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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 속 운만렙 캐릭터가 되었다-10화 (10/176)

제10화

#9

창문 사이로 신선한 바람이 불며 아침을 맞이했다. 이미 일어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좀처럼 침대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계속 우울한 감정이 내 마음을 좀먹는 느낌이었다.

“하…… 산에 올라가 봐야겠네.”

이럴 때야말로 몸을 움직이라는 말이 있다. 죽을 정도로 힘들게 운동하면 우울한 감정을 잠시 잊을 수도 있을 거다. 그리고 오늘은 꼭 그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날이다.

빠르게 일어나 산삼차와 초콜릿만 챙기고 난 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여전히 잘 있네.’

오늘은 조금 늦게 산을 올라 그녀를 만났다. 여전히 이 산을 존중하듯 바위 위에 올라가 가부좌를 틀고 명상하고 있었다. 난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어제는 왜 안 왔어?”

그녀가 뾰로통하게 섭섭한 듯 입을 열었다. 분명 어제 초콜릿 병에 포스트잇을 붙여 놨는데, 바람에 날아간 건지 그녀는 모르는 듯한 눈치였다.

“사정이 있어서요.”

“흠…… 그래?”

힘없이 뱉은 말투에 그녀가 예상한 건지 더 물어보지는 않았다. 물어봐 주지 않아서 감사할 따름이다. 오늘은 별로 그렇게 얘기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다. 난 가방 안에 초콜릿을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부탁할 게 있어요.”

“응? 뭔데?”

“저랑 대련해 주세요.”

“대련이라…… 어떻게 해 줄까?”

“진심으로 상대해 주세요. 제 손이 한설아 씨 몸에 닿으면 제가 이기는 걸로요.”

“알겠어. 그럼 바로 시작하자.”

난 한설아보다 더욱 격이 높은, 100의 영역에 들어선 초인인 그녀의 언니를 상대해야 한다.

S급 아베타 한민아.

불보다 짙은 어둠인 흑염의 소유자다. 아마 내 상대로 그렇게까지 진심을 보이지 않겠지만, 진심이 아닌 그녀라도 내가 손도 못 써 보고 당할 확률이 크다. 정면으로 맞붙으면 결과는 볼 보듯 뻔하니, 미리 작전을 생각해서 상대해야 한다.

“준비됐으면 시작해.”

“준비됐어요.”

내 손목에 붙어 있는 샌디에게 신호를 줬다. 일단 내가 설정하고 쓴 상대다. 어느 정도 약점을 알고 있다. 일단 첫 번째.

“진심이라고 했으니까. 처음부터 강하게 간다.”

그녀의 루비처럼 반짝이던 눈이 나를 압박하듯 시선을 보냈다. 그녀는 시작부터 적안 스킬을 사용한 모양이다. 그 스킬을 먼저 써 줘서 고맙다. 아마 누나 또한 먼저 사용할 스킬은 하나뿐, 아마 제일 먼저 나에게 적안 스킬을 썼을 것이다. 파훼법은 단 하나.

“샌디!!”

내 손목에 샌디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그녀의 코 눈앞에서 시야를 가렸다.

적안 스킬의 파훼법은 그녀의 시야를 가리거나, 내가 그녀의 눈을 보지 않는 것.

난 샌디가 한설아의 시야를 가릴 동안 빠르게 옆으로 돌아 샌디가 만든 크리티컬 단검을 강하게 쥐어 투척했다.

휘리릭-

단검이 크게 회전하며 한설아를 향해 날아갔다. 한설아는 날아오는 단검을 손쉽게 잡아채며 보이지도 않은 시선으로 나를 향해 정확히 던졌다.

‘세상에…….’

저게 과연 사람의 운동신경인지 감탄스럽게 보는 순간, 나에게 날아오는 단검은 힘을 잃은 듯, 모래가 되어 샌디에게 흡수됐다.

“그 모래는 분명?”

“네. 전에 던전에서 있던 모래예요.”

