’
그대로 피할 수는 있었으나 내리찍는 동시에 바닥이 무너질 게 분명할 터.
동시에 미르마가 전개하는 술식이 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눈 감으세요!”
천운은 동시에 놈의 눈을 향해 손을 뻗어 섬광 마법을 발동했다.
번쩍!
새하얀 빛이 한순간 터지고.
{크아아악!!}
던전의 이지가 눈을 부여잡고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천운아!]
동시에 들리는 미르마의 목소리.
천운은 그 순간 손목에 있던 샌디를 바닥에 내려놓고 뒤로 크게 뛰어 녀석과의 거리를 벌렸다.
{네, 네놈!! 죽여 버리겠다!}
“샌디야!”
[ㅇㅇ!]
현재 샌디의 마력.
마력 : 23.1/100.
시험이 시작되기 전날 이영한 교관에게 받은 샌디의 몸으로 어느 정도의 마력을 채워 놓았다.
그 말인즉슨, 샌디 또한 마법을 발동할 수 있다는 말이다.
샌디는 미르마가 새겨 놓은 술식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콰콰쾅!!
동시에 땅 밑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
샌디의 마력 중 3.1을 제외한 20을 불어넣은 중급 마법 술식이 놈에게 발화되고 있었다.
{끄아아아아악!!}
뜨거운 화염이 위로 상승하듯 내뿜어지며 놈의 몸을 녹이고 있었다.
놈의 죽기 전 단말마가 던전을 가득 메웠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천운은 단검을 꽉 쥐고 방심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손을 뻗으며 저 열기로 가득한 공간을 빠져나오려는 놈이었다.
그러나.
쉬이익-
그러기도 전에 놈의 몸은 이미 형태가 무너지고 새까만 재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저건…….”
마법을 보고 있는 질 로벤의 눈동자에 이채가 띄었다.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마법.
마치 지옥의 화염이 땅에서 올라와 마물을 심판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저건 도대체 무슨 마법…….”
질 로벤에게 들리지는 않겠지만 미르마는 그녀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지옥염. 그게 저 마법의 이름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