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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 속 운만렙 캐릭터가 되었다-13화 (13/176)

제13화

#12

거리가 한눈에 보이는 어느 빌딩의 옥상에서 백발에 검은 정장의 사내. 윤현은 아래를 내다보며 누군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위치는?

무전기에서 들리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그는 사색에 잠긴 채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대답을 망설이지 마라. 후회하기 싫으면.

이윽고 들리는 그의 말이 자신의 심장을 조이고 있었다. 그는 마지못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베르다 쇼핑몰에 들어갔습니다.”

* * *

“여기는 또 어디야?”

“배달만 해서 몰랐죠? 여기예요. 좋아하시는 초콜릿 파는 가게가.”

맨날 내 지갑의 일부를 뜯어가는 고급 초콜릿 브랜드 ‘로비르(Rober)’. 밀리 로비르라는 파티시에가 자신의 연구를 거듭해 만든 초콜릿을 사용한 여러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디저트 가게이다.

근처를 조사해 보니 현제 최다 점포수를 자랑하는 쇼핑몰인 ‘베르다 쇼핑몰’ 안에 가맹점이 생긴 걸 보고 이번 기회에 그녀와 함께 가 보기로 했다.

“맨날 수련만 하면 스트레스 쌓이잖아요. 초콜릿 좋아하시죠?”

“응? 별로. 그렇게 많이는 안 먹어.”

“……돌아갈까요?”

“가끔 쉬는 것도 괜찮네.”

한설아가 싱글벙글한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초콜릿을 보면 사족을 못 쓰는 그녀다.

그녀의 초콜릿 사랑이 자존심을 앞서가는 귀한 장면이었다.

“와!”

매장에 들어서니 온갖 초콜릿으로 된 디저트들이 테이블 위에 늘어서 있었다.

쇼콜라 케이크. 초코 도넛, 쿠키, 롤케이크. 그녀가 매장 안에 들어서고 먼저 한 행동은 옆에 쌓여 있는 나무로 된 쟁반을 들고 매장 안을 한 바퀴 돌며 디저트를 구경하는 거였다.

“음…….”

그녀는 또다시 일생일대의 심각한 고민을 한다는 듯이 미간을 좁히고 테이블에 정갈하게 정돈된 디저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서 깨달은 듯 떠올린 하나의 기억.

(김천운: 둘 다 시켜요.)

그렇다. 뭘 또 이렇게 고민한단 말인가. 그냥 먹고 싶은 걸 전부 사면 될 것을.

고민 끝의 행동은 빨랐다. 그녀는 매장의 한 바퀴 더 돌며 지금까지 눈만 찍어 놓은 디저트들을 속속히 쟁반으로 옮겼다.

그 와중에 그런 그녀를 계속 지켜보는 김천운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설아를 주시했다.

‘당뇨병 걸릴 거 같은데…….’

그녀의 초코사랑은 이 세계 중에서 나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러니 갑자기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한설아는 당뇨병에 걸리고 말았다.’ 라는 문장은 쓴 적 없지만, 한설아의 언니인 한민아가 금지시킬 정도의 초콜릿 사랑이다. 그 금지한 초콜릿을 내가 몰래 섭취시키고 있으니, 그녀의 건강이 조금 우려된다.

그런 걱정되는 우려와 다르게 그녀는 여기가 더욱 ‘헤븐티 헤븐’에 가깝다고 생각하며 디저트를 고르고 있었다.

* * *

“즐거우셨어요?”

“응.”

지금 내 손에는 그녀가 쇼핑한 짐들이 가득 들려 사용할 수 있는 손이 없었다. 물론 이 짐들은 쇼핑물에서 산 그녀의 옷들이나 명품들이 아닌 그녀가 좋아하는 달콤한 디저트투성이었다. 다행히 그 자리에서 전부 다 먹을 게 아닌, 몇 개는 집으로 들고 가려고 포장할 생각이었는 듯하다.

“천운.”

“네?”

“고마워.”

“뭘요. 저야 고맙죠.”

그녀가 쇼핑을 좋아하는 거 같지도 않고, 오늘은 그녀도 만족한 거 같으니 이만 돌아가기로 했다. 그녀도 오늘은 만족했다는 듯이 출구를 향해 몸을 돌린 순간.

콰콰쾅!!!

하지만 돌아가려는 것도 잠시 이 훈훈한 분위기를 깨고 이변이 일어났다.

“뭐, 뭐야?”

“꺄아아아악!!!”

사람들의 비명과 부서진 건물 잔해들, 그 활기찬 거리는 온데간데없고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한순간 일어난 일. 멍하게 있던 정신을 바로 잡고 나와 한설아는 폭발이 일어난 매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부서진 건물의 잔해에 휩쓸린 사람들을 향해 그녀가 달리자 뒤늦게 들리는 경고음이 사방에 울렸다.

위이이이잉!!

[현 매장에 마수들의 습격이 있으니 신속히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립니다. 현 매장에 마수들의 습격이 있으니 신속히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뭐, 뭐!”

