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51
마기로 인해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던전은 여러 종류가 존재한다.
개천산처럼 지하로 이어지는 지하 던전.
트레져 헌터들의 보물 창고인 미궁 던전.
길드들이 선전하려는 탑 형태의 던전.
그리고 그런 던전들 가운데.
세간에서 손꼽히는 미지의 던전이 존재했다.
물론 다른 던전들 또한 마찬가지이긴 하나, 천운이 가려는 던전은 앞엣것들과 비교도 안 되는 기이한 던전이 존재했다.
“던전?”
그녀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던전이었으며 말투에선 의심이 흘러나왔다.
뭐 보통이라면 쉽게 믿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길영트가 독점한 이 섬의 모든 던전은 이미 길영트의 교관들이 공략한 뒤 출입을 막은 상태라서 유물은커녕 출입도 못 하니 말이다.
들어간다 해도 유물이 없는 빈 던전에 누가 들어갈 생각을 할까?
그것이 시험 중이면 더더욱.
“아직 공략 안 된 던전을 알고 있어서요.”
자신이 설정 그대로라면 아직 이 섬에 교관들도 공략 못 한 공략 불가의 던전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공략 불가의 던전이 오랜 시간 남겨지고 결국 길영트에 잊힌 던전.
“던전…….”
처음에는 보잘것없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한 그녀였다.
하지만 이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생각을 고쳐먹게 됐다.
유물은 없으나 마물은 여전히 던전에 존재한다.
천운은 따라다니는 가장 큰 요인은 마법이었으니 아마 그를 따라 던전에 들어가면 다시 한번 그의 마법을 볼 수 있을까?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질 로벤은 그저 천운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생각보다 말을 잘 믿으시네.’
그녀의 그런 천연스러움에 살짝 걱정된 천운이었다.
이렇게 잘 믿으시다니…… 함정이면 어쩌시려고…….
생각해 보니 함정이라도 상관없는 건가?
‘마법으로 나를 제압하면 된다고 생각하나 보네.’
뭐 그녀를 속일 생각도 대치할 생각도 없는 천운이었다.
“그럼 근처의 계곡이나 찾아보죠.”
“계곡?”
* * *
몇 분 뒤.
천운은 어렵지 않게 계곡을 찾을 수 있었다.
천운과 질 로벤은 계곡을 따라 점점 숲 안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인 것은 거대한 폭포.
높은 절벽에서 흐르는 폭포는 절경이긴 하나 이곳에 와 보니 더욱 의문스러운 질 로벤이었다.
‘근처의 마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
역시…… 속인 건가?
그녀는 슬며시 술식을 전개하고 있었다.
“도착했어요.”
“……?”
도착……?
천운의 말에 의구심만 더욱 짙어지는 그녀였다.
아무리 봐도 주위에 보이는 것은 저 폭포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왜 갑자기 폭포수에 뛰어들지?’
“이쪽으로 오세요.”
천운은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폭포수를 맞으며 그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약간 의아해한 그녀지만 곧 천운의 말에 따라 그녀 또한 폭포수에 너머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긴…….’
폭포수 너머의 작은 동굴.
그 안쪽에는 하나의 문이 있었다.
그제야 느껴지는 마기에 질 로벤은 속으로 내심 경악하고 있었다.
‘폭포수가 마기를 틀어막고 있었어…….’
“여긴 아직 공략이 안 됐을 거예요.”
공략이 안 된 던전?
당연하게도 안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공략이 됐는지 확인할 수단은 없었다.
또한 숨겨져 있다고는 하나, 분명 교관들이 이런 던전 하나를 발견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또다시 천운의 말을 의심하는 그녀였다.
뭐 때문에 그렇게 확신을 하는 건지 말이다.
“제가 소문으로 들었는데 길영트의 교관들도 이 던전은 난해하고 복잡해서 공략을 포기했다 하더라고요.”
난해하고 복잡?
천운의 말에 짐작이 가는 던전이 하나 있었다.
“설마 여기는…… 이지의 던전?”
이지의 던전.
던전 자체가 이지를 가지고 스핑크스처럼 문제를 내는 던전이다.
힘으로는 통용되지 않는 던전이다 보니 교관들 또한 이 던전의 공략을 미룰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긴…… 너무 위험해.”
“괜찮아요.”
“……?!”
급하게 천운의 손을 잡아 말리는 질 로벤이었다.
천운은 그녀를 돌아보며 괜찮다고 손짓을 한 뒤 그대로 던전의 입구를 열고 들어가고 있었다.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멍하니 입구를 바라보는 질 로벤.
