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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 속 운만렙 캐릭터가 되었다-50화 (50/176)

제50화

#49

햇빛이 내리쬐는 아침임에도 섬은 불길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곳에서 윤시혁은 수풀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윤시혁의 손에는 3개의 은색 패와 1개의 금색 패가 쥐어져 있었으나, 성에 차지 않는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녀석은 어디에 있지?”

그놈을 찾아야 한다.

다른 놈들의 곱슬머리를 보기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모든 건 녀석 때문이다.

그런 놈은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게 확실하게 밟아 놔야 한다.

자신을 무시한 남자는 조부로도 충분하니 말이다.

“도망 하나는 빠르군.”

수석인 그놈이 가장 마지막에 출발한 게 분명할 터, 윤시혁 근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김천운은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자신이 기다리고 있던 위치에 반대 방향으로 쏜살같이 도망쳤다.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우연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확신이 선 움직임이었다.

정확히 자신이 있던 위치에 반대 방향으로 그것도 초반부터 빠르게 달려 나갔으니 눈치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녀석은 곧 잡힌다.’

녀석의 자취를 뒤따르며 숲을 헤쳐 나가는 윤시혁이었다.

곧 섬의 끝인 해변에 도착하면 녀석의 자태 또한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윤시혁은 땅을 박차며 빠르게 움직였다.

숲에 나무와 풀잎들은 윤시혁의 검에 무참히 베어지며 윤시혁의 앞길을 막는 것은 무엇도 없었다.

그리고 이내.

‘찾았군.’

녀석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풀 사이에 숨어 무언가를 관망하는 녀석.

윤시혁은 그를 보는 동시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으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왜지?’

지금까지의 분노가 거짓이라는 듯 정신은 침착했으며 녀석을 바라보는 시선은 신중했다.

‘그런가…… 이건 내 방식이 아니다.’

느껴지는 망설임을 그렇게 단정 지을 수밖에 없었다.

기습이라니 웃기지도 않는 짓거리를 할 뻔했다.

윤시혁은 그저 서 있던 풀숲에 앉아 자신 또한 김천운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키에에에에엑!!!

찢어지는 괴성.

윤시혁은 순간 흠칫-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빠르게 괴성이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저건…… 5등급 마수 카볼이군.’

5등급 마수 카볼.

그 괴물을 상대하고 있는 김의철과 한설아였다.

그 둘만으로는 버거운 상대일 게 분명할 터.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윤시혁은 장검을 들고 그 두 명에게 가세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러기도 전에.

“뭐? 저 녀석 뭐 하는 거야!”

김천운이 움직였다.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을 박차며 카볼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자신감이지?! 미친 건가?”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었다.

현재로서 자신도 상대가 불가능한 버거운 괴물에게 김천운은 자신 있게 달려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저절로 미간이 좁혀지는 윤시혁이었다.

‘뭐야…… 저건?’

카볼한테 달려든 천운의 주위에 흑색의 반구가 생성되며 천운과 카볼을 뒤덮었다.

무엇도 보이지 않는 흑색의 반구.

빛을 반사할 정도의 칠흑의 반구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바깥에서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몇 초 뒤 들린 것은 그 괴물의 단말마였다.

키에에에엑!!!

끔찍하게 고통을 토하는 비명.

사태를 관망하던 윤시혁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져 갔다.

‘죽어 가고 있군. 그 괴물이.’

위험도 5등급의 괴물이 저 검은 흑구 안에서 죽어 나가고 있다.

괴물의 끔찍한 비명만으로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윽고 카볼의 비명이 힘을 잃은 듯 약해지며 잔잔히 끊어졌으며.

후우웅-

흑색의 반구는 안개가 개듯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녀석의 상태는 경악스러웠다.

한 손으로 괴물의 목을 움켜쥐고 온몸이 피로 덧칠 된 녀석의 모습.

윤시혁은 한순간 김천운을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이 휩싸이고 말았다.

‘도대체…… 녀석은 뭐지?’

두려움은 아니었다.

자신이 저 모습에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비위가 약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감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다.

‘내가 저 녀석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다니.’

경외심이 들었다. 단신으로 카볼의 상대한 녀석의 기량에 말이다.

동시에 의구심이 들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무시했던 녀석은 정말로 약자가 맞는 것일까?

그러나 곧 생각을 갈무리하고 고쳐먹은 윤시혁이었다.

그 말은 즉, 녀석을 인정하는 꼴이니 말이다.

스탯은 강자와 약자를 구분하는 선이었으며 힘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그를 보니 의미가 불명확해졌다.

그러니 자연스레 짜증 나는 기억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개 같군…….’

검성이라 불리는 조부는 누구도 인정하는 위인이었다.

