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화
#42
길영트의 한 정원.
그곳 두 남녀가 나란히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막상 그들의 얼굴을 보면 생도들은 기겁하며 도망갈 게 뻔하지만.
입을 제외한 얼굴의 모든 면을 가리는 흑색 마스크와 검은 망토를 두른 사내.
그의 옆에는 그와 동격의 힘을 가진 한민아가 있었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볼일일까? 우리 포스맨은?”
그녀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근엄한 표정을 짓는 포스맨.
그러나 속으로는 벌써부터 계획이 틀어져 애가 타던 강화두였다.
‘이런…… 분명 우성 형님이 누님에겐 비밀로 하라 했는데.’
이유는 짐작할 수 없지만 일단 누님에게 비밀로 하라는 우성 형님의 부탁이었다.
나름 입이 무거운 대의의 사나이지만, 이런 상황에는 별수 없는 강화두였다.
“그게…… 누님. 일단 학교를 구경시켜 줘서 감사합니다.”
“후훗, 나 말고 누가 너를 안내해 주겠니.”
남들이 보면 반할 듯한 온화한 미소.
그녀의 말대로 포스맨은 하나의 유명한 일화로 인해 시민들에게 두려움을 쌓고 있었다.
한 손으로 고층 빌딩의 전체를 뒤흔들어 지진을 일으켰다는 일화.
아마 포스맨이 길영트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부지 전체가 한바탕 뒤집혔을 것이다.
“우리 포스맨이 이유 없이 찾아왔을 리는 없고. 우성 씨가 시킨 거니?”
“아, 그게…… 그건 아니고 잠시 보고 싶은 소년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응? 누구?”
“김천운 입니다.”
“응? 우리 천운이?”
그녀의 말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올라온 강화두였다.
“예? 우리 천운이라 함은?”
“응, 잠시 사정이 있어서 내가 걔 보호자거든.”
“헉!”
당황한 나머지 입을 벌어지는 포스맨.
이래서 누님에겐 비밀로 하라고 했구먼!
형님이 일을 저질러도 제대로 저지르려 하고 있었다.
한민아의 성격을 아는 강화두로서 아마 김천운을 친목회의 단원으로 받아들이려는 사실을 안다면 아무리 그녀라도 분노하며 반대할 게 눈에 선했다.
‘이런…… 뭔가 이상하다 했어.’
한민아 누님에게 비밀로 부치라는 한우성의 말에 심하게 의문이 들었던 강화두였다.
그리고 사실을 안 강화두는 급하게 상황을 빠져나오기 위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래. 그래서 천운이가 왜?”
“아…… 그게 워낙 유명하지 않습니까. 형님도 마음에 든다고 하셔서 어떤 아이인지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음…… 그래? 하…… 근데 어쩌지. 지금 그 아이한테 문제가 생겨서.”
그 말과 함께 그녀의 눈이 잠시 붉게 타오르듯 진한 붉은 색으로 변모했다.
그녀가 분노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화두는 알 수 있었다.
‘웬만해선 분노하지 않을 누님이신데 하긴 나라도 저런 상황이면 누님처럼 하겠군.’
응시생간의 대련 중 천운이 칼에 찔렸다는 소식을 들은 한민아는 급하게 양호실로 갔으나 큰 내상은 없었으며 마력 결핍으로 쓰러졌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치명상은 아니었다고는 하나, 가해자 측의 행동을 보고 판단할 한민아였다.
“얘기는 아는 지인에게 들었습니다만…….”
어느 의미로는 그것 때문에 찾아온 강화두이기도 했다.
그것을 명목삼아 한민아에게 없는 의 억지력으로 그를 도와주기 위해서 말이다.
“제가 도와 드릴 수 있습니다.”
“응? 네가…… 왜?”
그녀의 말에 생각해 둔 것을 대답하는 강화두였다.
규칙을 중요시하는 한민아에게 없는 그것.
강한 힘과 포악한 성격으로 알려진 포스맨에겐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억지력을 가지고 있었다.
차진혁의 잘못이라고는 하나, 길영트의 규칙이 있으면 규율이 있듯이 마냥 차진혁의 잘못이라고는 판단할 수 없으리라.
이렇게 아직 시험 도중인 응시생 신분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본래라면 차진혁은 당연히 불합격이며 김천운 또한 교관의 허가 없이 대련장을 사용한 규율 위반으로 불합격이 정상이지만 그것을 자신의 억지력으로 막을 생각인 강화두였다.
강화두는 싱긋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 녀석과 할 얘기가 있거든요.”
* * *
“하…… 그놈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인지.”
침대에서 일어난 천운은 한설아와 함께 양호실을 나와 복도를 걷고 있었다.
옆에 있는 한설아는 걱정 어린 눈빛을 보내며 연신 물어봤지만, 마력과 마법이 존재하는 이 세계관에서 명문인 길영트에 잘 정비된 의료 시설로 인해 조금의 따가움도 느껴지지 않는 천운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하…… 뭐 이런 개 같은 일이…….”
