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화
#44
“이런…… 제가 뭐 할 수 있는 게 없었군.”
상황이 마무리된 것을 확인한 학장이 천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김천운 응시생. 내 미안하게 됐네…….”
“예, 예? 아닙니다.”
“본래 이럴 계획은 없었네. 차진혁 군의 간단한 사과와 보상비로 타협하라 일렀건만 그쪽에서 사과를 요구할 줄이야.”
“학장님이 사과하실 일은 아닙니다.”
“흠…… 그리 말해 주니 고맙네. 헌데, 용케 그 압박 속에서도 할 말을 했구먼? 어린 나이에 견디기도 힘들 텐데. 허허!”
천운을 보며 너털하게 웃는 학장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형편을 바라보고 차윤혁에게 미리 언질을 해놨으나, 김천운의 판단을 존중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천운의 예상외의 당돌함에 기분이 좋은 학장이었다.
“뭐, 대련이라고는 하나, 차진혁 군이 먼저 손을 댔으니 말이야. 그러나 응시생의 신분으로 교관 허락 없이 대련장을 이용한 것도 어떻게 보면 위반이긴 하지. 그것은 자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 않나?”
한민아를 흘겨보는 학장.
현 길영트의 교관이자 길영트의 모범을 보여야 할 그녀로서 학장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더구나 자네. 차진혁 군을 상대로 유물을 썼군.”
“어? 알아보셨어요?”
“그래. 대련에서 유물 사용은 금지인 건 알고 있겠지? 설령 아무 특성이 없는 유물이라도 말이네.”
김천운을 향해 쏘아붙이는 학장님.
그러나 이내 한숨 푹 쉬던 학장의 표정이 온화하게 풀어지고 있었다.
“라고…… 원래라면 이렇게 추궁하여 작은 징계를 내리려 했으나, 상황이 상황이니 별수 없군. 뭐 이게 더 일 처리가 편할 거 같구먼. 징계 위원회를 열 필요 없이 바로 처분을 내리지. 차진혁 응시생을 불합격 처리하고 김천운 응시생은 합격한 이후에도 2주 동안 교내 봉사로 하지.”
생각보다 크게 고민 없이 내린 처분이었다.
학장은 그 말을 한 뒤 돌아서 선반 커피포트에 물을 울리고 커피를 타고 있었다.
커피의 진한 향이 학장실을 감쌌다.
그는 조심스레 계속해서 가만히 서 있던 포스맨을 보며 입을 열었다.
“포스맨 님께서는 차를 좋아하십니까? 아니면 커피를?”
“저는 괜찮습니다.”
“그렇습니까? 한데 어인 일로 이곳을 찾아오셨는지……?”
“저 응시생에게 볼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천운을 흘겨보는 강화두.
이내 눈이 똥그래져 벙 찐 표정이 된 천운이었다.
“저요?”
“허허!”
강화두에 말에 입을 벌리며 사람 좋게 웃는 학장이었지만 속으로는 당황하고 있었다.
‘한민아 양은 그렇다 쳐도 포스맨까지 이 아이는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고…….’
한민아가 김천운의 보호자라 쳐도 포스맨까지 연관될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한 가지는.
그들이 소속해 있는 친목회가 이 응시생의 뒤를 봐주고 있다.
‘흠…… 어떻게 보면 상황이 이렇게 돌아간 것에 다행이라 해야겠군.’
학장의 잘못된 판단으로 한민아가 추궁해도 할 말이 없는 학장이었다.
빠른 사죄로 상황을 무마시키긴 했으나 만약 이 응시생의 뒤에 한민아뿐만 아니라 친목회까지 있다면…….
‘후…… 뭐 지나간 일이니.’
잠시 커피를 삼킨 학장은 포스맨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난 또 당신이 찾아왔기에 또 건물 몇 채는 부서질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설마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유 없이 그러지는 않습니다.”
“흠…… 그렇군요. 이 아이와 조용히 나눌 이야기가 있으신 거 같으니, 우측 통로에 상담실을 쓰시면 될 거 같군요.”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민아 양은 잠시 나와 얘기를 나누지 않겠나?”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한민아였다.
그 말에 강화두와 김천운은 조용히 학장실의 나와 상담심을 향했다.
학장실의 남은 두 사람.
학장은 커피를 가져와 조심스레 그녀의 앞에 탁자에 놓은 뒤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입을 열었다.