그러나 그 위인이신 조부는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보다 스탯이 낮은 그놈을 후계자로 삼았으니 말이다.

그때의 변명이 지금도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윤시혁이었다.

[내 검은 너와 어울리지 않지…….]

그것이 자신에게 검을 가르치지 않는 이유였다.

변명에 지나지 않는 모순적인 말.

자신과 비교해도 한참 모자란 그놈에게 검성의 검술을 물려준 이유이기도 했다.

‘쓰레기들은 쓰레기의 자리가 있다. 절대 그놈처럼 되게 두지는 않겠다.’

윤시혁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을 갈무리하며 다시 김천운을 노려봤다.

* * *

“쟤는 도대체 뭐 하는 애야?”

“그, 그러게?”

그것이 모든 상황이 끝나고 김의철이 한설아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한설아는 그저 모호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저 상황을 설명하기에는 자신도 천운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진짜…… 도대체?”

휘둥그레진 김의철의 눈은 김천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흑색의 반구에 가려져 상황을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명확한 건 5등급의 마수를 김천운이 단독으로 쓰러트렸다.

두 명으로도 상대하기 버거운 녀석을 말이다.

“후…… 그래도 일단 3등급이라 빡세네.”

천운은 그 두 명에게 다가갔다.

천운의 터벅터벅 다가오는 소리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불러왔다.

아무리 친구라도 지금은 2차 시험 중.

코앞에서 천운의 무력을 감상한 의철의 반응은 떨떠름했으며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역시 우연이 아니었어. 저 녀석은 내 힘을 압도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긴장한 상태에서 의철은 대검을 들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의철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반응에 의아해한 천운이었다.

“왜 그래?”

“어, 어?”

“몸은 괜찮냐? 시험 중에 저런 괴물을 만나고 고생했겠네.”

천운의 살가운 반응에 자신이 방금 예상했던 생각이 부끄러워지는 의철이다.

일단 생명의 은인인데 자신은 그깟 금색 패 하나에 때문에 은인을 적으로 생각했으니 말이다.

의철은 그저 말없이 자신이 잡아 온 물고기 두 마리를 천운에게 건넸다.

“덕분에 살았어, 고마워.”

“그러냐? 그럼 다행이고.”

그들의 대화를 그저 멍하게 듣던 한설아가 이내 정신이 번쩍 든 듯 눈이 희번덕 떠지며 천운에게 물었다.

“아, 아니! 그것보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마법이야.”

“아니, 방금 그 상황이 마법 하나로 가능하다고?”

마법이 그 정도로 우월했나?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천운의 변명이었다.

처음 보여 준 그 흑색의 반구가 마법이라 쳐도 녀석을 혼자의 힘으로 쓰러트리는 건 말이 안 된다.

“설명해 주기 싫은 거지?”

“일단 마법으로 어떻게 한 건 맞는데.”

“에휴…… 알겠어.”

이미 천운의 대응에 익숙해진 한설아였다.

묻는 것도 귀찮아졌다.

그런 한설아를 바라보며 싱긋 웃은 천운 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럼, 시험 중이니까. 난 먼저 간다.”

“어, 어 그래. 나중에 보자.”

조금 전까지 카볼을 쓰러트린 기량을 보여 준 천운은 사라지고 그저 태평스럽게 손을 흔들며 헤어지는 김천운이었다.

천운의 몸이 풀숲에 가려졌을 때쯤 의철의 조용한 혼잣말이 들려왔다.

“마법…….”

보통 사람이 들으면 이해가 안 되는 게 당연했다.

한설아가 모르고 있으니 아마 그 사실을 숨기고 있겠지.

현자의 마법.

천운의 곁에는 그녀가 있다.

한설아는 모르겠지만 천운의 그 한마디가 더없이 이해되는 의철이였다.

그리고 또 하나 마음 한구석에 올라오는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까지…….

[조급해하지 마라.]

그런 의철의 마음을 알았는지 길은 그저 잔잔히 말을 이었다.

[마법은 한계가 명확하지만 넌 아니야.]

‘한계라니요?’

[현자 정도가 아닌 이상, 마법으로 그 이상의 성장은 불가능해. 하지만 검사로서의 너는 끝없는 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저는…….’

[네가 마법을 배운다는 것에 말리지는 않으마. 그러나 마법은 네 부족한 힘의 대용이다. 더욱 성장한 후에 너는 알게 되겠지. 마법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마음 한구석에 와닿는 잔잔한 조언.

의철은 다시 한번 길의 조언을 되새김질하며 생각에 잠겼다.

* * *

[천운아.]

‘네 알고 있어요.’

풀숲을 헤치며 어느 정도 넓은 들판에 도착한 천운이었다.

