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13
무언가 잘못됐다.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을까? 납치당하는 도중의 구하는 계획은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그 계획은 더욱 심각한 후폭풍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한설아!! 정신 차려요!!”
스토리상 그녀는 출동한 아베타와 자신의 언니인 한민아에 의해 구조되지만. 윤현의 배신을 알아 버린 건 그 후 며칠 뒤의 이야기다. 애초에 그럴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 안일함이 스토리를 바꿔 버린 영향인지 그녀는 너무 일찍 사실을 당도해 버렸다.
“그 녀석의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거짓말일 수도 있잖아요!”
등에 업힌 그녀는 내 말에도 대답 없이 무언가를 상실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현실을 믿고 싶지 않지만, 그녀도 어렴풋이 그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 이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듯이 찾아오는 여러 번의 습격을 어떻게 설명한단 말인가.
“멈춰.”
그녀를 업고 달리고 있었지만, 이내 낮고 담담한 목소리에 저지당했다. 눈앞에 보이는 왼쪽 눈에 사선의 흉터와 백발의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
“윤현……. 왜 하필 지금 …….”
“나를 아나?”
흔하지 않은 백발과 검은 정장, 누가 봐도 내가 설정한 윤현의 외모였지만,
그와의 만남은 현재로서 최악이었다.
한설아는 내 말을 들었는지 고개를 들며 정면의 윤현을 바라봤다. 그녀가 업힌 몸에서 내려와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니죠……?”
“…….”
“왜 말이 없어요. 아저씨.”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불안함과 흔들리는 눈가.
그 침묵이 무엇을 말하는지 한설아는 잘 알고 있었다.
“왜…….”
16살의 그녀에게는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배신감이 그녀의 투지를 꺾게 만들었다.
가문에서 인정받지 못한 그녀였지만, 생활은 나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인정 안 해도 윤현은 자신을 믿는 사람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무엇을 믿어야 될지 모르는 듯 축축한 눈가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사실을 알아봤자 후회할 뿐입니다.”
그녀의 말을 대답한 후,
윤현은 허리춤에 찬 도검 내세우며 검을 뽑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말과는 다르게 일 절의 망설임도 없는 표정으로 그의 도검이 한설아의 목을 향해 발도했다.
캉!
이다음 내가 할 행동은 당연했다. 그녀의 목으로 향하는 도검은 샌디의 모래로 만든 크리티컬 단검에 의해 가까스로 막혔다.
“넌 분명…… 나를 아는 거 같던데. 누구지?”
윤현은 자신의 검이 막힌 것에 눈살을 찌푸리며 천운을 노려보며 이어서 입을 열었다.
“네가 김천운이군. 아가씨한테 들었다. 하지만 나를 아는 것을 보니 너 또한 아가씨한테 목적을 두고 만났군.”
“무슨 당신하고 비교하고 있어. 우연히 만날 수도 있지.”
“헛소리군. 그럼 나를 어떻게 알지? 넌 아가씨가 적안 가문이란 걸 이미 알고 있어서 만난 거겠지. 아닌가?”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사실을 말해도 그녀가 믿어 줄지도 몰랐으니.
한설아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동공이 나를 향했다.
지나치게 비약된 오해. 여기서 더 말해 봤자 더욱 의심만 커질 것이다.
난 더 이상 그녀의 슬픔을 늘려 주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더 생각하고 행동했더라면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터.
“하…… 네. 뭐 알고 있긴 했어요.”
그녀의 눈가가 축축해지며 터질 듯한 울음을 참고 천운을 향해 무겁던 입을 열었다.
“대체 왜…….”
“팬이에요. 한설아 씨.”
“어?”
“뭐?”
난 그녀의 말을 가로막듯 입을 열었다.
윤현 또한 당황했는지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순간 물기에 젖은 동공의 시선이 어안이 벙벙한 듯 나를 향해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팬? 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하지? 자신은 누군가에게 존경할 정도의 행동은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애초의 그의 말이 진심이긴 하는가?
지금 이 상황에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나? 제 정신인 건가?
아니면 그것이 이 상황을 모면하려는 변명인지.
그녀는 의문을 알려 달라는 듯 천운을 바라볼 뿐이었다.
“사실이에요.”
“어째서, 왜…….”
초반의 깐깐한 성격들 빼고는 하는 노력이나 자신감 넘치는 행동들 나도 모르게 써 내리던 그녀의 행동들은 언젠가부터 내 이상의 여자로 표현돼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여자는 현실에서는 망상에 불가한 문장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문장이 현실로 바뀐 지금 그녀를 만나게 됐다.
뭐 일단 그녀가 메인 히로인인 이유는 애초에 정해져 있었다.
내 이상이 그녀를 만든 것이다.
“존경하거든요.”
난 동시에 의안 스킬을 발동했다.
윤현이 쾌검의 속력으로 발도술을 뽑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의 검이 빨라도 이 스킬을 발동 중에서는 나 또한 그의 검에 반응할 수 있었다.
