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화
#37
대련이 끝나고 응시생들은 멍하게 천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경악스러운 장면이었다.
그 공방에서는 어딜 봐도 이수연이 압도했으며 그들은 그녀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천운은 마지막에 방심을 유도하여 그녀에게 일격을 가하는 데 성공하고 승리했다.
하지만 그 방심까지 김천운이 의도한 것인지 의문이 드는 그들이었다.
“와…… 그것보다 대단하네. 계속 피할 줄 알았는데 피하는 와중에도 전략을 짠 거 아니야.”
“노림수인 게 분명해 스탯 20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방심을 유도하는 방법밖에 없으니까.”
“너희들 무슨 과대망상증이니?”
“그래. 솔직히 노렸다고 보기는 힘들지. 저게 전략이면 넘어질 때 우왕좌왕한 것도 연기냐?”
그들의 주장은 타당했다.
암만 봐도 우연이며 행운이 발동한 천운의 승리였으니 말이다. 그것은 천운 또한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수연은 격식을 차리며 인사하고 옆에 있는 이영한 교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니 천운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분은 진짜 교관을 해도 되나? 응시생도 눈치챈 걸 자기 눈으로 눈치 못 채다니…….
그때 내 앞에 있던 이수연이 입을 열었다.
“저도 정진해야겠네요. 무기도 쓰지 않고 저를 이겼으니까요.”
“예, 예? 아 뭐…….”
천운은 그저 떨떠름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방금 상황이 노린 게 아니라 우연이라고 하면 무슨 반응을 보일까?
아마 노발대성하며 대련을 다시 요청하지 않을까?
이수연의 성격상 그러지는 않을 거 같지만.
지금은 그저 분위기를 읽고 조용히 넘어가는 게 이로울 거 같다.
또한, 천운을 바라보는 이영한의 표정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흠…… 어딜 봐도 정말 운이 좋았다. 하지만 허필두의 말 때문에 의심스럽군……. 과연 우연이었을까?’
자신보다 3배나 스탯이 높은 응시생을 힘으로 밀어붙인 저력.
그 말만 안 들었으면 그저 우연이라 치부했을 이영한이었다.
하지만 운이라 가정하기에는 지금까지 그녀의 창을 주시하며 피한 반사 신경 또한 한몫 뒤받쳐 주어 쉽사리 판단하기가 힘들었다. 그런 반사 신경을 가진 녀석이 자신의 땀에 미끄러져 그대로 찌르기를 피했다고? 동시에 넘어지는 와중에 정확하게 그녀의 턱을 노려 발차기를 꽂았다고?
분명 노렸다.
그러니 전략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영한이었다.
그의 생각은 의철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길?’
[의철아?]
‘적어도 무언가 노리고 봤다는 게 제 생각인데.’
[어딜 봐서?]
‘음…….’
[이런…… 앞으로 네 눈을 믿지 말거라.]
길의 말과 다르게 의철은 두근거리는 여운에 잠겨 있었다.
자신의 생각이 맞다면 그는 분명 행운까지 컨트롤한 것이니 말이다.
들고 있던 단검을 쓰지 않았으며 일전에 시험에서 본 기운 또한 느껴지지 않았다.
천운은 순전히 자신의 전략과 실력으로 그녀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확실하다. 녀석은 힘을 숨기고 있다. 의철은 그렇게밖에 단정 지을 수 없었다.
그리고…….
“어이가 없군…….”
윤시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옆에 있는 강자라고 인정한 김의철은 눈을 빛내며 천운을 바라보고 있으며 그를 상대한 이수연 또한 우연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도 대련을 계속 주시하고 있던 이영한 교관의 호의가 담긴 말도 윤시혁의 뒷골을 당기게 하는데 충분했다.
뭐지? 녀석이 설마 인식 저해 마법까지 보유하고 있었나?
이런 생각까지 들었지만, 아니다.
오직 이 3명만이 그에 대련에 다른 반응을 보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녀석에 대한 무언가를 그들은 알고 있다는 사실이기도 했다.
“쯧…….”
혀를 찬 윤시혁은 그저 팔짱을 끼며 천운을 노려봤다.
녀석의 정체가 뭐지?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녀석이란 말인가?
한설아와 아는 사이인 거 같은데 한설아의 심복인가?
당최 알 수가 없는 노릇이다.
눈에 거슬려도 이 정도로 거슬리는 녀석은 없었다.
‘그 도발은 실력에 대한 자신이었나?’
1차 시험 때의 김천운은 태연하게 자신을 도발했다.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받아들이고 뭉개 버리겠다.
자신이 믿는 그 실력이 허황한 거짓이었으며 진짜를 앞에 뒀을 때 녀석의 반응을 그들 모두에게 보여 주겠다.
스탯의 나약함은 곧 자신의 부족함이다.
녀석은 그 부족함을 무언가로 채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수연.”
윤시혁은 대련을 끝내고 돌아오는 이수연을 불렀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왜 그를 인정했는가?
그리고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이수연은 입을 열었다.
“네? 무슨 일이죠?”
“분하지도 않나? 그렇게 져 놓고서 왜 그를 존대하는 거지?”
