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화
#35
한편 미르마는 건물을 돌아다니며 길영트의 서고를 찾고 있었다.
오전에 있던 수업.
그 내용은 100년 전 과거의 역사 수업이었다.
자신이 안식처에서 생을 보낸 게 고작해야 100년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수업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사라졌다.
자신이 알던 모든 역사가 사라지고 다른 것으로 채워져 있었다.
말없이 움직이는 자동차와 진보된 건물들.
모든 것을 연결하니 자신은 설마라는 짐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 서고가 어딘지 아니?]
“도서실이요? 우측으로 쭉 가셔서 3층 계단에 올라가시면 바로 보일 겁니다.”
[고마워.]
“아뇨, 뭘. 어?”
창고를 정리하던 한 생도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봤다.
“뭐, 뭐야?”
그리고 이상을 눈치챈 생도는 오소소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창고의 문은 자동문이며 자신을 제외한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잠가 놨기 때문이다. 심지어 문이 열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귀, 귀신? 으, 으아아악!”
그 이후 그는 기겁하며 후다닥- 창고의 문을 열고 도망쳤다.
한편 그 원인인 미르마는 생도가 말한 방향으로 쭉 나아가 도서실에 도착했다.
실체가 없는 영체인 몸이라 그저 문을 통과하여 들어갈 수 있었다.
많은 생도가 조용히 독서를 하는 와중 미르마는 그들을 유유히 지나쳐 역사에 관련된 책이 들어선 선반 앞에 도착했다.
‘음…… 천운에게 미안하지만, 마력을 조금 빌려야겠군.’
실체가 없으니 마력으로 물체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력 또한 자신의 안식처에 두고 왔으니 별수 없이 천운의 마력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미르마가 손을 한번 휘저으니 선반의 책 중 하나가 공중에서 두둥실 떠다니며 미르마의 손에 안착했다.
미르마는 그대로 책을 펼치며 독서를 시작했다.
책을 점점 넘길수록 미르마의 미간이 좁혀지며 당황으로 떨리고 있었다.
[이럴 수가…….].
없다.
자신이 아는 과거의 산물들 무엇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다른 역사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으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여기는 자신이 알던 세계가 아니다.
다른 세계이다.
혹시 몰라 마법 관련 서재의 선반에서 책을 하나 꺼내 확인해 보았다.
원초 기학 마도 술식이라고 적힌 책이었다.
그리고 알 수 있던 사실은.
모든 과학 문명은 진보되었으나 마법의 지식은 오히려 뒤처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럼 도대체 여긴 어디지? 세계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
그러던 와중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검성과 비슷한 기운을 풍기는 남자.
[그래. 분명 김의철이라고 했나?]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그를 만나려 했으나, 이제는 더없이 다급하기만 할 뿐이었다.
세계가 달라졌다.
아니 자신이 다른 세계로 넘어왔다.
그러나 자신이 기억하는 검성의 기운은 달라지지 않았다.
[볼 일이 생겼군.]
* * *
이영한 교관의 설명이 끝난 뒤 A반의 응시생들은 각자 정해 둔 S반의 응시생들에게 대련을 요청했다.
여기서 문제가 있다면 나에 대한 소문이었다.
언제 퍼진지 모르겠는데 A돔의 스탯이 20밖에 안 되는 한 응시생이 운이 좋아 수석으로 합격했다는 소문이었다.
물론 그 소문의 이름까지 다 팔렸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다. 방금 교관의 질문에 난 답을 말함과 동시에 이름까지 말했으며 그 이름을 옆에 있는 들개놈들 또한 들은 모양이다.
내 앞에 있는 이 들개 같은 놈들만 해도 10명은 조금 넘어 보이는 수였다.
“네가 김천운이지?”
“교관님 S반 김천운에게 대련을 신청하겠습니다!”
“악! 내가 먼저야!”
“저, 저도 김천운에게…….”
그 황당하게 그지없는 광경에 어처구니없는 이영한이 입을 열었다.
“이건 음…… 김천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이더니 네가 그놈이었냐? 행운 스탯이 100인 돌연변이?”
1차 입학시험을 치를 자격 조건 20을 간당간당하게 넘는 응시생.
그와 동시에 운 스탯이 100이며 그런 그가 수석을 했다는 소문.
그것은 응시생뿐만 아니라 교관들에게도 정평 난 소문이었다.
“음…… 허필두한테 들었다만 그게 너였을 줄이야. 그보다 이놈들아. 저기 여유롭게 서 있는 애들이 있잖냐.”
이영한이 가리킨 응시생은 한설아를 포함한 4대 가문의 주요 인물들이었다.
어차피 싸워 봤자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A반의 응시생들은 일찌감치 그들과의 대련을 포기한 상태였다. 그들의 여유는 그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이연은 이미 A반의 낌새를 눈치채고 A반에 응시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지가 대련 요청을 하고 있다.
“저기! 나랑 대련하자. 제발, 제발! 응?”
