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소설 속 운만렙 캐릭터가 되었다-51화 (51/176)

제51화

#50

“틀렸다고?”

으득!!

뭐가 틀렸다는 거지?

“뭘…… 안다고!”

쿵!

빠각!

정면에 있는 나무에 힘껏 내지르는 주먹.

윤시혁의 분노가 서린 주먹에 나무는 빠각- 소리와 함께 고꾸라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분노는 가시지 않고 성이 차지 않았다.

김천운.

그 개자식이 자신에 대해 뭘 안다고 그렇게 지껄이냔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녀석이.

제삼자인 녀석이.

자신을 가르치려 드는 게 역겨워 죽겠다는 생각이 온몸을 옭아매고 있었다.

‘그 개자식 때문에 윽!!’

빠드득-

과거 검성에게 인정받지 못한 그 날.

반대로 검성의 후계자가 된 그녀의 눈빛이 떠올랐다.

[네가 부러워.]

검성의 후계자가 된 녀석이 한 말이었다.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

그 녀석은 나를 우롱하는 것이다.

[내 검술은 약자의 검술이다.]

그러니 너와 어울리지 않다…….

검성이 내게 한 말이었다.

그렇기에 내 검술을 네게 가르쳐 줄 이유가 없다.

그것이 나를 인정 못 하는 이유였으며 같잖은 변명에 불과하다.

‘검성의 검술에 연연하지 마.’

김천운…….

아니, 구차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연연하며 얽매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할아버지의 앞에 서서 증명할 것이다.

할아버지의 말은 틀렸다고.

‘언젠가는 인정받게 만들 것이다.’

밝은 해가 내려앉고 붉은 노을이 하늘을 뒤덮었다.

더욱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숲속에서 마수의 울음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쿠오오오!

캬아악!

윤시혁은 다시 그늘진 숲속을 향했으며 꽉 쥐어진 장검을 들고 마수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그 행동은 감당할 수 없는 분노를 사그라트리기 위해서였다.

* * *

해가 진 늦은 밤.

“여전히 앞뒤가 꽉 막힌 녀석이네.”

윤시혁에게 달아난 천운은 나무 위를 올라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위험했다.

솔직히 마투법과 마다라를 발동해서 상대해도 그 녀석을 이길 수 있을까 긴가민가한 참이었다.

판단은 빠르게 섰고 도망을 선택한 천운이었다.

‘후…… 조언은 해 줬지만, 개똥같이 무시하겠지.’

윤시혁은 후에 선 쪽으로 치우쳐지지만, 지금으로서는 선과 악의 경계선에 놓인 시점이다.

2, 3년 뒤의 윤시혁은 의철과 라이벌 구도를 펼치며 대등한 강자로 변모한다.

그가 변모한 사유는 그저 사실을 알게 됐을 뿐이다.

‘꿈에도 몰랐겠지.’

자신의 조부는 검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히는 검성의 영역에 닿기 전 그의 검술은 성장을 멈췄다.

나아갈 길이 막힌 것이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 깨달음을 얻은 그로서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검성의 검술의 끝은 결국 막다른 길이였으며 낭떠러지였다.

‘그러니 자신의 손자인 윤시혁에게 물려주지 않은 거겠지.’

모든 것은 오해로부터 시작됐다.

자신의 검술을 물려주면 윤시혁 또한 자신과 똑같은 길을 갈게 분명할 터.

그렇다 하여도 이 사실은 누구도 믿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검성이라 불리는 그는 윤시혁에 변명 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든 사실을 알고 깨달은 윤시혁은 김의철과 대등해진다.’

후에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주요 인물들의 성장이 필수 불가결이다.

그리고 천운은 그 모든 것을 앞당길 뿐이었다.

하지만 꽉 막힌 윤시혁의 성격상 쉽지는 않을 게 분명하다.

내 조언이 모욕으로 들릴 테니 말이다.

‘후…… 피곤하네. 오늘은 여기서 자야겠다.’

천운은 샌디를 이용해 나무 사이의 해먹을 만들어 그 위를 누웠다.

오늘의 일정은 끝났다.

1일 차의 일정은 카볼을 잡는 것.

그리고 내일, 2일 차의 일정, 마력 회복을 위해 일찍 눈을 감으려는 천운이었다.