캉!!
철이 울리는 굉음과 함께 난 윤현의 검을 크리티컬 단검으로 막아 냈다.
“어떻게…….”
방심한 사이 빠르게 처리하려 했으나 천운은 자신의 발도술에 반응했다.
윤현은 더 없이 경악하고 있었다.
자신의 검이 두 번이나 천운에게 막혔기 때문이다.
첫 공격은 한설아에게 향했으니 예상했다 쳐도, 우연은 두 번이나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윤현은 상황을 살피기 위해 당황하며 물러섰다.
마력의 움직임은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면 고유 스킬이라는 건데…….
그리고 떠오른 하나의 생각.
그 순간 윤현의 왼눈에 흉터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눈을 이렇게 만든 자의 고유 스킬.
“설마! 의안이냐!”
그저 감이었다.
깊게 생각해도 그가 자신의 검을 막을 기량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검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스킬뿐.
그것도 고유스킬인 의안을 말이다.
한때 적안 가문의 심복이었던 윤현이 다른 가문들의 고유 스킬을 모를 리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너…….”
한설아 또한 4대 가문의 적안 가문이니 암 가문에 고유스킬인 의안에 대해 알고 있었다.
사실을 알고 나니 한설아의 마음은 더없이 심란해 있었다.
암살을 주업으로 삼는 암 가문의 고유스킬.
그 암 가문인 천운이 왜 자신을 그토록 잘 대해 줬는지. 그리고 지켜 주고 있는지.
더더욱 알 수 없었다.
“아, 그게 안 물어보셔서.”
천운이 머리를 긁적이며 당황한 듯 웃으며 변명했다.
물론 이 한마디로 그녀가 전부 이해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이건 말한 타이밍을 놓쳤다고 보는 게 맞는 거 같다.
딱히 비밀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누나의 집에서 동거하면 들킬 테니 그 전에 말하려 했지만 그게 이 순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일단 나중에 천천히 알려드릴게요. 일어나세요.”
“어?”
천운은 한설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의 손을 맞잡는데 망설여진다.
천운을 믿어도 될까…….
“혼자서는 못 싸워요. 저 약한 거 알죠?”
천운은 별 말 없이 한 말이지만 그녀에겐 가깝게 다가왔다.
상황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그의 말이 마음속에 망설임과 두려움을 조금씩 없애 주는 기분이었다.
한설아는 그의 말을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자신 또한 같은 약자니까.
* * *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윤현의 앞에 보이는 저 사내.
예의 적안 가문의 종자였던 윤현은 모를 수가 없었다.
그 고유 스킬이 무엇을 뜻하는지 말이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 결국 윤현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왜 암 가문에서 나선 거지? 목적이 뭐냐?”
“알 거 없어.”
당연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대답.
뭐 적한테 그것을 친절하게 알려 줄 예의는 없었다.
천운은 다시 한번 일어난 그녀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보라색 후드보다 약할지언정, 그도 만만치 않은 상대.
오히려 이때까지 보라색을 상대로 버틴 그녀가 대단할 지경이다.
“비상 경고가 울렸으니 곧 아베타들이 출동하여 구조에 나설 겁니다. 그동안 잠시 버티면 될 거예요.”
“알겠어.”
그녀가 손에서 검을 현현 하려 하자 천운이 손으로 저지했다.
“버티라고 했지만 맞설 필요는 없어요. 제가 신호를 줄 테니 도망가죠. 굳이 싸울 필요도 없고, 대치하면 후드를 쓴 사내가 언제 올지도 알 수 없으니까요.”
그녀를 본래 얻어야 될 기연을 앞당겨 강해지게 만들었지만, 그 둘을 버틸 정도는 아니다.
색을 가진 자들.
언더들의 간부에 속한 자들을 말한다.
대치하여 버티는 것은 패배의 지름길일 뿐 지금은 프로들이 오기 전까지 도망밖에 답이 없다.
“흩어져서 정한 위치에서 다시 만나죠. 알겠죠?”
한설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하나, 둘, 셋!”
난 샌디의 몸에서 일부를 떼어 내 동그랗게 말아서 윤현에게 던졌다.
당연하듯이 윤현은 날아오는 샌디를 일격에 두 동강 냈지만 저것은 노림수였다.
펑!
“뭐?!”
또다시 보이던 검은색 안개들은 윤현의 시야를 가렸다.
순간 천운의 노림수를 알아차리고 뒤쫓으려 했지만, 검은 연기 속에서 무언가를 본 뒤, 이내 쫓는 것을 포기하고 연기가 걷힐 때까지 기다렸다.
안개들이 서서히 개자.
그 사이에서는 천운 또한 자리를 지키듯 윤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왜 도망 안 갔지?”
“도망가 봤자 소용없을 거 같아서.”
소설에 쓴 그의 속력으로는 도망을 가 봤자 따라잡힐 게 분명할 터. 한 명이라도 그를 잡고 있어야 가능한 작전이다.
