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8화
#47
그날 밤.
미르마는 천운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계속 지켜보던 미르마가 황당해하며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미친 거야? 천운아?]
“지극히 정상이에요.”
[그럼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미르마가 저렇게 말하는 것도 이해가 가는 천운이었다.
천운은 컵 두 개를 준비하여 각각 온수와 냉수를 담고 반지에 실을 묶어 10초에 한 번씩 번갈아 가며 키빈의 반지를 컵에 담그고 있었다.
그리고 그 행위는 1시간이나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원인 모를 행동에 미르마의 근심만 커질 뿐이었다.
[오늘은 유난히 피곤한 거 같은데 빨리 쉬는 게 좋지 않을까? 내일 2차 시험이잖아.]
“괜찮아요. 내일 2차 시험 대비도 끝났고 별로 안 피곤해서요. 그리고 어차피 얻은 거 미리미리 해 두는 게 좋잖아요.”
[그니까 뭘……?]
미르마의 물음에도 천운은 그저 할 일만 할 뿐이었다.
과연 남들의 눈에는 이 행위를 보면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잠재 유물의 숨겨진 특성 개화법은 의미를 모르는 특이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용암에 한 시간 동안 담그기나 1,000c와 50,000c 정도의 고온 기압을 주어야 개화 되는 잠재 유물 등이 있는데 그것들과 비교하면 키빈의 반지는 약과 수준이다.
“이제 이걸 빠르게 돌리면.”
천운은 실을 끝부분을 잡고 반지를 원심력 삼아 빠르게 돌리고 있었다.
돌아가는 반지에서 공기를 가르는 훙훙- 소리가 들렸으며 천운은 이 소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힘을 늦추지 않고 계속 돌리기 시작했다.
“10분간 이 상태에서 유지하면 될 거예요.”
[그니까 뭐가?]
“말보다는 눈으로 보세요.”
훙훙거리는 소리가 천운의 기숙사 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반지에서 진동하는 듯한 떨림을 느끼는 천운이었다.
‘지금이다!’
천운은 마지막 클라이맥스라는 듯 더욱 손가락과 손목에 힘을 주어 반지를 빠르게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뭐! 뭐야?!]
환한 빛이 반지에서 터져 나왔다.
너무나도 밝은 섬광 같은 빛에 질끈 눈을 감는 천운이었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됐다!”
곧 환한 빛은 천천히 힘을 잃은 듯 꺼지며 영롱한 금빛 오라 같은 것이 반지에 맴돌고 있었다. 천운은 곧장 반지의 특성을 확인했다.
{키빈의 반지}
등급 : S급
설명 : 과거에 인첸트의 권위자 키빈이 만든 반지이다.
<충격 흡수 : 총 3번의 물리 충격을 흡수하는 반지이다. (단, 마력이 둘러진 충격은 흡수가 불가능하다.) >
<반지의 희생 : 착용자가 감당 불가능한 타격을 받을 시 반지를 희생하여 1회 그 충격을 흡수하여 막을 수 있다.>
반지의 희생.
역시 예상대로 숨겨진 특성은 저것이었다.
착용자가 감당 불가능한 타격.
말 그대로 맞으면 즉사인 기술을 받았을 때 반지의 희생으로 그 타격을 막아 주는 특성.
어떻게 보면 내 목숨줄이 하나 더 생긴 격이었다.
[뭐…… 뭐?! 그건 뭐야!]
“숨겨진 특성이에요.”
[숨겨진 특성이라니…… 설마 잠재 마도구인가?]
“미르마도 알고 계셨네요?”
[이걸 만든 놈들의 성격은 괴팍한 놈들이 많아서 말이야. 보통의 유물과 잠재 유물도 분간 못하게 만들고 또 숨겨진 특성 개화 조건도 난해하게 만들었으니 뭔가 성격이 뒤틀린 놈들이 많았어.]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은 사람 말이에요?”
[그래. 하지만 분명 그런 유물의 개화 조건은 제작자만이 알 텐데 네가 어떻게…….]
“우연히 찾은 석판 덕분에요.”
[석판? 그런가? 해석판을 말하는 건가!]
해석판이란 잠재 유물의 개화 방법이 새겨진 석판을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 키빈의 반지의 해석판 또한 세계 어딘가에 존재하기는 하나 천운이 그것을 봤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이미 개화 방법을 알고 있었으니 굳이 볼 필요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냥 그녀에게 말하는 변명이었다.
“그럼 이제.”
늦은 시간에 작업을 마친 천운은 몸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켠 다음 자루 안의 검은 모래들을 바라봤다.
“이것도 미리 끝내 놔야겠지.”
* * *
다음 날.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이 끝나고 살아남은 응시생들은 처음 1차 입학시험이 진행된 A돔으로 모였다. 1차 시험 때보다 사람의 수는 현저히 줄어 있었으나 그들은 하나같이 비장한 마음가짐을 갖고 2차 시험의 안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삐이익-
단상에서의 익숙한 마이크 울림에 시선이 향한 응시생들.