“아! 맞다. 천운아. 양호실까지 우리 반에 김의철이 데려다줬어.”
“뭐? 정말?”
“응. 이건 말해 줘야 될 거 같아서.”
“아. 그래 고마워.”
기억에는 없지만 아무래도 김의철에게 도움을 받은 모양이다.
마지막에 위험을 알려 준 것도 김의철인 거 같은데 왜인지 살갑게 대하는 김의철이 의문이었지만 일단 받은 보답은 나중에 갚아 주도록 하자.
“이제 수업 시간이라 난 이만 가 볼게. 별일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 말고, 우리 언니가 있잖아.”
“뭐, 그렇긴 한데.”
“그럼 힘내!”
방방 손을 흔들며 헤어지는 한설아였다.
내가 쓰러진 이유가 마력결핍 때문이라는 사실을 안 뒤 크게 걱정이 없어진 모양이다.
그녀와 헤어진 뒤, 내 터벅터벅 힘없는 발걸음은 학장실을 향하고 있었다.
이내 학장실에 도착한 천운.
천운은 가볍게 문을 두드려 노크했다.
똑똑-
“들어오게.”
학장실에서 들리는 노년 남성의 목소리에 천운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소파에 앉아 있는 중년의 남성과 차진혁.
그 반대편 소파에 앉아 있는 흰머리가 길게 늘어선 노년의 남성, 아마 그가 과거 S급이며 은퇴한 영웅 이 길영트의 현 학장인 최만일일 것이다.
천운은 가볍게 학장에게 묵례를 한 뒤 그들에게 다가갔다.
“일단 여기에 앉게. 이야기가 길어질 거 같으니.”
천운을 본 학장은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자신이 앉아 있던 소파에서 일어나 천운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일어서서 뒷짐을 지고 있던 학장.
그가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사자들이 모였으니 시작해도 될 거 같군. 안 그런가?”
그 말에 선뜻 차진혁의 옆에 앉아 있던 중년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깔끔한 정장차림과 날카로운 눈빛과 연륜이 느껴지는 생김새.
그러나 나이와 맞지 않게 웅건한 기세를 풍기고 있었다.
“후…… 자네가 김천운인가?”
그 또한 상당히 침착한 목소리였으나 말투에선 노기가 어려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그래. 일단 혹시 나를 아나?”
“잘은…….”
“난 이런 사람일세.”
그가 슈트 안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하나의 명함을 내게 건넸다.
명함을 건네받은 천운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론 의외로 놀라고 있었다.
‘아베타 협회 고위 간부 차윤혁이라…… 확실히 차진혁 녀석이 기고만장할 만하네.’
협회에 4명밖에 없는 고위 간부.
아베타 협회란 영웅들의 중심이며 시민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
그곳에 간부란 친목회만큼은 아니지만, 실력은 과거 S급에 준하는 실력이며 힘에 비례하듯 그들의 권력 또한 남달랐다. 일개의 길영트 생도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협회의 간부시군요.”
막상 내 말에 득의양양하게 싱긋 웃는 차진혁.
그의 옆에서 자신의 아들이 못마땅한지 인상을 찡그리는 차윤혁이 입을 열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할 말은 많겠지만…….”
그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말을 이었다.
“미안하네.”
천운은 그의 사과에 눈이 희번덕 뜨며 놀라고 있었다.
막상 명함을 주길래 자신의 권력을 과시할 줄 알았던 천운이었다.
또한 쉽게 머리를 내릴 위치가 아니니 말이다.
차진혁은 아버지의 행위에 어버버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
“넌 닥치고 있어라!”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잇는 차윤혁이었다.
“내 아들의 무례를 사과하겠네. 내가 너무 오냐오냐하며 키운 듯하군.”
“…….”
말을 잇지 못하는 천운.
그저 이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옆에서 시종일관 이 상황을 관망하던 학장은 무심하게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머리를 들며 본론에 들어가려는 듯 말을 이었다.
“일단, 이 사과는 내 아들의 무례에 대한 사과였네. 하지만 자네 또한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는 데 아닌가?”
차윤혁의 눈빛에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의 말이 뭔가 문제라도 되는 듯 학장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내 분명 경고를 했을 터…….”
“어허,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쯧-
그의 행동이 못마땅한지 혀를 차는 학장님이었다.
불과 10분, 천운이 오기 전.
대련실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녹화된 대련 영상을 보고 있었다.
또한 아들이 곤장에 쳐맞듯 엉덩이를 연신 두들겨 맞은 것 또한 확인한 게 분명했다.
‘그런가…… 사과를 통해 가볍게 타협하려고 하는 거 같네.’
여기서 천운 또한 한발 뒤로 물러서 작은 묵례로 사과하면 가볍게 타협하여 상황을 끝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대놓고 드러내는 분노에 심기가 불편한 천운이었다.
‘이게 사과로 끝날 일인가?’
생각을 정리한 천운은 이내 입을 열었다.
“제가 사과해야 할 이유를 못 찾겠군요.”