이번에는 내가 그녀를 대신해 막아서기로 했다.
* * *
“혼자서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예.”
“뭐?”
짧지만 자신 있는 단답에 윤현이 이를 으득 갈며 천운을 노려봤다.
어차피 목표는 그녀일 터. 그녀가 안전한 장소로 도착할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상대의 힘도 파악할 줄 모르는 멍청이일 줄이…… 뭐?”
캉!
그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난 샌디를 이용해 만든 원격 조종 단검을 이용해 그의 뒤를 노렸다. 물론 예상했지만, 그의 검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도발 후 얕은 수작이나 부리다니. 너 같은 녀석이 어떻게 아가씨와 친해졌지?”
“배신자 따위도 같이 잘 지내더구먼 나라고 별거 있나?”
“네놈!!”
분노에 몸을 맡긴 발도술. 그에게 도발이 제대로 먹힌듯하다. 비록 그녀를 배신했지만 싸움이나 검술로는 정직할 터.
“샌디.”
[ㅇㅇ.]
그가 내 앞에 발도술을 발하려는 순간.
킹!
내 앞에 깔아 둔 샌디의 모래에서 무수한 가시들이 솟아났다.
“큭!”
“쳇.”
간발의 차이로 피한 그가 뒤로 물러서며 이를 으득 갈았다.
“아가씨를 위해 시간을 끄는 것을 봐서 다시 봤더니만 하는 짓은 영 고약하군.”
“입으로 싸우나?”
“이제 네놈의 도발에 안 넘어간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물어보지. 솔직히 이해가 안 돼서 말이야. 왜 배신한 겁니까?”
“뭐?”
소설의 문장에서는 배신했다고만 적었지만, 아직 배신의 이유는 쓰지 않았다.
생각해 둔 배신의 이유 3가지.
아직 쓰지 않은 이 공백이 뭐로 채워졌을지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3가지의 설정 중 하나는 이 세계관에서 대형 사건을 터트릴 만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으니 제발 그 설정만은 아니기를 빌었다.
“네가 그걸 왜 궁금해하지.”
“싸워 보니 알 것 같아서, 당신 같이 정직하고 순수한 검술을 쓰는 인간이 이유 없이 배신할 거라곤 상상이 안 되네.”
“…….”
적지 않은 당혹감.
물론 그가 정직한 검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작중에 그녀의 기억 중 윤현과의 기억을 쓸 때는 정직하며 불의를 참을 수 없다고 표현했으니. 그러니 더더욱 그가 한설아를 죽이려 한 이유를 쓰기가 힘들었다. 이런 선한 사람이 배신할 이유는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고민됐다.
“뭐더라? 그 희생? 협박, 그것도 아니면 가족인가?”
3가지의 설정 중 혹시 몰라 하나씩 읊어 보며 말해 보았다.
그 순간 똑똑히 보았다. 마지막 가족이라고 말한 순간 그의 눈이 움찔거리는 것을.
‘아니길 바랐는데…….’
생각하기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 당첨이다.
* * *
그사이 한설아는 쇼핑물의 긴급 대피소로 와 있었다. 현장에 출동한 아베타들은 주위에 마수들을 쓰러트리고 있었으며 대피소로 피난한 사람들을 지키며 구조에 나서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황갈색의 반곱슬을 한 사내는 보이지 않았다.
“저기요!!”
“네? 무슨 일입니까?”
그녀는 사람들을 통제하며 마물로부터 입구를 지키던 한 아베타에게 천운의 생김새를 말하며 사람을 찾아 달라 부탁했다. 지금 이 테러를 습격한 주모자가 아직 이 안에 있다는 것 또한 포함해서 말했다.
“이런! 그게 정말 사실입니까?”
“네. 제발 도와주세요. 제 친구가 아직 안 왔어요.”
일순간 느껴지는 불안감.
윤현의 속도라면 그 안개가 사라진 후 곧바로 뒤쫓는 게 가능할 터.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 거처럼.
한설아는 천운과 마지막으로 헤어진 장소를 말하며 그를 구해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 또한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본부에 지원 요청을 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참혹했다.
“예? 지원 병력이 부족하다고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여기 주모자가 있다고요!!”
지금 현재 쇼핑몰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마물들은 어느 정도 오랜 경력을 가진 C급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거라고 길드와 협회는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는 물량의 마수들 쇼핑몰을 탈출한 마물들까지 있어서 사태는 더욱 심각해지고 탈출한 마물을 대응하느라 현재 지원이 늦춰지고 있다.
‘이런 젠장! C급이 해결할 정도의 재난이 아니잖아!!’
뒤늦게 사건의 심각성을 알고 협회와 길드에서는 A급 아베타 출동 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사건은 일어나고 늦은 것은 매한가지다.
아직 존재를 비밀로 하던 언더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 작정하고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방금 A급…… 어? 어디 갔지?”
그가 고개를 돌린 순간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