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22
다음 날.
아직 길영트 입학시험까지의 남은 기간 난 그녀에게 마투법의 응용을 배우고 있었다. 후에 내기의 조건으로 다른 마법 또한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더니 응용 방법부터 가르친 다음에 알려 준다고 말했다.
[내가 먼저 시범으로 보여 줄 테니까. 잘 보고 따라 해 봐.]
애티나는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진중함에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이내 그녀의 마력이 한쪽 손으로 몰리는 게 느껴졌다.
[어때?]
“마력이 손 쪽으로 몰렸네요.”
[그래. 마투법은 마력량에 따라 힘과 체력 스탯을 올려 주는 마법이야. 아마 네 기량으로는 힘과 체력이 10 정도 상승하겠지. 근데 단숨에 40까지 올릴 수 있는 방법이 있어.]
동시에 그녀가 주먹을 꽉 쥐며 바닥을 내리쳤다.
쾅!
거대한 굉음과 함께 한순간 지축이 흔들리며 이내 그녀가 내리친 지면이 움푹 파인 것이 보였다. 대련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위력.
아마 일부러 임펙트를 보여 주려고 평소보다 조금 더 마력을 넣은 듯하다.
미르마가 입을 열었다.
[물론 이 마법은 내가 만들긴 했지만, 나도 완벽하게 다루는 건 아니야. 옛날과는 다르게 나한테는 이제 필요 없는 마법이라서.]
미르마의 말대로 현자는 마법의 끝과 가까운 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마법은 단순히 그녀가 근접전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마법이니 말이다.
[내가 아는 응용법은 몇 가지 가르쳐 줄게. 뭐 네가 생각한 게 있으면 그 방법으로 사용해도 괜찮고.]
“네. 알겠어요.”
물론 당연하게도 난 이 마투법의 몇 가지 응용 방법을 알고 있다.
주로 의철이 쓰던 방법이고 내가 생각해 낸 방법이기도 하니까.
[일단 첫 번째는 아마 가르쳐 줄 필요도 없을 거야. 넌 손쉽게 할 테니까.]
그녀의 말이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다
아마 저렇게 마력을 이동시켜 파괴력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말하는 거 같은데.
순간 미르마가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줄 알았다.
내가 이해를 못하는 표정을 지으니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 뭐냐? 네가 자주 하던 그 마력 순환을 응용하면 될 거야.]
“아!”
그렇다면 미르마의 말도 이해가 됐다. 마력을 몸 안에서 옮기는 것은 같은 이치니 말이다.
일단 난 미르마의 말대로 마투법을 발동하여 마력을 한 구로 만들고 천천히 어깨를 넘어 팔을 지나고 손에 안착시켜 봤다.
그 순간 손에서부터 뭔가 주체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흠, 대충 30인가? 그 정도면 충분하네.]
“뭔가 계왕권 같네.”
[응? 그게 뭔데? 뭐, 일단 다시 그 마력을 몸에 골고루 퍼트려 봐.]
미르마의 말대로 난 손에 모인 마력을 다시 천천히 가슴 중심으로 안착시킨 다음 흩어지게 만들어 보았다.
그 모습에 미르마에 마음에 들었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역시나, 처음부터 잘하네. 이제 그걸 자유자재로 할 수 있도록 익숙해져야 돼. 아, 그리고 마력의 특성이라고 알지?]
각성한 아베타들마다 그 마력에는 각자의 특성이 담겨져 있다.
한설아가 풍속성인 거처럼 말이다.
[마투법은 내가 또 다른 성질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돼. 굳이 지칭하자면 오러?]
“와! 대단하시네요.”
난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손뼉을 치며 과하게 맞장구를 쳐 주며 대답했다.
알고 있는 사실이기는 하나 그녀가 하나의 새로운 적성을 만든 것은 대단한 위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력을 오러로 바꿔도 그 성질이 뒤따라가. 너 마력 특성이 뭐야?]
“제 마력이요?”
[특성을 알고 사용하면 더욱 여러 가지 응용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내 특성? 그러고 보니…….’
갑작스럽게 그녀가 물어본 질문에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김천운의 특성.
‘김천운이 주요 인물도 아니고 딱히 재미만 있으면 됐지.’ 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상세하게 천운의 특징을 짜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르마가 그렇게 말하니 살짝 궁금하기도 했다.