마수들의 요란한 울음소리가 거슬리긴 했으나 동시에 들리는 곤충의 울음소리와 서늘한 바람이 천운의 심정을 고요하게 해 줬으며 점점 눈꺼풀이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이런 데에서 잠이 와?]

“혹시 몰라서 결계 마법으로 막아 놔서 괜찮아요.”

[음…… 불안하네. 보통 그런 말을 한 다음 무슨 일이 꼭 생기던데.]

“설마요. 하하.”

“거기 누구야!”

응?

천천히 감긴 눈을 다시 뜰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근처의 누군가가 있었다.

미르마와 떠드는 목소리에 반응한 게 분명했다.

그 설마가 진짜로 일어나 버렸다.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천운은 고개를 불쑥- 내밀며 해먹 아래의 목소리의 주인을 내려다봤다.

‘쟤는 분명…….’

앙증맞은 키와 은빛의 머리칼.

그렇기에 둘 중 누군지 알 수 없는 천운이었다.

쟤는…… 이한이야? 이연이야?

그러나 들고 있던 무기를 보고 누군지 알 수 있던 천운이었다.

천운 곧장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거기 있는 거 다 아니까 빨리 튀어나와!”

당돌하며 앙증맞은 목소리.

이연은 어둠에 흐릿한 검은 해먹을 올려다보며 말하고 있었다.

“아니면 내가 올라간다!”

“해 봐.”

응?

저 목소리는 분명.

“너 김천운이지? 딱 걸렸어! 히히!”

이연은 곧장 들고 있던 수갑구를 나무에 박아 기어오르고 있었다.

암살의 기예가 높은 그녀로서 나무 하나 올라가는 것쯤이야 간단하니 말이다.

“읏차! 응?”

2센티도 안 되는 거리.

그녀는 해먹을 코앞에 두고 이상을 눈치챘다.

통통-

들고 있던 수갑구로 보이지 않는 벽을 툭툭 쳐 보는 이연.

쿠우우…….

그 순간 들리는 해먹 위의 코골이 소리.

이연은 그제야 상황을 눈치채고 있었다.

‘이건 마법?’

해먹 주위를 둘러싼 투명한 결계가 달빛에 비추어 반사되었다.

둥근 구 모양의 결계.

그것이 천운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이익!! 어쩐지 태평하게 처자더니 무시하는 거야!”

이연은 연신 결계를 두드리며 성을 내고 있었다.

“야! 일어나!! 이게 열어!! 호박! 멍청이! 병신! 말미잘!”

그러나 방벽 마법으로 인해 마력이 소모되어 깊은 잠에 빠진 천운을 깨울 수는 없었다.

오히려 다른 것을 깨워 버렸다.

쿠오오오!!!

높게 치솟는 마수의 포효.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새떼들이 포효에 놀라 파닥파닥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이연은 상황이 잘못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야! 야! 일어나! 이거라도 열어 줘! 어디 갈 데도 없단 말이야!”

쿠오오- 드르렁 컥 후…….

이연의 외침에도 결계 안에 요란한 코골이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천운 또한 안심하고 그대로 잘 수 있었다.

이연은 힘에 치중된 인물이 아니니 말이다.

그녀의 파워로는 이 결계를 부수지 못할 게 분명할 터.

보통의 마법도 아닌 초급 마법이라 하여도 현자의 마법은 견고했다.

“이, 이! X발놈아!”

이연은 그대로 천운을 뒤로하고 나무에서 내려와 후다닥 도망갈 뿐이었다.

편안하게 잠을 청하는 천운.

몇 분 뒤, 이연이 도망간 후에 천운의 근처 나무 위에서 일렁이는 사람의 인영이 보이고 시작했다. 곧 투명한 인영에 물감이 번지듯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질 로벤.

모습을 드러낸 질 로벤은 그저 천운을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는 천운에게 다가가 주위에 쳐진 결계에 손을 얹고 있었다.

* * *

햇살이 밝게 비추는 아침.

천운은 기지개를 켜며 해먹에서 일어났다.

해먹으로 변했던 샌디는 곧장 천운의 손목에 모여들었으며 천운은 오늘의 일정을 되새김질했다.

‘좋아 그럼 유물을 찾으러 가 볼까.’

이제는 2차 시험이든 순위든 별 상관이 없는 천운이었다.

합격이야 패만 가지고 있으면 상관없고 순위는 별 상관없으니 말이다.

