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화
#36
“이수연과 저놈이 대련하는군.”
묘하게 17살답지 않은 딱딱한 말투.
의철은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봤다.
검성 가문의 윤시혁.
윤시혁은 의철의 옆에 서서 그들의 대련을 지켜보고 있었다.
“응? 어, 그러게”
“흠…….”
김의철을 유심히 바라보던 윤시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존대가 없군?”
“내 말투가 원래 이래.”
고개를 돌려 의철을 바라보는 윤시혁.
그는 이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요청했다.
“흠…… 알겠다.”
“으, 응? 뭐, 그래서 무슨 일이야?”
강자에 대한 예우가 확실한 윤시혁이었다.
또한 친분을 표시하는데 거절하는 의철은 아니었다.
“의외네. 나같이 혈통 없는 애들은 싫어할 줄 알았는데.”
“싫어한다. 하지만.”
윤시혁은 고개를 돌려 김천운을 바라봤다.
아직 대련을 시작하기 전, 김천운의 표정은 왠지 모르게 풀이 죽어 있었다.
그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놈은 수석의 자격이 없다고.
자신의 위에 서 있는 자가 이수연을 상대로 풀이 죽어 있다니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화만 나는 윤시혁이었다.
“쟤가 그렇게 싫어? 근데 대련 요청은 안 하네?”
“대련으로 녀석을 이겨 봤자다. 스탯 20밖에 안 되는 놈에게 요청하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는군.”
당연히 실전 같은 대련이라고 하지만 실전이 아니다.
그따위 애들 싸움에 녀석을 이겨 봤자 이 몸에 쌓인 성을 풀 수는 없을 것이며 스탯 20을 상대로 애들 앞에서 대련을 요청한다는 프라이드 자체가 용서치 않았다.
녀석을 2차 시험에서 확실히 조지고 탈락시킨다.
분노로 이성을 잃어 1차 시험에 제대로 임하지 못했지만, 그 낭패는 한 번으로도 충분했다.
“음…… 그래?”
“왜 그러지.”
“너는 쟤가 약하다고 생각하잖아.”
“스탯으로 비벼 볼 것도 없는 녀석이지.”
“근데 만약에 저 녀석이 힘으로 날 이겼다면 어떻게 생각해?”
“뭐?”
윤시혁의 표정이 미간을 좁히며 일그러졌다.
그러나 표정과 다르게 윤시혁은 평정심을 가지고 말을 이었다.
“그럼 네놈이 거품이거나 놈이 힘을 숨긴 거겠지.”
“의외로 평가가 후하네?”
“현실적으로 말한 거다.”
둘은 옆에 나란히 서서 김천운과의 대련을 지켜봤다.
그가 운으로 합격했다는 사실은 이 대련에서 증명될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김의철은 달랐다.
천운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유심해 바라봤다.
1차 시험 때 보여 준 그 힘.
그것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란 예감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시작 후 몇 분 뒤.
둘의 눈이 희번덕 떠지며 어이없어 하고 있었다.
* * *
이수연은 다른 주요 인물들과 비교하면 조금 낮은 스탯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창술과 고유 스킬의 응용, 말 그대로 기술의 기량으로 힘의 격차를 커버하고 있었다.
여기서 문제는 그녀의 고유 스킬인 ‘반작용’이었다.
힘의 반작용.
그녀가 어떠한 예비 동작도 없이 창이 기이한 방향으로 휘둘러지는 것은 이 스킬에 있었다.
휘둘러진 힘을 저장하여 반대 방향으로 힘을 분사한다.
이런 다음 수를 알 수 없는 복잡한 기술로 인해 그녀와의 대련을 꺼리고 있었다.
더구나.
‘아직 이수연하고는 상대도 안 될 거야.’
스킬과 마법을 사용하여 스탯의 격차는 채울 수 있다. 하지만 검술이나 창술 같은 기술의 기량에서 더없이 부족한 자신이며 단검 VS 창이니 리치의 차이 또한 존재하게 마련.
