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5
산삼을 발견한 후 일주일이 지났다.
운 좋게 발견한 불굴의 산삼은 산삼이라기에는 무에 가까운 크기였다. 역시 내가 쓴 생김새의 묘사답게 이 불어 터질 거 같은 무 크기의 산삼 안에는 수치 20 정도의 마력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냥 흙을 털어서 생으로 먹으면 설명대로 육체의 물리적 충격을 낮추고 정신적 충격을 완화해 주지만, 내가 설정집에 고스란히 생각해 놓고 소설에는 서술하지 않은 방법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이 방법이다.
“후릅……. 켁- 어우 쓰다. 적응이 안 되네.”
불굴의 산삼을 생으로 그냥 먹기 전에 산삼을 물에 담가 차로 끓여 마시면 산삼에 있던 마력이 고스란히 몸에 깃들어 마력이 올라간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방법은 이것이다.
1. 무 크기의 산삼을 한입 크기로 잘라 낸다.
2. 조각낸 산삼 한 조각으로 차를 끓인 다음에 마신다.
3. 차에서 건져 낸 산삼 조각을 먹는다.
물론 산삼을 통째로 전부 끓여 마시면 안 된다. 무려 마력 스탯이 20스탯이나 상승하는 영약이다. 어디 무협 만화에 나오는 ‘주화입마’처럼 마력이 뒤틀려 꼬일 수도 있다. 그러니 천천히 느긋하게 몸을 키워 나가자. 이 방법대로 천천히 다 먹게 되면 마력과 산삼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어 일석이조이다.
“어디 보자……. 상태창.”
이름 : 김천운
나이 : 16세
<스탯>
힘 : (9/50)
체력 : (5.3/30)
지능 : (1/100)
마력 : (6/30) +0.1
행운 : (100/?)
보아라. 꾸준히 차를 마실 뿐인데도 마력이 천천히 올라가고 있다. 그래도 어느 정도 가문의 신체 특성 영향도 있을 거다. 다른 보통 각성한 아베타들보다 빠른 성장력이 특징인 4대 가문의 특성이다. 소설 속 김천운은 아니었지만, 현재 나 과거가 뒤바뀐 김천운은 어머니로부터 고스란히 물려받은 가문의 피가 몸에 깃들어 있다. 설정 변화로 인해 큰 이득을 얻은 것이다.
“어머, 좋은 냄새.”
“일어나셨어요?”
“좋은 아침.”
아침 식사는 매일 민아 누나와 함께하기로 했다. 일 때문에 점심과 저녁은 바쁘기에 같이 먹을 시간은 이때뿐이다. 늘 그녀에게만 식사 준비를 맡기기에는 미안하니 번갈아 가며 아침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도 자취 경력 4년이다. 누나에게 꿀리지 않을 음식을 만들 자신이 있었다.
“후흣. 요리도 잘하네.”
내가 만든 된장국을 한 입 드신 뒤 빙긋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미리 말해 주는 걸 깜빡했네? 일단 학교는 마음을 추스르고 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가렴.”
“아, 네 감사합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잊어먹고 있었다.
난 아직 16살 중학생일 게 뻔한 나이임에도 누나가 별말 없어서 학교에 안 가도 되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걱정돼서 기다려 준 듯하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사실 김천운 ‘사람 만들기 프로젝트’를 1년 안에 하기에는 조금 아슬아슬한 감이 있었다.
거기서 학교까지 등교했으면 뻔할 뻔 자다.
“그럼 저는 먼저 가 볼게요.”
“몸조심하렴.”
오늘도 난 운동을 위해 산을 타로 갔다. 내가 이렇게 매일 꾸준히 할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 아마 매일 조금씩 섭취한 불굴의 산삼에 영향이 클 거다.
* * *
“후욱- 후욱- 헉-.”
어느 정도 산에 오르니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일주일밖에 안 됐지만, 꾸준히 올라오길 잘한 거 같다. 그 성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 처음에는 걷는 것도 힘들던 내 몸은 이제 산을 뛰어갈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어느 정도 산삼의 효능인 정신적 충격 완화로 삐걱거리는 몸을 악으로 버티며 뛰는 거지만 충분한 성과가 있었다.
“오늘도 오셨네요.”
“…….”
내 뒤에서 긴 흑발을 포니테일로 묶은 그녀가 내가 다가와 나란히 옆에서 같이 뛰어 주었다. 일주일 동안 꾸준히 산을 오르며 매일 만나다 보니, 어느새 간단한 인사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하는 거지만……. 일단 그녀를 위한 공물인 초콜릿은 매일 준비하고 있다.
“포기하실 줄 알았는데. 꾸준히 오시는 걸 보니 보기가 좋네요.”
“예?”
어? 누구야 이 사람?, 내가 아는 한설아는 이런 친절한 말을 하는 여인이 아닌데……. 내가 알던 도도하고 거만한 여자는 어디 갔지? 무언가 이상하다. 아직 얼굴 튼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사내를 살갑게 대하다니. 내가 아는 그녀가 아니다.