“신기한 유물이네.”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한설아가 땅을 박차고 나를 향해 달렸다. 스탯의 수치로는 나의 두 배가량의 파워지만 이 세계에서는 보이는 수치로 힘의 차이를 따질 수가 없다. 숫자로만 두 배지 아마도 스탯은 높을수록 더욱 올리기 힘든 것이 상태창일 터, 1.5하고 3은 두 배가 아닌 비교가 안 되는 힘의 차이가 있었다.

“천운! 잘 막아 봐.”

나에게 돌진하는 그녀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더욱 힘껏 땅을 박찼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그녀가 발로 박차면서 움푹 파인 산 정상의 땅들은 내가 곡괭이로 있는 힘껏 힘을 꽉 줘야지만 파이는 그런 땅이었다. 막 각성한 아베타도 한 손으로 일반인의 머리를 쥐어짜 내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까지 일상이 훈련인 그녀는 오죽할까.

그녀는 던전에서 얻은 ‘하르바의 이빨’에 영향인지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고 더욱 가속된 속도로 나에게 향했다.

그녀의 기세가 심상치가 않다.

이대로라면 진짜로 위험할 거 같다.

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어 샌디로 다중 벽을 만들었다.

팡!

팡!

팡!

무려 세 겹의 벽들이 기세를 막지 못하고 힘없이 뚫리며 속도가 멈출 새 없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녀의 움직임을 멈출 생각은 없었지만, 그녀의 기세도 꺾지 못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아무리 모래로 만든 벽이라지만 강도가 조절이 가능하여 돌 수준의 강도로 만들어 놓은 벽이었다.

“윽!!”

할 수 없이 난 돌진해 오는 그녀를 정면으로 상대했다. 달려오는 그녀의 손목을 일순간 잡으며 있는 힘껏 버텼지만, 내 발이 땅에서 떨어지면서 난 뒤로 성대하게 굴렀다.

“쿠웩!!”

성대하게 구른 후, 정신을 차리니 아주 맑고 푸른 하늘이 보인다. 정말 좋은 경치다.

“그래. 어땠어?”

“뒤질 거 같아요.”

대련이 끝났으니 피드백 시간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크게 뭐 피드백할 것도 없이 내가 너무 약하다. 그녀의 기세도 막지 못하고 반격할 수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마 누나는 한설아처럼 돌진은 안 할 것이다.

“이번에는 한 가지 스킬만 사용해 주세요.”

“그래 알겠어.”

무슨 스킬인지 말은 안 했지만 그녀는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준비를 마친 그녀가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준비됐으면 시작하라고 말했다.

“갈게요.”

“응.”

이번에는 샌디의 몸을 3개로 분할해 공격해 보기로 했다. 일단 1번 샌디는 패기 스킬을 사용하기 전에 그녀의 시야를 막을 때 사용할 것이며, 다른 2번 샌디는 예전에 만든 필살 일격인 원격 조정 단검을 만들어 힘차게 그녀를 향해 쇄도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조심스레 그녀의 뒤를 잡으라고 명령해 두었다.

“이번에는 괜찮은데?”

날카롭게 다져진 단검이 그녀에게 쇄도한다. 내 운 스탯과 합쳐진 크리티컬 단검이다. 한 번만 맞으면 그녀에게 조금은 치명상을 입힐 필살이지만, 내가 예상한 듯 그녀는 여유롭게 단검을 피하거나 마지막은 끝내 단검을 잡아챘다. 괴물 같은 반사 신경이다.

“와, 뭐 이렇게 강해요.”

“네가 약한 거야.”

“정말요? 보통 아베타들은 설아 씨처럼 할 수 있어요?”

“음…… 아니. 나 정도는 아니지”

내가 대화를 유도할 때, 아까 조심스럽게 뒤를 돈 샌디가 드디어 그녀의 뒤를 잡았다. 난 천천히 그녀와 대화하며 샌디에게 기회를 엿보라고 말했다.

순간 한설아가 뒤를 돌더니 적안 스킬을 난발했다. 샌디도 당황했는지 움찔 떨더니 이내 꼼짝도 못 하고 들켜 버렸다.

“신기하네. 유물도 스킬이 통하는구나. 아니, 지성이 있어서 그런가?”

