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6
해가 뜨기 이른 시간, 새벽 5시.
필요한 준비가 끝나고 오늘은 조금 이른 시간에 산을 올랐다. 그녀와 만나기 전에 확인해 둘 게 있어서다.
“찾았다.”
별안간 산 주위를 돌며 찾아보니 몇 분도 안 되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어찌 보면 행운 스탯을 믿고 찾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천운이 찾아낸 장소는 입구 높이가 5미터 정도 되는 커다란 동굴이었다.
“여기 있었네. ‘무형의 동굴’.”
동굴에 안에는 마기와 마력이 뒤섞여 뭐라 말할 수 없는 퀴퀴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마기는 어느 날 예고도 없이 하늘에서 내리쬔 찬란한 빛 덩어리 마력과는 다르게 땅 깊은 지하에서 독기를 머금고 올라온 어두운 기운이다. 그런 마기가 흩어지지 못하고 동굴 같은 곳에 막혀 마기가 한데 모여 우연히 생기는 곳이 바로 이곳. 한마디로 던전이다.
또한 개천산이 아베타 훈련생들의 훈련 명소로 꼽힌 이유 중에 이 던전이 한몫을 한 것도 있다.
“올라가 볼까.”
일단 장소는 찾았으니, 그녀가 오기 전까지 명상을 하기로 했다.
원래라면 내가 말해 주지 않아도 그녀가 먼저 이 동굴을 찾아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그녀의 성장을 조금 앞당겨 주기로 했다. 오늘의 목표 중 하나는 그녀의 주요 무기인 유물 하나를 얻게 하는 것이다.
* * *
“뇸뇸뇸.”
‘뭔 소리야?’
기이한 소리에 난 고개를 돌려 한설아를 쳐다봤다.
한설아는 내가 건네준 초콜릿을 입 안에 넣고 소중한 보배라는 듯이 초콜릿을 먹고 있었다. 도토리 크기 정도의 초콜릿을 입 안에 넣고 요리조리 굴리며 맛을 음미하고 정말 세상 행복한 표정이다. 내가 그녀를 힐끔힐끔 쳐다보니 그녀도 눈치챘는지 무안하게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크흠- 근데 정말 여기가 맞아? 여기에 던전이 있다는 게?”
“네. 산에 오르다가 우연히 찾았습니다.”
한설아는 내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편하게 말 놓고 대화했다. 정작 한설아도 말 놓고 말하라 하지만 그녀의 얼굴이 동거 중인 민아 누나를 닮기도 하고 분위기가 뭔 반말하기가 좀 힘들었다.
그녀는 내 말을 의심한다는 듯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흐음……. 정말?”
“네. 보시면 알아요. 초콜릿 하나 더 드실래요?”
“…….”
어차피 설명할 수 없으니, 더 물어보기 전에 초콜릿이나 주자.
한설아는 말없이 초콜릿을 건네받고 다시 입 안에 넣고 이리저리 굴리며 맛을 음미했다. 굳이 설명하자면 히로인이 너무 거만하고 까칠해서도 안 될 거 같아 이런 설정을 썼는데…… 참, 행복하게도 먹는다.
“맛있으세요?”
“음…… 먹을 만하네.”
거짓말하네……. 20만 원짜리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고급 브랜드 초콜릿인데, 하나 먹을 때 마다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새침 떨며 프라이드를 지키려는 것을 보니 아직 16살이 맞는 거 같다.
“도착했어요.”
한설아와 함께 길 아닌 길을 걸은 지 30분.
새벽에 발견한 동굴 앞에 도착했다.
“진짜 있네…….”
마력을 지닌 아베타라면 무조건 느낄 수 있는 것이 마기와의 공명(共鳴)이다.
따라서 말을 안 해도 한설아는 이 동굴이 던전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어디 보자…… 아. 여기 있다.”
난 들고 온 가방에서 보통 크기의 조그마한 단검을 하나 꺼냈다.
“출발하죠.”
한설아는 일단 그가 먼저 자신 있게 앞장서서 별로 의구심이 들지 않았지만, 혹시 몰라 물어보기로 했다.