“많이 달라졌구먼. 한민아 양.”
“제가 말인가요?”
고개를 갸웃하는 한민아였다.
학장은 제차 커피로 목을 축이고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감정이 풍부해졌군.”
“저는 옛날부터…….”
“그래. 알고 있네. 그러나 드러내는 방법은 몰랐겠지.”
이내 싱긋 웃은 학장은 천운이 나간 학장실의 문을 바라봤다.
“저 아이군? 자네를 변하게 한 게 말이야.”
살며시 무감정한 표정을 풀고 입꼬리를 올리는 한민아.
그녀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상담실을 향하는 강화두와 김천운.
그 둘 사이에서는 서먹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천운은 옆에서 걷고 있는 강화두를 바라봤다.
입과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가린 마스크.
그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 그의 심정 또한 알 수 없는 천운이었다.
‘이 사람이 왜 나를 찾지?’
생각은 이렇게 했으나 한 가지 짐작 가는 상황은 있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한우성이 시킨 거겠지.
이내 상담실에 도착한 천운과 포스맨은 상담실 중앙에 놓인 탁자 양옆 의자에 앉아 서로를 마주 보았다.
몇 초간의 정적.
먼저 입을 연 것은 포스맨이었다.
“그래. 아직 응시생의 신분이라 수업도 있고 바쁘겠지. 길게 잡아먹진 않으마.”
그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처음에 악수하는 듯싶어 천운 또한 손을 내밀려 했으나, 그는 그대로 팔꿈치를 탁자에 대며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천운은 곧장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너무 뜬금없지만, 팔씨름을 하지 않겠나?”
갑작스러운 행동이었으나 그의 말투에선 진중함이 묻어나오며 상황이 장난이 아님을 알렸다.
그리고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천운 또한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의문이 든 천운이었다.
‘왜 나를 상대로 고유 스킬을…….’
세간에서 포스맨의 힘은 ‘단순히 100을 넘은 스탯의 힘이다, 아니면 그의 고유 스킬의 힘이다.’라는 두 가지 의견으로 나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의 스탯이 100을 넘어 초월한 힘이 맞으며 그의 고유 스킬은 그의 힘과는 전혀 연관 없는 무관계한 스킬이라는 게 사실이다.
파워 스캔.
자신과 대치한 자의 힘, 성정 등을 파악할 수 있는 포스맨의 고유 스킬.
그것은 굳이 목숨을 건 싸움이 아니더라도 발동이 가능한 스킬이었다.
천운은 사실을 모르는 척 그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왜 갑자기? 팔씨름을?”
“길게 설명하는 취미는 없다.”
그의 묵직하며 힘이 담긴 목소리에 일부러 겁을 주려는 듯한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천운은 잠깐 포스맨을 지그시 바라봤다.
그러나 그의 가면 때문인지 그의 표정을 파악할 수 없는 천운이었다.
“하…….”
한숨을 쉬는 천운.
차진혁 다음으로 곤란한 상황이었다.
그가 스캔하는 정보는 스탯이나 성향뿐만 아니라 가끔 상대의 뇌 속의 생각과 기억까지 스캔 되는 경우가 존재한다.
[일대일로 그를 이길 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과거에 내 소설에 적은 문장이었다.
그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내가 빙의자이며 김천운이 아니라는 사실까지 스캔되면 곤란해.’
판단이 선 천운은 그저 담담하게
“싫습니다.”
거절할 뿐이었다.
“……왜지?”
“의도를 모르겠으니까요.”
흠…….
그는 짐짓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응?’
희번덕 떠진 포스맨의 눈.
그의 기세가 점점 변하고 있었다.
포스맨의 눈매가 좁혀지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군.”
무겁게 내려앉은 그의 말투.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과거 난 빌런으로 오해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순간.
덜덜-
탁자에 대고 있던 그의 팔이 요란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파직!
요란하게 흔들리던 팔꿈치를 중심으로 대고 있던 탁자가 쩌저적- 반으로 갈라지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두 동강이 나 버렸다.
그는 천천히 일어섰으나 아직 허공에서 손을 내밀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말을 잇는 포스맨이었다.
“건물을 뒤흔들고 도주한 범죄자로 말이다. 다음 순간 운 좋게도 마물들이 들이닥쳤지. 난 한순간에 빌런이라는 오명을 벗고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마물들의 테러를 미리 감지하고 건물을 뒤흔들어 시민을 대피시킨 영웅으로 말이다.”