“으음…….”
내심 턱을 쥐고 고민하는 이수연은 말을 고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감? 이라고 할까요?”
“감?”
“몇 개는 확신이었지만 왠지 그를 상대할 때 제 창을 계속 주시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과연 이 창으로 그를 맞출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이요.”
자신의 창을 피할 때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계속 창을 주시하며 피하고 있었다.
고유 스킬 반작용으로 인해 자신의 창이 그에게 잡히는 날은 없겠지만.
빠르게 쇄도하는 창을 눈으로 계속 주시하며 피하는 그에게 과연 창날이 닿는 날이 올까?
자신도 알 수 없는 무언의 압박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예시안으로도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자신의 창을 잡은 동시에 반격에 나섰다.
그리고 당했다.
그러니 천운에 대한 반응이 후할 수밖에 없는 그녀였다.
“뭐, 하나는 확실해요. 확실히 운만 좋은 게 아닌 것 같더군요.”
그녀의 말에 미간이 구겨지며 일그러진 표정으로 생각하는 윤시혁이었다.
‘전부 미쳤군.’
* * *
무사히 대련을 마친 천운은 그저 한가롭게 수업이 끝날 동안 쉬고 있을 뿐이었다.
천운의 대련 이후 정체되어 있던 응시생들이 드디어 S반과의 대련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기회를 줬는데 안 쓰는 것도 어리석은 행동이니 최대한 자신과 상성의 차이가 나는 S반 응시생을 골라 대련을 요청하고 있었다.
여기서 좋은 점은 아까와 달리 천운을 향해 섣불리 대련 요청을 안 한다는 것이다.
‘좋네, 좋아.’
의외의 이득이 있었다.
아무래도 무기 한번 안 쓰고 그녀를 무력화시킨 게 다른 응시생의 눈에는 경계의 대상으로 보인 모양이다.
‘스탯이 낮다고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괜히 수석이 아니니까. 좀 더 저놈을 파악해야 한다.’라는 옆에 A반 응시생의 중얼거림이 여기까지 들리니 아마 당분간은 조용할 듯싶었다.
천운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한설아는 뭐 하고 있나 찾아봤다.
‘저기 있네…… 대련하고 있었구나.’
한설아는 기다려도 오지 않는 대련에 심심했는지 같은 반인 이한과 대련 중이었다.
왠지 차분한 이한과 잘 맞는지 벌써 친해진 듯싶었다.
표정을 보니 기분도 좋아 보이고.
뭐, 원작에선 초반에 냉담한 성격 탓으로 친구가 적은 한설아였지만, 후에야 마음을 열었을 때 가장 친해진 친구가 이한이었으니 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그때였다.
“자 다들 그만! 하던 거 멈추고 여길 집중하길 바란다.”
대련하거나 구경하던 그들은 삼삼오오 하나같이 이영한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는 2미터가량의 원판 3개를 쥐고 있었다.
흰색과 옅은 은색의 원판 마지막 세 번째 검은색의 원판을 바닥에 내려놓자 쾅! 하는 울림이 훈련장을 뒤흔들었다. 3개의 원판은 크기는 비슷하나 검은색 원판만이 그 2개와 비교도 안 되는 질량을 가지고 있었다.
“이게 뭔지 알고 있는 사람. 참고로 포인트는 없다. 반대로 모르면 감점을 받아야겠지만.”
이영한의 말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저걸 모르는 게 이상할 테니 말이다.
“그래. 뭐 너희들의 예상대로 마력을 품은 돌인 마석이다. 유물 제작에 쓰이기도 하는 돌이지.”
총 3개의 원판은 마석으로 만든 원판이며 그 색이 진하면 진할수록 등급이 높아지는 게 마석이었다. 총 3개의 원판은 흰색부터 시작해 초급, 중급, 상급으로 이루어진 마석일 것이다.
“각자 너희들에게 3개의 원판 중 하나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가 가장 색이 진한 상급의 원판을 들어 올렸다.
“너희들은 이번 일주일 동안 자신이 선택한 원판을 어떤 수를 쓰든 부숴야 한다. 당연히 일주일 안에 못 부수면 불합격으로 처리된다.”
불합격.
어쩐지 대련으로 그냥 넘어가는 게 이상할 따름이었다.
이론 수업과 다르게 실습과 실기수업은 이처럼 하나의 과제를 주며 솎아내기가 진행된다.
과제를 실패 시 곧바로 불합격 처리가 되니 말이다.
그나마 이영한이 인자한 것이었다.
2차 시험을 치르기 전까지 성공하라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줬으니 말이다.
“참고로 최상급 마석 원판 또한 있긴 한데…… 웬만해선 도전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개교 이후로 성공한 응시생은 한 자릿수니 말이다.”
상급으로도 그 견고함을 극치 못하는데 최상급은 상급의 3배나 되는 견고함을 자랑한다.
이영한의 말에 궁금증이 든 한 응시생이 질문했다.
“혹시 2, 3학년 선배분들 중에도 성공한 사람이 있나요?”