더없이 자신의 카운터에 가까운 이수연이었다.
그나마 위안이라는 것은 내가 그녀가 가지고 있는 스킬을 전부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적을 알고 미리 대응하자. 유명한 전법이지 않은가.
문제는 대응할 내 역량이 부족하지만.
“후…… 일단 그 잘 부탁합니다.”
난 그렇게 말하며 이수연을 향해 가벼운 묵례를 했다.
내 행동에 그녀의 딱딱했던 무표정이 한순간 놀란 듯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뭐지? 뭐 문제 있나?
“저기 괜찮으세요.”
“실례했습니다. 상상과는 많이 다르셔서.”
뭔 상상? 또 뭔 이상한 소문이 퍼져 있는 건가?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가 내 궁금증을 알려 주었다.
“윤시혁 씨는 웬만해서는 화내지 않거든요. 도대체 무슨 악랄한 짓을 했길래 그의 분노를 샀는지 궁금했을 뿐이에요.”
“아, 예.”
애초에 윤시혁을 건드는 놈은 웬만해서는 없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힐끔 돌려 윤시혁의 눈치를 봤다.
윤시혁은 멀리서 근엄하게 팔짱 끼고 구경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신기하게 김의철 또한 윤시혁 옆에 붙어 뚫어지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원작에선 둘의 사이는 라이벌 구도로 사이가 더럽게 안 좋은 게 정상인데.
뭐 그건 그거고 윤시혁의 반응을 보니 다행히 그녀와의 대화는 못 들은 모양이다.
나는 그녀에게만 들릴 만큼 작게 속삭이며 말했다.
“쟤가 좀 그렇긴 하죠.”
“후후훗. 이제 시작할까요?”
“예. 그럼 뭐 살살 부탁드립니다.”
그녀가 창을 현현하자 나 또한 동시에 고유 스킬인 의안을 발동하며 단검을 현현했다.
‘남은 마력은 어디 보자…… 응?’
마력 : (16.6/45)
어디 갔지? 본래 내 마력은 26.6
앞자리가 이상하다.
상태창은 오류도 나나?
“잠깐만요.”
“네?”
나는 다시 한번 상태창을 껐다 켠 뒤 마력 수치를 재확인했다.
지그시 뚫어지라 바라봤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는 급히 예상가는 범인에게 전음을 보냈다.
‘저기 미르마.’
[응? 무슨 일이야 천운아?]
‘혹시 제 마력을 썼어요?’
[미안. 급한 볼일이라서. 사물을 만지는 데 10 정도의 마력이 필요했거든.]
‘이런…….’
안 그래도 적은 양의 마력인데 반이 날아가 버렸다.
유일하게 믿고 있던 만다라와 마투법을 동시에 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마력량이었다.
그리고 현재 상황은 최악이었다.
“저기 무슨 문제라도?”
“하…… 지금 컨디션이 안 좋아서. 나중에 다시 하면 안 될까요?”
“그건 안 된다.”
으레, 아픈 척을 해 봤지만, 옆에 계신 이영한 교관에게 철회당했다.
그래도 몇 년 교관 한 짬이 있는지 내 꾀병을 곧바로 눈치챈 모양이다.
난 별수 없이 디메리트를 가지고 대련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따라 운이 작동을 안 하네. 고장 났나?’
내심 그런 하소연을 머금고 행운의 만다라를 발동했다.
당연하게도 현재의 마투법보다 자신의 운을 믿기로 했다.
‘제발 마력, 마력, 마력!’
결과는.
체력 : (21.1/40) → 체력 : (31.1/40)
꽝이었다.
“그럼 시작해도 될까요,”
“네…….”
체력은 그저 몸을 튼튼하고 날렵하게 만드는 스탯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필요 없는 스탯이기도 하다.