그곳에선 한 여인이 서 있었다.
2차 시험의 감독을 맡은 이서린이라는 교관이었다.
“이번 2차 시험의 감독을 맡을 이서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단상 위에서의 이서린의 목소리가 마이크에 울려 돔에 퍼지고 있었다.
그녀의 잔잔한 말투에선 왜인지 모르겠지만 돔 안의 응시생들을 한 번에 집중시킬 마성이 느껴졌다.
“그럼 2차 시험의 설명에 앞서 먼저 주제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2차 시험의 주제는…….”
‘서바이벌이야.’
이서린의 설명을 끝까지 들을 필요가 없는 천운이었다.
이미 주제와 규칙 등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2차 시험의 주제는 서바이벌.
길영트가 관리하는 마수들의 섬에서 치르는 2차 시험은, 섬에 존재하는 낮은 등급의 마수로부터 3일간 생존하는 것이 이번 2차 시험의 합격 요인일 것이다.
그러나 2차 시험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마수가 아녔다.
“응시생은 각자 귀환석이 설치된 조끼를 착용하시게 될 겁니다. 이 귀환 조끼는 어느 정도 충격을 받을 시 장비 내부에 설치된 귀환석이 작동하여 이송되는 원리입니다. 추가로 유물 사용 또한 금지이며 유물 특성 발현이 감지되면 조끼 내부의 귀환석이 발동됩니다. 말 그대로 사용 가능한 것은 아카데미에서 제공한 생도용 무기뿐입니다.”
귀환 장비는 허용 범위의 충격을 넘을 시 발동되는 원리였다.
당연하게도 귀환 장비가 발동될 시 곧바로 불합격으로 간주한다.
“응시생들이 속해 있는 반마다 하나의 패가 주어집니다. S반은 금색 패 A반은 은색 패 그리고 나머지 반들은 모두 통합하여 갈색 패가 주어집니다.”
여기서부터가 본론이라는 듯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응시생들의 집중력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이서린은 말을 이었다.
“섬에서 응시생들과의 대치가 가능하며 또한 패를 뺏는 것 또한 가능합니다. 3일 동안의 생존은 하였으나 패가 없으면 불합격이며 현 등급보다 더욱 높은 등급의 패를 가진 채 합격할 시 곧바로 승급이 이루어집니다. 또한 획득한 패의 수에 따라 순위가 정해집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S반의 금색 패를 가지고 있는 응시생들은 그 밑의 반, 모두의 표적이 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막상 김천운은.
‘평범하게 생각하면 굳이 열심히 할 필요도 없지.’
이미 1차 시험에서 수석으로 합격하여 원하는 유물을 입학식에서 얻게 될 천운이었다.
그저 2차 시험에서 순위와 상관없이 2일 동안 숨어 지내기만 하면 상관없긴 하지만, 하나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아마 이번 2차 시험에서 그놈이 등장한다.’
응시생으로선 상대가 안 되는 마수.
5등급 마수 심해 마수 ‘카볼’.
높은 등급은 마수의 위험도와 비례한다.
5등급 정도의 마수는 현직 B급 영웅이 쓰러트릴 정도의 등급이었다.
말 그대로 그놈의 등장에 아비규환이 벌어진다는 뜻이었다.
‘스토리대로라면 김의철과 한설아가 협력해 쓰러트린 덕분에 사망자는 없었어.’
힘겹게 싸우며 결국에는 쓰러트리는 데 성공하는 한설아와 김의철, 그러나 두 명 또한 만신창이가 되어 힘겹게 3일을 이어 나간다.
‘스토리대로라면 그렇겠지만.’
이미 약점을 알고 있는 내가 그 상황에 합류한다면 아마 어렵지 않게 쓰러트리는 게 가능하다.
“자, 그럼…….”
이내 모든 설명이 끝난 이서린이 나직하게 입을 열어 시험의 시작을 알렸다.
“전부 게이트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 * *
게이트를 넘어 섬에 도착한 응시생.
모두가 도착한 것을 확인한 이서린 교관이 입을 열었다.
“이곳은 아카데미에서 관리하는 위험 마기 농도 3급의 섬입니다. 응시생들은 지금부터 각자 흩어져 2일 동안 생존 서바이벌을 진행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이서린은 응시생 중 한 명을 호명하고 그를 불렀다.
“출발 순서는 낮은 등급 순서로 진행하겠습니다.”
출발 순서는 E반부터 차례대로 출발하여 S반까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순위권의 4명.
한설아, 윤시혁, 김의철 그리고 나였다.
“나중에 보자.”
“그래.”
한설아는 이 말만 남기고 진중한 얼굴로 숲을 향해 나아갔다.
윤시혁 또한 그저 말없이 출발하였으며 남은 김의철은 숲을 한번 돌아보더니 한설아와 윤시혁이 출발한 반대 방향을 향해 출발했다.
모든 응시생이 사라졌을 땐 그곳에선 이서린 교관과 천운만이 남아 있었다.
