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소설 속 운만렙 캐릭터가 되었다-18화 (18/176)

제18화

#17

띠리리리링!

한미연은 오빠의 지인이라는 16살 어린 소년을 또 놀러 오라는 예의 차린 말로 보낸 후, 티브이를 보며 깔깔거리는 오빠를 바라봤다. 언제나 가진 힘에 비해 한심한 꼴의 오빠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바로 오빠의 스마트폰.

오빠의 폰에서 하루에 그것도 두 번씩이나 동생인 나를 뺀 전화가 오는 것은 웬만하면 일어나지 않는 드문 일이다.

심지어 이번에는 발신자 번호도 아닌 이름도 제대로 저장된 번호다.

너무나 궁금한 나머지 오빠에게 말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전화를 받아 보기로 했다.

어차피 ‘전화받아!’ 라고 말할 게 뻔하니.

“여보세요?”

-어? 혹시 한우성 전화번호 아닌가요?

듣는 것만으로 치유되는 듯한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

그리고 저장된 전화번호.

‘세상에…….’

오빠한테…… 여자가 있다…….

“아 바로 바꿔 드릴게요. 오빠!!”

그 귀차니즘의 오빠가 여자가 있었다. 나름 맨날 집에서 처박혀 티브이만 보길래 내심 걱정했지만 나름 밖에 나갈 때마다 할 거는 하고 다니는 모양이라 다행이다. 라고 한미연은 성대하게 착각하고 있었다.

“왜?”

“전화 왔어 받아.”

“대충 끊어, 바쁘다고 하고.”

이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시들시들한 반응에 동생은 그러면 그렇지라고 생각했다.

뭐, 아니라고 해도 나쁘지 않은 징조다. 일단 오빠의 폰에 엄마, 여동생인 나 빼고 여자 번호가 저장되어 있는데. 나름 조금은 진보한 오빠에 대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름이 한민아라는 분한테 전화 왔는데?”

“어? 뭐?”

오늘 무슨 날인가? 한민아가 자신한테 전화할 일로는 아마 귀찮은 부탁 때문에 전화하는 거 말고는 없었다.

“끄응…….”

이걸 끊어야 돼? 말아야 돼? 순간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같은 고민의 갈로에 들어섰다.

과거에 그녀에게 빚이 있어 거부하기도 그렇지만 이 일주일 안에 두 번이나 밖으로 싸돌아다녔다.

한우성의 철칙 하나, 일주일에 두 번만 일하자.

하지만 끈질긴 한민아의 성격상으로 지금 안 받으면 아마 몇 번씩 여러 번 전화가 올 것이 분명할 터.

좋다. 받고 내용을 들은 뒤 다음 주에 하자.

그렇게 결정한 한우성은 전화를 받았다.

“예. 한우성입니다.”

-오랜만이네요.

“에휴…… 오랜만이네.”

-후훗. 그러게요.

“무슨 일로 전화했어? 바쁜데.”

정확히는 바로 정면의 티브이를 보느라 정말 바쁘다. 한우성의 옆에서 말하는 것을 들은 미연은 미간을 찡그리며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들었어요. 천운이가 그쪽으로 갔다면서요?

“천운? 천운을 알아?”

-저희 집 식구인데 당연히 알죠.

‘그놈이 왜 내 번호를 알고 있다 했더니 한민아와 동거하고 있었구먼.’

피는 암 가문인데 적안 가문과 같이 살고 있다고 하니 한우성은 묘한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그건 천운의 집안 사정이고 쇼핑몰 사건 때 한설아가 옆에 있던 것을 생각하면 예상이 갔던 내용이니 그냥 넘어갔다.

“그래서 부탁은?”

-어머, 오랜만에 전화할 수도 있죠.

“거 끊기 전에 빨리 볼 일이나 말해. 바쁘니까.”

-그럼요. S급 1위신데.

천연스럽게 대답했지만, 그녀도 한우성이 어떤 인간인지 알고 있었다.

그 성격에 바쁘면 얼마나 바쁘다고…… 하지만 부탁 하나는 제대로 들어주는 인간이다.

귀찮아도 할 건 하는 능력 있는 한우성이니, 자신한테 빚도 있고 맡기기에는 충분했다.

-우리 천운이 좀 잘 부탁드릴게요.

“응? 우리 천운이?”

-…… 불쌍한 아이거든요.

나름 부지런하며 무엇이든 해 보고 노력하는 천운은 누가 봐도 활기 넘치는 밝은 성격의 아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과거에 겪은 사건을 아는 한민아는 아직도 그것이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응, 영구적인 건 안 들어줘.”

나름 감정이 담긴 슬픈 어조로 말했더니 이 모양이다. 일단 한민아 또한 예상한 대답이기에 별말 없었다. 한우성은 ‘어디 사연 없는 인간이 세상 어디에 있는가?’ 같은 마인드라 그런 부탁으로는 회귀자의 굳어 버린 마음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것보다 많이 바뀌었네? 그 차가우신 한민아가 누군가를 위해 소원권을 쓰다니. 좋아. 나도 흥미가 있으니까 들어줄게.”