천운의 발걸음은 들판에서 멈췄으며 누군가에 들으라는 듯 주위에 소리쳤다.

“이제 그만 나와.”

씌엑!

반듯하게 가로로 베어지는 풀들.

그 사이로 윤시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안색은 짙은 적막이 내려앉았으며 눈에 서늘한 푸른 안광이 천운을 향하고 있었다.

윤시혁이 천운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한 가지만 묻겠다.”

“뭔데?”

녀석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망설임.

윤시혁은 잠시 뜸을 들인 뒤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네놈의 스탯은 진짜인가?”

윤시혁 그저 천운을 노려보고 있으며 천운이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천운 그저 담담하게 입을 말했다.

“숨긴 게 아니야. 내 스탯은 네가 생각한 대로 20이 맞아.”

그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가……. 그렇다면 나는 너를…….”

윤시혁은 조용히 자신의 고유 스킬인 날을 발동했다.

그가 천운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부정하겠다.”

후우웅!

바람을 가르는 윤시혁의 검날.

그의 장검이 천운을 향했다.

20의 스탯으로 그 이상의 강함을 가진 모순덩어리를 없애기 위해.

* * *

뒤틀린 사고를 가진 녀석이었다.

자신이 만든 캐릭터 윤시혁.

행동만 보면 악이긴 하나 선에 치우쳐진 인간이다.

자신을 인정하지 않은 조부와 그런 조부가 인정한 소녀로 인해 약자를 혐오하며 뒤틀린 사고방식을 갖게 됐다.

강자와 약자를 나누고 그 기준을 그저 스탯으로만 정한다.

조부가 인정한 그 소녀는 자신보다 한없이 낮은 스탯을 가졌으니 말이다.

“내가 너를 쓰러트려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주마.”

윤시혁의 검날이 천운을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의 검날에 맴도는 기운은 그의 고유 스킬 ‘날’이었다.

어떠한 검보다 예리하게 빚어지는 칼날.

그의 칼날에 닿은 것은 자신의 단검이라도 무참하게 베어질 것이다.

‘지금 상황에선 피하는 수밖에.’

천운은 ‘의안’을 발동하여 윤시혁의 움직임을 세세하게 읽은 뒤 예상했다.

예상한 공격은 피할 수 있었으나 반격할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현재로선 저 검날을 막아 낼 게 없어.’

성가신 고유 스킬과 검술이 조화.

상대하기 가장 껄끄러운 인물이었다.

물론 주요 인물들 모두가 그렇긴 하지만.

‘마력은?’

마력 : (16.6/46)

어떻게든 마투법과 만다라를 아끼며 16 정도의 마력을 아껴 놓은 천운이었다.

이미 이 상황을 예정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미르마에 의해 처음부터 윤시혁이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녀석과의 대치는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

훙!!

윤시혁의 날이 선 장검이 천운에게 휘둘러지고 있었다.

의안을 발동한 천운은 윤시혁의 장검을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상을 눈치챘다.

아무리 의안을 발동하여 피하기 쉽다 하여도 이 정도일 리가 없다.

……설마?

‘윤시혁은 봐주고 있어.’

계속해서 난무하는 윤시혁의 장검.

그 와중에 입을 여는 윤시혁이었다.

“왜지?”

“뭐가?”

“너 정도의 사내가 어떻게 그런 스탯으로 수치에 맞지 않는 강함을 지닌 거지?”

휘몰아치는 칼날 사이에서 천운은 힘겹게 말문을 열고 있었다.

놈의 사고방식은 틀려먹었다.

“당연히 노력이지.”

“노력? 노력했으면 스탯이 올라갔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넌 아니야! 노력이 아닌 꼼수일 뿐.”

“틀렸어.”

윤시혁의 칼이 한순간 멈췄다.

미간을 찌푸리며 노려보는 윤시혁.

“틀렸다고?”

“수단이 다를 뿐이야. 검성이 너를 인정하지 않은 것처럼.”

“뭐, 뭐! 이 개자식이!”

“윤시혁.”

천운은 그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검성의 검술에 연연하지 마. 검술의 비전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냐?”

“네가 뭘 안다고…….”

우우웅!!

조금 전까지와 차원이 다른 기세.

윤시혁의 고유 스킬인 ‘날’이 장검의 날을 더욱 예리하게 빚어내며 강대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그 순간 천운은 윤시혁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번쩍!

눈부신 빛이 시야를 가리고 세상을 뒤덮는 느낌이었다.

한순간에 터진 섬광은 윤시혁의 시야를 가렸으며 그 순간 사사삭- 풀숲을 헤치고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윤시혁의 눈이 돌아왔을 때는 넓은 들판에 자신 혼자만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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