믿고 있던 만다라까지 나를 버리니 유일하게 남은 것은 마력이 필요 없는 고유 스킬 ‘의안’과 마투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미미한 마력으로 마투법을 발동한다 쳐도 그녀를 상대로 턱없이 부족한 마력이다.
별수 없이 천운은 의안을 발동하여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포착하기 위해 그녀를 계속 주시했다.
“그럼…….”
당연하게도 내가 움직이지 않으니 선공은 그녀가 먼저였다.
윤시혁에게 했던 대로 그녀는 창을 크게 휘둘러 힘의 반동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의안을 발동한 천운에게 그녀의 공격을 가볍게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굳이 맞추기 위한 공격이 아니었다.
이수연의 고유 스킬인 반작용을 위한 그녀 나름의 전략이니 말이다.
그리고 축적된 반동이 발산되며 이수연의 역동적인 공격이 이어질 때마다 천운은 피하기만을 급급했다.
오른쪽으로 휘둘러진 창이 다시 왼쪽으로 튕기듯 휘둘러지고, 왼쪽으로 휘둘러진 창이 급 유턴하여 대각선으로 휘둘러지고. 예상할 수 없는 공격의 난무가 이어지고 있었다.
현재로서는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그저 느려진 시야 속에서 끊임없이 전략을 생각할 뿐이었다.
사고의 가속.
현재 천운의 의안은 그것을 가능케 만들었다.
그녀의 공격을 피하고 고민하고 생각하며 전략을 생각할 뿐이었다.
그리고 결론은.
“답이 없네.”
남은 마력은 6.6.
현재 이 상황을 타파할 도움이 되는 스킬은 천운이 가지고 있지 않았다.
현재 사용 가능한 스킬은 고유 스킬과 이미 사용한 만다라를 제외한 세 가지.
도래까마귀 신의 눈(A)
마의 다리(B)
불굴의 맷집(B)
눈은 당연하게도 이 상황에 쓸모가 없고 마의 다리를 이용해 박차게 달려도 그녀 또한 뒤로 물러나며 피할 것이다. 불굴의 맷집으로 그녀의 공격을 어느 정도 버텨 주겠지만 시간만 더 끌 뿐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마법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법은 쓰이는 마력의 양에 따라 효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 마법이다.
현재 6정도의 미미한 마력으로는 실전에선 사용이 불가능할 것이다.
적어도 10은 넘어야 마법다운 게 튀어나오니 말이다.
‘별수 없지. 믿을 건 운 너밖에 없다.’
두 번 배신했으면 이제 슬슬 한 번쯤은 도와줄 때가 되지 않았냐?
난 아직 행운을 믿고 있었다.
난 무작정 그녀에게 달리기 시작했다.
남은 마력은 6.
그녀와 가까워진 순간 5정도의 마투법을 발동하여 속력을 빠르게 높일 생각이었다.
아마 갑자기 빨라진 내 속도에 그녀 또한 반응 못 하겠지.
탁탁탁!
‘드디어 움직이는 건가?’
지금까지 피하기만 급급했던 그가 반격에 나섰다.
그녀의 눈빛이 녹색으로 빛나며 천운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포착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의 스킬 중 하나인 ‘예시안’을 발동한 것이다.
예시안은 상대의 심리와 동작을 읽고 현재의 동작에서 자연스럽게 다음 동작으로 이어 나갈 행동을 예측, 예상할 수 있는 스킬이다. 물론 미래예지가 아닌 짐작이다 보니 여러 변수가 존재하긴 하다만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그녀가 확인한 김천운의 다음 행동은…….
‘응?’
아니, 문제가 조금 있다.
그냥 냅다 달리고 단검을 휘두르는 게 끝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행동에 의미를 예상할 수가 없었다.
뭐지?
자포자기라고?
아니나 다를까 예시안으로 본 예상대로 천운의 행동에 어떠한 페이크 일절도 보이지 않았으며 그저 자신을 덮칠 듯 내달릴 뿐이었다. 순간 당혹감이 그녀의 방심을 풀었지만 이내 이것조차 전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녀의 집중을 유도했다.
