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10
꿈을 꾸고 있었다.
“커헉! 컥!”
꿈에서 눈을 떴을 때 하늘은 핏빛처럼 붉은 노을을 보였으며 지축을 흔드는 거대한 지진과 마수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또한 강한 통증과 함께 말이다.
난 배에서 느껴지는 심한 통증과 함께 입에서는 붉은 선혈이 내뱉고 있었다.
내 시선은 통증이 느껴지는 아래로 향했다.
“하…….”
강한 통증이 느껴지는 배에서부터 점점 붉은 선혈이 옷에서 번지고 있었다.
이내 선혈은 천천이 흘러 천운이 누워 있는 지면을 가득매우고 있었다.
“천운아!!”
천운을 다급하게 부르는 목소리.
천운의 시선은 자신에게 달려오는 그에게 향했다.
“천운아!!”
익숙한 얼굴 남자.
그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김의철.
이 소설의 주인공.
김의철의 상태를 보아하니 그의 몸 또한 성치 않은 모습이었다.
내게 힘겹게 달려오는 의철은 하염없이 소리치고 있었다.
그러나 의철과 나 사이를 막는 거대한 크레바스가 생기며 의철은 결국 자리에 주저앉고 하염없이 욕을 뱉으며 울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런 거야!!”
천운은 멍한 눈으로 의철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몸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힘없는 손은 힘겹게 들어 중지를 내세우고 천운은 하염없이 울컥 피를 토하며 입을 열었다.
“쿨럭- 하…… 나 안 죽어…… 나 알지? 운 좋은 거?”
천운은 힘겹게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그러니까 꺼져. 이 새끼야…….”
그말이 마지막이라는 듯 내 시야는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시야.
그곳에서는 의철 말고도 또 하나의 사내가 내 코앞까지 다가와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내 정신과 기억은 거기서 끊기듯 끝났다.
* * *
“커헉…… , 하……. 역시 S급은 대단하네.”
언제동안 기절한 거지? 눈을 뜨니 아직 어두운 밤하늘이 보인다. 몇 초도 안 되는 아주 짧은 사이의 기절. 정신이 멍멍하며 꿈속에서 본 무언가의 장면이 없어진 필름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보다 역시 진심을 다한 적안 가문의 민아 누나는 지금 상태로는 이길 수 있을 거 같지 않다.
‘누나는?’
누나가 실성하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들으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녀를 절대 미워할 수 없을 거 같다.
‘어디 보자. 몸은…… 오른쪽이 부러졌네. 아…… , 아파 죽겠네.’
다시 한번 몸 상태를 확인했다. 불굴의 산삼의 효능인지 부러진 팔이지만 감각적으로나마 충격을 완화해 준 모양이다.
한순간 샌디가 내 몸을 지키듯이 몸을 감싸서 열기를 막아 준 모양이다.
‘후……. 학교 한번 다니기 힘드네.’
어릴 적 그렇게 가기 귀찮았던 학교의 소중함을 지금에서야 깨닫다니 또 막연하게 후회가 몰려왔다.
‘한심하네. 나.’
지금은 팔이 부러질 정도로 노력을 하며 다니려고 애쓰고 있다.
뭔가 내 모습을 보니 우스울 따름이다.
본래에 나라면 이쯤에서 포기했을 것인데, 아무래도 이 일이 목숨하고 직결되다 보니, 가만히 누워 있을 심산도 안 될 모양이다.
난 어디 소년 만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녀가 진심을 보였으니, 나도 그에 대한 보답을 해야겠다.
“읏차.”
난 금방 쓰러질 것만 같은 무거운 몸을 일으킨 뒤, 다시 한번 누나의 앞에 섰다.
누나 눈에서는 볼을 타고 따뜻한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은 내 모습을 보니 참지 못한 감정이 북받쳐 오르며 아랫입술을 깨물며 나를 향해 소리쳤다.
“왜,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니?”
“꿈이에요. 전 꼭 학교를 가야겠어요.”
“다른 위험하지 않은 일을 하면 안 되니?”
“죄송해요.”
“죽을 수도 있단다.”
“절대 안 죽을 거예요.”
난 살기 위해 학교를 가는 거니까.
그저 난 올곧게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해도 내 목표는 변함없다는 듯이 오로지 그녀를 계속 바라봤다. 하지만 누나의 촉촉해진 눈가를 보니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저려왔다.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게 속상할 따름이다.
난 살려고 길영트에 들어가는 것이다.
김천운은 강해져야 한다.
이 세상은 운 스탯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재해와 고난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재앙의 세계다. 모든 소설, 만화, 게임이 그랬듯이.
그러기 위해서는 아카데미를 꼭 가야 한다.
소설은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니 그곳에는 자신에게 원한 기연이 모여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누나가 그것을 어찌 알겠는가.
난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도전할 자세를 잡았다.
내 확고한 의지를 알아차린 듯, 더 이상 설득은 포기하고 그녀의 손에 검은 열기를 내뿜는 흑염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힘을 써서 포기하게 만들 셈이다.
‘샌디. 마지막이야.’