-정말요?

“그럼 당연하지. 몇 달 동안만 지켜보면 되지? 크큭…….”

갑자기 냅다 키득거리는 한우성의 웃음소리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한민아는 미친 건가? 라고 생각했지만, 한우성은 당연하다는 듯이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마 의미의 전달 때문일 것이다. 한민아는 분명 천운이 걱정되니 지켜 달라는 말이었지만 그 천운이라는 놈은 일부러 더욱 위험한 곳에 발을 디디려 하고 있었다.

물론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딱히 자신이 지켜보지 않아도 그놈은 멀쩡하게 성장의 공간에서 빠져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콜.”

-감사합니다.

“뭐 별거 아닌데 당연히 해 드려야죠.”

한민아의 부탁 5번 들어주기 중 3번째를 공으로 먹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냥 지켜보다가도 위험할 때 꺼내 주면 될 테니 말이다.

전에 부탁한 건보다는 편하기 짝이 없었다.

* * *

천운은 현재 무거운 가방을 메고 산속 깊은 곳을 헤매며 공터의 입구를 찾고 있었다.

물론 심심한 입을 달래 줄 식량과 산삼을 가방에 챙겨 왔다.

일단 시간 개념이 없는 공간이라 굶주림은 없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어떻게 몇 달을 아무것도 안 먹고 살겠는가?

그 안에 들어가면 일단 굶주림, 시야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스킬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니 거기만큼 좋은 수련장은 없을 것이다.

‘장소를 보면 여기가 확실한데.’

자신이 기억하는 소설 속 표현으로는 여기가 확실하다

그러나 보이는 것은 풀 한 포기 없는 평평한 지면뿐.

하지만 느껴지는 마소량은 이 평평한 지면의 지하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운은 여기가 자신이 쓴 성장의 공터라는 것을 확신했다.

‘주인공의 첫 번째 각성이 일어나는 장소라니. 기묘하네.’

주인공 김의철이 검과 동시에 마법을 쓸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이 공터 안의 유령한테 있다.

2학년 여름 방학. 의철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한우성이 일부러 어느 구덩이에 던져 버린 것이 이 성장의 공터 에피소드의 시작이다.

성장의 공터.

일단 마법은 둘째쳐도 스킬을 얻기에 최적인 장소이다.

보통 하나의 스킬을 얻는 방법은 하늘의 별 따기며 1년에 한 번 얻을까 말까 하지만 이 공간에서는 다르다.

물론 이 구덩이 밑은 넓은 학교 운동장 크기의 공터밖에 없을 거다. 그러나 들어가는 직후, 이 어두운 공간은 사람의 시각을 빼앗는다.

공터 안에서 시각을 되살리는 방법은 이 안에서 시각과 관련된 스킬을 얻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대로 나오면 분명 평생 시야가 안 보이는 장애를 가지고 살 수밖에 없을 거다. 위험 부담이 크지만 자신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행운이 빛을 발하니 말이다.

“샌디야.”

[ㅇㅇ?]

“일단 내 손목시계 먹고 저기 위에 서 봐.”

[ㅇㅇ!]

샌디의 텔레파시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샌디는 내 손목시계를 흡수한 뒤 지면으로 내려와 몸을 부풀렸다.

점점 몸을 부풀리던 샌디는 높이 2미터는 넘을 듯한 거대한 슬라임 형태로 변했다.

쩌저적-

그리고 그 순간 바닥에 쩌저적-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샌디가 서 있는 지면이 마치 거미집 형태로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

‘저기네.’

천운은 그 갈라진 지면을 향해 조심히 걸었다.

그러나 바닥은 마치 한강에 얼린 물이 깨지듯 그 표면을 넓혀 갔고 결국 천운이 서 있는 지면까지 당도했다.

‘어?’

쩌저적-

팡!

“어! 어어!! 왁!”

바닥이 갈라지며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당연하게도 천운은 그 구덩이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 * *

스으윽- 스으윽-

“하…….”

정신을 차리자 한숨이 나온다.

설마 구덩이의 입구가 그 정도로 넓을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천운은 떨어진 입구를 보려고 고개를 들었다.

‘역시 메워지네.’

메워지는 구덩이를 보니 천운은 확실히 장소를 제대로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아마 저 입구가 전부 메워지면 내 시야는 더 이상 모든 것을 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벌써부터 소리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한 기분이다.

이내 입구가 전부 메워지며 천운은 행동에 나섰다.

‘그럼, 시작해 볼까.’

성장의 공터란 원래의 명칭이 아닌 한우성이 지은 명칭이다.

물론 이 명칭 말고 하나가 더 존재한다.

천운은 고개를 위로 올려 자신이 떨어진 입구를 바라봤다.

유일한 입구가 천천히 흙으로 메워지고 완전히 빛을 차단함과 동시에 이 공간에선 자신이 입을 열지 않는 이상 정적만이 흐를 것이다.

