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41
“하라는!”
후우웅!
퍽!
“윽!”
“공부는 안 하고!”
후우웅!
퍽!!
“악!!”
“이러고 자빠졌어. 어!”
천운은 들고 있던 방망이를 힘껏 내리치며 녀석의 엉덩이를 흠씬 두들겨 패 주고 있었다.
그때마다 들리는 찰진 소리.
차진혁이 비틀거리며 일어서려 했으나, 아직도 어질어질한지 천운이 발로 밀어내기만 해도 다시 자빠지는 차진혁이었다.
그가 으득- 이를 갈며 마력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차진혁의 특성 마력 ‘저주’.
특이한 특성의 소유자였다.
마력 자체가 저주 덩어리라 몸에 스며들기만 해도 상대가 저주에 걸리는 특성.
그러나 지금의 천운에겐 소용없었다.
“응?”
이상을 눈치챈 차진혁.
그가 눈을 희번덕 뜨며 자신의 마력을 찾고 있었다.
마력이 사라졌다.
갈무리된 건가?
아니다.
놈의 몸에 닿기도 전 감쪽같이 스며들며 사라졌다.
천운은 차진혁의 흔들리는 동공을 보며 히죽 웃고 또다시 방망이를 치켜들었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퍽!
“악!! 그만해!! 이 새끼야!!”
그는 방금 일어난 상황에 그저 눈을 굴리며 당황할 뿐이었다.
그것은 우연히 일어났던 상황.
차진혁의 악의로 인해 자신의 특성 효과를 알게 된 상황이었다.
그저 행운이 따랐다고 생각할 수밖에.
‘역시 그런 거구나.’
의아하며 간과했던 사실.
지금 차진혁 말고도 천운은 몇몇 아베타들과의 격전에서 자신의 마력과 맞닿은 인물들은 여럿이 있었다.
그러나 내 마력은 그들의 마력을 흡수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바로 자신이 무엇을 흡수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차진혁의 저주가 내 몸에 닿기 전.
차진혁의 마력을 흡수하고 먹어 치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을 인식하여 발동된 내 특성은 차진혁의 마력을 먹어 치우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녀석의 마력은 사라질 수밖에.
훙!
퍽!
“윽! 그만…….”
“후…… 개운하네.”
뭔가 이 개운한 느낌은 항상 아침에 달리고 느꼈던 고양감?
이런 상황에 느끼니 어처구니가 없지만 상쾌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천운은 그대로 자신의 특성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흡수한 마력은 저주.
내 몸에 3개의 특성 중 저주가 생겼으니 그것을 시험해 볼 절호의 찬스였다.
천운은 녀석이 한 것처럼 마력을 세밀하게 조종해 저주 특성을 놈의 몸으로 옮겼다.
마력 친화력이 높으며 마력 순환을 일상처럼 해 오던 천운에겐 쉬운 일이었다.
막상 차진혁은 눈치 못 챈 거 같지만.
아마 내일쯤 돼야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내 개운해진 마음으로 천운은 녀석을 등지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그리고 대련장을 나오려는 천운을 바라보며 경악하는 이들이 있었다.
“와…… 미친 뭐가 일어난 거지?”
“저게 말이 돼?”
“소문이…… 사실이었어…….”
말도 안 되는 상황.
차진혁의 스탯은 적어도 35 정도로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A반에서 나름 유망주로 손꼽히던 그였는데 그 이유는 버프 스킬에 있었다.
무려 10 정도의 스탯을 올려 주는 S등급의 버프 스킬.
적어도 현재 컨디션 최고였던 차진혁의 스탯은 45 정도의 파워였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상대는 그 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대로 힘으로 눌러 버렸다.
“설마! 스탯 측정 때 스탯을 숨긴 건가?”
“에이…… 굳이 그런 짓을 왜 하냐? 버프 스킬이 더 현실성 있겠다.”
“20을 넘게 올려 주는 버프 스킬이 있다고? 마법일 수도 있어.”