씨익-
그의 입꼬리가 소름 돋게 올라가고 있었다.
“근데, 과연 그게 사실일까?”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가 허공에 대고 있던 팔이 우악스럽게 요동치며 근육이 부풀어지고 있었다.
거대한 팔은 천운을 위협하듯 점점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다.
이내 코앞까지 다가온 그의 팔.
“이 손을 잡지 않으면 이 건물을 뒤흔들어 부수겠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겠지.”
“저희 누나가 가만히 있지 않겠네요.”
“크흐흑, 너는 살려 두마. 걱정하지 마라. 그러나 네 동기들은 과연 무사할까?”
이내 성장이 멈추고 비대해진 포스맨의 팔.
마력은 한 끗도 없는 순수한 힘의 결정.
100을 넘긴 초월적인 힘이 이 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포스맨으로서 마지막 경고다.”
언제부터인가 씨익 웃고 있던 입꼬리는 내려가고 그의 매서운 눈매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경고가 이어졌다.
“이 손 잡아.”
“…….”
후…….
그저 한숨을 쉬는 천운.
천운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가만히 의자에 앉아 포스맨 바라보고 있었다.
천운의 예상대로 생각이 짧은 포스맨다운 무식한 해결 방식이었다.
그 뒤 또다시 몇 초간의 정적이 상담실을 감돌았다.
그저 말없이 노려보는 포스맨과 언뜻 차분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김천운의 표정.
그리고 몇 초 뒤.
말없이 그저 의자에서 일어서는 천운이었다.
그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는 강화두.
그리고 이내 가면에 가려진 눈썹이 비틀며 미간을 좁힌 강화두였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천운은 일어서 말없이 강화두를 뒤로한 채 상담실의 문을 열고 있었다.
이에 성이 난 강화두가 호통을 치며 소리쳤다.
“뭐 하는 거냐고 물었다! 너만 살면 다라는 거냐!”
“안 그러실 거잖아요. 그럴 사람으로도 안 보이고.”
“뭐, 뭐?”
끼이익-
턱-
그저 그 말만 남긴 채 조용히 상담실을 나오는 천운이었다.
상담실에 혼자 남겨진 포스맨.
그는 쓰고 있던 마스크를 벗으며 멍하니 천운이 나간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당황감에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천운이 나가기 전 했던 말이 강화두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안 그러실 거잖아요.]
그리고 의문이 들었다.
과연 그 말이 민아 누님을 믿고 한 말인지.
아니면 자신의 본래의 성격을 알고 한 말인지 말이다.
물어보고 싶었다.
그가 자신에 대해 뭘 알고 그리 말할 수 있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그럴 사람으로도 안 보이고.]
“허…….”
덧붙인 그 말.
이 말이 더욱 포스맨의 심정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보인 행동에서 어디가 그럴 사람으로 안 보이는지 말이다.
‘그 아이는 도대체 내게 뭘 본 거지?’
한때는 최악의 빌런으로 오평을 받았으나 한우성 덕분에 최강의 힘을 가진 S급 영웅이라는 위명을 받고 명성을 떨치게 됐다.
아직 최악의 빌런이라는 오명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의 두려움을 받고 있지만 괜찮았다. 자신의 성향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 아이는…….
‘후훗, 옛날 생각이 다 나는군.’
아무도 자신을 믿어 주지 않았을 때.
별말과 이유도 없이 그저 자신을 믿고 오해를 푸는 데 도와준 한우성.
그때 느낀 여운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한 강화두였다.
뭐라 크게 표현할 수 없이 그저 감격으로 인해 가슴을 옥죄이는 마음.
그리고 현재.
김천운에 의해 그 당시와 비슷한 여운을 느끼는 강화두였다.
“별말 없이 나를 알아본 건 네가 두 번째구나…….”
강화두의 비대해진 팔이 점점 힘을 풀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다시 마스크를 쓴 그는 조용히 상담실을 나와 부지의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급하게 연락하고 싶은 사람이 생긴 강화두였다.
띠리링-
삑-
“어, 그래. 화두야. 김천운은 만났냐? 어때?”
전화를 받은 한우성은 여부를 물었고.
“친목회에 있기엔 아까운 인물입니다.”
그리 말하며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는 강화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