허기를 못 느끼고 시야가 차단되는 감각을 오래 느끼게 되면 자신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착각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기 전에 빠르게 어둠에서도 시야를 볼 수 있는 스킬을 얻어야 한다.

“상태창.”

이름 : 김천운

나이 : 16세

<스탯>

힘 : (17.2/50) 체력 : (16.1/40) 지능 : (1/100) 마력 : (19.1/38) 행운 : (100/?)

<스킬>

의안(S)

‘역시 개천산처럼 마력은 안 오르네.’

숨만 쉬어도 오르는 개천산과 달리 이 구덩이 안에 마력들은 전부 구덩이에 운영되는 모양이다.

하긴 이 구덩이의 마력들은 본래 이 구덩이 주인의 마력이다.

주인 있는 마력이 남에게 흡수될 일은 없을 터.

‘가만히 눈만 뜨고 있으면 언젠가 스킬을 얻을 수 있겠고…… 그럼 러닝이나 할까?’

일단 각각 특출한 인재나 가문들이 가지고 있는 이능적인 고유 스킬과는 다르게 보통 각성자들이 가지고 있는 스킬이란 모든 행동의 적응에서 나타난다.

적응력.

각성자는 한 행동을 행하여 적응할 경우, 그 행동과 관련된 스킬 중에 랜덤으로 발현된다.

스킬은 F급부터 S급으로 단계별로 나누어진다.

물론 노력의 성과에 따라 더욱 높은 급의 스킬이 발현되지만, 워낙 스킬의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같은 A급이라도 최상위 A급과 쓰레기 A급으로 나누어진다. 물론 같은 A급 중에서도 발현되는 것은 랜덤이다. 그러니 먼저 내가 할 행동은 이 어둠을 밝혀 줄 눈과 관련된 스킬을 얻는 것이다.

일단 뭐가 보여야 다음의 행동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스으윽- 스으윽-

“근데 아까부터 뭔 소리지?”

본래 정적이 가득한 성장의 공터에서란 나 말고도 살아 있는 존재는 없을 터.

근데 아까부터 나 이외에 있을 수 없는 마치 무언가가 땅을 스치듯 기는 듯한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

그 소리는 나를 향해 점점…….

스으윽- 스으윽-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예상해 볼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주인공 김의철의 옆에 떠다니는 검성과 비슷한 격의 소유자.

‘분명 여기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겠지.’

하지만 아니다. 유령은 말 그대로 몸이 없는 귀신이다.

그렇다면 다른 존재가 지금 이 구덩이 안에 있는 것인데.

이 아무것도 안 보이는 넓은 공간에 말이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유령이 아니고서야 존재할 리 없는 무언가가 구덩이에 있다.

귀신보다 더욱 무서운 게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가?

‘나 이외에 뭔가 있어.’

그 정체도 모르는 것이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니 공포심만 커질 뿐이었다. 이리로 저리로 도망가려 하니 결국 벽에 막혀 어디로도 이동할 수 없게 됐다.

그 순간 무언가가 스으윽- 오더니 내 발이 닿고 말았다.

“히이익!!”

나도 모르게 뇌를 거치지 않고 기이하며 누가 들었으면 차마 고개를 못들 비명이 입 안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다르게 그 존재는 내가 가장 익숙하게 항상 몸에 두르고 다니는 존재였다.

[ㅋㅋ]

“샌디냐?”

[ㅋㅋ]가 머릿속에서 보인 순간 욱해 가지고 샌디의 몸을 쥐어박았지만, 모래라 그런지 별다른 효과는 없었다.

어쩐지 항상 손목에 있던 익숙한 감각이 없다 했더니, 내가 기절하는 동안 공간을 싸돌아다닌 모양이다. 그래 봤자 이 둥근 구덩이 안에는 뚫린 통로는 없을 것이다.

“하…… 샌디야 일로 와.”

나름 지능은 있지만 장난 수준은 어린애와 비슷하다.

어쩌겠나? 애는 잘못이 없는데.

잘못 가르친 내 잘못이지. 샌디는 점점 나에게 다가오더니 이내 손목 밴드로 돌아왔다.

난 다시 한번 바닥에 누워 눈을 뜬 채 가만히 있었지만, 이양 아무것도 안 하고 누우면 시간이 아까우니 마력 순환도 포함하여 열심히 최선을 다해 눈을 치켜뜨고 누워 있었다.

본래 눈을 감고 집중해야 할 수련이지만 앞이 안 보이니 감은 거나 다름없었다.

* * *

‘며칠이 흘렀지?’

아직까지도 의식을 집중해 마력 순환을 반복하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눈은 아직도 보이지 않으니 점점 더 초조할 따름이었다.

아사할 걱정 없는 공간이라지만 한순간이라도 긴장을 늦추고 마력 순환을 멈추면 왠지 짙은 어둠이 정신을 갉아먹을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정도면 오래 버티지 않았나?’

[ㄴㄴ 3h]

3h…… 아직 이 구덩이에 들어온 지 3시간밖에 안 지났다.

‘미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