그녀는 별수 없이 무언의 다짐을 하며 천운을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 * *
그녀가 던전에 들어가자 보인 것은 정면에 세워진 손을 모아 얼굴을 가린 여인상과 그걸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천운이었다.
진 로벤은 터벅터벅 걸어가 천운의 옆으로 다가갔다.
고개를 돌려 그녀가 온 것을 확인한 천운은 싱긋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결국 오셨네요?”
“…….”
천운의 말에 미간을 좁히며 노려보는 그녀였다.
말은 안 하지만 압박이 느껴지는 천운이었다.
“너무 화내지 마세요. 자신 있으니까.”
하…….
푸념이 들어간 한숨을 쉬는 질 로벤.
본래의 계획은 이 남자가 쓰는 마법을 그저 딱 한 번 다시 보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마법 한번 보려다가 골로 가게 생겼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따라 들어오긴 했으나 곧 후회가 되는 질 로벤이었다.
‘살아서 나오려면 수수께끼를 맞혀야 해.’
던전이 내려 주는 시련.
그것은 다름 아닌 수수께끼였다.
그냥 수수께끼면 상관없으나 던전의 문제는 설명이 말이 안 되는 것밖에 존재하지 않으니 말이다.
노센스인 문제 같으나 실존하는 무언가를 내며 문제를 맞히라고 한다.
“그럼 시작할게요.”
천운은 눈앞에 있는 여인상을 향해 손을 뻗어 마력을 흘려보냈다.
잠시 지각을 뒤흔드는 진동이 일어난 후, 던전 안에 울려 퍼지는 청아한 여인의 목소리가 문제를 제시했다.
{이것은 수두룩한 털이 달린 다리 없는 짐승이다. 뾰족한 귀와…….}
여인의 설명은 이어졌으며 천운은 거리낌 없이 생각해 둔 답을 말했다.
“다리 없는 고양이.”
{정답이다.}
“어?”
그녀도 모르게 뇌를 거치지 않고 어? 소리가 튀어나왔다.
방금 뭐가 일어난 거지?
[역시나 다리 없는 고양이가 맞았군.]
문제를 들은 미르마의 말이었다.
천운과 질 로벤뿐만 아니라 제시된 문제를 들은 것은 미르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그저 문제를 듣고 천운에게 답을 알려 줬을 뿐.
‘역시 미르마는 알고 계셨네.’
던전의 문제는 웬만해선 미르마가 살던 세계의 이야기니 말이다.
당연히 이쪽 세상의 사람들이 못 맞출 만하지.
그러나 천운에게는 미르마가 있었다.
현자라는 위명은 괜히 생겨난 것은 아니다.
마법뿐만 아니라 다른 지식에서도 능통한 그녀였다.
그리고 방금 일어난 상황을 설명해 달라는 듯 진 로벤은 천운을 지그시 바라봤다.
“시련의 던전의 정답은 거의 설명 그대로의 정답인 게 많아요. 그러니 간단하게 예의 짐작할 수 있어서요.”
그게 무슨 어처구니없는 말이지?
말이야 쉽지, 그랬으면 이 세상에 수두룩한 시련의 던전이 이미 공략당했을 테니 말이다.
오묘한 표정으로 김천운을 바라보니 그는 다음 시련의 문을 향해 나아갔다.
“그럼 이 페이스로 쭉 가 볼까요?”
천운은 이내 여신상 뒤에 열린 공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까지 어이없어 멍하게 천운을 바라봤다.
‘아!’
그녀는 희번덕 정신을 차리고 쫄래쫄래 천운을 뒤따라갔다.
* * *
“무게 없는 물.”
“원뿔 원숭이.”
“부서진 번개.”
천운은 차례차례 앞으로 나아가며 문제를 풀어 나갔다.
그의 신속한 대답에 얼이 빠지는 로벤이었다.
절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정답들.
그리고 그런 정답을 아무렇지도 않게 맞히는 김천운.
한 번이라도 틀리면 목숨을 앗아 갈 위협이 떨어지는 이 시련의 던전에서 천운은 아무렇지도 않게 정답을 말할 뿐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위풍당당함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뭐가 일어나고 있는 거지?’
모든 상황이 이해를 넘어서 별수 없이 그저 멍하니 천운의 행보를 구경하며 뒤쫓을 뿐이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마지막 시련의 던전의 끝, 마지막 문제에 도달하고 말았다.