꼬르르륵-

‘응?’

아침부터 먹어야겠다.

천운은 어제 나뭇가지에 걸어 둔 생선 두 마리를 가져왔다.

이상을 눈치챈 건 그때였다.

‘잠깐? 내 꼬르륵 소리가 아니잖아?’

그저 자연스레 꼬르륵 소리가 나서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이어졌다.

잠에 덜 깼는지 생각해 보니까 내 배에서 나는 소리도 아니었다.

천운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위장 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주인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흑색의 망토를 쓴 여인.

그녀는 망토에 걸린 모자를 푹 눌러쓰고 근처 나무 위에 기대어 졸고 있었다.

내가 일어난 것을 확인한 그녀가 곧장 벌떡 일어나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으, 응? 어…… 안녕하세요?”

“…….”

내 말에 대답 없이 그녀는 그저 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언뜻 모자 안쪽 그녀의 인상을 보니 다크서클이 눈가 밑에 내려앉은 게 많이 피곤해 보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이제 보니까 내가 아니라 내가 들고 있던 생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실래요?”

“…….”

그녀는 그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질 가문.

50년 전, 영국의 마법 가문과 한국의 유서 깊은 마도학 가문이 경합하여 생겨난 한국의 4대 가문 중 하나이다. 결합하여 생겨난 가문의 명은 영국 마법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마법사 ‘질 룸벨’의 이름을 본떠 지어진 가문의 명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질 룸벨과 비슷한 재능을 가진 질 로벤이 구워지는 생선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다 구워졌어요.”

천운은 구워진 생선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작은 입술로 생선을 한입 와구 물더니.

오물오물오물.

연이어 오물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먹는 모습이 마치 도토리를 먹는 다람쥐 같아 귀엽다고 생각한 천운이었다.

‘배고프셨나 보네.’

천운은 남은 생선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가 볼게요. 식사하시다 천천히 가세요.”

뭐 배고파 보여서 생선을 주긴 했으나 여기까지였다.

반응을 보니 자신과 대치할 생각도 없어 보이고.

그때였다.

그녀 또한 생선을 오물거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응? 왜요?”

“…….”

음…… 말이 없으니까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네.

막상 내 패를 뺏을 생각은 없는 거 같고, 자신이 아는 질 로벤이라면 아카데미의 순위 따윈 별 신경 쓰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무해한 그녀라도 행동의 이유는 도통 알 수 없었다.

천운은 별수 없이 대답이 없는 그녀를 뒤로하고 자리를 풀숲을 헤치며 나아갔다.

그리고 그녀 또한 천운을 뒤따르고 있었다.

‘아니, 진짜 왜 저러지? 은혜라도 갚으려고 하나?’

[어제 저 아이가 네 결계 마법에 간섭하던데?]

‘진짜요?’

[응. 근데 당연히 실패했지만, 그게 누구 마법인데.]

아!

그렇구먼.

천운은 그녀가 자신을 뒤따르는 이유를 알았다.

‘아무래도 마법 때문일 거예요.’

[응? 마법?]

미르마가 가르쳐 준 초급 결계 마법은 보통의 결계 마법과 전혀 다른 질을 자랑한다.

그녀로서는 초급이라 하겠지만 강도로는 중급과 맞먹을 것이다.

그런 마법을 그녀가 간섭하였으니 아마 이 마법의 이상을 눈치챘을 게 분명할 터.

‘하긴 마법에 사용된 마력양은 초급 마법이 분명한데 강도가 이상하게 단단했으니까.’

그녀는 호기심이 일었고 의문이 들었을 것이다.

정녕 이 마법이 자신이 알던 그 초급 결계 마법이 맞는지 말이다.

결국에는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말았다.

‘아마 저 상태라면 끝까지 따라올 테고.’

“저기요.”

천운은 몸을 뒤로 돌려 뒤따라오는 그녀를 바라봤다.

미행하는 것도 아니고 대놓고 따라오는 그녀.

천운의 물음에 움찔 하나 없이 그저 무표정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그녀였다.

“그렇게 뒤따라오실 거면 협력하실래요?”

고개를 갸웃하는 그녀.

천운은 그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순위에 별 신경 안 쓰는 거 같아서요.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대신 던전에 갈 건데 같이 가실래요?”

천운의 말에 더욱 의아해한 그녀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