“뭐?”
내 말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입을 연 차윤혁이었다.
좋게 사과로 끝낼 일은 이렇게 끌고 간다고?
방금 보여 준 명함의 의미를 이해 못한 건가?
그러나 천운은 그의 분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반대로 묻겠습니다. 제가 왜 사과를 해야 되죠? 그리고 잘못 생각하신 거 같은데 막상 사과해야 할 사람이 잘못된 거 같습니다만?”
내가 당돌하게 말하며 차진혁을 바라봤다.
그가 으득- 이를 갈며 대놓고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내 말에 참지 못한 차윤혁이 답답한 듯 입을 열었다.
“내 사과로는 안 되는 건가?”
“예. 안 되겠습니다.”
“굳이 일을 이렇게 길게 끌고 가야겠나?”
그가 주먹을 꽉 쥐며 나를 노려보고 말했다.
상당히 참았는지 그제야 말에 분노가 서려 있었다.
마지막 기회다.
이 말에 한 번이라도 거절하면 뒤는 없다고.
“예.”
그러나 천운은 그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이내 참지 못한 차윤혁이 꽉 깨문 이빨을 드러내더니 고함을 치고 있었다.
“그래! 네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지! 응시생의 신분으로 대련장을 사용한 것과 이미 패배한 상대를 가차 없이 두들겨 패지 않았나! 그런데도 잘못이 없다고 한 건가?”
“첫 번째는 협회의 간부님이 관여할 사항이 아닌 듯하군요. 학장님께서 징계를 내리신다면 곱게 받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차진혁이 패배를 인정하지 않아서 저 또한 계속 진행한 겁니다.”
후…….
힘껏 노기를 퍼트린 차윤혁의 입에서 한숨이 나오며 학장실을 가라앉혔다.
몇 초간의 고요한 정적이 학장실을 맴돌았으며 이내 차윤혁의 입에서 무겁게 가라앉은 말이 흘러나왔다.
“자네…… 자네는 뭐라도 되는 줄 아나?”
그 말에 그저 무심한 표정으로 차윤혁을 바라보는 천운.
서서히 차윤혁의 몸에서 마력이 흘러나왔다.
차진혁과 비슷하나 그보다 더한 불우한 기세를 풍기는 마력이었다.
마력을 드러냈다는 것은 아베타계에선 위협하려는 의미이며 어떠한 경고를 알린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마력이 천운에게 닿을 기세는 없었다.
물론 그 즉시에 시종일관으로 지켜보던 학장이 나설 테니 말이다.
“내, 실례지만 자네의 뒷조사를 조금 했네. 자네의 부모님 사정 또한 잘 알고 있지.”
차윤혁의 말에 미간을 찌푸리는 천운이었다.
그대로 차윤혁을 노려보니 그 또한 담담하게 말을 이을 뿐이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없는 거겠지. 간단한 사과를 받으면 돈 몇 푼 쥐여 주려 했는데 안 되겠구먼?”
“그만…… 거기까지 하겠나.”
차윤혁의 말에 가만히 지켜보던 학장이 근엄한 목소리로 입을 연 순간이었다.
“그저 좋게 타협하면 그만이긴 하나, 자네는 지금 선을 넘으려 하는군. 내 자네를 위해 하는 말이니 여기서 관두게.”
학장의 말에 의아함과 기분 나쁨을 느낀 차윤혁이 헛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허허, 선을 넘어?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제가 감당 못 하는 말이었다는 겁니까?”
“보호자의 요청과 응시생의 개인 정보라 말하지 못했지만, 현재 그의 보호자가 누군지 몰라서 하는 말인 거 같군.”
“허? 이놈의 보호자 말입니까?”
끼이익-
그가 재차 말을 이으려 하자 학장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두 남녀가 있었다.
“허…….”
그들의 모습에 학장의 입에선 침음이 흘러나왔다.
학장 또한 일을 크게 벌일 생각은 없었다.
그저 상대간의 타협이 끝난 후 두 명에게 작은 징계를 주고 일을 끝마치려 했었다.
그래서 김천운이 오기 전에 차윤혁과 미리 잘 얘기를 나눴지만, 막상 차윤혁 쪽에서 사과를 원하며 일이 틀어지고 말았다. 그녀가 오기 전에 일을 잘 마무리 짓고 끝낼 생각이었지만.
결국.
“안녕하세요. 보호자분 되시죠?”
그녀가 학장실에 찾아오고 말았다.
미소 짓고 있는 한민아.
그리고 그의 옆에는 예상치 못한 인물 또한 존재했다.
S급 아베타 포스맨.
그를 보자 시종일관 담담하게 지켜보던 학장의 눈에 당혹감이 물씬 풍겼다.
‘그가 도대체 왜…….’
“저기……?”
소파에 앉은 중년의 사내를 본 한민아는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 뿐이었다.
그리고
“근데 왜 마력을 드러내고 있을까?”
그녀의 한마디에 학장실의 분위기가 더욱 무겁게 가라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