“혹시 예전에 한번 던전에 들어가 본 적 있어?”
“아니요.”
“어?”
천운이 일절의 고민 없이 내뱉은 말이 심지어 경쾌하게까지 들려 한설아는 당황스러웠다. 너무 황당해서 순간 미친 건가? 라고 생각했지만 일단 진정하고 다시 한번 물어봤다. 아무리 그래도 천운이 생각 없이 행동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기 수치는?”
“여기 오기 전에 한 번 재 봤어요. 낮은 거 보니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더군요.”
“아니…… 그래도,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럼 무슨 던전인지는 알고 들어가는 거야?”
“음, 사실 어제 궁금해서 한번 들어가 봤는데. 별로 그렇게 위험해 보이는 건 없더라고요.”
“뭐?”
도대체 무슨 깡으로 그런 나약한 몸으로 던전을 들어갔단 말인가?
도저히 한설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마기 수치가 낮은 던전이라도 던전에 대한 정보가 없는 미발견 던전이라면,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아베타 3, 4명이 함께 들어가야 공략할 수 있는 곳이 던전이다. 한설아는 김천운에 대한 의구심만이 깊어질 뿐이었다.
“제가 살아왔다는 게 증거잖아요. 그렇게 위험한 던전은 아닐걸요.”
“……그래서 무슨 던전인데?”
“환상 계열 던전 같아요.”
“하아…… 알겠어. 들어가 보자.”
사실 들어가 봤다는 건 거짓말이다. 애초에 들어가서 확인할 필요도 없다. 이 던전은 스토리상 한설아의 각성에 중요하다고 생각해 설정을 심도 있게 짜 놓은 몇 안 되는 던전이다. 하지만 아직 배신을 당하지 않은 한설아라면 어렵지 않게 던전을 공략할 수 있을 것이다.
키에엑!
키륵- 키이익!!
입구에 들어가고 얼마 안 지나 조금 거리를 두고 성인의 세 배가량의 덩치를 지닌 고블린 두 마리가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메가 고블린이네. 역시 돌아가자. 아직은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마물이 아니야.”
“한설아 씨 저 믿으시나요?”
“뭐? 너 뭐 하려고?”
“직접 보여 드릴게요.”
“에? 아니!! 뭐 해, 진짜!!”
난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작정 다리를 박차고 메가 고블린을 향해 돌진했다. 그녀는 기겁하며 얼른 나를 말리려 했지만 이미 난 메가 고블린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스르륵-
“어?”
“말했잖아요. 환상 계열 던전이라고.”
던전의 입구를 지키듯 대기하던 두 마리의 메가 고블린은 천운과 몸이 닿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설마, 여기 있는 몬스터 전부 다?”
“전부는 아닌 거 같아요. 보세요. 저기 고블린 두 마리 보이시죠?”
함정 더미가 사라진 것을 눈치챘는지 구멍 어디선가 기어 나온 고블린들이 키륵- 거리며 분노를 표출했다.
“저는 약해서 아직 고블린은 못 잡겠네요.”
“……이래서 날 데려왔구나…….”
그녀의 미간이 좁혀지며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아니 일단 나라도 고블린은 잡을 수 있다. 다만, 좀…… 잡으려면 오래 걸릴 뿐이지. 말 그대로 시간 낭비가 싫기도 하고 애초에 그녀를 위해 설정한 던전이니 오해를 안 했으면 좋겠다.
“에휴…… 던전 유물의 배분은 70 : 30으로 하자. 당연히 70이 나고.”
“아. 네.”
생각보다 양심적인 발언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 물론 그렇게 할 생각이었지만, 그녀의 입에서 그 말이 먼저 나올 줄은 몰랐다.
“자 가자.”
“고블린은?”
“이미 끝났어.”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앞에서 끼익거리는 고블린들이 움직일 겨를이 보이지 않는다. 그제야 그녀가 적안 가문의 고유 스킬인 적안을 사용한 것을 눈치챘다.