시련의 던전에서 마지막 문제가 이지의 목소리에서 흘러나왔고.
{가장 깊이 있고 위대한 그의 종…….}
“물 없는 바다.”
{……정답이다.}
끝까지 듣지도 않고 정답을 말해 버렸다.
그리고 아까부터 던전의 목소리가 떨리는 것이 노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은 분노인지 아니면 어이가 없어 떨리는 건지 모르겠지만.
[뭐, 역시 간단한 문제네. 우리가 살던 세계에서는 이런 던전만큼 간단한 던전은 없었거든.]
당연히 던전이 내주는 정답은 미르마가 살던 이 세계의 지식이다.
그러니 아무리 뛰어난 실력으로 자명난 아베타들이라도 이지의 던전을 공략하기는 쉽지 않을 터.
하지만 천운에게는 그 멸망한 세계의 주민인 미르마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 수준이 이 정도라니…… 조심해야겠는데?]
‘뭐가요?’
[가끔 문제가 발생하거든. 이렇게 수준이 낮은 던전은 오래된 던전이 아니니까. 지혜롭지가 않거든.]
‘유물을 안 준다거나?’
[그럴수도.]
‘하하! 설마요.’
당연하게 이성을 가진 던전이다 보니 지식의 습득과 성장 또한 존재하게 마련이다.
지금 이 던전과 달리, 몇천 년을 존재한 시련의 던전은 오랜 세월만큼이나 방대한 지식과 세월에 걸맞은 난해한 문제를 자랑한다.
“그럼 이제.”
천운은 마지막 거대한 석조 문을 남겨 두고 고개를 돌려 질 로벤을 바라봤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던전의 유물에 관심 없죠?”
“응.”
“그럼 가 볼까요?”
천운은 아까는 열리지 않은 문 앞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문에 손을 갖다 댄 천운은 문에 힘을 주며 힘껏 밀어내고 있었다.
드드득-
바닥을 긁는 굉음이 들리며 문은 서서히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보인 것은 처음 보았던 얼굴을 가린 여인상과 여인상 앞에 놓인 제단 위의 두 개의 유물이었다.
“정말로…… 공략됐어.”
벙벙한 표정을 짓는 질 로벤.
그녀는 생각보다 표정이 다양하다고 생각한 천운이었다.
‘그럼 이제.’
천운은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사실 따라오신 게 제 마법 때문이죠?”
움찔-
몸을 떠는 질 로벤.
그러나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그녀였다.
“그럼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
“응?”
이미 공략이 끝난 던전에서 더 도와줄 게 있나?
천운이 유물을 향해 다가가 손을 뻗으려 하자.
섬뜩-
오싹한 한기가 질 로벤의 몸을 에워쌌다.
천운과 자신밖에 없는 이 공간에서 알 수 없는 시선이 그녀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 시선의 주인을 알 수 있던 그녀였다.
‘여인상?’
손을 모아 얼굴을 가린 여인상.
그녀의 한쪽 손이 뒤집혀 손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손바닥에는 짐승의 눈을 한 무언가가 유물에 손을 대려는 천운과 자신을 한 번씩 훑어보고 있었다.
{마지막 시련을 주겠다.}
그것은 여인상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었다.
쿠쿠쿠쿵!
지각이 진동하며 공간 자체가 크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말했지? 오래 살지 않은 던전은 감정이 이성을 압도한다고.]
‘그래도 미리 말해 주셔서 다행이네요.’
미르마의 말대로 던전은 분노하고 있었다.
지성과 지혜를 겸비한 던전.
그렇다 보니 감정 또한 존재하며 나름 프라이드 또한 존재하게 마련.
이지의 던전은 자신들이 누구보다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천운은 그것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
‘참고로 이 던전은 몇 년 된 거 같아요?’
[해 봤자. 40, 50년이네?]
‘그 수준도 던전으로 치면 어린애라는 거죠?’
흔들리는 진동을 느끼며 태평하게 그렇게 말하는 천운이었다.
뭐, 이미 미르마가 말 했을 때부터 혹시나 하고 예상했던 상황이다.
쩌저적-
여인상의 쩌저적- 갈리며 흐물거리는 검은 물체가 여인상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제야 천운이 왜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는지 이해한 그녀였다.
‘마물이 존재하는 이지의 던전이라니…….’
이지의 던전에서 보편적으로 알려진 정보 중 하나는 마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는 마물로 보이는 거무칙칙한 무언가가 여인상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짙은 마기를 뿜어내는 무언가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