“뭐, 딱 한 명을 콕 짚어 말하면 현 2학년 생도회장이다. 그것도 일격으로 말이다.”
생도회.
1학년을 제외한 2, 3학년에서는 생도회라는 게 존재한다.
그리고 2학년 생도 회장.
현재로선 의철을 압도하는 힘을 가진 그녀였다.
“물론 최상급 원판의 도전은 자유다. 총 5개밖에 없는 원판이다만 혹시 선택할 응시생은 있나?”
그러나 하나같이 눈치를 보는 그들이었다.
최상급 마석의 강도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현 교관인 허필두나 이영한 또한 쉽사리 부수기 힘든 게 이 원판인데 말이다.
“뭐, 여태까지 항상 해 오던 내기이긴 한데…….”
그 말과 함께 이영한이 주머니를 뒤적이며 영롱한 푸른색을 띠는 병을 꺼냈다.
“지금 내게 필요 없는 유물인 레바드린의 눈물이다. 만약 이 원판을 일격으로 부수는 자에겐 이 유물을 주겠다.”
해왕용 레바드린의 눈물.
자신의 스킬 중 하나를 한 단계 진화시킬 수 있는 S급 유물이다.
몇몇 멍청한 응시생은 저 유물에 혹해서 손을 번쩍 드는 인물이 몇몇 존재하기에, 항상 하는 이영한의 미끼질이었다. 근데 워낙 너무 정평 난 소문이기에 손을 번쩍 드는 응시생은 없었다.
당연하게도 지금은 말이다.
천운은 그 미끼에 낚일 멍청한 응시생이 될 생각이었다.
이 스토리는 천운이 기다리던 이벤트이기도 하니 말이다.
“자. 그럼 어디 도전할 사람은 지금 손들어라.”
길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천운은 당연하게 손을 번쩍 들어 도전을 알렸다.
그러나 막상 원하는 것은 저 최상급 유물이 아니었다.
아마 이영한의 수중에는 S급 정도의 유물 정도는 몇 가지 소지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저도 도전하겠습니다.”
이 미끼에 걸려드는 이는 천운뿐만이 아니었다.
김의철.
그는 저 유물이 꼭 필요하여 도전하는 것이니 말이다.
이영한은 손을 번쩍 든 두 명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최상급 원판은 다른 원판과 강도의 격이 다르니 개인 유물 사용을 허가한다. 그리고 선택은 자유라고 했지만 일단 최상급 원판은 금이라도 내면 통과다. 물론 그렇게 하면 이 유물은 없겠지만. 그래도 도전하겠나? 김의철, 김천운?”
이영한의 경고에도 계속 손을 들고 있는 두 명이었다.
“좋아. 이것으로 오늘 수업을 마치지. 일주일은 생각보다 기니 그때 동안 자신의 역량에 맞는 원판을 선택하도록.”
* * *
“너 제정신이야?”
“아니, 그 뭐 자신 있어서 손든 거야.”
“내가 보기에는 그냥 유물에 혹해서 손든 거 같은데?”
수업이 끝나고 식당으로 향하는 길 그녀가 성을 내며 하는 말이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며 무모한 도전이었다.
대체 20이라는 스탯으로 대체 어떻게 하려고 손을 든 건지 걱정이 막연히 드는 한설아였다.
최상급 원판은 말 그대로 S등급 또는 미 등급 유물의 원재료이니 말이다.
그 강도 또한 그냥 무시 못 할 견고함이었다.
“최상급 마석의 강도는 알고 있어?”
“어. 그 최상급 마석을 가공하려면 특수 처리 마도구가 필요하다고 들었어.”
“그런 마석을 전용 제련 유물도 아니고 사람, 그것도 아베타의 힘으로도 부수기 힘든 것도 알고 있지?”
“어, 뭐……. 그렇지?”
“그럼 왜 손을 든 거야!”
그녀의 읍박이 귓가를 때렸다.
걱정이 담겨 있어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생각도 이해가 가는 천운이었다.
그러나 천운 또한 가능성이 있어 손을 든 것이다.
아직 제련되지도 않은 최상급 마석은 웬만한 파워로도 부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서 너는 도전 안 해?”
자신의 기억상 후에 원판에 도전하는 이는 한설아와 윤시혁이었다.
한설아는 상황을 본 뒤 결국 최상급 원판을 선택하며 윤시혁은 유물로 혹해서 손드는 멍청이로 보이기 싫어 후에야 원판을 선택한다.
“나? 나도 할 거긴 한데……. 그러는 너는? 자신 있어?”
“내가 옛날에도 그렇게 막 생각 없이 행동하는 성격은 아니었잖아.”
“음…… 뭐 그렇긴 하지.”
막연하게 과거에 천운과 함께 간 던전이 생각난 한설아였다.
천운의 준비성은 뛰어났다.
마치 이 던전이 무슨 종류의 던전인지 미리 알고 챙기는 것처럼 말이다.
“후…… 뭐, 내가 이래라 저래야 할 자격은 없지만. 진짜 자신 있는 거지?”
그녀의 반달로 기운 눈동자가 나를 새침하게 노려봤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고 별수 없던 한설아는 그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