근데 뭐 예상가는 적성이 하나 있긴 하다.
“‘무’ 아닐까요?”
[아닐까요? 그 나이 되도록 알아보지도 않았어?]
“네.”
[보통은 자신의 마력 특성부터 알아보는 게 정상일 텐데.]
세상에는 수만 가지의 특성이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게 4원소 지, 풍, 화, 수.
바람은 속력과 날카로움을 높이고.
흙은 무게와 강도를 강화시키며.
불과 물은 가장 흔하지만 강력한 특성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마력으로 불과 물을 조종할 수 있으니 말이다.
현재 민아 누나가 그 예시이다.
물론 그 정도의 경지까지 오르기는 쉽지 않지만 말이다.
[알아봐 줄까?]
내심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하는 미르마였다.
“어? 지금 바로 알 수 있어요?”
[넌 내가 누군지 까먹은 거야?]
“아. 그렇긴 하네요.”
현자.
다시 한번 그녀를 상기시켜 주는 말이다.
별안간 그런 생각을 하니 그녀의 손에서 하나의 수정구가 생겨났다.
[이건 내가 만든 특성 측정석이야. 여기 위에 손을 대고 마력을 흘리면 나타나는 현상으로 그 특성을 알 수 있어.]
“와…… 한번 해 보죠.”
[그래. 자 여기 위에 손 올려.]
그녀의 말대로 난 수정구에 손을 올려 마력을 흘렸다.
아마 조금만 지나면 수정구의 하나의 색을 띠며 내 성질을 알 수 있을 거다.
덜덜덜-
이내 수정구가 그녀의 손아귀에서 잠시 흔들리더니.
파아앙-!
깨끗하리라 생각될 정도의 새하얀 밝은 빛이 새어 나왔다.
미르마가 그 빛을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새하얀 빛……. 빛 속성이야.]
“빛 속성……. 뭔가 저랑 안 어울리네.”
내 예상과 다른 성질의 마력이었다.
빛 속성이라니…….
빛 속성은 무 속성 다음으로 미미한 효과도 없는 특성이다.
다른 특성들이 전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면 이 속성은 그저 빛만 번쩍 날 뿐이니 말이다.
[빛 속성이라 그와 관련된 마법을 알고 있긴 한데 네가 원한다면 가르쳐…… 응?]
이내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그녀가 다시 한번 수정구를 바라봤다.
나 또한 수정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밝은 빛을 내뿜던 수정구는 어느새 그 빛이 줄어듦과 동시에 더 없이 칠흑에 가까운 어둠이 슬며시 그 수정구의 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건 분명…… 성질이 두 개네요. 빛과 암흑 특성이라…….”
[그러게.]
대충 봐도 알 수 있었다.
이 경우는 내 마력의 성질은 두 가지를 띤다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암흑 속성 또한 마법에 용이하게 쓰이는 속성이긴 하나, 마력만으로 별다른 특징 없는 특성이니 말이다. 그리고 특성을 두개 이상 가지고 있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 특성을 찾는 게 문제지만.
아베타로 각성한 각성자들이 가장 고뇌하는 것은 자신의 특성을 찾는 것이었다.
지금의 미르마처럼 특성 측정구를 뚝딱하고 만드는 지식은 현대에 없으니 말이다.
그 순간.
“뭐지?”
수정구에 뛰어진 어둠은 자리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밝은 빛과 어둠이 만나 서로 뒤엉켜 섞이려 하고 있었다.
“이거 왜 이래요? 현자님?”
그러나 내 말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정구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미르마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알아차린 미르마의 동공은 이내 나를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세상에…….]
* * *
[뒤섞인 자들의 마력이라니…….]
“네? 그게 뭔데요?”
[이걸 몰라? 이 유명한걸!?]
천운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오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반응이 이런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 그녀는 멸망한 세계에서 이쪽 세계로 은신처 통째로 넘어왔다는 사실을 모르니 말이다. 당연하게도 말을 안 했으니 천운이 멸망한 세계의 주민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저 난처한 상황이라 머리를 긁적이는 천운이었다.
“예. 뭐 잘…….”
[어릴 때 한 번씩 나온 영웅이나 마왕, 용사에 대한 그런 동화는 읽어 봤을 거 아니야?]
“아…… 예.”
[그런 애들이 하나같이 이런 특성을 타고나더라고.]