“천운!! 도와줘!!”

그녀는 내가 생각하기도 전에 앞서 건물의 잔해를 치우고 있었다.

나 또한 잠시 생각을 접고 그녀의 행동을 돕기로 했다.

그녀가 족족히 거대한 건물의 잔해들을 들어 올리면 난 샌디를 이용해 사람들을 구출해 나갔다.

“이게 대체…….”

사람들을 구조해 나가면서도 내 정신은 멍하여 사태 파악이 되지 않았다.

소설의 설정에서 내가 과거에 이런 큰 사건을 적었다고? 아니다. 그런 기억은 없다. 대형 쇼핑몰의 마물 출현? 내 소설의 개연성은 어따 팔아먹었단 말인가.

이런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서도 난 묵묵히 사람들을 구조해 나갔다.

“설마.”

순간 그녀는 무언가를 본 후 미간을 찌푸리며 하던 행동을 멈췄다.

그녀는 저 멀리 보이는 다수의 후드를 쓴 사내들을 향해 이를 으득 갈며 분노를 표출했다.

“또 너희들이야!!”

그녀가 그렇게 소리친 후, 멀리서 보이던 후드로 인해 얼굴이 가려진 그들은 어느새 나와 한설아의 주위를 둘러싼 후 손에서 여러 쐐기들을 꺼내고 있었다.

“제발 조용히좀 살자.”

그녀가 익숙한 듯 허공에서 오래전에 얻은 하르바의 이빨을 꺼내 들었다. 순식간에 임전 태세에 들어간 그녀. 나를 힐끗 보며 그들 몰래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틈을 만들게. 그사이에 넌 이 사람들을 데리고 도망쳐. 너라면 할 수 있지?”

“하지만.”

“난 괜찮아. 익숙한 상황이거든”

상황이 나쁘다. 현재로서는 그녀를 지원하고 싶지만, 테러로 인해 주위에 기절한 사람들은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한가지.

그들을 신속하게 안전한 장소로 데려간 후. 빠르게 그녀를 지원한다.

생각을 끝마친 뒤, 내가 준비됐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제스처를 보냈다.

“알겠어. 뛰어!!”

그녀가 크게 횡으로 검을 휘두르자. 주위의 진공상태였던 바람이 터지듯 작은 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난 그 순간 당황한 그들 사이로 기절한 사람들을 샌디로 들쳐메고 달리기 시작했다.

“쫓을까요?”

“버려. 목표가 눈앞에 있다. 우선순위는 그녀다.”

그들 사이에서 대장으로 보이는 자주색 후드를 쓴 사내는 그녀를 노려보며 자신 또한 손에서 보랏빛을 띄는 검을 소환했다.

“생각보다 강하군. 적안 가문의 폐기물이라 들었는데.”

그의 나지막한 한마디가 주위의 공기를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 식은땀을 흐르게 만드는 긴장감, 한설아는 저자가 이때까지 습격한 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뭐하나? 덤비지 않고.”

그가 검을 지켜 들자 검 주위에서는 보랏빛의 마력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 *

‘어떻게 된거지? 상황은? 목표는 그녀인가?’

천운은 지금 정리가 안 되는 머리를 쥐어짜며 생각하고 있었다.

과연 이 앞뒤가 말도 안 되는 터져 버린 개연성의 원인은 무엇인가?

또한 한설아의 태도를 보아 저자들은 한두 번 습격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그리고 나 또한 저자들이 누군지를 알고 있다.

윤현과 함께 한설아를 납치한 자들.

이 세계관의 빌런 중 하나인 거대 조직 ‘언더’.

납치의 이유는 적안 가문의 문제아라고는 하나 제일 약한 그녀를 먼저 없앰으로써 가문의 전력 중 하나를 줄이기 위해.

다시 말해 그녀를 납치해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조용히 죽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테러 사건을 터트리면서까지 그녀를 납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용히 수련을 마친 그녀의 뒤를 밟아 돌아가는 그녀를 습격하는 것이 본래 스토리일 터. 그렇다면 어느 순간 또 스토리가 바뀌어 버렸다.

“설마!”

습격자들이 구면이라는 듯한 그녀의 행동. 본래 여기에 올 필요까지 없다고 생각하는 과잉전력인 언더들의 간부 중 하나 자주색 후드.

내 생각이 맞다면 예상했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꼬일 줄은 몰랐다.

“하…… 젠장.”

그녀를 본래 원작보다 너무 일찍 강하게 만든 탓에 그녀의 납치사건이 빈번히 실패한 것이다. 그녀의 생각 외의 강함에 개연성을 맞추려고 일어난 게 바로 이 사건.

그렇다면 앞뒤가 맞아떨어진다. 몇 번의 실패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한 그들은 커다란 계획을 준비했다. 건물 테러를 비롯해 그녀를 죽이는 것.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다.

‘어째서 테러까지 동행하지?’