“마법이면 독자적으로 개발했다는 건데. 쟤 막 어디 소설에나 나오는 천재 그런 거 아니야?”
“어, 어 야!”
그때였다.
한 명의 소리치는 소리에 천운은 그쪽을 바라봤다.
고개를 돌리니 김의철이 뭐라고 소리치며 손가락으로 내 뒤를 가리키고 있었다.
자연스레 시선은 뒤를 향했고.
푹!
“윽!”
몸을 돌렸을 때 배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통증.
‘보통 찔리기 전에 누가 막아 주는 게 만화나 소설의 정석 아닌가?’
아픈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드는 천운이었다.
천운은 곧바로 ‘불굴의 맷집’을 발동하여 통증을 완화하려 했다.
그리고 내 배에 칼빵을 꽂은 녀석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씩씩거리며 대형 사고를 터트렸다.
“죽어! 이 새끼야!”
녀석의 기척은 전혀 느낄 수 없었으나 그 단검에 느껴지는 살의는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차진혁은 내게 살수를 꽂아 넣으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도 녀석의 기척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게 이 자식 고유 스킬인가? 지 같은 거만 배우네.’
아마 기척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차진혁의 고유 스킬이겠지.
문제는 그게 아니다.
‘어째 스킬을 썼는데도 뒈지게 아프네.’
처음에는 그저 배에 뭔가 들어온 느낌이었으나 0.5초 후에 화끈하게 타오르는 고통이 배에서 느껴졌다. 불굴의 맷집을 너무 늦게 발동한 모양이다.
본래 있던 고통까지는 상쇄되지 않는 거 같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름 스킬이 발동 중이라 이 정도에서 끝났겠지.’
막상 차진혁은 뭐라는 짐승의 소리를 내며 분노하고 있었다.
“후욱! 이익! 뒈져!! X발!! 억…….”
그때 한설아가 곧바로 대련장에 달려와 녀석의 목덜미를 치며 기절시켰다.
놈의 눈동자가 까뒤집히며 그대로 털썩- 자빠지며 기절했다.
당황한 한설아가 입을 열었다.
“천운아! 너, 너 배!”
“괜찮아. 곧바로 의무실에 가서 치료받고 올게.”
“같이 가, 데려다줄게.”
“어, 고맙…….”
털썩-
‘어?’
한 발짝 내디디려 발을 들었을 때 온몸에 힘이 빠지며 천운 또한 자빠지고 말았다.
천운은 자신의 몸에 일어난 상황에 당황하고 있었다.
차진혁의 살수가 이 정도 위력이라고?
흔들리는 동공은 원인을 찾기 위해 눈을 굴리고 있었으나, 생각은 길게 가지 않았다.
‘아. 방금 스킬 발동해서 마력이 고갈됐구나.’
차진혁과의 대련에서 의외로 많이 쓰인 마력이었다.
그 상태에서 마지막 불굴의 맷집까지 발동하여 마력을 썼으니 고갈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나 막상 옆에 있는 한설아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천…… 운아? 천운아!”
있는 힘껏 내 몸을 흔드는 한설아.
그녀의 붉은 적안에서 쥐방울만 한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흔들리고 있었다.
난 그런 한설아에게 입꼬리가 올라가며 입을 열었다.
“잠시 피곤해서 그래. 일어나고 보자.”
더 길게 말하고 설명하기에는 내 눈은 서서히 감기고 있었다.
버티기 힘든 졸음이 찾아오고 있었다.
“야, 야! 그대로 자면 너 죽어! 정신 차려!”
한설아의 말에도 난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눈을 감고 잠시 자기로 했다.
찌릿- 거리는 통증이 졸음과 함께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 * *
시내의 어느 화원.
그곳에서 2미터 남짓 거한의 사내가 어울리지 않은 꽃 모양 앞치마를 입고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S급 아베타 포스맨 강화두.
참고로 그는 본업으로 화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업이 영웅인 포스맨이었다.
부업도 별수 없이 한우성에 의해 하는 거지만.
“흠…….”