난 그녀가 빨리 앞으로 가자고 닦달하듯이 말하기에 얼른 그녀를 뒤쫓았다.
* * *
키륵-
키에엑-
키이익?
키리릭!
동굴의 일자 길을 걸은 지 10분, 머지않아 일자 길의 끝에서는 원형의 넓은 공간이 보였다. 그 공간 중심에는 여러 마리의 고블린들이 한데 모여 대화 같지도 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좀 많은데?”
“네. 하지만 아까도 보셨죠? 여기에 반은 가짜예요.”
“그럼 반은 진짜 고블린이네.”
모여 있는 고블린만 해도 100마리 정도는 보이는데, 제아무리 한설아라도 지금의 힘으로는 그 물량의 반인 50마리의 고블린한테 적안 스킬을 쓰지는 못 할 것이다.
“이럴 줄 알고 준비한 게 있어요.”
“어? 뭔데?”
“이거요.”
한설아는 천운의 행동에 의아해하며 천운이 가방에서 꺼낸 것을 보았다.
“그건…….”
“네. 고블린 전용 마취향이요.”
“여기 고블린이 있다는 건…… 에휴…… 됐어. 시작하자.”
그녀의 말이 끝나자 난 향에 불은 붙이고 잠시 뒤로 물러났다. 아마 비싸게 주고 산 만큼 크게 값어치를 할 것이다.
키엑-
쿠우욱-
고블린 무리들이 냄새를 맡아 눈치를 챘지만, 때는 늦었다. 고블린 전용 특제 마취향이다. 맡은 지 10초도 안 된 채 기절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저 덕분에 편하죠?”
“뭐 어제 한번 조사했다며, 설마 여기 안쪽까지 들어간 거야? 그것도 혼자서?”
“아니요. 입구 앞에 고블린이 보이길래, 그냥 혹시 몰라서 가져왔어요.”
그녀의 의구심을 대충 둘러댄 다음 앞을 향해 나아갔다. 여기서 설명하고 설명하면 아마 끝이 없을 거다. 일단 믿어 주지도 않을 거고.
“이 문은?”
또다시 울퉁불퉁한 동굴 안을 걸은 지 10분, 몇 발걸음 너머에는 높이 10미터는 돼 보이는 거대한 해골 문양의 문이 있었다. 이 문은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보스방이네요.”
본래 보스방이란 이 던전의 유물들을 지키는 강력한 마물이 존재하는 방이다. 그리고 한설아는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방을 아베타 두 명, 그것도 한 명은 아베타 같지도 않은 놈을 데리고 공략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남자는 달랐다.
“뭐해요? 안 들어가고.”
힘은 없으나, 배짱만큼은 하늘을 찔렀다. 뭐 일단 여기까지 자신 있게 와 본 것을 보니 그는 이미 보스방의 정보를 미리 알고 있는 거 같으니 일단 한번 믿어 보기로 했다.
“무슨 보스인지는 알고 있어?”
물론 알다마다. 지금까지 고블린이 나와서 보스는 고블린 워리어라든지 고블린 매지션이라든지 그런 것을 예상했겠지만, 지금까지의 고블린은 페이크다. 보스방 안에 있는 마물은, 처음부터 힌트를 줬듯이 환각 계열의 보스 몬스터가 있다.
“네. 대충 알 거 같아요.”
이름은 ‘레트아몽’. 우스꽝스러운 광대 모습을 한 마물이다.
이 마물이 환각계열인 만큼 그 몸은 약하지만 보스방에 도전한 이들 중 가장 끔찍한 트라우마를 가진 소유자의 기억을 보스방 전체에 투영시킨다. 아직은 인간 불신증에 걸리지 않은 그녀지만 보이는 것은 한 가지 예상이 된다.
어린 나이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멸시를 받은 기억. 내 예상에는 그녀의 어릴 적 기억이 투영되리라 생각된다. 그녀에게 해 줄 말은 이것뿐이었다.
“이 문 안으로 들어간 순간부터 전부 가짜니까. 현혹되지 마세요.”
“어? 그게 무슨…….”