그들은 하나같이 겁을 먹으며 이연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마치 조그만 토끼에 겁먹은 덩치들 같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출됐다.
물론 이연은 재미 삼아 하자는 대련이었지만, 그들 또한 적긴 하나 포인트가 걸린 대련이었다. 이미 승부가 정해질 게 뻔한 대련을 쉽게 받아들이는 이는 없었다.
참고로 김의철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미 김의철은 현 응시생들 가운데 가장 높은 스탯 보유자라는 소문이 쫙 퍼진 상태이니 말이다.
이러니까 이놈들은 평화로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중에도 예외는 있었다.
“윤시혁에게 대련을 요청하겠습니다.”
“그래. 너는 분명?”
“A반의 이수연입니다.”
“분명 내 주무기는 창이었나?”
“예.”
A반의 이수연.
현재로서는 A반에 속해 있는 인물이지만 후에 2차 시험으로 S반으로 승급될 주요 인물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포니테일과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가진 그녀였지만 조금 딱딱한 표정의 소유자.
그러나 대부분 그녀의 과묵한 표정에 오해하지만, 생각보다 온정하며 남의 고민을 잘 들어주는 친절한 그녀이다.
“그래. 대련을 허가한다.”
응시생들이 대련 상대를 정하던 도중 윤시혁과 이수연만이 그들과 멀찍이 떨어져 대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윤시혁이 그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넌 분명 성기사 이상진 영웅의 딸이군.”
“예.”
“네가 왜 A반인지 이해가 안 되는군. 뭐 그 시험이 힘으로만 통과할 수 있는 시험이 아니긴 하지 저놈처럼 말이야.”
윤시혁의 시선은 김천운을 향했다.
그의 눈빛에 사납게 이글거리며 웬 원수를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수연 또한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어떻게 하면 윤시혁에게 이렇게 미움받을 수 있는지 말이다.
“그렇군요.”
“그래. 뭐 일단 대련을 시작하지. 말해 두겠다만 손속은 없다.”
그 말과 동시에 두 명의 손에선 생도용의 무구들이 현현했다.
응시생들의 시선 또한 그 두 명에게 향했다.
모처럼 첫 대련의 시작이며 윤시혁의 대련을 구경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첫 스타트는 이수연이었다.
그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그대로 창의 끝을 잡은 뒤 크게 횡으로 휘둘렀다.
후우웅!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창끝의 날이 매서운 기세로 윤시혁을 향했다.
그와 동시에 윤시혁 또한 움직였다. 그는 검날을 비스듬하게 세워 창을 흘린 다음 그대로 그녀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지면을 박차며 나아갔다.
그녀 또한 예상할 수 있던 윤수혁의 움직임이었다.
이수연은 크게 뒤로 뛰며 창을 뒤로 잡아당김과 동시에 날카로운 찌르기가 이어졌다.
쉬이익!
찌르기는 정확하게 윤시혁의 미간을 노렸으나 왼쪽으로 고개를 젖혀서 가볍게 피하는 윤시혁이었다. 그러나 그것 또한 그녀의 노림수였다.
훙!
그녀는 아무런 예비 동작도 없이 창끝을 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창은 그대로 툭- 튀듯이 윤시혁이 피한 왼쪽을 향해 횡으로 휘둘러지고 있었다.
신호도 없이 갑작스럽게 방향 전환을 하는 자유분방한 창에 윤시혁 또한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나 윤시혁은 곧바로 들고 있던 장검으로 막아 내며 그대로 이수연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달려들었다.
“제법이군. 고유 스킬인가?”
윤시혁은 땀 한번 흘리지 않는 여유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다르게 말하면 방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그런 윤시혁의 반응에 이수연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대로 창대를 뒤로 잡아당기며 창날은 정확히 윤시혁을 조준해 창대를 쥐고 있던 힘을 서서히 풀었다.
훙!
찌르는 동작 없이 그저 그녀의 손에서 화살처럼 날아가는 그녀의 창은 정확하게 윤시혁의 가슴을 향했지만 동시에 윤시혁의 칼끝이 창날과 닿으며 둥근 원형의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한 바퀴 돌아간 창은 그대로 바닥에 박히고 동시에 빠르게 움직인 윤시혁의 검 끝이 그녀의 목을 향해 휘둘러졌다.
그리고.
“졌습니다.”
윤시혁의 검 끝은 그녀의 목을 향하기도 전에 멈춰 있었다.
“왜지?”
“고유 스킬을 쓰신 거에 만족합니다.”
“칫.”
그 말에 혀를 차며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돌아가는 윤시혁이었다.
이미 앞으로 날아간 그녀의 창은 현현을 마친 상태였으며 윤시혁의 검을 막기 위해 창을 일자로 세워 놨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윤시혁의 고유 스킬은 ‘날’이었다.
자신이 들고 있는 모든 병장기에 날이 서며 그것은 날이 없는 망치나 채찍 같은 무기에도 통용된다.
그 고유 스킬이 더해진 장검이니 자신의 창 또한 별수 없이 베어지겠지.