그들이 원하는 게 한설아의 죽음이라면 분명 소란 없이 조용한 게 좋을터. 무슨 연유로 테러까지 일으킨단 말인가?

하지만 그 생각이 그치기 전에 당연하다는 듯 그만둬 버렸다.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마물출현……. 이곳에서 죽이려고?’

인위적인 마물들을 불러들일 수 있는 자들은 이 세계 언더들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힘을 이용해 한설아가 마물의 습격으로 죽은 것으로 보이게 하여 자신들의 존재를 감춘다.

그렇다면 한설아가 위험하다.

본래 납치를 예정하고 그녀의 몸에 샌디를 붙여놨지만 그녀는 이 자리에서 목숨의 위협을 받고 있다.

난 당장 안전한 장소에 쓰러진 사람들은 두고 황급히 몸을 돌렸다.

‘제발…….’

불안하게 떨리는 표정을 머금고 난 그녀를 향해 달렸다.

* * *

“윽! 하아…… 하아…….”

“크큭……. 대단하군. 폐기물이라도 일단 가문에 피를 이었다는 건가?”

“헛소리 말고 덤벼!! 쿨럭!!”

그녀는 입 안에 고인 피를 내뱉고 다시 한번 보라색 후드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바람의 영향을 받은 제 빠른 참격. 하지만 빠르다고 자신 할 수 있던 참격은 허무하게 그의 한 손에 막히고 말았다.

“주위를 둘러봐라. 예의를 표하지.”

피를 흘리며 널브러진 후드를 쓴 괴인들. 그와의 격전 전 그녀가 쓰러트린 언더들이었다.

“이 모든 게 네 작품이다. 넌 충분히 강하다.”

“닥쳐!!”

그녀가 이를 으득 갈며 검격에 더욱 힘을 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분노와는 다르게 아랑곳하지 않고 미동조차 안 하는 한설아의 검. 그가 자신을 향한 검날에 힘을 쥔 채 혀를 차며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보라색 검을 집어넣었다.

“쳇, 죽일 때는 검을 쓰지 말라 했으니. 어쩔 수 없군.”

그녀를 향해 거침없이 주먹을 휘둘렀다.

“큭!!”

적당하고 가볍게 내지른 주먹은 그 속도와는 상반되는 듯 무겁게 그녀의 배를 강타했다.

한설아는 결국 검을 쥔 손에 힘이 풀리며 정권의 반동으로 멀리 튕겨 나가며 땅을 굴렀다.

압도적인 전력 차.

그녀는 숨을 몰아쉬는 거 밖에 할 수가 없었다.

“하아…… 하아…….”

“이제 끝이군.”

“죽여 봐! 어디 한번!!”

“오기 부리지 말고 기다려라. 난 시끄러운 여자는 질색이다.”

그가 천천히 바닥에 손을 짚자.

주위에서 들리는 마수들의 울음소리.

그는 이곳으로 마수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이 귀찮은 일을 왜 나한테 시킨 건지 몰랐지만. 나름 흥미로웠다.”

“뭐?”

“가문의 쓰레기라기에 별 기대 안 했는데 즐거운 시간을 보냈군. 하지만 미안하구나. 보답을 못 해 줘서.”

그의 부름에 몰려온 마수들이 그녀의 주위를 에워싸며 사납게 울음을 토하고 있었다.

“흠…… 생각해 보니 답례라곤 뭐하지만 하나 알려 주지.”

한설아는 그의 말에 대답 하지 않고 오로지 그를 노려봤다. 그녀의 동공에 물기가 가득한 표정에서는 분노와 자신에 대한 나약함이 뒤범벅되어 참을 수 없는 울화가 터지고 있었다.

“궁금하지 않았나? 어떻게 습격 때마다 너의 위치를 정확히 알았는지.”

“뭐?”

“그렇게 멍청해 보이지는 않는데. 아직도 모르겠나?”

알고 있다.

빈번하게 일어나는 습격.

하지만 장소를 알고 있는 건 나와 그뿐이었다.

예상하기 싫은 공포가 한설아의 몸에 읊조린다.

한 발짝 다가가며 그 현실을 알게 되면, 난 영원히 후회할 것이라고.

혹시 모를 위협을 걱정하고자 항상 나에게 위치를 물어본 한 사람.

“어이. 보고 있나? 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뭐!”

순간 천장에서 검은 모래들이 빠른 속도로 한설아의 몸을 감쌌다.

그녀를 감싼 모래들은 빠른 속도로 주위에 퍼지며 그의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그도 적지 않아 당황하며 다시 한번 검을 현현했다.

“어디냐!!”

그가 마기와 마력이 섞인 고함을 터트리며 검을 휘둘렀지만.

“이런!!”

그의 검에서 폭발하듯 터진 마력들이 주위의 모래들을 휩쓸었지만,

한설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별안간 무전기를 하나 꺼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표적을 놓쳤다. 이제 네 차례다. 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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