그는 항상 마음이 심란할 때 꽃에 물을 주며 진정시키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평안한 마음으로 물을 줄 때 그의 머릿속에 어지럽힌 생각이 천천히 진정되니 말이다.
“화두 씨.”
“아이고.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연갈색 단발의 작은 키에 귀여운 외모의 여성.
마치 다람쥐를 연상케 하는 여성의 이름은 김민지.
그녀는 강화두가 운영하는 화원의 단골이었다.
강화두의 거친 외모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오해를 하나, 그를 잘 아는 주변인들은 외모와는 다른 친절함과 온화하다는 것을 알기에 의외로 인망이 두터운 강화두였다.
“여전히 안 어울리시네요.”
“아직도 그런 소리 많이 듣습니다. 덕분에 장사도 잘 안 되고요.”
“후후훗.”
강화두의 말이 재밌는지 꺄르릇- 기쁘게 웃는 그녀.
참고로 그녀 또한 협회에 종사하는 A급 영웅이다.
꽃을 키우며 화분에 물 주는 강화두와 같은 취미를 가진 그녀였다.
“화두 씨. 고민이 많아 보이시네요.”
“예. 뭐, 할 일이 생겨서요.”
“할 일이요?”
“부업에 관한 일입니다.”
포스맨이 활동할 때는 가면을 쓰고 활동하기에 그의 진 얼굴을 아는 자는 친목회의 단원들밖에 없었다. 그러니 그녀 또한 강화두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
“그래요? 혹시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도와 드릴 수도 있잖아요.”
“죄송합니다. 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음…… 뭐 힘든 일 있을 때는 언제든 연락하세요. 저 영웅인 거 아시죠? 의외로 힘도 세고 권력도 있거든요. 보세요. 흡!”
그녀가 팔꿈치를 들어 올려 힘을 주자 연약한 그녀의 팔에 조그마한 알근육이 볼록 올라왔다.
나름 그게 자랑스러운지 헤헷하고 웃는 그녀였다.
“어때요? 보셨죠?”
“하하! 민지 씨에게는 못 당하겠네요.”
“너무 혼자서 골머리 앓지 마세요. 고민이 있으면 언제든지 들어줄게요.”
“후훗. 감사합니다. 덕분에 조금 나아진 거 같군요.”
아까보다는 비교적 나아진 기분이었다.
아니, 뭐.
평소에도 그녀와 대화하면 묘하게 편안한 기분이 들지만.
물론 기분만 나아졌다.
막상 원인은 해결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 김천운이라…….”
그때 귀를 쫑긋한 그녀가 나름 들리지 않게 작게 말한 말을 들은 모양이다.
그녀가 의외라는 듯 놀라며 입을 열었다.
“화두 씨도 김천운을 아세요?”
“예……? 민지 씨도 아십니까?”
“후훗. 당연히 알죠. 걔가 길영트 1차 시험에서 수석으로 합격한 애라고 기사에 실렸는데. 그것보다 원체 티브이나 뉴스도 안 보시는 화두 씨가 아는 게 더 신기한데요?”
“아…… 흠…….”
그녀의 말대로 미디어 쪽으로는 무감한 강화두였다.
그런 남자가 요즘 세간에서 유명한 김천운을 부르니 의외였던 김민지였다.
헤드라인 [4대 가문을 제치고 수석을 차지한 응시생]
차석의 인터뷰에서 밝혀진 그의 이름.
조금 과장된 점은 수석의 스탯이 30도 채 되지 않는 20이라는 것이다.
“혹시 일 관련이라는 게…… 걔랑 관계있어요?”
“예? 아, 뭐. 그런 건 아니고 그냥 한 번쯤은 보고 싶긴 하네요.”
“그렇긴 하죠. 막상 기사에 찍힌 사진 한 장도 멀리서 찍어서 얼굴도 제대로 안 보이고…… 아! 딱 하나 알 수 있는 건 마법사라고 하더라고요.”
“마법사요?”
“네. 그리고 이건 저만 아는 비밀인데요.”
그녀가 까치발을 들어 조심스레 강화두의 귀에 속삭였다.