“아시겠어요?”

“저렇게 자유롭게 움직이는 유물은 지성을 가진 유물밖에 없으니까.”

“하…… 그것보다 너무 강하시네요.”

“별로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혹시 무슨 일 있어?”

그녀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누나와 비슷한 그녀의 얼굴을 보니 더욱 상심이 커진다.

“그냥 집안 사정이에요.”

“집안 사정이라…… 너도 여러 가지 사정이 있구나.”

“제가 사정이 있어서 엄마 친구 집에 사는데 엄마 친구가 제 꿈을 반대하네요.”

“그래? 근데 다른 집에 얹혀산다고? 아!”

한설아가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침묵을 유지했다. 아마 대충 그녀가 지레짐작으로 예상한 게 맞을 거다. 던전에서 본 그 끔찍한 지옥도. 그녀는 아직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다.

“오늘 괜찮으시면 하루 종일 어울려 주실래요?”

“그, 그래!! 그래야지 물론 맨날 나도 얻어먹는 게 있는데.”

내 말에 아까의 침묵을 얼버무리듯 급하게 당황하며 대련을 시작했다.

* * *

“하…… 하…… 됐다!”

“너도 독하구나.”

50전 1승 49패. 드디어 그녀를 상대로 1승을 땄다.

힘으로는 안 되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전략을 여러 방향으로 섞어 가며 상대해 봤다. 그렇게 대련한 지 50번. 마지막 50번째의 대련 끝에 그녀의 몸에 손이 닿았다.

“축하해.”

“하……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어요. 저 상대해 주느라.”

“괜찮아, 나도 받기만 해서 무안했는걸.”

어 누구지? 천사인가?

“아! 맞다. 나도 줄 게 있어. 자.”

그녀의 주머니에서 아주 작은 병 하나를 꺼내 나에게 주었다. 자줏빛을 뽐내는 무언가가 들어 있는 병이다. 무언가 맛없어 보이는 병이었다.

“이건 혹시.”

“응. 포션이야. 내가 즐겨 먹는 거. 귀한 거니까 아껴먹어.”

세상에 너무나 착하다. 그녀가 천선 했다. 아니 애초에 나쁜 짓을 저지르지도 않았지만, 내가 너무 오버한 건가? 하지만 초반에 까칠했던 그녀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난 그녀가 건네준 포션을 바로 뚜껑을 열어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어? 어? 야! 아껴먹으라고!!”

“죄송해요. 오늘 대련하면서 녹초가 돼서요. 마지막으로 해야 될 일도 있어요.”

“하…… 도대체 뭘 하려고.”

“엄청 강한 상대와 싸워야 될 거 같아요.”

“뭐? 얼마나.”

“S급 아베타 정도?”

“어? 그거 가능해?”

그녀가 놀라며 당황스러운 말투로 미간을 좁혔다. 당연히 나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길영트 아카데미의 학생도 아닌 그녀에게 49패나 했다. S급인 누나를 상대로 불가능에 가까운 도박이지만, 난 그 도박에 모든 걸 걸어 보기로 했다.

내 행운 스탯은 도박에 강하다.

“감사합니다. 저는 시간이 돼서 내려가 볼게요.”

“너도 이제 슬슬 말 놓지. 내가 더 불편해.”

“노력해 볼게요.”

내가 그녀를 향해 작게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여러 가지 고마운 그녀다. 조만간 밥을 하나 사 주든지 해야겠다. 역시 음식점은 그곳으로 가면 좋을 듯하다.

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산을 내려갔다.

* * *

이미 해는 지고 쌀쌀한 바람이 부는 밤이 되었다. 난 누나와 약속한 대로 이 넓은 집의 정원에 나와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싸늘하다. 누나는 어떻게 해서든 내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모양이다.

“준비는 됐니?”

“네.”

난 누나와 마주 보며 정원에 서 있었다. 시간은 이미 늦은 저녁. 하늘이 어둠으로 가득 메워진 밤이었다. 난 일부러 이 시간대에 누나에게 도전했다.

“시작할게.”

“알겠어요.”