하지만 이 결과에 더없이 만족스러운 그녀였다.
자신을 상대로 윤시혁이 고유 스킬을 썼다는 거 자체가 대련의 목표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두 명의 대련이 끝났음에도 응시생들은 그저 그 두 명의 대련에 여운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대조되게 천운은 식은땀을 흘리며 생각하고 있었다.
‘대련 한번 살벌하게 하네.’
두 번하면 사망자 한 명은 속출할 거 같은 숨 막히는 대련.
물론 내가 소설에 묘사한 그대로의 상황을 보여 줬다.
근데 막상 현실로 보니 이렇게 아찔할 수가 없었다.
진짜 무슨 대련을 사람 잡듯이 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아마 지들 딴으로 이건 피할 수 있겠지 하고 막 내지르는 거 같은데, 보는 내내 심장 쫄깃하기 그지없었다.
막상 구경하던 응시생들은 그녀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지만.
“와…… 쩐다. 방금 봤어? 한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니까!”
“마지막에 진짜 오싹했어.”
“A반에서 쟤 정도 하는 실력자는 없잖아.”
그러나 그들의 찬사에도 그저 쓴웃음만 짓는 이수연이었다.
일단은 패배한 것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감을 가졌으며 기죽지는 않았다.
과거의 실력은 이렇게까지 돋보이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조금만 더하면…….’
그녀 자신도 느껴질 정도의 성과가 느껴졌다.
노력에 빛이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현재 4대 가문인 윤시혁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점에서 그녀는 더없이 만족하고 있었다.
앞으로 조금 더 노력하면 그들의 재능에 닿을 것이다.
“와 그것보다 우리가 문제네?”
“그러게. 일단 아까운 기회를 그냥 날리기도 그렇고.”
그들의 대련을 구경했던 응시생들은 공통되게 생각난 것이 있었다.
격이 다르다.
그들이 동시에 느낀 동질감이었다.
저런 대련을 봤으니 그들은 하나의 확고한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4대 가문인 그들에게는 절대 대련 신청을 안 해야겠다고.
그 확고한 결정은 겉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다른 S반 응시생에게 득달같이 달려들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특히 더 많았다.
다른 애들이 2, 3명이라면 난 10명쯤 되니 말이다.
아, 두 명 더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어이가 없네. 얘들은 자존심이 뒈졌나? 나름 그래도 엘리트라서 A반일 텐데.’
그때 마침 대련을 끝낸 이수연이 이영한 교관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는 교관에게 무언가를 말하다니 이내 교관과 함께 자신에게 오고 있었다.
근데 뭔가 감이 심상치가 않았다.
콩닥거리는 그들이 다가올수록 더욱 쿵쾅거리며 뛰고 있었다.
본래 이수연은 윤시혁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4대 가문인 그들과 한 번씩 대련하며 성장하는 캐릭터이다.
일단 뼛속까지 무인의 기질이다 보니 그녀는 성장의 가능성을 무엇도 놓치지 않을 심산일 것이다.
근데 그녀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다.
마치 무언가 흥미를 느낀 표정이었다.
“김천운 응시생.”
그때 그녀와 같이 온 이영한 교관이 입을 열었다.
“선택해라. 일단 규칙이라 거부권은 없지만 내 특별히 사정을 봐서 기회를 주마.”
이영한이 입을 열수록 불안감이 물씬 풍겨 왔다.
“여기 있는 10명을 상대할지 그녀 한 명을 상대할지 말이다.”
내겐 선택권이 없었다.
“이수연과 대련하겠습니다.”
* * *
천운은 별수 없이 그녀와의 대련을 받아들였다.
스탯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그녀의 힘과 체력 스탯은 45 정도의 스탯이지만.
내 스킬과 마투법을 더하면 그녀보다 더욱 높은 수치를 올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기술과 상성의 차이였다.
단검을 든 나에게는 리치의 차이로 더없이 까다로우며 난 윤시혁 같은 기술의 정수 같은 게 없으니 말이다.
유일하게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은 속전속결이었다.
물론 그것 또한 힘들 것이다.
그녀는 누구를 상대하든 방심은 하지 않으며 최선을 다하는 성격이었다.
그냥 뼛속까지 진성 무인이란 것이다.
“후…….”
“나도 대련을 하고 싶긴 한데 요청이 안 오네.”
“네가 부럽다 설아야.”
“응?”
천운은 이내 심호흡을 하며 몸을 풀었다.
옆에 있던 한설아는 나를 향해 부러움을 표하고 있었다.
나도 마음 같아선 그냥 얘한테 넘겨주고 싶긴 하다.
물론 그렇게 되면 들개들 10명을 상대해야 하니 별수 없지만.
“준비 끝났으면 시작해라.”
태평하게 말하는 이영한.
그러나 내심 김천운이라는 응시생의 실력에 호기심을 보이고 있었다.
허필두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여기서 무언가를 보여 주겠지.
그러나 지금 천운의 속사정은 죽을 맛이었다.
‘최악이네.’
그녀와의 상성은 최악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