물론 그런데도 키가 안 닿아서 강화두가 고개를 숙여 줬지만.
그녀는 강화두에게 속삭이며 말을 이었다.
“걔. 길영트에서 불합격될 수도 있데요.”
그녀의 말에 당황한 강화두는 동공이 커지며 연신 눈을 깜빡거렸다.
뭐? 탈락? 불합격한다고?
“예? 예?! 정말입니까?”
“그게 말이죠. 제 아는 동생이 길영트의 교관이거든요.”
그녀는 계속 말을 속닥이며 강화두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사건의 전말을 얘기했다.
어제 있었던 대련장의 사건.
본래의 규정대로라면 전적으로 가해자 측의 잘못이지만 하필 민감한 시기의 일어난 사건이며 생도도 아닌 응시생이라는 신분으로 교관의 허락 없이 대련한 결과, 자초지종 마냥 피해자 측이 아무 잘못이 없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뭐, 불합격은 그 애가 지레짐작한 거지만.”
“그렇습니까……? 흠…….”
“화두 씨?”
강화두는 김민지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겼다.
길영트의 응시생 김천운.
그를 친목회에 단원으로 받아들이고 싶다는 우성 형님에 말에 골머리를 앓았으나 아직 17살 청춘을 즐길 나이이다.
‘어차피 한 번은 봐야 할 얼굴이지.’
이내 생각을 정리한 강화두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문을 조금 일찍 닫아야겠군요.”
“아, 그래요? 그래도 고민이 좀 해결됐나 봐요?”
“민지 씨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저요? 음…… 뭘 했는지 모르겠지만 천만에요. 히히.”
해맑게 미소 짓는 그녀.
강화두는 그런 그녀에게 인사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화원으로 들어갔다.
* * *
“으, 응?”
천운이 정신을 차렸을 땐 온통 흰색으로 뒤덮인 벽면과 폭신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옆에는 한설아가 침대에 걸쳐 곤히 자고 있었다.
그런 한설아를 보니 쓰러지기 직전에 기억이 떠올랐다.
눈을 크게 뜬 채 놀란 표정으로 뚝뚝 떨어지는 눈물.
그렇게까지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걱정을 끼친 모양이다.
“음, 응?”
뒤척이는 한설아.
그런 그녀의 볼을 톡톡 건드리니 불편한 듯 미간을 좁히는 그녀였다.
“일어났니?”
한 여성의 목소리에 천운은 하던 짓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흰색 가운과 둥근 안경을 쓴 짧은 단발이 어울리는 여성.
아마 이 길영트의 양호실 교관인 듯싶다.
“어휴…… 젊은 혈기를 방출하라고 만든 대련실에서 대형 사고를 치다니.”
“죄송합니다.”
“뭐, 네 잘못은 크게 없잖니.”
그녀의 말에 고개를 숙인 천운이었다.
그런 천운에게 그녀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운이 좋구나? 미숙한 실력으로 찔려서 장기를 빗겨 나갔어. 치명상은 아니니 괜찮을 거란다.”
“감사합니다.”
“너. 분명 수석인 김천운이지?”
“예. 그렇습니다.”
“물론 피해자가 너긴 한데, 아예, 잘못이 없다고 볼 수도 없고. 가해자 측의 부모도 만만치 않아서 아무래도 너도 징계 위원회가 열릴 수도 있겠구나. 일단 학장실에 차진혁 응시생의 보호자도 와 있으니 가 보렴.”
“그래요? 흠…….”
그 말을 들으니 곧장 생각나는 것은 징계로 인한 걱정보다 누나에게 폐를 끼칠 거 같다는 생각이었다.
일단 현재로썬 내 보호자가 그녀이니 말이다.
“뭐, 일단 알겠습니다.”
“15시쯤에 열리니 그때 찾아가면 되고 상처는 이미 다 나았으니까 걱정하지 말렴.”
그 말과 함께 볼일이 끝난 그녀는 양호실을 나와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뒤에서 한숨을 쉬는 천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