누나의 등 뒤에서 검은색 마력이 흘러나오더니 나와 누나가 서 있는 중심으로 넓은 원형의 마력 돔이 만들어졌다. 오직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력으로 만든 결계다.

이제 그녀의 허락 없이는 난 이 결계에서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시작과 동시에 누나의 붉은 루비색 눈이 피보다 진한 적색으로 물들면서 나를 노려봤다. 보이는 것만으로 움직임을 멈추는 것을 넘어, 내 몸을 짓누르듯 압박까지 더 해지고 있었다. 압박을 가해지는 몸은 두 다리로 서 있기가 버거울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녀가 다짐한 순간 약간 겁만 줄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예상했던 바다.

오늘 하루 만에 여러 가지 패턴을 예상했다. 그리고 역시 가장 먼저 나온 스킬은 적안 스킬일 것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항상 전투가 시작 전 그녀는 이 스킬을 난발했기 때문이다.

“샌디! 시작해!”

[ㅇㅇ.]

푸확!

샌디는 부름에 응답하듯 자신의 몸을 크게 부풀려 넓게 퍼트렸다. 그 미세한 검은 모래들은 주위를 가리듯 퍼져, 누나의 시야를 가렸다.

“윽!!”

주위는 온통 칠흑으로 가려진 어둠, 햇빛이 없어진 밤을 비롯해 더욱 이 조건이 충족되고 말았다. 그녀의 시야를 가리기엔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 벌기일 뿐.

난 누나의 주위를 크게 돌며 기회를 엿봤다.

누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하며 손에는 그녀의 주 스킬인 흑염을 사용해 잠시 눈을 감고 내 움직임을 찾고 있었다.

한순간, 내가 자칫 그녀를 향해 발을 헛디딘 순간, 그녀의 흑염이 나에게 향할 것이다.

기회를 노려야 한다.

‘샌디.’

난 마음속으로 샌디를 부른 후, 땅을 박차며 그녀를 향해 내달렸다.

화르륵 -!!

누나가 번뜩 눈을 뜨더니 빠르게 고개를 돌려 내 방향으로 흑염을 발했다.

파아앙!!!

‘뭐!’

그녀가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며 흩어진 천운의 몸을 바라봤다.

흑색으로 보이던 김천운의 몸이 재가 되어 스르륵 사라지는 모습. 아무리 그녀의 흑염이라 해도 조절을 한 위력이었다. 재가 되어 사라질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예상가는 것은 한가 지, 저것은 더미다.

‘지금이다!’

그녀가 샌디로 만든 더미를 향해 흑염을 발한 순간, 난 기회를 노리고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접근했다.

누나와의 거리는 3센티도 안 되는 짧은 사이, 이 아주 짧은 사이지만 심장이 두근거릴 듯이 뛰며 시간이 느려지는 거 같은 감각까지 느끼게 했다.

그것은 아주 한순간.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아주 짧은 한순간의 방심.

이것이 그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의 방심일 것이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내 손이 누나의 몸에 닿으려는 그 찰나의 순간.

“아…… , 안 돼!!”

파아아악!!!

반응도 못한 채 벌어진 일이었다.

누나는 사색으로 물든 표정으로 주위를 향해 마력을 폭발시키듯 퍼트렸다.

“커헉!!”

그녀의 몸에서 감당할 수 없는 열기가 순식간에 터지며, 주위를 가리던 칠흑의 모래들이 그 압도적인 열기에 재가 되어 사라졌다.

천운 또한 그 힘의 여파를 감당을 못해 저 멀리 결계를 향해 팅겨져 나갔다. .

정말 한순간에 벌어진 일.

천운이 반응할 새도 없었다.

“아…… 아, 안 돼!! 천운아!! 천운아!!”

언어를 상실한 듯 이성을 잃고 계속해서 천운을 불렀다.

이내 천운을 바라보던 싸늘한 표정은 어딘가 사라진 채, 흐르는 눈물이 창백한 볼에 선을 그리고서 낙하하고 있었다. 주체하지 못하는 떨리는 목소리로 천운을 불러 보았지만,

천운은 반응이 없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녀는 이 순간을 가장 후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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