다시 한번 천운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그녀는 그대로 찌르기를 내질렀다.
훅!
날카롭게 날이 선 창끝이 천운의 가슴에 쇄도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완벽한 동작의 찌르기였다.
그러나.
“어, 어! 악!”
그런 괴팍한 소리를 내지르며 그는 무언가에 미끄러지며 뒤로 성대하게 자빠지고 있었다.
바닥의 표면에는 그가 자신의 창을 피하며 여태까지 흘린 땀이 있었다.
그리고 넘어지고 있는 천운은.
‘X발.’
느려진 시간 속.
천운의 눈에 보인 것은 그녀가 정확하게 자신의 가슴 중앙에 찌르기를 시도했으며 나는 그것을 내가 흘린 땀에 미끄러져 뒤로 자빠지는 동시에 피하는 광경이었다.
동시에 선명하게 보이는 그녀의 창.
넘어지고 있을 때 반사적으로 무언가를 잡으려는 행동처럼 난 그녀의 창에 손을 뻗고 있었다.
“뭐!”
천운의 행동에 당황하는 이수연이었다.
그저 뒤로 자빠지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창을 피한 것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손을 뻗어 자신의 창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우연치 않게 빈틈을 보이고 말았다. 자신의 창을 잡을 기회를 줘 버렸으니 말이다.
또한, 창을 잡은 천운은 속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좋아!’
의안에서 보인 시야는 실제로 시간이 느려지는 게 아니라 그렇게 보일 뿐이었다.
당연하게도 자신의 몸 또한 느려지게 마련.
그러니 지금까지 이리저리 요령 있게 피해 가던 그녀의 창을 잡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가능하다.
왠지 모르게 그녀가 한순간 창을 뒤로 빼는 게 늦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응?”
허무하게 창에 손을 놓는 그녀였다.
당연하게 모든 생도용 무기에 현현이라는 특성이 있으니 무기를 뺏길 염려는 없었다.
동시에 사라지고 있는 그녀의 창.
난 별수 없이 뒤로 자빠질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그리고 이변이 일어났다.
“윽!”
툭!
툭? 넘어지는 와중에도 발끝에 무언가 툭- 치는 감각과 함께 천운은 뒤로 자빠졌다.
재정비를 위해 곧바로 벌떡 일어났으나 이상을 눈치챈 천운은 그저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뭐지?’
이수연은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이미 현현된 창을 지지대로 삼아 힘겹게 버티며 서 있었다.
마치 몸에 중심을 못 잡는 듯이 말이다.
이 대련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 이영한 교관이 다가와 또 영문 모를 소리를 해 왔다.
“그만. 김천운 승.”
“저요?”
“훌륭했다. 특히 마지막 일격은 말이야.”
뭔 일격?
천운이 고개를 갸웃하고 의문을 표할 때 그때 정신을 차린 이수연이 다가와 악수를 요청했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덜 된 천운은 그저 내민 손에 악수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하는 말에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천운이었다.
“방심했군요. 설마 당할 줄이야.”
뭘 당해? 그냥 내 땀에 미끄러져 자빠진 거뿐인데.
“그냥 넘어질 줄 알았지만 설마 턱을 노리고 발차기를 할 줄이야. 그건 저도 예상 못 했네요.”
“예?”
턱? 그러고 보니 뭔가 넘어지면서 발끝에 뭔가 닿는 느낌이 있긴 했다.
난 상황 파악을 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봤다. 주위에는 하라는 대련은 안 하고 구경만 하는 응시생들이 보였다. 그들의 표정은 뭔가 멍하게 넋이 나간 듯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난 조심스레 분위기를 읽고 상황에 맞춰 여기서는 그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예, 뭐 그쪽도 대단하시던데요.”
내 말에 싱긋 입꼬리가 올라간 그녀가 기분 좋게 입을 열었다.
“다음에도 대련하죠.”
“그건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