손목에 있던 샌디가 부르르 떨더니, 내 몸을 감싸듯 자신의 모래를 내 몸에 퍼트렸다. 내 몸에서 퍼진 모래는 온 몸을 감싸고 이내 갑옷같은 형태를 만들어 내 몸을 보호했다. 그 엄청난 고온을 견딘 모래다. 아마 어느 정도 버틸 수는 있을 거다.
온 몸이 샌디의 모래로 전부 감싸진 순간 -
탁-
난 다시 한번 그녀를 향해 땅을 박찼다.
화르륵-
누나의 손에서 피어오른 듯 활활 타오르는 흑염이 손에서 작게 압축되어 둥그런 구의 형태를 만들었다. 그 흑염의 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내게로 향했다. 그녀는 나를 이 이상 도전하지 못하게 압도적인 힘으로 의지를 꺾고 기절시킬 생각이다.
파아악!!
이번에는 피할 생각은 없다. 저것은 어떻게 보면 증명할 기회다.
난 샌디가 복사한 내 유일한 무기 ‘크리티컬 단검’을 손에 쥐고 그대로 흑염을 향해 내달렸다. 화염이 빠른 속도로 엄청난 열기를 뿜어내며 나를 향해 발하고 있었다.
‘아직 아니야.’
줄을 연결한 원격 단검으로는 파워가 약해 안 된다. 오직 지금까지 훈련하여 기른 내 힘을 믿기로 했다. 기회를 노려야 된다. 난 지금까지 모은 마력을 전부 단검에 담았다. 단검은 요란하게 웅웅 울며 검 주위에 마력이 씌어졌다. 마력 결핍으로 기절하기 전까지 악으로 버텨야 된다. 다행히 불굴의 산삼이 도와줄 것이다.
화르륵!!
오직 날아오는 흑염구에만 집중했다. 일렁이는 검은 태양을 묘사한 것 같은 형태.
피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그녀가 인정해 주지 않을 것이다.
난 한층 더 의지를 다지고 검은 구만을 집중해서 노려봤다.
그래서일까?
“뭐?”
누나가 무언가를 보고 놀라는 소리와 함께.
‘뭐지?’
온 세상이 느려졌다.
구는 천천히 나와 더욱 가까워질수록 아주 천천히 점점 느려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스킬 ‘의안(寲眼)’이 활성화됩니다.]
‘아…… 이거구나.’
자신의 고유 스킬.
4대 가문 중 하나인 암(暗) 가문.
의식을 가속화시켜 모든 것이 느리게 보이는 암 가문만의 고유 스킬이다.
그러니 충분히 가능하다.
느리게 다가오는 구를 베는 것은!
스걱-
천운이 휘두른 검은 결국에는 흑염구를 베어 냈다.
크리티컬의 단검이다. 내 행운과 함께 그 효과는 더욱 극대화됐을 것이다.
난 손에 쥔 단검을 있는 힘껏 위를 향해 던졌다.
슈우욱-
위로 올라 회전하는 단검은, 천천히 곡선을 그리더니 행운으로 인해 그녀에게 낙하할 것이다.
난 그것을 예상하고 그녀를 향해 달렸다.
“제발!!”
먼저 올라간 왼쪽 손은 그녀를 향했지만.
“윽!”
군더더기 없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내 손을 피해 냈다. 아쉽게도 그녀 반사 신경은 나의 의식안을 뛰어넘는다. 그것도 나보다 더욱 아득한 경지로, 하지만 다음 수를 위한 단검이다.
내 손을 피한 누나의 위에서는 단검이 떨어지고 있었다.
휘리릭!
회전하며 위로 날아가던 단검은 그녀를 향해 떨어졌다. 하지만 이것 또한 그녀는 살짝 몸을 틀어 피해 냈다.
그 순간을 노렸다!
“뭐?!”
그녀가 단검을 피하려 몸을 돌린 방향으로 이미 손을 올리고 있었다. 이것이 그녀의 방심에 의한 기회라고 생각하며 난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닿아라! 제발!’
손이 그녀의 몸으로 향하는 순간.
“큭!”
그녀는 다시 한번 유연한 몸으로 내 손을 피해 냈다.
‘아……. 역시 누나는 대단하네.’
난 그녀를 향해 몸이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미 몸은 한계를 달해 더 이상 움직일 거 같지 않았다. 하지만 기분이 그리 싫지는 않다.
누나가 내 표정을 보는 순간 경악하는 표정은 역시…… 마지막에 마지막은 모르는 것 같다.
난 그녀를 향해 싱긋 웃으며 그대로 털썩 몸에 힘을 풀며 기절했다.
“세상에.”
부러져서 움직이지 못할 거라 생각한 손은 기절하기 직전 그녀의 몸에 닿고 있었다.
갑옷처럼 만든 샌디의 모래를 이용해 부서진 팔을 억지로 움직여 그녀의 손목을 잡은 것이다. 부서진 팔을 움직여 죽을 만큼 아프지만, 어차피 움직인 후 곧바로 의식이 끊겨 아픔 또한 이어지 않았다.
“…….”