“김천운 응시생. 출발하시면 됩니다.”
“넵.”
이서린은 천운을 보며 싱긋 웃더니 입을 열었다.
“합격을 기원합니다, 수석 김천운. 그리고 아마 손목에 그것은 유물이겠죠.”
“네? 네.”
한순간 샌디를 알아차려 당황했으나, 이서린의 반응은 달가웠다.
“들고 있는 것은 상관없으나 사용되면 강제 이송되니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넵!”
“그럼 출발!”
천운은 이서린을 뒤로하고 숲을 박차고 나아갔다.
이서린의 묘한 반응에 의문이 들었지만 길게 생각하지 않은 천운이었다.
그리고 떠나간 천운을 향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이서린 이었다.
“어린 나이에 무슨 사정이 있길래 저런 상처가…… 쯧쯧.”
트래져 헌터로서 그녀의 직업답게 가지고 있는 스킬 중 가장 유용하게 쓰인 스킬이 있었다.
벽 너머를 볼 수 있는 투시 스킬.
하나의 벽면 넘어 무언가를 관찰하며 볼 수 있는 이 스킬로 인해 천운의 손목에 무언가를 볼 수 있었던 이서린이었다.
그녀는 그저 안쓰러운 표정으로 천운을 보낼 뿐이었다.
* * *
“좋아 우측으로 이동했어.”
“얘들아 준비됐지?”
5명의 응시생은 누군가의 모습을 숨어서 관찰하고 그를 몰래 뒤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B반의 소속된 응시생이었으며 서바이벌에 살아남기 위해 서로 간에 협력을 선택한 그들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래도 될까?”
“왜? 교관님이 협력은 안 된다는 말도 안 했잖아.”
“그렇긴 하지?”
“그런 것보다 빨리 저놈이나 뒤쫓자고.”
그들이 몰래 뒤쫓고 있는 응시생은 S반의 수석인 김천운이었다.
그들은 천운보다 앞서 출발한 뒤 덫을 깔고 김천운이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S반이라도 5명은 무리겠지.”
“그래도 쟤 소문으로는 스탯을 숨긴 애라고.”
“그걸 아직도 믿는 애가 있네. 그거 낭설이야 임마!”
소문은 소문을 타고 크게 부풀어 오른다 하지 않은가?
더구나 더욱 말도 안 되는 소문으로 말이다.
자신보다 두 배 높은 스탯을 가진 응시생을 이겼다느니 그의 뒤에는 친목회가 있다느니 지나가는 개가 들어도 박장대소할 소문들이었다.
“그리고 사실이라 해도 저놈이 어쩌겠어? 다구리에 장사 없는데. 일단 저놈의 금색 패를 뺏고 균일하게 나눠 보자고.”
“난 찬성.”
“으, 에라! 모르겠다! 나도 찬성!”
“그럼 조용히 저놈을 함정으로 유도하고 다구리 치는 거야 알겠지? 좋아 출발!”
5명 중 두 명이 숨어 있던 풀숲에서 나와 천운을 덮치려 달려들었다.
여기서 그의 행동은 둘 중 하나.
도망치거나 아니면 맞서거나.
도망치면 어떻게든 자연스럽게 함정을 설치한 곳으로 유도하면 되고 만약 그가 맞서면 뒤에 몰래 숨어 있다 그를 덮칠 생각이었다.
‘일정한 충격만 주면 자동으로 귀환석이 발동될 거야. 그러니 기습이 중요한 거지.’
그들을 주도하는 대장격의 응시생은 숨을 죽이고 나머지 2명과 함께 상황을 지켜봤다.
먼저 달려든 그들의 손에는 이미 무기를 뽑아 놓은 상태였다.
아카데미에서 관리하는 이 섬 안에서는 아베타들에게 흔히 사용되는 유물 특성 중 하나, 현현 사용이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시험 중 개인 유물 사용을 방지하기 위한 길영트의 조치였다.
그리고 이내.
그들은 천운을 위협하듯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천운은 그 두 명을 한번 보고 씩- 자신 있게 웃을 뿐이었다.
천운의 반응에 자신들을 만만하게 봤다고 생각하는 두 명이었다.
상황이 변한 것은 그때였다.
“뭐?! 뭐야!”
천운의 몸이 마치 신기루가 되듯 사라졌다.
분명 천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이런 미친, 얘 어디 갔어!’
귀신이 곡할 노릇에 어이가 없어 뒤통수가 당기는 그였다.
그리고 그 순간.
“악! 으…… 뭐야…….”
털썩-
이번에는 뒤통수가 아니라 목덜미가 아리기 시작했다.
통증을 느끼기도 전에 정신이 끊기며 기절하고만 그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를 제외한 다른 4명의 응시생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하나같이 보이지 않은 무언가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뒤통수가 아린 충격과 함께 기절해 나갔다.
이내 마지막 한 명만이 남은 상황.
“X발…….”
그가 기절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털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