“뭐예요, 그 표정은?”
“아…….”
한설아가 못마땅하다는 듯이 노려봤다. 나도 모르게 어리둥절한 표정이 지어졌으니 일단 사과하자.
내가 사과한 뒤 한참을 다시 뛰다가 그녀가 갑자기 생각난 게 있는지 조심스럽게 먼저 말을 걸었다.
“저기…….”
“아 오늘은 핫초코하고 초콜릿 쿠키 가져왔는데 드실래요?”
“…….”
나는 눈치 있게 그녀가 물어보기 전에 대답했다.
말은 안 했지만, 그녀는 요즘 김천운이 가지고 오는 초콜릿 때문에 산에 오르는 것이 하루 일과의 즐거운 낙이 되었다. 말 안 해도 김천운은 그것을 이미 알고 있다.
“도착했네요.”
산 정상에 도착 후, 나는 그녀가 항상 하는 명상 훈련을 따라 하고 있다. 그녀의 훈련법은 이론상 알고 있지만 하는 방법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일단 무작정 그녀가 하는 방법을 따라 해 보았다. 그래 봤자, 그냥 근처 아무 데나 앉아서 그녀처럼 자세를 보고 따라 하는 거뿐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뭐지?
갑자기 보다 못한 한설아가 내게 다가와 조언을 해 주었다.
진짜 누구지? 정말로 내가 아는 한설아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위화감이 들었다.
얘도 나처럼 딴 사람이 몸에 빙의됐나?
“일단, 몸 안에 있는 마력을 느껴야 해요. 그리고 그걸 둥근 구로 만들어서 좌우로 움직여 보세요.”
“네. 해 볼게요.”
“졸지 마시고요.”
“죄송합니다.”
“뭐 일단 말은 쉬워도 마력을 인식하려면 몇 달은…….”
“아! 뭔가 된 거 같네요.”
“네? 거짓말은 좀 그렇네요.”
“아니요, 정말로 뭐가 느껴지긴 하네요.”
그녀가 믿지 못하겠다는 뒤숭숭한 표정으로 천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녀는 보았다.
천운의 몸 안에서 아주 작은 마치 토끼가 가질법한 6짜리 마력이 한데 모여
둥그런 구가 된 것…… 아니 작은 점이 된 것을 보았다.
“진짜네…….”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김천운 자신은 눈치 못 챘지만, 주위에 존재하는 마소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천운의 마력 친화력은 상당히 뛰어났다. 그런 그가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마력을 못 느낄 리가 없었다.
‘친화력이 높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저기?”
천운은 의아해하는 그녀를 보며 무언가 잘못된 건지 살짝 걱정됐다. 그만큼 그녀의 표정은 무언가 고민에 빠진 표정이었다.
“잘된 건가요?”
“아, 그럼요. 그럼 이제 그 동그란 구…… 아니 점을 좌우로 조금씩 흔들다가 온몸으로 순환하듯이 움직여 보세요.”
“네. 알겠어요.”
그녀의 말대로 작은 점으로 만든 마력을 좌우로 조금씩 흔들어 보았다
‘이런 거였구나.’
난 지금 소설로만 쓰던 마력 순환을 내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내 몸 안에 작은 마력의 구…… 가 아닌 점이 느껴진다. 그 구 아니 점을 조금씩 좌우로 흔들다가 한번 왼쪽 팔로 옮겨봤다. 팔로 옮긴 점은 다시 가슴 중심으로 옮긴 뒤 오른쪽 다리로 옮겼다.
“뭔가 느껴지죠?”
그녀가 흐뭇한 듯 웃으며 천운을 바라봤다. 이 훈련은 처음 마력을 느끼는 게 힘들 뿐이지 그 후로 마력 구를 만들어서 몸을 순회시키는 것은 쉬운 훈련이었다.
“이 훈련법은?”
“후훗 제가 만들었어요. 어떻게 하면 마력 용량을 늘릴 수 있을까 해서 한번 만들어 봤죠.”
“대단하시네요.”
“네. 저도 알아요.”
일단 그녀가 만들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물어본 것은 그녀가 이 훈련법을 자랑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양 사이가 좋아진 거 많이 아부나 떨어 두자.
야옹-
어디선가 들려오는 고양이 전화벨 소리에 그녀가 화들짝 몸을 떨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녀의 얼굴에 붉은 홍조가 눈에 띄었다.
“잠시…… 전화 받고 올게요.”
그녀가 부끄러운지 뒤돌아 스마트폰의 전화를 받았다.
“현 아저씨. 무슨 일이죠?”
나는 그녀가 뒤돌아 전화를 받는 동안 다시 한번 점을 만들어 몸을 전체를 순환시켜 봤다.
조그만 마력의 점이 몸 전체를 순환하며 마력의 통로는 조금씩 넓혀 주는 느낌이었다.