쓰러진 천운 앞에서 그녀는 한동안 천운을 바라볼 뿐이었다.
왜 이렇게까지 학교를 가려고 하는 거지?
아니, 모르는 척했지만 알 수 있었다.
천운을 현재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복수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하지만 누구를 향한 복수인가?
그 사건은 일종의 재난이었다.
복수 할 상대라고 하면 오직 그 사태를 만든 마물들만이 천운의 복수가 향할 상대일 터.
그것 때문인지 더욱 그녀는 천운을 아베타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 언니. 어떻게 해야…….”
오늘따라 언니가 그리운 그녀였다.
* * *
“어디서 본 장면 같네.”
일어나니 낯설지 않은 천장이 나를 반기며 데자뷔를 느끼게 했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예전에 한번 본 한의사님과 누나가 나란히 앉아서 나를 바라봤다.
누나가 일어난 나를 보고 무어라 말을 하려 했으나 죄책감 때문인지 차마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 듯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게 고민하니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역시 누나는 대단하시네요.”
일어나자마자 하는 첫마디가 이거라서 누나도 당황한 모양이다. 내가 웃으며 말하니 더더욱.
“내가 밉지는 않니?”
“왜요?”
“내 앞 길을 방해하려 했어. 가족도 아닌데…….”
그녀가 더욱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천운이 아카데미에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것 또한 천운 자신도 잘 알 수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오만 걱정과 근심이 가득 메워진 듯 보였다.
“저를 위해서잖아요.”
“천운아…….”
“싫어질 리가 없잖아요.”
그녀는 나를 보더니 왈카닥 눈물을 쏟으며 나를 힘껏 안았다.
그녀의 감정이 참을 대로 참은 뒤 내 말에 한꺼번에 밀려 터진 것이다.
천운의 어머니가 혼수상태가 되어 걱정이 쌓였지만 그것을 참고 나에게 상냥하게 대해 준 그녀다. 내가 아베타가 된다는 말이 그녀의 감정을 극한까지 몰아넣었다.
“저기…… 윽!”
“내가, 내가 너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는 줄 알았어. 흐아앙!”
“저도 잘 알아요. 크윽!”
마력을 다 쓰고 한계까지 몸을 움직이니 온몸이 삐걱거리듯이 아팠다. 설상가상으로 온몸에 근육통 때문인지 점점 힘을 주며 안아 오는 누나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아니, 일어나자마자 또다시 정신을 잃을 거 같은데? 괜히 S급이 아닌 누나인데 이러면…….
난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한의사한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한의사님!’
“이런 제가 방해를 한 모양이군요.”
한의사 내 간절한 눈빛에 대답 없이 방문을 열고 조심스레 나갔다.
‘세상에 눈치가 저렇게 없어서야…….’
“흐아앙!!”
“누나. 다시는 걱정 안 끼쳐 드릴게요.”
그니까 조금 힘 좀 빼 주세요. 울기는 내가 울어야 할 처지인데…….
하지만 기분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나를 이렇게 걱정해 주는 것은 현재로서는 누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냥 누나의 마음에 스크래치를 낸 죄라고 생각하자.
‘어우…… 근데 장난 아니네 이거.’
난 누나가 진정될 때까지 가만히 이를 으득 물며 참았다. 산삼을 찾길 정말 잘한 거 같다. 이 상태에서 또다시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 이번에는 그녀가 충격으로 쓰러질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흐아앙!!”
내가 진정하라며 누나를 안고 있던 팔을 천천히 몸에서 떼어 내려 했으나. 내 말에 더욱 감동했는지 있는 힘껏 꽉 조여진 누나의 팔을 떼어 낼 수는 없었다. 난 그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운명을 받아들였다.
* * *
싸늘하다고 느낄 정도의 어느 폐건물의 안.
그곳에서 시멘트 바닥을 걷는 왼쪽 눈에 사선의 흉터가 있는 백발의 사내가 있었다.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이 어두운 건물 안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왔나?”
오싹한 목소리와 이 어두운 건물의 끝에서 어두운 실루엣이 보이더니 누군가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늦었군.”
나타난 사내는 머리에 쓴 후드가 드리운 그림자로 인해 얼굴이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낮게 깔린 목소리는 바닥에서 기어와 사내의 발목에서부터 등까지 천천히 기어오르는 뱀 같은 느낌이였다. 이 남자한테서는 섣불리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 말이 사실입니까?”
“사실이다.”
백발의 사내는 눈을 한번 감고 깊은 생각에 잠긴 뒤 얼마 안지나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원하시는 게 뭡니까?”
“이야기가 빠르군, 내 정체가 궁금하지는 않나?”
“그걸 얻을 수 있다면 정체 따윈 궁금하지 않습니다.”
처음 목소리를 듣고서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의 정체를 알려 한다면 난 후회할 것이라고,
사내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검은 후드를 쓴 그는 비릿하게 웃으며 마음에 든다는 듯이 조건을 말했다.
“네 주인을 물어라.”
“뭐, 뭐?!”
그가 말한 충격적인 말에 한설아의 심복인 ‘윤현’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미간을 좁히며 그를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