난 그녀의 말이 끝내기도 전에 문을 열었다.
* * *
무엇도 보이지 않은 칠흑의 공간.
한설아도 말이 없으니 이 공간에는 정적만이 남아 있었다.
삐이이이이이잉-
어디선가 들리는 사이렌 소리. 순간의 어둠이 거짓말이라는 듯이 공간 전체가 일변하듯 바뀌었다.
“여긴 대체…….”
삐이이이이이이잉-
[현재 마수 대물량 사태가 발생했으니 신속히 긴급 대피소로 피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이게 대체 뭐야?!”
“그게 저도…….”
나도 처음 보는 공간이다.
난 그녀에게 이런 기억이 있다고 쓴 적이 없기 때문이다.
키에에에에엑-
사아아아악-
- 꺄아아악! 살려 줘!
- 아아악 도와줘!! 제발!!
땅이 갈라지며 그 사이로 무수한 마수들이 올라오고, 하늘은 이 광경을 찬양하듯 적색으로 물들며,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피를 튀기고 찢겨 나가며 죽어 나가고 있었다. 이 광경은 마치 지옥도를 연상케 했다.
‘설마.’
“흐아아아아앙! 오빠!”
한 여아가 미처 대피하지 못했는지 부서진 건물 잔해에 넘어져 누군가의 도움을 바라며 울고 있었다.
“빨리 구해야 해!!”
“진정하세요. 전부 환상이니까.”
나와 그녀는 현재 대피소에 있었다. 아마 저 여아는 보스 몬스터의 함정일 것이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 운아. 알겠지?
그 순간 생전 들어 보지도 못했던 한 남성의 다정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렸다.
- 그게 무슨 소리세요. 아, 아버지!!
- 이 아이를 부탁합니다.
아들로 보이는 소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 사내가 아베타에게 아들을 맡기고 여아한테 달려가고 있었다.
- 아버지!!! 아버지!!
그는 실성하듯 자신의 아버지를 불렀으나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옆에 있던 어머니 또한 달려 나간 아버지를 따라 나가 여아를 구했지만, 온전한 몸으로 돌아오지는 못 했다.
“저거…….”
“한설아 씨 따라오세요.”
난 그녀의 손목을 잡고 그 사내가 뛰는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달렸다.
내 일이 아니다. 내 기억도. 하지만 마음속의 이 착잡한 응어리를 지울 수는 없었다.
답답하다.
빨리 이 상황에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느껴졌다.
“전방에 넓게 스킬을 쓰세요!! 빨리요!!”
“어? 그걸 어떻게? 일단 알겠어!”
한설아는 내 말에 따라 전방에 횡으로 넓게 적안 스킬을 퍼트렸다. 난 그녀의 적안 스킬을 발한 곳을 놓치지 않고 허공에서 흔들리는 아지랑이를 발견했다.
‘저기다.’
동굴에 출발하기 전, 꺼내놓은 작은 단검. 하지만 이 단검으로도 ‘레트아몽’을 쓰러트리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크리티컬 단검.
10분의 1확률의 운 좋게 크리티컬이 뜰까 말까 하는 도박과도 같은 유물.
난 이 작은 단검에 내 조금 있는 마력을 담았다.
위이잉-
조그만 마력으로 인해 검날 주위는 조금 미세하게 요동치지만, 이걸로 충분하다. 난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허공에 흔들리는 아지랑이를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키아아아악-
쇠를 긁는 듯한 끔찍한 단말마와 함께
털썩-
무언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주위의 광경들은 거짓말이었다는 듯이 사라지고 이 보스방에는 나와 한설아만이 남았다.
“…….”
“유물이나 보러 가자.”
한설아는 나를 측은한 눈초리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이에 맞지 않을 정도로 어른스럽고 눈치 있는 여자였다.
내 침묵을 알고 그녀는 신경 써서 저렇게 말한 것일 거다.
“60 : 40이었나요?”
“70 : 30이야.”
나도 이 무안한 분위기를 풀고 싶어 그녀의 장단에 맞춰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