이 훈련은 자기 전에 한 번씩 하는 것도 좋은 거 같다.
“윤현 아저씨. 그건 제가 알아볼 테니까. 다른 일부터 알아봐 주실래요?”
“어?”
들었다. 방금 작게나마 들었지만, 그녀는 분명 윤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왜?
‘설마 한설아의 성격이 아직 정상인 이유가…….’
그녀의 사정은 익히 알고 있다. 33살과 17살이라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자매. 그녀는 배다른 자매였다. 딸밖에 없는 가문에 후계자를 찾지 못한 ‘현 적안 가문의 장’은 불륜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나 언니와 비교해도 어디 하나 뛰어난 구석이 없는 그녀는 결국 가문에서 멸시받는 존재가 된다. 그런 한설아에게 손을 내밀어 준 자가 있었다.
윤현.
현 적안 가문의 개라고 불리며 한설아의 심복이자. 그녀를 납치하고 죽이려던 자다.
그로 인해 한설아는 트라우마가 생기고 인간불신이 생기며 사람을 거부하고 적당한 선을 긋게 된다.
위화감의 정체를 알았다.
한설아. 그녀는 아직 윤현에게 배신당하지 않았다.
‘설마 아직도 한설아의 곁에 있을 줄이야.’
그렇다면 다행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그녀의 트라우마가 생기기 전에 내가 막을 수 있다면 막아 두는 게 좋을 것이다. 굳이 소설 전개대로 나둬서 그녀가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
소설을 쓰며 등장인물들에게 애착이나 애정을 못 느낄 줄 알았지만, 그것이 뒤바뀌어 현실이 되었다. 소설이 현실이 되자 재미로 쓰던 스토리의 죄악감이 뱀이 되어 내 목을 조르는 거 같았다.
그녀가 그렇게 된 것은 내가 그렇게 썼기 때문이다.
‘아직 시간은 있어.’
일정을 조금 앞당겨야겠다. 원래라면 조금 더 스탯을 올린 다음 도전하려 했지만 언제 그녀가 납치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녀가 전화를 끝냈는지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저기요.”
“네?”
“오늘은 사정이 있어서 먼저 내려가 볼게요.”
“아. 네 그럼 이거라도 들고 가세요.”
난 가방에서 꺼내 그녀에게 초콜릿을 건넸다.
“좋아하시잖아요.”
“…….”
그녀가 초콜릿을 지그시 바라보다 이내 초콜릿을 건네받았다.
“저기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의외였다. 그녀가 먼저 내게 물어볼 줄은 몰랐다.
그녀의 의심이 풀려면 석 달은 꾸준히 그녀를 만나러 산에 올라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직 트라우마가 없는 그녀다. 인간불신증에 걸리기 전의 그녀라면 일주일은 충분하고도 남았던 모양이다. 난 최대한의 밝은 미소와 함께 그녀에게 말했다.
“김천운입니다. 내일도 기다리고 있을게요.”
내 말은 들은 그녀는 손을 내밀며 밝게 인사했다.
“한설아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그녀를 만난 지 일주일.
드디어 그녀의 이름을 들었다.
* * *
항상 산의 훈련을 마치고 집에 가기 전에 들르는 곳이 있었다.
XX병원의 병실.
이름 : 김신아.
김천운의 어머니이시다.
가문을 나옴과 동시에 가문의 성을 버렸다고 누나에게 들었다. 그러니 아버지와 똑같은 김씨인 거겠지.
오늘도 난 그녀의 병실에서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마물의 습격으로 인해 혼수상태가 되신 어머니. 죄악감으로부터 도망치는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난 김천운의 과거를 이렇게 묘사한 적이 없다. 하지만 마음속 한편에 착착한 심정은 감출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하나뿐.
“아들 목숨은 제가 어떻게든 구해 드릴게요.”
그녀에게 들리지 않겠지만, 지금 그녀에게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다. 김천운의 데드엔딩으로부터 벗어나 살 수 있으면 분명 언젠가는 김천운이 깨어난 어머니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돌아오는 대답 없이 난 병실의 문을 열고 나갔다. 이곳에 오래 있어 봤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일단 내일을 위해 준비를 해놔야 한다. 계획이 앞당겨졌으므로, 내일 한설아와 함께 갈 곳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준비물이 필요하지만 다행히 돈은 넘치도록 많다. 집에 가기 전에 필요한 준비물을 생각하며 김천운은 발을 옮겼다.
드르륵.
불이 꺼진 병실.
김천운이 나간 뒤 몇 분 후, 그녀의 병실에 누군가 들어왔다. 그는 근처 의자에 앉아 그녀를 바라봤다.
“감사했습니다.”
그가 말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의 눈에는 작은 눈물이 고이며 말을 이었다.
“아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어떻게든 지키겠습니다.”
그는 누워 있는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결의에 찬 표정을 지었다.
김의철.
그는 김신아의 손을 잡으며 무언가를 다짐했다.