“아…… 그렇군요.”
[반응을 보니 이상하군. 아!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네!]
“뭐가요?”
천운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음표가 연신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녀는 혼자서 무언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너도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녀석이니 모를 만하겠네.]
쿵!
뭔가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당혹감이 천운을 덮쳤다.
희번뜩 떠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는 그저 담담하게 말을 이을 뿐이었다.
[녀석들은 하나같이 이계에서 이쪽 세계로 넘어왔다 하더군.]
“아…….”
말문이 막혔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며 긴장되고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다는 말은 그녀가 말하는 뒤섞인 자들은 분명.
“빙의자…….”
[응? 뭐야 잘 알고 있네? 물론 빙의자라고 칭하는 자들도 있고 전생자라고 칭하는 자들도 있더군.]
멸망한 세계의 뒤섞인 자들.
그들은 천운의 예상대로 현대에서 이계로 넘어간 사람들을 뜻하는 거였다.
그리고 천운이 다음에 한 말은 당연한 질문이었다.
“혹시 그런 사람들 중에 원래 세계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나요?”
흔들리는 동공이 미르마를 향했다.
그러나 돌아온 말은 처참한 현실이었다.
[애초에 다른 세계의 문을 여는 것은 금기이며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논리이기도 하지. 그런 사람들은 없었어.]
참담한 현실에 고개를 푹 숙인 천운이었다.
그 누구도 아닌 현자의 말이기에 천운은 사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었다.
* * *
[혹시 배우고 싶은 마법은 있어?]
“마법이요?”
[넌 스탯이 너무 약하니까. 조금 걱정되네…….]
“음…… 그렇게 갑자기 가르쳐 주셔도 되요?”
[너라면 괜찮아……. 너라면 가르쳐 줘도 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거든.]
“멍청해서요?”
[으음? 뭐, 그것도 한몫을 하기는 하는데…….]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우울해 있으니 위로라도 해 주는 듯 말을 거는 미르마였다.
근데 원래 가르쳐 주기로 한 마법인데 인심 쓰는 척하는 게 좀…….
뭐, 일단 다른 마법을 가르쳐 준다고 하니 감사하기는 한데, 아마 다른 마법들은 몸을 두들겨 패서 기억하게 만든 마투법과 다르게 오로지 지능의 영역이다.
보통으로 기억하기 힘든 복잡한 술식을 머릿속으로 이해해야 하니 말이다.
그러니 지능 1의 내가 배우기에는 어려운 게 마법이다.
“감사하긴 한데. 제가 기억력이 약해서요.”
[너라도 노력만 하면 간단하게 외울 수 있을 거야.]
“그래요?”
[그럼 당연하지. 일단 알려 줄 테니까 한번 노력해 봐. 네 특성은 빛도 어둠도 아닌 뒤섞인 마력이라 그거에 맞춰서 뭐 알려 줄 마법은 없지만, 일단 두 속성에 대해서 가르쳐 주면 되지 않을까?]
그녀 또한 천운이 마법을 이해하는 데에는 재능이 없음을 알기에 그렇게 말했다.
이 이상의 마법은 아마 천운에게 어려울 테니 말이다.
[빛과 어둠의 마법의 수가 적은 건 알고 있지?]
알고 있다. 그만큼 흔하지 않은 마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두 가지가 특별하다는 말이 아니다.
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특별하지도 않으니 그 특성과 관련된 마법은 크게 발달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인들의 상식이지 현자에게 통용되는 말은 아니다.
[여러 가지가 있긴 한데. 일단 간단한 라이트는 쓸 수 있지?]
“네. 굳이 술식이 필요 없는 애들이 쓰는 마법이니까요.”
[그래. 하여튼 그것보다 더욱 밝게 그것도 한 번에 시야를 터트리는 마법이야. 대충 이름은 안 지었는데. 말하자면 섬광 마법?]
“오!! 가르쳐 주세요!”
필시 방심하고 있는 상대에게 더 없이 효과적인 마법일 것이다.
어차피 죽치고 침울해 봤자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남은 두 달 동안 할 것도 없고 그녀에게 마법이나 배우면서 마력 순환으로 한계치를 조금 더 올리는 게 이득일 것이다. 입학시험까지 남은 기간.
제대로 본전을 뽑고 나가자.
시간은 아직 충분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